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인사드려요! 마토입니다.
이 글을 쓰는 오늘은 설 연휴 시작하는 날입니다. 토요일이에요! 남은 이월 한 달간 이 글을 완성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저는 원래 글이든 과제든 딱 자세 잡고 하루만에 모든 걸 끝내는 이른바 '벼락치기형 인간'인데, 이 글은 사골처럼 오래 끓여야 내놓을 수 있겠다는 미래가 보입니다. 생각만 해도 지치네요.
마지막 메일에서 12월 언제쯤 돌아오겠다 말씀 드렸는데, 입춘도 지나고 설 명절도 보내고 이제 얼마 안 있어 삼월이 오겠네요. 늦어서 죄송합니다.
그래도 저희, 게으르게 놀고만 있지는 않았어요.
무려 1년여만에 다같이 만나 밥도 먹고, 못다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자유 언니가 있는 시청역 근처에서 만났는데요, 그때 먹었던 와플맛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아, 아니... 다같이 만나서 이야기 나눈 게 정말 재미있었어요! 언니들이 너무 반갑기도 했고요. (^^)
그리고 얼마 안 있어 졸업을 했습니다.

저희는 졸업을 앞두고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그그그 뭐더라'를 만들면서 즐거운 일도 많았고, 이 페이지가 저희에겐 참 소중하고 애틋한... 어떤 것이 되었거든요. 그래서 조금 아쉬웠어요. 우리는 어느 순간 무언가에 쫒겨 메일을 쓰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졸업을 하면 더 바빠질텐데, 이 페이지를 계속해서 운영할 수 있을지, 독자분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많은 고민을 한 것 같습니다.
서로 만나서, 만나지 않고서, 얼굴을 맞대고, 혹은 혼자서 구독자분들의 얼굴을 생각하고, 우리가 보냈던 메일들과 만들었던 책을 떠올렸습니다.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어요. 죄송합니다.
혹시 기다려주신 분들이 있다면, 진심으로, 마음을 담아,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감상적인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고요.
저희는 이제 한 달에 한 번, 한 명씩 구독자님을 찾아뵐 예정입니다. 이번 달엔 저예요. 각자 주제를 정해 하고 싶은 말을 모두 해보기로 했는데, 전 언니들이 어떤 말을 해줄지 벌써 기대됩니다. 예술을 하면서 있었던 일, 지금 서 있는 곳에서 할 수 있는 말이라면 무엇이든지요.
사실 제가 일단 뭐든 해보자고 언니들한테 징징댔어요. 제 성격이 좀 그렇잖아요.
막상 스크리브너 화면을 켜두고 있자니 이게 잘한 짓인지 좀 헷갈려요.
그래도 반가워해주세요!
다시 한 번 인사드려요, 저는 마토입니다.
필사 노트 사진을 털어보면서 제 이야기나 해보려고요.
언니들이 필사에 대해서 뭘 써보라고 했던 것 같은데 다 기억이 안 납니다. 그도 그럴 게 그 때까지는 이런 글을 쓸 거라는 생각을 안 하고 있었거든요. 그럼 무슨 글을 쓸 거라고 생각했냐면… 그냥 생각이 없었습니다.(!)

이월 초 화요일 아침에 회사 면접을 보고 왔어요. 회사 면접이라는 것을 태어나서 처음 가본 터라, 당연히 떨어질 거라고 생각했어요. 일부러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괜히 설레발 치다가 떨어지면 창피하잖아요. 면접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지만 집에 오면서도, 그 다음주에도, '꽤 오래 연락이 안 오네' 생각했을 때까지도 별로 아쉽지 않았어요.
뭐든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다는 생각으로 늘어지는 백수생활을 이어갔어요. 그런데, 운 좋게 설명절을 앞둔 화요일 아침 10시 19분에 출근해줄 수 있겠냐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나를 왜…?’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일단 가능하다고 했습니다. 아직 첫 출근 전인데, 저 스스로가 저에게 너무 미심쩍은 인간인 나머지 저는 지금 취업사기 같은 걸 당한 게 아닌지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무사하다면 메일이 제대로 가겠죠.)
여기까지 첫출근 전에 써둔 글인데요, 제 얼굴에 침 뱉는 일이라는 걸 알면서도 말해보자면,
단 일주일만에 진지하게... 계속 출근을 하는 게 맞는 건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살려주세요.
전 19살부터 25살까지, 휴학없이 문예창작과에만 6년을 다닌 짝사랑쟁이인데요. (상대는 문학입니다만…) 돌아보면 잡힐 듯 잡히지 않던 징글징글한 문학, 예술, 뭐 이딴 것들에 시간을 내어주고 제 나름대로는 열심히 한 것 같아요. 스물한 살 일월, 중학교 동창이 제게 했던 말을 다시 떠올려 봅니다.
‘내가 생각하기에 넌 별로 열심히 한 것 같지 않아’ 한 마디에 ‘긁’히고 최선을 다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는데, 남들 눈엔 어땠을지 모르겠지만 전 나름 열심히 살았어요. 그래서 그런 걸까요? 당장 내일이면 개강인 것 같은데, 제가 어른이고 일인분을 해야하고 직장인이라는 게… 전 좀 이상합니다. 일인분을 하고 싶지 않아요….
그럼에도 저에게 이름 붙일 수 있는 어떤 신분이 생겼다는 기분이 너무 안정적이고 반갑기도 해요. 그래서 고작 일주일만에 이렇게 치열하게 고민하는 거겠죠...
힘드네요.

