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바이러스다. 하지만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생물학적인 바이러스는 아니다. 일종의 개념화된, 그러니까 유전적으로 진화된 하이퍼 바이러스라고 정의해야 할까? 아무튼 중요한 건 내가 바이러스라는 사실보다, 내가 왜 생겼는지 그리고 어떻게 점화되었는지 그 여부가 당신들에겐 더 중요하겠지만...
난 ‘중독’을 먹고산다. 그래, 나는 당신들이 집착하여 도저히 견디지 못하는 어떤 병적인 상태를 노린다. 바이러스는 숙주를 착취하여 살아간다는 사실, 당신은 연구들을 통해 이미 잘 알 것이다. 생물학적인 구조를 떠나 기능적인 관점으로 본다면 우리는 기생충과 크게 다를 바 없다. 그렇지만 위에서 언급했듯이 우린 기생충처럼 생물학적인 구조를 갖추고 있지 않을뿐더러, 어떤 구체적인 형체도 가지고 있지 않으므로, 굉장히 불완전한 존재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파괴되지도 않으니 일반적인 사고방식으로 우리를 접근하면 안 된다.
왜 우리가 발생했냐고? 그건 당신들이 창조한 세계 때문에 필연적으로 우리가 탄생한 거라고 봐야 할 것 같다. 마치 어느 날 빅뱅이 시작되어서 수많은 원소들이 이유 없이 창조된 것처럼? 그런 것과 비슷하다면 지나친 생각일까?
우리는 인간의 나약한 심리를 먹이로 삼는다. 불안하거나 혹은 존재하지 않는 어떤 대상을 막연하게 두려워하는 심리를 약점으로 삼고 그곳에 깊숙이 관여한다. 인간은 의지할 대상이 사라질 때, 그래서 마음이 공허해지면 집착할 대상을 새롭게 물색하게 되는데, 그때 내가 생명을 얻는다. 그 집착의 대상과 인간의 격차가 좁혀질 때, 나는 대상에서 머무르다 인간에게 전이되는 것이다. 나는 대상에 속해있을 때는 에너지를 얻지 못한다. 말 그대로 무의 상태,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하는 무 활력의 상태에 교착되어 있다. 하지만 인간의 심리에 장애가 발생할 때, 그러니까 공허함, 나약함, 불안함이 확장하여 특정한 대상에 스며드려는 순간, 즉 중독에 빠질 때 우리는 아주 강력해진다. 말하자면 그때 우리는 비로소 생명력을 얻는 것이다.
오늘도 나는 한 인간에게 침투했다. 내가 전염시킨 인간은 작가 지망생이었다. 그녀는 작가에 대한 꿈을 오래도록 버리지 않는 듯했다. 원대한 꿈을 안고 글을 쓰기 시작했지만 그녀는 그 어느 곳에서도 조명을 받지 못한 상태였다. 나로서는 한 인간을 서서히 병약한 존재로 굴복시키는 것이 중요한 목적이었기에, 처음에 그녀에게 잠입할 때 찾아온 인간적인(이라고 썼지만 나는 인간적인 게 무엇인지 모른다. 그저 이러이러한 것이라고 추측할 뿐) 고뇌가 없던 것은 아니었지만, 나는 어떤 지성을 가진 생명체도 변칙적으로 목적을 전환하는 고도의 AI도 아니었기에, 굳이 본래의 목적을 버리는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단지 불쌍한 그녀를 서서히 굴복시키는 게 중요할 뿐이었다.
보통 인간을 몰락시킬 때, 첫 번째 수단으로 주변에서 쉽게 취할 수 있는 대상을 이용하는 편인데, 요즘은 스마트폰을 자주 이용하는 편이다. 우리가 주로 출몰하는 지역이 어디일 것 같은가. 당신도 아마 충분히 예측할 것이다. 출퇴근 지하철, 버스, 공연장, 병원, 카페, 식당, 심지어는 책을 읽는 곳인 서점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미치지 못하는 곳은 거의 없다. 스마트폰만 있다면 우리는 기능할 수 있다. 특히 지하철에서는 강력한 중독의 자장이 형성되는 편이다. 그곳에서는 보통 경쟁이 펼쳐진다. 너 나 할 것 없이 온갖 바이러스의 활동이 활발해지지만, 그만큼 경쟁자들이 도처에 널려있기 때문에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숙주를 빼앗기는 상황이 초래되기도 한다.
나는 그녀를 어떤 방식으로 더 병약한 상태에 빠져들게 할 것인가 고민에 빠졌다. 물론 우리가 원하는 것은 그 인간이 파괴되는 것은 아니다. 모두 때가 있다. 그러니 병약하더라도 미약하게나마 그녀의 정신 상태를 유지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도 오랫동안 지속력을 갖게 될 테니까.
