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동네 가게, 남는 건 프랜차이즈뿐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경제학적 성찰

2025.08.12 | 조회 1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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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나는

당연해 보이는 것들에, 다른 시선을 붙입니다.

지난주 동네를 걸으며 문득 깨달았습니다. 어린 시절 자주 들렀던 작은 문구점이 언제부턴가 다이소로 바뀌었고, 할머니가 오랫동안 운영하던 구멍가게는 GS25가 되었습니다. 30년 넘게 자리를 지키던 중국집은 문을 닫았고, 그 자리엔 또 다른 치킨 프랜차이즈가 들어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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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로 보는 잔혹한 현실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자영업자 폐업률이 80%에 육박하고 있습니다. 반면 프랜차이즈 가맹점 수는 꾸준히 증가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2019년 기준 프랜차이즈 가맹점수는 21만 6천개로 전년 대비 2.6% 증가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코로나19 이후 더욱 가속화되었습니다. 2024년 소매시장은 1%대 성장에 그쳤고, 오프라인 매장은 역성장을 기록했습니다. 대형 자본과 시스템화된 운영 노하우를 갖춘 프랜차이즈만이 이 혹독한 생존경쟁에서 버티고 있는 것입니다.

조지프 슘페터
조지프 슘페터

자본의 논리가 만든 승자독식 구조

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는 "창조적 파괴"라는 개념으로 이를 설명했습니다. 새로운 기술과 사업 모델이 기존 질서를 파괴하며 진보를 이끈다는 이론이죠. 하지만 현재 우리가 목격하는 것은 창조적 파괴가 아닌 '자본적 대체'입니다.

프랜차이즈가 독립점포를 밀어낼 수 있는 이유는 명확합니다.

첫째, 규모의 경제입니다. 대량 구매를 통한 원가 절감, 표준화된 운영 시스템, 통합된 마케팅은 개별 점포가 따라갈 수 없는 경쟁력을 만듭니다.

둘째, 브랜드 파워입니다. 소비자들은 익숙하고 신뢰할 수 있는 브랜드를 선호합니다. 특히 젊은 세대일수록 이런 경향이 강합니다. SNS에 올리기에도 프랜차이즈 카페가 동네 다방보다 '인스타그래머블'하죠.

셋째, 자본력의 차이입니다. 임대료 상승과 인건비 증가, 각종 규제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여력이 개인사업자에게는 없습니다. 반면 프랜차이즈 본부는 이런 비용을 여러 가맹점에 분산시킬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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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잃고 있는 것들

하지만 이런 효율성의 이면에는 우리가 놓치고 있는 소중한 가치들이 있습니다.

첫째, 다양성의 실종입니다. 프랜차이즈의 표준화는 획일성을 의미합니다. 전국 어디를 가도 같은 메뉴, 같은 인테리어, 같은 서비스를 만납니다. 지역의 특색과 개성은 사라지고, 모든 상권이 비슷비슷해집니다.

둘째, 지역 경제 순환 구조의 붕괴입니다. 독립점포 사장님이 벌어들인 수익은 그 지역에서 소비되고 투자됩니다. 하지만 프랜차이즈 수익의 상당 부분은 본부로 귀속되어 다른 지역으로 유출됩니다. 지역 내 경제 승수효과가 줄어드는 것이죠.

셋째, 일자리의 질적 하락입니다. 독립점포에서는 사장님과 직원 간의 인간적 관계가 가능했습니다. 직원도 사업에 대한 애착을 갖고 성장할 수 있었죠. 하지만 프랜차이즈에서는 매뉴얼대로 일하는 단순 노동자로 전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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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에서도 비슷한 고민들

이런 문제는 비단 우리나라만의 것이 아닙니다. 1990년대부터 미국에서는 월마트와 같은 대형 체인점의 확산에 맞서 "Buy Local" 운동이 시작되었고, 프랑스는 1973년 로와이에 법을 통해 대형 소매점 규제에 나섰습니다. 일본 역시 상점가 진흥법으로 전통 상권을 지원해왔죠.

하지만 이런 '보호' 중심의 접근법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 최근의 평가입니다. 오히려 주목할 만한 것은 시장 친화적 방식으로 독립상가들이 스스로 경쟁력을 키워나가는 사례들입니다. 영국의 '하이스트리트 이니셔티브'처럼 지역 상인들 간의 네트워킹과 공동 마케팅을 지원하거나, 네덜란드의 '로컬 플랫폼' 구축 사례처럼 기술을 활용한 혁신이 더 주목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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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 속에서 찾는 새로운 기회

그렇다면 이런 변화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흥미롭게도, 프랜차이즈의 성공 요인을 역으로 분석해보면 독립점포들이 나아갈 방향도 보입니다. 표준화된 품질, 브랜드 인지도, 효율적 운영 시스템. 이는 꼭 대기업만의 전유물은 아닙니다.

최근 주목받는 '로컬 브랜딩' 트렌드가 그 증거입니다. 제주의 한 독립 카페가 SNS를 통해 전국적 인지도를 얻어 여러 지점을 운영하는 사례, 동네 빵집이 온라인 주문 시스템을 도입해 매출을 두 배로 늘린 사례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기술의 진보도 개인사업자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대기업만 가능했던 재고 관리, 고객 관리, 마케팅 도구들이 이제 저렴한 비용으로 누구나 이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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균형을 찾아서

결국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은 효율성과 다양성 사이의 균형입니다. 프랜차이즈의 장점은 인정하되, 독립점포의 가치도 보존해야 합니다. 획일화된 편의성도 좋지만, 각기 다른 개성과 이야기를 가진 가게들이 공존하는 거리가 더 풍요로운 삶을 만들어 줄 것입니다.

2023년 폐업률 분석 보고서는 "창업 생태계 개선을 위한 정책 제언"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책만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결국은 우리 모두의 의식 변화와 실천이 동반되어야 합니다.

사라져가는 동네 가게들을 그저 추억으로만 남겨둘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방식으로라도 그 가치를 이어갈 것인가. 이는 단순한 경제 문제가 아닌, 우리가 어떤 사회에서 살고 싶은지에 대한 선택의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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