저 사실, 일 월 한달간 정말 불안했습니다.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고, 하고 싶은 일이 있는 것도 아니고, 지금 스스로가 한심해 보였고, 그렇다고 어디 털어둘 데가 있는 것도 아닌 제 자신이 끈 떨어진 연 같았어요. 저는 그게 흔한 증상이라는 것마저 싫었습니다. (뭐 어쩌라는 건가 싶죠.)
불안한 제가 한 달간 숙제처럼 한 일이 있는데요,
그게 필사입니다.
불안한 사람들은 대부분 붙잡을 수 있는 것을 붙잡습니다. 통제할 수 있는 것에 강박적으로 집착하고, 마음대로 안 되는 것에 이상하리만치 마음 쓰게 되죠. 저는 일 월 한 달간 주먹 꽉 쥐고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게… 글 쓰고 책 읽는 것 뿐이더라고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글 쓰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아요. 솔직히 말하자면, 글쓰기는 며칠 빼먹은 날도 있어요. 불안한 저는 글 쓰는 것에 마음 쓰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것마저 저를 괴롭히게 두고 싶지 않았어요. (네. 다 변명입니다.)

꽤 오래 전부터 필사를 했던 것 같아요. 기억은 안 나지만 중학교 다닐 때도 '좋은 글' 옮겨 적는 걸 좋아했어요. 그때쯤엔 황인찬 선생님의 <무화과 숲>이 인터넷에서 엄청 유행했답니다.
공간이 사람의 마음을 보여준다는 이야기가 있잖아요. 틀린 말이 아니에요.
명절을 맞이해서 방을 치워야 했는데, 제 방 정말 더럽더라고요. 누군가 방에 들어오면 제 마음을 한 번에 알아차릴 정도로요. ‘아, 이 사람 엄청 불안하구나’ 하고 동정했을 거예요.
매일 아침 더러운 방을 뒤로 하고 ‘뭐라도 해야지’ 싶어 필사를 하기 시작한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닙니다.
한창 입시를 하던 고등학생 시절에도 방은 더럽고 필사는 해야겠고 그랬던 것 같아요. 그래서 지저분한 방을 뒤로 하고 이런 글을 옮겨 썼죠.
신형철 평론가의 <몰락의 에티카>,
허수경 시인의 산문 <오늘의 할일>,
그리고 한강 선생님의 <소년이 온다> 같은....
그 때마다 '뭐라도 된 것 같은' 기분이 썩 나쁘지 않았어요. 솔직히 말하면 그 기분에 좀 취한 적도 있고요.

전 단정하고 정갈하게 정렬된 것들에 매번 마음을 빼앗깁니다. 사람은 자신에게 없는 것을 갈망한다고들 하잖아요. 집중력, 불안하지 않은 하루, 잘 정돈된 방이 제가 가질 수 없는 것이었다면,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것 중에서 가장 통제하기 쉬운 것은 역시… 글씨체였어요.
전 어릴 때부터 글씨체가 예쁘단 소릴 많이 들었습니다. 잠깐이지만 캘리그라피도 배워본 적 있었어요. 좋아하는 것을 옮겨 적는다는 게 꽤나 낭만적이기도 하고, 때로는 그러기만 해도 칭찬 받았던 기억이 나네요. 어쩌면 그게 필사의 시작이었던 것 같기도 하고요.
성격도 모났고 여러모로 예쁜 구석이라곤 없지만… 글씨 하나라도 예쁘게 쓰면 되는 거 아니겠나 싶어요. 그래서 예전엔 글씨체 칭찬을 들어도 “아니에요” 하고 내숭을 많이 떨었는데 요즘은 “그런 소리 많이 들어요” 해요.
어른이 된 걸까요?
알라딘 중고서점에 가면 파는 180도로 펼쳐지는 양장노트가 있는데, 그 노트를 사서 필사를 하다가 이번엔 리필이 되는 노트를 샀어요.

