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오늘은 페낭 한달살이 특별판!
페낭에 오니.. 글감이 안떠올라요!
저의 페낭 한달 살이가 시작되었습니다.

이 곳은 정말 묘하네요.
싱가폴처럼 깔끔 깨끗한데, 물가는 동남아입니다.
실은 ‘페낭 진짜 좋아’라고 다들 말할 때 경관, 음식 등을 뜻하는 줄 알았어요. 근데 1주일이 지나보니 이 곳 사람들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다들 표정 변화가 크지 않고 무-던- 합니다. 그게 제 마음을 정말 편안하게 해주네요. 전형적인 동남아 관광지처럼 오토바이가 북적거리거나 정신 없지도 않고요.
이 무던함의 이유가 궁금해 찾아봤더니 오랜 다민족 공존 역사 때문이라고 하네요. 말레이계, 중국계, 인도계 등 사람들이 수백 년간 한 섬에 살아오면서 ‘다른 게 당연하다’라는 감각이 몸에 베어 있다고 해요. 웬만한 ‘다름’은 넘어가는 태도가 기본이 되었다고 합니다. 게다가 기후도 1년 내내 덥고 습하니 생활 속도도 느긋하다고 해요.
그런데 경제적인 토대는 또 안정적입니다. 인텔, AMD 등 4천 곳 이상의 반도체 기업이 자리잡아 ‘동양의 실리콘밸리’라고 불린다고 하네요.
상상해보세요. 깨끗한 인프라에 표정 변화도, 큰 목소리도 크게 없는 주위 사람들… 생각해보니 예전에 경험해보지 못한 정말 쾌적한 환경이더라고요. 곧 부작용이 생겼습니다.
“글감이 안 떠올라!!!!”
저의 기존 ‘동력’을 깨닫는 순간이었어요.

- 주식, 부동산 투자에 대해 큰 소리로 대화하는 카페의 사람들
- 0.1초라도 빨리 걷기 위해 바삐 걷는 지하철 역의 사람들
- 뭔가 정말 바쁜 일이 있는 것 처럼 주문이 조금이라도 늦어지면 바로 표정이 변하는 사람들
이런 신호들이 저에게는 무의식 중의 채찍이었던거죠.
‘나도 바쁘게 살아야해. 다들 이렇게 열심히 사는데? 뒤쳐질지도 몰라.’
그러면서 큰 고민이 생겼습니다.
‘이렇게 마음이 편해진다고 글 생각이 안나다니. 내가 그동안 쓰는 글이 고작 뒤처지기 싫어서 쓴 글이었나?’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남은 기간 천천히 찾아보려고 합니다.
페낭은 어떻게 오게 되었냐면요!
위와 같은 깔끔함 + 물가 + 인프라 등등 여러 기준을 정해 저의 아이가 한 달 동안 다닐 수 있는 최적의 학교를 찾아 이런 메일을 보냈습니다.
저는 OOO한 마케팅 전문가입니다.
~~~한 이유 때문에 이 학교를 엄선하여 연락드리게 되었습니다.
제가 여러 마케팅 활동을 지원드릴 수 있어요.
대신 저희 아이가 한 달동안 학교에서 공부할 수 있을까요?
저에게는 새로운 시도였지만.. 다행히도! 회신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여러 조건 조율을 통해 그저께부터 아이가 학교를 잘 다니고 있어요! :)
와보니 정말 좋은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학교와 페낭 생활에 대해 좋은 글을 쓸 수 있어야 하는데 실제 만족도가 너무나 높아서요!
커리큘럼, 학비, 학생 수, 별도 영어 학습 과정 제공 여부, 다양한 액티비티, 동네 인프라와 물가 등 모든 부분에서요! (학교는 Straits International School Penang이라는 곳이에요! 아이와 한달 살이 관심 있으신 분은 저에게 문의 주십시오 🤣)


페낭 사람들은 '안정형'이네요.
갑자기 ‘안정형’이라는 말이 유행처럼 많이 들리고 있어요. 저는 그게 AI가 발전하는 현재 상황과 맞물려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안정형'은 4가지 성인 애착 유형에서 나온 말인데요.

- 안정형(Secure): 자신과 타인을 모두 긍정적으로 보는 유형이에요. 친밀함도 편하게 받아들이고, 혼자 있는 것도 불안해하지 않습니다.