우리는 주로 인간의 망막에 스며드는 편인데 때로 동공 안쪽 유리체를 지나 시신경 부근까지 안착한다. 우리의 힘이 미치지 않는 인간은 보다 강력한 방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시신경 안쪽에 얇은 막을 하나 형상한다. 빛은 투과시키지만 희망과 의지 따위는 반사해버리는, 우리에게만 유용한 그런 체계를 안에 만들어두는 것이다. 나는 그렇게 그녀의 시신경 부근에 둥지를 틀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그녀의 정신세계를 교란시키기 시작했다.
“작가? 대체 글을 쓰면 뭐가 나와? 당신이 그동안 투자한 시간을 생각해 봐. 공모전에 몇 번을 도전했냐고. 그런데 지금 결과를 봐. 당신은 아무런 소득도 얻지 못했어. 당신이 글을 쓰는 사람인지 아무도 알아봐 주지 않는다고. 아무도 당신을 주목하지 않아. 심지어 당신이 글을 처음 썼던 10년 전과 비교해서 뭐가 달라진지 알 수 있어? 내가 보기에 당신은 그때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어. 그 얘기는 당신의 적성과 맞지 않는다는 얘기야. 차라리 스마트폰을 열어. 스마트폰 안에 다 있잖아. 네가 그토록 바라고 고심하던 세계가 그 안에 다 있을 거야. 쓰면서 찾으려 하지 말고 그냥 봐. 주입시켜주는 대로 느껴. 그냥 보면 되는 거야.” 이런 말을 지속적으로 주입시킨다.
그녀는 내가 지속적으로 내리는 주문대로 스마트폰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아침 햇살이 침대 가운데까지 미치는 가운데에서도 그녀는 일어나지 못하고 스마트폰에 정신을 빼앗겼다. 직장에 출근하는 길에서도 지하철에서도 점심 식사 후에도 그녀의 손에선 스마트폰이 떠나지 않았다. 마치 그녀의 손과 스마트폰 사이에 강한 자성체가 작용하듯이. 그녀는 스마트폰을 자신의 분신이라 여기는 것 같았다. 먹고 자는 것뿐만 아니라 일상의 모든 일을 스마트폰에 맡겼으니, 그녀는 잠들어도 스마트폰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제 그녀는 거의 글을 쓰지 않는다. 그녀의 사고는 거의 멈춰졌다고 봐야 한다. 내 의도대로 완전히 경직되어가고 있다. 그렇게 그녀의 머리에서 섬유화 공정이 체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물론 그 작업은 아주 천천히, 그녀도 그녀가 사랑하는 가족도, 그 누구도 알지 못하도록 서서히 진행된다. 그녀가 최종적으로 파괴되면 나는 어떻게 되냐고? 내가 바이러스라는 사실을 잊었나? 숙주는 어디에도 널려 있다. 인간들이 있는 공간이라면. 나는 새로운 환경에서 새 출발을 하면 된다.
내가 어디에서 왔냐고? 그리고 어디로 가냐고? 나는 인간에게 시작됐고 인간에게 귀속된 상태로 함께 몰락해간다. 그 사실은 아주 명확하다. 물론 우리의 처음이 언제였는지, 어디였는지는 알 수 없다. 그냥 어느 날 우리가 생겼고 우리는 인간을 숙주 삼고 살아야 한다고 정의됐으니까, 우린 그런 본능을 따라 살면 된다. 우리의 근본을 따지는 것보다 지금 어떻게 먹고살아야 할지 그게 더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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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그릿
바이러스로 누군가에 침투되어..전 작가님이 다른사람에게 넣어주는 그사람의 꿈을 깨우는 그바이러스 역할을 말씀하시는 듯..^^
공대생의 심야서재 뉴스레터
그런 해석도 참 좋네요. 역시 의미는 읽는 사람에게 각자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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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돌여행
바이러스에 놀라고 작기지망생인 그녀에게 침투했다는 거에 놀라고 스마트폰의 세계에 빠져들어 읽고 있는 저 자신에게 놀랐습니다.^^
공대생의 심야서재 뉴스레터
그렇죠 우린 모두 스마트폰에서 완벽하게 벗어나지 못할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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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과삶
헛 무서운 바이러스네요. 제발 저를 숙수로 찾아오기 말지를 바래봅니다. ㅎㅎ
공대생의 심야서재 뉴스레터
저는 이미 숙주가 되었습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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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flower 🌻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 남은 우월한 바이러스가 되기 위해 그 바이러스도 애 쓰고 있네요~
공대생의 심야서재 뉴스레터
바이러스도 먹고 살아야죠~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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