서소영 Soyoung Suh의 신앙 이야기
안녕하세요. 미국 북동부에 있는 작은 대학 역사학과에서 연구하고 가르치는 서소영입니다.
저는 월남하신 분들이 서울에 세운 예수교장로회 통합측 교회에서 자랐습니다. 고등학생 때까지 교회에서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을 다하며 즐겁게 지냈습니다. 대학 시절, 기독교 신앙에 대해 많은 고민이 있었지만, 보수적인 선교단체에서도 배우고, 또 노래운동하는 모임에서 멋진 믿음의 벗들도 만나며 그럭저럭 잘 지낸것 같습니다.
20대 중반에 우연히 중국 연변으로 1년 단기 선교를 갔었는데, 그곳에서 아시아, 남북분단, 그리고 선교 등에 관해 성찰할 기회를 가졌습니다. 한국에 돌아와서는 페미니즘 공부도 했는데, 어떤 한계를 느꼈다고 할까요? 박사 수료 후에는 논문을 쓰고 싶은 동력이 생기질 않았어요. 그러면서 '나는 왜 계속 영미권 학자들의 글을 수입해서 읽기만 해야 하나?' '내가 영어로 글을 쓰면 그들은 과연 내 글을 읽기라도 할까?'라는 의문이 들었지요. 그리곤 뒤늦게 미국으로 공부를 하러 왔고, 그렇게 미국에서 24년째 살고 있습니다.
미국 북동부 시골의 작은 교회
처음 유학생활을 하면서 미국 서부의 한인교회에 다녔고, 10여년 전에 미국 북동부의 지방 대학촌으로 이주했습니다. 지금 출석하는 교회는 전교인이 20-35명 정도 되는 작은 교회입니다. 이민 오신 분들, 한인 유학생, 방문 학자와 가족들이 단기간 머무르다 가시기도 합니다.
교회 담임 목사님은 타지에 살면서 일주일에 한 번씩 설교와 목양을 위해 왕복 5시간이 넘는 운전을 해서 교회에 오십니다. 그렇게 지금까지 20여 년을 섬겨주셨습니다. 저희 교회는 장로교단에 속해 있지만 당회가 없고, 새벽기도, 수요예배, 남녀전도회, 성가대도 없습니다. 그렇지만 청년부가 있고 필요에 따라 4-7명 정도로 구성되는 주일학교가 있습니다. 최근에는 새로 담임 목사님이 부임하셔서 더 나은 공동체를 위해 함께 애쓰고 계십니다.
다인종 기독 대학생들과 함께
나름 규모를 갖춘 보수 개신교회에서 온갖 문화적 혜택을 누리며 살아왔던 저에게, 지금의 교회 상황은 일종의 상실이지요. 주위에 장신, 총신 나온 남자 목사님들도 없고, 세련된 교회 프로그램도 물론 없습니다. 그래도 다른 길들이 열리더군요. 묵묵히 순례의 길을 걷는 좋은 교우들을 만났고, 학교와 주위 미국 교회를 통해 배움의 기회도 가집니다.
저와 제 가족이 속한 교회는, 캠퍼스 내 다인종 기독 대학생들의 주일 예배를 20년 넘게 후원해 오고 있습니다. 어쩌다 보니, 저와 제 남편이 그 학생들 모임의 co-advisor(공동 목양자)가 되었습니다. 남편이 8년동안 매 학기마다 학생들과 소모임, 주일 예배를 함께 했으며, 1년 반 전에 제가 그 역할을 맡아 일 년에 36주 정도는 학교 강의실에서 대학생들이 주도하는 주일 예배에 참석합니다. 설교는 보수적 교단의 백인 남자 목사님이 하시지만, 학생들이 이끄는 다양한 소모임이 있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읽고
김근주 목사님의 <특강 예레미야>(IVP 2013)를 2015년 무렵 구입했는데, 끝까지 읽지를 못했습니다. 그러다 근래 성소수자에 대한 국내 목사, 신학자들의 책을 찾아 보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도서출판 느헤미야 2020) 를 접하게 되었지요. 제가 관심을 둔 영역이라 그런지 잘 읽혔고, 각주에 근거해서 논증하는 글이 인상적이고 설득력 있게 다가왔습니다. 그러면서 김 목사님의 다른 책들과 동영상을 본격적으로 읽고 보기 시작했죠.
"에두르지 않고, 문제의 핵심으로 진격하는"
김근주 목사님의 의미와 역할
개인적으로 두 가지 점에서 김근주 목사님이 특별하다고 생각합니다.