- 불안형(Anxious, 몰입형): 관계에 대한 욕구가 크지만 버림받을까 봐 늘 불안해하는 유형입니다. 상대의 반응에 민감하고 확인받고 싶어 하는 경향이 있어요.
- 회피형(Avoidant, 거부형): 독립과 자기 충족을 중시하며 정서적 거리를 두려 합니다. 친밀해지는 것을 부담스러워하고 감정 표현을 잘 안 하는 편이에요.
- 혼란형(Fearful-avoidant, 두려움형): 친밀함을 원하면서 동시에 두려워하는 유형입니다. 가까워지고 싶은 마음과 상처받을까 봐 밀어내는 마음이 충돌해서 관계가 불안정해지기 쉬워요.
안정형은 친밀함과 독립 사이의 균형이 잘 잡혀 있습니다. 누군가와 가까워지는 걸 편안해하면서도, 상대에게 지나치게 의존하거나 반대로 거리를 두며 밀어내지 않아요. "가까이 있어도 괜찮고, 떨어져 있어도 괜찮다"는 안정감이 기본 바탕에 깔려 있습니다.
감정 조절과 표현이 자연스러운 것도 특징이에요. 화가 나거나 서운한 일이 있을 때 감정을 억누르거나 폭발시키기보다, 비교적 솔직하고 차분하게 전달합니다. 갈등이 생겨도 관계 자체가 끝날 거라고 과도하게 불안해하지 않기 때문에, 문제를 회피하지 않고 대화로 풀어가려는 편입니다.
자기 가치감이 안정적이라 상대의 반응 하나하나에 자존감이 크게 흔들리지 않아요. 연락이 좀 늦거나 상대가 바빠도 "나를 싫어하나?" 하고 쉽게 의심하지 않고, 상대를 신뢰하는 기본 태도를 유지합니다. 동시에 타인을 신뢰하면서도 적절한 경계를 지킬 줄 압니다.

관계에서 상대에게 안전기지(secure base) 역할을 해줄 수 있다는 점도 중요해요. 상대가 힘들 때 곁에서 지지가 되어주고, 동시에 상대가 자기 일을 향해 나아가도록 응원하는 균형을 잡습니다.
저는 실제로 회사 생활을 하면서 이 안정형 분들이 더 롱런하고 승진한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실적이나 업무 공로보다 더 중요해보이기도 했죠. 적을 만들지 않고 누구와든지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는 점, 팀원이나 대표가 의지할 수 있다는 점, 무엇보다도 본인이 지쳐서 나가 떨어지지 않는다는 점, 이 3가지 때문이죠.
그럼 왜 이 ‘안정형’이 AI 시대 인재일까요?
생각해보세요.
- AI 챗봇과 대화하다가 문제 해결이 안되면 → 사람 상담원과 연결됩니다.
- 아무리 AI가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도, 상사나 클라이언트의 원하는 방향이 계속 변화하고 갈피를 못 잡겠으면 → 역시 사람이 나타나 조율합니다.
슬프게도 앞으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은 점점 더 감정 노동이 될 가능성이 높아요. 변덕에 같이 흔들리지 않고 "이건 제가 풀어볼게요"라고 말하는 담담함이요.
그런데 왜 하필 안정형일까요? 감정 노동을 견디는 게 그렇게 대단한 일인가 싶을 수 있어요. 이유는 세 가지입니다.

첫째, AI는 '쉬운 일'을 가져가고 '어려운 감정'을 남깁니다.
AI가 처리하는 건 예측 가능하고 정형화된 일이에요. 그러다 보니 사람에게 떠넘겨지는 건 점점 더 불확실하고, 감정적이고, 정답이 없는 영역만 남습니다. 즉, 앞으로 '사람만 할 수 있는 일'은 평균적으로 더 까다롭고 더 진 빠지는 일이 될 가능성이 높아요. 그 일을 무너지지 않고 지속할 수 있는 사람이 안정형입니다. 불안형은 같이 흔들려 소진되고, 회피형은 그 불편함에서 발을 빼버리거든요. 끝까지 그 자리에 남는 건 안정형이에요.
둘째, AI가 똑똑함을 평준화시키면, 차별점은 '신뢰'로 옮겨갑니다.
이제 좋은 결과물은 누구나 AI로 빠르게 뽑아냅니다. 실력의 격차가 줄어들죠. 그러면 사람을 가르는 기준은 '무엇을 만드느냐'가 아니라 '이 사람과 일하면 마음이 놓이느냐'가 됩니다. 그리고 신뢰는 화려함이 아니라 일관성에서 나와요. 어제와 오늘이 같고, 급할 때도 페이스가 흔들리지 않는 사람. 그 일관성이 바로 안정형의 본질입니다.
