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간 훵클 (2023년 7월) - 궁극의 럭셔리 feat. 굿즈매거진

굿즈매거진 '티셔츠라는 이름의 도화지' 편에서 제 이야기를 담아주셨습니다. 감사해요.

2023.07.24 | 조회 69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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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 훵키클리닉

빡센 세상을 더 유쾌하고 더 쉽게 살아가기 위해 이상한 티셔츠와 꼼수들을 연구합니다.

쓸모없는 일을 지속하는 것은 궁극의 럭셔리

안녕하세요, 훵키클리닉입니다.

작년 말인가 기세 좋게 주간 뉴스레터로 시작했으나 월간을 넘어 계간이 되어버렸습니다. 이유가 뭘까 생각해봤습니다. 아무래도 텔레그램이나 트위터, 블로그(요즘엔 스레드까지)를 넘어 굳이 '뉴스레터로 공유할 만한' 쓸모있는 깨달음이랄 게 없었던 게 가장 큰 이유일 것 같습니다.

게으름과 바쁨도 큰 이유지만 그만큼 대충 살았단 이야기지요.

 

https://blog.naver.com/funkyclinic119/223136394496

블로그로는 한번 공유드렸듯이 저는 두 개의 직장을 다니기 시작했고요. 밤이 되면 강아지 사진으로 커스텀 티셔츠를 만들어 드리고 있습니다. 물리적으로 깨어있는 거의 대부분의 시간이 [꼭 해내야만 하는] 일들에 강제로 할당되면서 제가 좋아하는 시간들, 즉 맥주를 마시며 한가롭게 책을 들춰 보거나 일기를 끄적일 시간은 많이 사라진 것은 사실입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일하면서 맥주를 마셨습니다. 좀 많이...🍺🍺🍺🍺)

 

한가할 때는 여러 잡생각도 떠오르고, 제가 하고 있는 일이나 생각에 대해 메타인지할 여유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압축적인 바쁨이 주는 깨달음들도 많더군요. 안타깝게도 그것들을 글로 틈틈이 정리하지는 못하고 제 에버노트에만 고이 쌓여있지만 다행히도(?) 글을 강제로 써야만 하는 상황이 하나 닥쳐 차분하게 저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티셔츠는 지루한 인생의 처방전, 훵키클리닉
티셔츠는 지루한 인생의 처방전, 훵키클리닉

 

이번 <굿즈매거진>은 티셔츠라는 이름의 도화지 라는 주제로 발간되었습니다. 우연한 기회지만 편집자 분께서 저같은 하찮은 티셔츠 쟁이를 발견해주셔서 제가 왜 티셔츠를 만드는지에 대해 스스로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더불어 제가 참 좋아하고 존경하는 스트릿 OG 분들의 인터뷰 옆에 제 글이 실릴 수 있기도 했고요. 밤마다 이상한 티셔츠를 만들고 혼자 좋아하던 쓰잘데기 없던 세월에 작은 의미가 부여된 것 같아 참 기쁩니다. 

 

위에도 썼듯, 시간을 돈으로 치환하는 효율 또는 그러고픈 욕망이 올라갈수록 쓸모없는 일을 하는 시간의 비용은 더욱 크게 느껴질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굳이 쓸모없는 일을 지속한다면, 그게 정말 궁극의 사치가 아닐까 합니다.

어쩌면 자신의 정체성을 설명해주는 신호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  

아래는 제가 부리는 사치에 대한 변명의 글입니다.
굿즈매거진 감사합니다.

 

티셔츠 좋아하시는 분들께 추천 드립니다
티셔츠 좋아하시는 분들께 추천 드립니다

 


충성! 훵키클리닉입니다! 저는 우리가 삶을 좀더 가볍게 대할수록 많은 문제들이 사라질 거라는 이상한 믿음을 갖고 있어요. 그래서 "티셔츠 쪼가리 정도는 내멋대로 입어버리자"라는 제안을 하고 있죠. 일종의 처방전이에요. 진지하고 무겁게 대해야하는 일들은 어차피 너무 많으니까요!

 

시장의 기준에 맞추는 삶. 어쩐지 삶은 가만히 두면 저절로 조금씩 무겁고 버거워지는 것 같아요. 맡은 역할이나 지위 때문에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건 자꾸 줄어들고요. 저와 제 친구들은 대부분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장소로 가서 정해진 복식을 갖추고 정해진 일을 하게끔 계약된 상태입니다. 먹고 살려면 어쩔 수 없죠! 다만 제가 싫었던 건 제 사고방식과 가치 체계까지 '정해진 무언가'에 맞춰지고 있다는 점이었어요.