첫째, 목사님은 자신의 발화 지점을 인식하시죠. “서울대 출신 영미권 박사학위를 가진 한국 중년 남성” 목사님으로서의 위치성을 성찰하시는 거라고 생각해요. 자신이 초시간, 탈공간적, 하나님 대변자가 아니고, 독자, 청중의 동시대인으로서, 시대의 한계에 속해 있지만, 그러나 밥과 직분을 걸고, 성서 분석에 올인하시겠다는 태도가 적어도 제게는 신뢰감을 줍니다.
둘째, 목사님은 성경공부에서 늘 권력 관계를 다루려 노력하시죠. 어느 때부터인지 저는 (미국이든 한국이든)교회에서 하는 말들이 너무 추상적이어서 와 닿지 않았어요. 구원, 은혜, 천국, 사랑, 영생 다 좋은데, 제일 중요한 힘의 관계는 쏙 빼놓고 이야기하니까요. 그래서 그게 지금 여기 나랑 우리에게 무슨 의미라는 건지, 잘 이해가 안 되더라구요. 그 말이 그 말 같고, 질문도 허락이 안되고, 그래서 어지간하면 설교 시간에 딴 생각하거나 졸죠.
김근주 목사님은 에둘러 말씀하시지 않고 곧장 문제의 핵심으로 진격하시는 것 같아요. 또 실명으로 비판하고, 나쁜 놈들은 욕하고, 안전한 양비론에 안주하지 않으려 노력하시니까, 다 동의되지 않아도 늘 배울 것이 많죠. 다르게 살고 싶은 의지가 생긴다고나 할까요?
일산은혜교회에 대한 관심이 김근주읽기까지
'김근주읽기'는 2021년 대한예수교장로회 합신 교단 탈퇴 결정을 내리신 일산은혜교회 교우님들 및 다른 지지자들이 궁금해서 참여했어요. <복음과상황>에 실린 박찬욱 님과 강경희 님의 글들, 그리고 이어진 일련의 사태들에 대한 <뉴스앤조이>의 인터뷰와 기사들을 우연히 읽게 되었는데, 역사에 남을 만한 일이다 싶었습니다.
아울러 김근주 목사님이 청년부 담당 목사님이시라는 점, 그 청년부에서 인권 운동가 한채윤 님도 특강 강사로 부른다는 점이 놀랍고 부러웠어요. 교단 탈퇴 결정이 그냥 하나의 사건이 아니겠구나. 공동체가 있겠구나. 어떤 사람들일까 궁금했습니다. 그리고 김근주읽기에 참여했습니다.
"성경을 묵상하고 하나님 나라에 대해 궁리하면 할 수록, 때론 스며들고 때론 철벽처럼 다가오는 여러 종류의 힘(power)들에 민감해지게 됩니다."
_<다니엘처럼> 함께 읽기 소감에서
원탁에 둘러앉은 진심 공동체
김근주읽기는 이제 겨우 두 번 참여 했는데 솔직히 참 신선했어요. 다같이 원탁에 둘러 앉은 느낌이랄까. 2주 동안 매일 글로만 만날 뿐, 참석자들의 나이, 성별, 직업, 최종학력, 정치적 성향 등이 전혀 궁금하지 않더라구요. 물론 글에서 조금씩 느껴지고 예상되는 면은 있었지요. ㅎㅎ
일종의 습관이랄까 한국인은 만나면 나이부터 확인하고 서열을 무의식중에 정하죠. 그런데 한국 문화에서 이렇게 느슨한 관계로 글과 마음을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것이 특별했습니다. 제가 속한 톡방에는 십 여분 정도 매일 소감글 올리셨는데, 짧은 글이든 긴 글이든 모든 분들의 글에서 진심이 느껴졌습니다.
인상적인 소감 글을 남긴 분들
같은 외국살이 처지라 그런지, 김정건 님 포스팅도 마음에 남았고, 개인적으로 이지연 님이 올리시는 글들이 참 인상적이었어요. 성실함과 디테일이 돋보이는, 평신도 학자님이시구나 싶었어요. 작년 12월에 발행한 김근주읽기 뉴스레터 이지연 님 편(이 시대의 에클레시아, 김근주읽기 (maily.so)을 읽어 보니, 동양 사상에도 관심이 많으시고, 저처럼 여성학자 정희진 님 팬이시기도 하더라구요. 언젠가 이지연 님이 풀어내는 성서 메세지도 들어보고 싶어요.