셋째, 안정감은 전염됩니다. 불안도 그렇고요.
AI 시대의 조직은 늘 불안합니다. 내 일이 사라질까, 변화 속도를 못 따라갈까. 이런 환경에서 한 명이 흔들리면 팀 전체가 출렁여요. 반대로 한 명이 단단하면, 그 사람을 중심으로 팀이 진정됩니다. 클라이언트가 갈피를 못 잡고 변덕을 부릴 때 "이건 제가 풀어볼게요"라는 한마디가 가진 힘이 그거예요. 그 담담함이 상대의 불안까지 가라앉히거든요. 안정형은 자기 감정만 다스리는 게 아니라 방 전체의 온도를 낮추는 사람입니다.
결국 AI가 가져갈 수 없는 마지막 영역은 '계산'이 아니라 '진정'이고, 그 진정의 능력을 가진 사람이 안정형인 거죠.
어떻게 하면 안정형 인간이 될 수 있을까요?
안정형은 타고나는 게 아니라 '흔들려도 받아주는 경험'이 쌓일 때 만들어집니다. 어릴 때 부모가 일관되게 반응해주고, 무너졌을 때 돌아갈 품이 있었던 아이는 '세상은 안전하고, 나는 증명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감각을 몸에 새깁니다. 그게 평생 가는 중심이 돼요.
문제는, 우리 모두가 그렇게 자란 건 아니라는 거죠. 특히 한국은 어릴 때부터 성적으로, 등수로, 끊임없는 비교로 '증명해야 사랑받는다'고 배우기 쉬운 사회잖아요. 무던하게 있으면 뒤처진다는 불안이 기본값인 환경에서, 담담한 안정감을 갖기란 솔직히 쉽지 않습니다.
여기서 희망적인 사실 하나. 안정형은 어른이 되어서도 후천적으로 얻을 수 있대요(이걸 '획득된 안정 애착'이라고 부른다고 하네요). 어릴 때 못 받은 일관된 반응을, 이제는 내가 나에게 해주는 거예요. 일종의 '나를 다시 키우기'입니다.
- 실수했을 때 자책으로 나를 후려치는 대신 → "괜찮아, 다음에 하면 돼"라고 매번 일관되게 반응해주기.
- 나와 한 작은 약속을 지켜서 → '나는 나를 믿어도 된다'는 증거를 차곡차곡 쌓기.
- 흔들려도 끝까지 곁에 있어주는 안전한 관계(친구든 파트너든 상담이든) 하나를 곁에 두기.
증명하지 않아도 받아들여진다는 경험이 반복되면, 비로소 그 무던한 중심이 생깁니다.
생각해보니 제가 페낭에 있는 학교에 뻔뻔히 제안 연락을 할 수 있었던 것도 나름 최근 이런 노력들로 인해 안정형 기반이 생겼기 때문이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거절을 당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담담하게 원하는 것을 말하기!
아이를 이렇게 키워야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내가 어른이 되어 힘들게 다시 쌓고 있는 그 감각을, 우리 아이에겐 처음부터 자연스럽게 줄 수 있다면. 그게 부모가 줄 수 있는 가장 큰 자산이겠더라고요.
- 성취로 사랑을 증명하게 하지 않기. ‘잘하면 사랑’이 아니라 ‘그냥 사랑’을 먼저. 조건 없이 받아들여진 아이가 단단해져요.
(며칠 전에 “엄마 때리면 안 사랑해. 안 때리면 사랑해”라고 한 것 반성…) - 돌아올 품(안전기지)이 되어주기. 넘어졌을 때 ‘왜 조심 안 했어’가 아니라, 일단 안길 곳이 되어주기. 안전기지가 있는 아이가 더 멀리, 더 용감하게 나갑니다.
- 완벽한 부모가 아니라 '회복하는' 부모 되기. 화냈다가도 다시 다가가 "아까 미안해"라고 회복하는 모습. 아이는 그 장면에서 '관계는 깨져도 복구된다'를 배웁니다.
제가 우리 아이에게 물려주고 싶은 건 좋은 스펙이 아니라, 페낭의 그 조용한 무던함 - 흔들려도 돌아올 곳이 있다는 감각인 것 같습니다. 🌊
여러분은 안정형 사람인가요? 아니라면 어떤 노력을 하고 계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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