전 10년 넘게  IT업계에서 일하고 있어요. 어릴 땐 스티브잡스나 심시티의 윌라이트처럼, 독창적이고 놀라운 걸 만들고 싶었는데, 현실의 저는 방문객수나 매출액으로 평가받으며 살아요. 많이 쓰면 잘 만든 제품, 잘 팔리면 좋은 상품이 되는 거죠. 사실 이게 맞죠. 전 잡스가 아니라 평균 근처의 인간일 뿐이니까요. 그러다 보니 제 삶의 가치도 점점 '시장의 호응'으로 바뀌었어요. '잘 팔릴까?'라는 질문이 제일 먼저 생각나고 '쓸모없어' 보이는 건 무시하게 되었어요. 이제 저는 세상을 바꿀 망상을 꾸거나 괴상한 아이디어들을 신나서 떠들지 않는 핵노잼 개꼰대가 된 겁니다. 이런 앁!

노잼 인생의 처방전. 그래서 예전처럼 쓸모 없어보여도 제멋대로의 상상에 빠져 뭔가를 만들던 모습을 되찾고 싶었어요. 철없는 애새끼처럼 말이죠. 아무도 이해할 수 없고 좋아하지도 않는 괴상한 예술을 꾸준히 하는 사람들 있잖아요. 딱 그거죠. 제게 티셔츠 만들기는 '예술하고 자빠졌네'라고 할 때의 바로 그 예술이자 노잼인생에 제가 직접 쓴 처방전이에요.

인기나 매출은 물론, 사회적 역할이나 나이에 맞는 옷차림 등의 기준에서 완전히 벗어나 내멋대로 굴어도 되는 영역이죠. 패션 관점에서의 멋이나 근사한 의미를 담으려드는 생각조차도 일부러 지웁니다. (굿즈매거진 독자분들의 가치와는 좀 반대되는 것 같기도 하네요ㅎㅎ)별 의미는 없지만 제 심정을 보여주거나 사소한 말장난을 담기도 합니다. 다 큰 어른이 그런 쓸모없는 걸 굳이 실물로 만들어 입고 다니는 거죠. 그 정도 경박함과 자유로움 그리고 '쓸데없는 걸 지속하고 있다'는 브랜드를 스스로에게 만들어 주고 싶었습니다.

사람이 입을 수 없는 티셔츠. 어느 엄청 더운 날 스타벅스에 갔는데 시원한 공기만으로 갑자기 세상이 살만한 곳처럼 느껴지더군요. 방금까지는 짜증이 엄청 났었는데 말이죠. 그래서 에어컨을 발명한 분(캐리어)께 리스펙을 표현하고 싶어 그분의 사진으로 부트렉 티셔츠를 만들고 이걸 유튜브로 찍어 올렸어요.

근데 그걸 본 한 친구가 “최소한 사람이 입을 수 있는 옷을 만들라"고 하더군요. 순간 이거다 싶었죠. 내가 만든 건 사람이 입을 수 없는 거구나, 나는 진짜 나만을 위한 (질 낮은) 예술을 하고 있구나, 무의식적으로라도 남의 인정이나 판매를 위해 기획한 '상품'을 만들지 않았구나... 라는 일종의 안도감(?)이 들더군요. 물론 다른 사람들도 좋아해주면 당연히 더 좋긴 하겠지만요.

 

앞으로의 계획. 신촌에 훵키클리닉 샵을 차리고 싶어요. 제 마음의 고향에서 이 쓸모없는 짓거리를 좀더 본격적으로 하는 거죠. 사람들의 고민을 아주 약간이나마 누그러뜨려줄 바보같은 티셔츠를 처방해주는 약국 같은 곳. 제가 만들어 온 티셔츠 아카이브이기도 하고요.물론 이걸하려면 돈이 많이 필요해요. 돈을 안 벌어도 괜찮은 무언가-라는 게 핵심이니까요.  만약 이걸로 반드시 수익을 내야하는 상황이라면 '팔릴 만한' 걸 만들려 애쓸테고 이건 이미 의무로 가득찬 제 인생에 처방전이 되지 못하잖아요.

훵키클리닉 만큼은 온전히 쓸모없음의 영역에 두고 싶어요.재밌는 건 쓸모없는 짓거리를 더 오래 더 크게 하고 싶다는 욕심 때문에 본업과 투자에 더 집중하게 되었어요. 요새는 퇴근 후 컨설팅일로 투잡도 뛰고 있습니다. 쓸모없는 걸 하고 살려면 역설적으로 쓸모 있는 행위를 정말 열심히, 잘 해내야 하는 것 같아요.어쨌든 이건 먼 목표고요. 당장은 훵키클리닉을 더 알려서 제 처방전을 받아가는 사람도 늘어가면 좋겠어요. 저와 비슷한 사람들을 더 만나보고 싶거든요. 이것만으로도 이 짓을 지속할만한 '쓸모'는  충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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