기독 신앙에서 여성의 자리는
중산층의 고분고분한 딸로 자라, 긴 치마 입고 찬양팀 하던 청년 시절을 거쳐, 재생산과 엄마 노릇을 해내고, 교회 부엌을 책임지는 나이든 여자로 은퇴하면, 결국 어떤 사람으로, 어떤 여성 주체로 남게되는 걸까. 그냥 침묵하는 종교 소비자로 끝나는 것 아닌가. 교회는 그런 여성들의 삶의 주기에 맞춰 각종 프로그램으로 감정을 달래 주고 스트레스를 풀어주고 교양을 채워주고, 장례 치뤄주고. 그 이상의 무엇이 있었던가? 싶습니다.
인생의 반환점을 돌아서 일까요? 최근 개인적으로 의구심이 깊어지더라구요. “한국 개신교 교회를 오래 다니면서 거기서 하라는 거 모두 다 열심히 따라하면 어떤 사람, 여성, 주체가 만들어지는 걸까?” 20세기 초 전도 부인, 1970-80년대 순복음교회 소그룹 리더들을 분석한 역사, 인류학적 연구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누군가를 비판한다기 보다, 그냥 저 자신과 자매들, 제 주위의 친구들, 어머니, 이모님, 권사님 들을 보면서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았습니다.
그래서 각종 독서모임, 기독교 교양 모임, 평신도 신학 운동 등등 다 좋은데, '이 끝에는 또 뭐가 있을까'를 생각해 봤어요. 그래서 '방향을 갖고 힘을 싣는 공부를 하자'는 결심이 중요하다 싶습니다. 용감하고 당차게, 없던 길 열어가는 여성들, 성소수자 교우님들, 사역자님들에게 힘을 보태야하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우리 주변의 사회적 약자 돌아보기
저는 백인 중심의 대학촌에서 유색인종, 이민자, 여성, non-native speaker로 살고 있어요. 그렇다고 제가 늘 약자인 것만은 아니에요. 누리는 것들도 많고 주위에 배울 점 많은 동료, 이웃들도 있지요. 다만, 일터와 가정, 믿음의 공동체에서의 권력 관계라는 게 참 미묘해서, 매 순간 상황에 따라 변하고 모순을 만들어 내더군요. 그래서 더 민감하고 싶어요. 그런 권력 관계 내에서 나의 수행적 위치성이 어떤 이들을 구조적으로 밀어 내거나 침묵 시킬 수도 있는 거죠. 나이 들수록 괴물이 되지 말아야지 싶은데, 태생적 한계도 있는 것 같아요.
평신도가 만들어가는 기독 서사
저는 김근주읽기 뉴스레터가 참 좋아요. 나와 동시대를 살아가는 한국 기독인들의 희망과 아픔이 이렇게 다채롭구나, 싶어 감동과 힘을 얻어요. 왠만한 기독서사, 혹은 기독역사는 목사, 장로, 교단, 대형 교회, 유명인 중심으로 서술되기 때문에 기껏해야 여성은 그냥 한 챕터 정도로만 다뤄지죠. 역사 쓰기에 관한 한, 평신도, 여성, 비중산층, 소수자 등에 대한 아카이브(사료) 및 자기 서사 자체가 많이 부족하다고나 할까요.
저는 김근주읽기에서 발행하시는 뉴스레터들을 읽으면서 이 분들이 일종의 평신도 아카이브를 만들고 있구나 싶었어요. 그래서 진심으로 응원해요. '다른 역사' 혹은 '대안적 서사'에 목 말라하는 분들이 뉴스레터의 평신도들 이야기를 반짝이는 눈으로 읽어 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질문해봐요
남화숙 선생님이 쓰신 Women in the Sky: Gender and Labor in the Making of Modern Korea (2021, Cornell University) 라는 책을 읽고 있는데요 (죄송합니다. 곧 한국어로 번역된다고 합니다. 김원의 “여공 1970”이 익숙하신 분들은 그 책을 떠올리셔도 좋겠습니다.) 1931년 평양 을밀대에 올라가 임금 투쟁한 고무공장 노동자 강주룡부터 2011년 고공농성을 한 김진숙에 이르기까지 여공, 여성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20세기 한국사를 조망하고자 하는 책이에요.
