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경영서가 말한다. 고객 중심으로 사고하라. 고객 경험을 설계하라. 그래서 많은 대표가 고객의 목소리를 듣겠다며 설문을 돌리고, VOC를 수집하고, 고객만족도를 측정한다. 그런데 그렇게 하고 나서도 뭔가 크게 달라졌다는 느낌이 없다. 고객 중심! 최고의 고객 경험! 이라는 말은 조직 내 떠돌기만 하고 실제 의사결정에는 잘 반영되지 않는다.
이유가 있다. 고객 중심이라는 말을 고객이 원하는 걸 해주는 것으로 이해하기 때문이다. 고객이 원하는 걸 해주는 것과 고객 경험을 중시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고객에게 원하는 걸 물으면, 고객은 이미 자기가 아는 범위 안에서 답한다. 더 싸게, 더 빠르게, 더 많이. 그건 고객의 욕구이지 고객의 경험이 아니다. 경험은 고객이 우리 제품이나 서비스를 만나는 전 과정에서 실제로 겪는 것이다. 어떤 순간에 막히고, 어떤 순간에 불안하고, 어떤 순간에 안심하는지. 그 흐름 전체를 보는 것이 고객 경험을 본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배달 앱에서 음식을 시켰는데 예상 시간보다 배달이 10분 늦었다. 이때 고객이 짜증이 난 이유는 지연된 10분도 있지만, 배달이 지금 어디쯤 오는지 알 수 없어서다.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아무 정보도 없으면 불안이 커진다. 배달을 10분 빠르게 하는 것보다 지금 어디쯤인지 보여주는 게 경험을 바꾼다. 고객의 요구를 들었다면 배달 속도를 개선했을 것이다. 고객의 경험을 봤다면 불안을 줄이는 방법을 찾았을 것이다. 같은 문제를 두고 접근이 완전히 달라진다.
고객 경험을 중시한다는 건 결국 고객이 말하지 않는 것을 읽는 일이다. 고객은 자기가 왜 불편한지 정확히 설명하지 못할 때가 많다. 그냥 별로라고 하거나, 다음에는 안 쓸 것 같다고만 한다. 그 사이에 있는 구체적인 순간을 찾아내는 게 대표의 일이다.
이걸 하려면 고객의 행동을 관찰해야 한다. 설문이 아니라 관찰이다. 고객이 어디서 이탈하는지, 어디서 머무는지, 어디서 반복하는지. 데이터가 말해주는 것도 있고, 직접 옆에서 지켜봐야 보이는 것도 있다. 중요한 건 고객에게 묻는 것이 아니라 고객이 하는 행동을 보는 것이다.
그런데 많은 회사에서 고객을 가장 가까이 만나는 사람과 의사결정을 내리는 사람이 다르다. CS 담당자는 고객의 불편을 매일 듣지만, 제품을 바꿀 권한이 없다. 제품을 바꿀 권한이 있는 사람은 고객을 직접 만나지 않는다. 그 사이에서 고객의 경험은 보고서의 숫자로 바뀌고, 숫자가 되는 순간 맥락이 빠진다. 불만 건수 38건이라는 숫자는 그 38명이 각각 어떤 상황에서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말해주지 않는다.
고객 경험을 진짜로 중시하는 회사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의사결정권자가 고객 접점에 직접 서는 시간을 갖는다는 것이다. 꼭 매일일 필요는 없다. 한 달에 한 번이라도 고객 상담을 직접 하거나, 고객이 제품을 쓰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거나, 반품 사유를 하나하나 읽는 것만으로도 달라진다. 보고서로 전달받은 정보와 직접 목격한 장면은 같은 내용이라도 의사결정에 미치는 영향이 다르다.
한 가지 더 있다. 고객 경험을 중시한다는 건 내부의 편의를 고객에게 전가하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환불 절차가 복잡한 건 고객이 원해서가 아니라 내부 시스템이 그렇게 설계되어서다. 고객에게 같은 정보를 두 번 입력하게 하는 건 부서 간 데이터가 연동되지 않아서다. 문의 전화를 돌리고 또 돌리는 건 담당 부서가 나뉘어 있어서다. 이런 것들은 회사 안에서는 당연한 구조로 보이지만, 고객 입장에서는 전부 불편함이다. 아쉽게도 조용히 떠나는 고객이 소리 지르는 고객보다 많다.
이런 불편함을 줄이려면 고객이 겪는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 따라가 보는 것이 좋다. 우리 서비스에 가입하고, 제품을 고르고, 결제하고, 배송을 기다리고, 문제가 생겨서 문의하고, 환불을 요청하는 전 과정을 직접 해보는 것이다. 대부분의 대표가 자기 서비스의 이 과정을 끝까지 경험해 본 적이 없다. 직접 해보면 데이터에서는 보이지 않던 불편을 발견할 수 있다.
정리하면 이렇다. 고객 중심이란 고객이 하는 말에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고객이 겪는 흐름 전체를 들여다보고 그 안에서 마찰을 줄이는 것이다. 고객의 욕구가 아니라 고객의 맥락을 이해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맥락은 설문지가 아니라 관찰에서 온다. 이걸 할 수 있으면 고객이 굳이 말하지 않아도 제품이 알아서 좋아진다. 고객 경험을 중시하라는 말의 실체는 거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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