무인양품에서 파는 리필노트 커버와 속지를 사서, 꽤 요긴하게 쓰고 있습니다. 글씨를 쓰다 보면 종이가 울고 올록볼록 튀어 나와서 다음 장에 글씨를 쓰기가 어려워지는 때가 오는데요, 그런 불상사(?)에 대비해, 일정한 주기로 노트 속지를 갈아주려고 했죠. 계획은 원래 그랬어요.
말하자면 저에게는 필사가 노트필기 혹은 요약노트 쯤 되는데, 원래 그런…(?) 필기의 목적은 ‘다시 보기’ 잖아요. 나에게 중요한 것, 눈에 띄는 것을 나중에 다시 보는 용도.
막상 속지 몇 장을 빼내려고 하니까 나중에 가서 내 손으로 옮겨 쓴 그 글들을 다시 못 볼 것 같아 아쉽더라고요. 그래서 제 리필노트는 한도 끝도 없이 두꺼워지는 중이에요. 그냥 쓰던 노트나 쓸 걸 그랬어요.

필사 노트를 사면 맨 처음으로 옮겨 적는 글이 몇 개 있는데요,
노트를 시작하는 저만의 작은 의식 같은 느낌으로 적어 내려가요.
이주혜 소설가의 <오늘의 할일> 초반부와,

임선우 소설가의 <커튼콜, 연장전, 라스트팡> 중반부,

이서수 소설가의 <미조의 시대> 고구마 줄기 나오는 부분.

을 적어둡니다.
최근에 필사한 글은 문학과 사회 2025년 여름호에 실린 정의정 선생님의 <유령이 하는 일> 입니다.
윤성희 소설가의 『느리게 가는 마음』(창비, 2025)과 정한아, 『3월의 마치』(문학동네, 2025)를 함께 다룬 리뷰글이에요.
가장 최근에 필사한 시는 구윤재 시인의 <계란후라이는 독립적인 메뉴가 아니다> 이고요,
윤성희 선생님의 <보통의 속도>를 방금 필사했습니다.
회사 다니면서 너무 힘들 때 제가 쓴 글씨지만, 필사노트를 펼쳐보니까 부적처럼 힘이 나더라고요.
이렇게 오글거리는 짓을 해가면서 돈을 벌어야 하는 건가 현타가 조금 오긴 했지만요.

어느 날엔 갑자기 철학에 대한 학구열에 가득 차서 <뉴필로소퍼>라는 철학 잡지를 온라인으로 구독했어요. 필사하는 게 재미가 없어서 요즘은 그저 읽기만 하고 있지만요....
필사를 꽤 열심히 하는 편이지만 필사가 제 문학 경험치를 크게 올려주는 것 같지는 않아요. 고등학생 때 과외 선생님도 그렇고 몇몇 교수님들도 필사를 한다고 글을 잘 쓰게 되는 건 아니라는 말을 하곤 하셨는데, 뭐… 신경 쓰지 않습니다. 글을 잘 쓰고 싶어서 하는 게 아니라서요. 그냥… 해요. 그냥. 막말로 필사는 독서보다 화투나 장기 같은 치매예방 운동에 가까워요.

저는 조부모님과 같이 사는데, 생각해보니 할머니 할아버지가 화투를 안 치신 지 꽤 많이 됐네요.
저도 2월의 절반을 필사 없이 보냈어요.
GPT에게 물어봤어요. 이 글을 어떻게 끝내면 좋을지에 대해서요.
저 사실, 2월도 엄청 불안했습니다. 너무 불안해서 이게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회사에 다시 나가야할지, 아니면 다음주부터 당장 (계약서 쓰기 전에...) 퇴사를 선언해야 할지 고민이나 하고 있는 거겠죠. 불안한 마음을 뒤로 하고 아무렇게나 써 내려간, 손톱이 너무 길어서 엉망진창이 된 제 글씨를 들여다 보면서 소리내 글자를 읽을 때가 있습니다.
필사의 순기능이란 이런 것 같아요.
잠시 뭔갈 잊게 해주는 것, 나를 뭐라도 하는 것 같은 인간으로 만들어 주는 것.
별 거 아니지만, 원래 별 거 아닌 게 가장 힘든 법이니까요.
이 글을 읽는 구독자님도 시간이 나신다면, 오늘 아무 책이나 펼쳐서 아무 문단이나 적어보시길 바랍니다. 저 대신이요. 전 힘이 없어서 아무것도 못 적겠네요. 필사는, 치매예방에 좋으려나요. 안하는 것보단 나을걸요, 아마도요.
저희는 다음달에 또 찾아뵐게요.
일요일이네요.
내일은 쉬는 날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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