저자는 질문해요. “여성은 끊임없이 일해왔고, 공장 노동자로 산업화에 이바지 해왔으며, 가장 치열하게 노동 운동을 해 왔는데, 왜 진보적인 한국의 학계 혹은 노동 운동의 역사에서 조차 그들의 이야기는 쉽게 잊혀지는가?” “왜 어떤 ‘역사’는 가장 구체적으로 땀 흘리고, 몸을 쓰고, 의미를 만들어 가는 여성들의 중요성을 지속적으로 부정하는가? 그런 ‘역사’를 우리는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가?”
남화숙 님의 질문에서 '여공, 여성 노동자'를 평신도 혹은 여신도로 바꿔 읽으면 어떨까요? 김근주 목사님도 여러 번 강조하셨지만, 한국 개신교회는 이름 없는 여성(평신도)들의 노동과 헌신, 기도와 참여로 이뤄져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개신교의 구조적 성차별
조금 과장하자면, 저는 현재 대한민국에서 개신교계 만큼 구조적으로 성차별 하는 곳이 또 있을까 싶습니다. 물론 모든 종교가 가부장적 전통을 가지고 있고, 천주교 불교도 예외는 아니죠. 하지만, 거긴 독신 서약을 통한 상징적 거세가 제도화 되어 있죠. 개신교는 이성애 정상 가족 이데올로기 및 씨족 중심 습속과 묘하게 결합해서 남자, 아버지, 아들 중심의 독특한 교회 문화를 만들어 온 것 같아요.
기독교는 매우 강력하게 여성, 소수자, 인간에게 해방의 언어를 주고 다른 세상을 꿈꾸게 하죠. 그러나 그 해방의 경험과 동일한 정도의 강렬함으로 다시금 여성, 소수자들을 길들이죠. 나를 두려움 없이 나아가게 하는 바로 그 하나님의 이름으로 침묵, 양보, 배려, 순종, 희생을 요구해요.
공동체 내에 축적된, 불균질적인 권력 관계에 대한 비판 없이, 이런 덕목들을 여성, 청년, 소수자들에게 아버지의 목소리로 몇 십년간 요구하게 되면 언젠가는 문제가 생기죠. 성평등이 암묵적으로 죄악시 되는 개신교 문화에서, 구조적 성차별과 삐뚤어진 성별 관념, 성폭력이 자라 나는 건 시간 문제라고 봅니다.
페미니즘, 이론의 틀에 가둘 수 없어
정희진 님의 최근 책 <다시 페미니즘의 도전>(교양인 2023)을 말하게 된 배경에는, 김근주읽기를 함께하는 김정건 님의 포스팅이 있었죠. 지난 10년간, 성범죄 유죄 판결을 받은 개신교 목회자들이 교단에서는 좀처럼 치리되지 않는다는 신문 기사,(성범죄 목사 80명 후속 조치 점검했더니…“징계 단 1명뿐” | 세계일보 (segye.com) 그 포스팅 읽고 제가 마음이 많이 아팠어요. 많은 분들이 이미 지적했듯이, ‘거룩한 성범죄’는 일부 이상한 사람들만의 문제가 아니잖아요? 제왕적 담임 목사 문화가 지속되는 한, 그리고 교회가 여성과 청년의 시민권을 지속적으로 무시하는 한 (안수, 설교 거부 및 교회 의사결정 구조에서 제외), 개신교회는 다음 세대 여성, 소수자, 청년 들에게 별다른 희망을 주지 못하는 조직으로 전락하고 말 거에요.
기독교반성폭력센터가 발행한 2023 교단총회 성평등 모니터링 보고서, <여성이 말한다>를 읽었어요. 예장 통합, 합동, 한국 기장의 작년 가을 총회 참관기였는데, 예장 통합의 여성 총대 비율이 매우 낮다는 점도 실망스러웠지만, 합동이 여성, 사역자들을 인식하고 대하는 방식은 정말 참담했어요.
'overflow'
얼마전 대학생 모임 리더들이 이번 학기 모임의 주제라면서, 로마서 15:13 말씀을 가지고 찾아 왔어요. “Now may the God of hope fill you with all joy and peace as you trust in Him so that you may overflow with hope by the power of the Holy Spirit.” 이 구절 중, “overflow”에 포커스를 맞춰, 25명 즈음 모이는 금요일 저녁 모임에서 30-40분 정도 말씀 나눠 줄 수 있겠냐고 묻더군요. 생각해 보니, 제가 지금 학교에서 강의는 10년 넘게 했지만, 대학생들 앞에 서서 제가 묵상한 성서를 나눠 본 적은 없었어요. 잠깐 고민하다가 하겠다고 했습니다.
한 달 간 짬짬이 묵상하고 주해서 및 관련 책들 찾아 보면서 공부했어요. 로마서 15:13 앞 단락에서 바울이 구약 성서를 많이 인용 했더군요. 제가 원어로 궁리할 실력은 안되지만, 그동안 김근주 목사님 강의와 책에서 깨달은 것, 또 지금하고 있는 에스겔 후반부 성경 공부에서 배운 것들이 어찌어찌 연결이 되길래, 준비해서 말씀을 나눴습니다.
말씀을 나눈 후에 질문하라고 했더니, 평소 백인 남자 목사님이 설교 후 초청 하실 땐 한 번도 질문 한 적이 없었던 한국계 여학생들 두 명이 정말 좋은 질문과 코멘트를 해줬어요. 그날 처음 만난 또 다른 중국계 여학생 한 명, 그리고 African American 남학생 한 명도 깊이 있는 질문을 했는데, 대답하면서 내심, “앞으로 공부를 좀 더 해야 겠구나” 라고 맘 먹게 되더라구요.
환한 얼굴로 말을 걸어 오는 학생들과 잔잔한 기쁨이 있는 저녁 식사를 함께하고, 혼자 집으로 돌아오면서 생각했습니다. 눈이 부시게 총명하고, 침실, 식탁, 그리고 일터에서, 인종과 성별, 국적의 경계를 넘어 다르게 살고 싶어하는 젊은이들. 그러나 이미 너무 뚜렷한 격차들과 돈의 힘에 자주 상처받는 이 친구들. 이들의 순례길에 잠시 동행하면서,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나. 어떻게 살아야 하나. 생각했습니다.
김근주읽기에 제안
강경희 님 서면 인터뷰 한 번 해 주시면 안될까요? 외부 사람으로서 궁금해요. ‘김근주읽기’는 언제까지 어떻게 하시려는 건지, 강경희 님은 왜 뉴스레터를 하시는 건지, 일산은혜교회를 넘어 널리 가 닿고 싶으신 건지, 여러 가지 질문이 생기네요.
'김근주읽기'에서 제게 크고 작은 자극을 주셨던 모든 분들, 그리고 김근주 목사님, 앞으로 더 많이 배울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참고 기사)
댓글 3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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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미경
서소영님🌸감사합니다! 레터로 이렇게 만날 수 있어서 참 기뻐요. 읽기에서 소영님의 글을 읽으며 어떤 분일지 늘 궁금했습니다. 저에겐 소영님이 친근한 분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김근주 읽기가 주는 힘인 것 같네요^^ 다인종 기독 학생들과 함께 하시는군요~ 특별하고 좋은 경험이다 생각합니다. 원탁에 둘러 않은 진심공동체가 여럿 있으시네요 ㅎ 이지연님, 김정건님, 김은석님 글은 저도 항상 기다립니다^^ 정희진님의 책소개도 <다시 페미니즘의 도전> 감사드립니다. 경희집사에 대한 사랑도 고맙습니다^^ 묵상하신 성서로 수업하실 때 좋은 질문을 받으시니 공부가 늘 즐거움으로 가득하실 것 같아 덩다라 제 마음도 기쁘네요.🩷 평신도가 함께 만들어가는 길에 소영님이 계시니 행복합니다! 항상 건강 또 건강하십시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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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
로그인이 귀찮아서 댓글을 안남기는데 오늘은 취해서 그런지 댓글을 남기고 싶네요 ㅎㅎ 서소영님 글 잘 읽었습니다. 계속 '다음에 읽지~'하고 미루다가 오늘 직원 몇 명과 한 잔 하고 들어와서는 읽게 되었네요. 취해서 읽기에 너무 좋은 글인데 내일 맨 정신에 기억이나 할까 싶어요 ㅋㅋ '에두지 않고 문제의 핵심에 진격하는!' 다들 공감하는 부분이지 않을까 싶어요. 어떤 분이 좋아서 그 분 책이고 동영상이고 파다보면 늘 에두르기만 하고 핵심에는 전혀 들어가지 못하는 분들만 보다가 제가 김근주교수님을 만났을 때의 그 시원함을 표현해주시는것 같아요. 이제 서소영님 이름을 보면 왠지 아는 사람을 만나는 느낌이 들 것 같습니다. 이래서 뉴스레터가 참 좋아요^^♥︎
김근주읽기 (280)
토마토 님, 댓글에 취하겠습니다. 김 목사님과 김근주읽기를 함께하는 분들에 대한 따뜻한 우정을 느낍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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