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점 더 멀어져간다. 젊음. 청춘. 희희낙락. 들끓음

2021.03.08 | 조회 69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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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대생의 심야서재 뉴스레터

오직 글로서만 승부하는 글쟁이의 뉴스레터, 주로 생산성 툴에 관련된 글을 보내드립니다.(가끔 소설도 씁니다.)

점점 멀어져 가는 것들, 그저 애도하는 방법이 그것들을 대하는 지금 이 순간, 내가 가동할 수 있는 카드의 전부일까. 나이듦과 그래서 동반되는 세월의 처짐과 무력한 것으로 돌변해가는 그림자처럼 빛바랜 형상들, 어쩌면 급속도로 몰락해가지만 인식할 수 없는 미지의 세계들, 의사와는 상관없이 자꾸만 잊히는 것들, 부스러지는 기억 그리고 분쇄되는 장면, 그리고 그것들을 완벽하게 묘사하지 못하는 나의 체질적 한계.

분명히 나타나는 그러니까 실존하는 현상 앞에서도 나는 왜 그것을 인정하지 못하고 좌절을 매일 경험할 수밖에 없는가. 왜 그리움은 매일 새롭게 잉태되는가. 그리움은 어떤 원죄를 지었는가. 왜 나는 어제의 그리움을 완벽하게 구원하지 못하는가. 나이듦은 이렇게 새로운 무력감을 매일 깨어나게 만든다. 한없이 맑은 아침, 철없이 눈을 뜬, 활력이 가득한 새벽 공기 속에서도 나는 어제 떠올린 그 무기력함을 잊으려고 명상, 108배 아니 명상이라고 취급받지도 못할 어떤 행위, 즉 공상 같은 것에 빠지곤 하는 것이다.

아주 힘겹게 무기력함을 내 육체로부터 나아가 정신세계로부터 분리시키고 출근길에 나선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이유 없이 엄습하는 불안감, 규명하기 곤란한 불길함, 어떤 나쁜 징조, 상징적인 색채들이 내가 걸어가는 길마다 각인된다. 나는 그러한 잿빛 풍경, 익숙해질 법도 하지만 여전히 낯선 풍경에 나지막이 비명을 지른다. 그 비명이라는 것도 존재감 없이 부서져내릴 테지만…….

단단한 뿌리, 얽히고설킨, 어디가 시작이고 끝인지 찾을 수도 예측할 수 없는, 그렇다고 그것을 잘라버릴 수도 없는 문제에 봉착하는 것이 나라는 인간이 가진 태생적인 한계이겠지만, 그럴 때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관성적으로 내뱉는다. 늘 문제가 사라지지 않으니 그것을 인식하는 순간에서도 오직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말이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문장의 전부이리라.

기나긴 겨울을 견딘 그러니까 어느새 단단해진 나무껍질, 겉과 속 모두 탄탄해진 그들의 기억들을 증명하는 것이 글을 쓰는 사람의 운명이리라. 보이지 않지만 바닥에 뿌리를 내린 어떤 존재들의 무한한 희생을 기리며, 삶이란 그들의 숭고한 희생을 과거로 보내고 매일 새로운 빛을 예비하는 태도에서 출발한다는 것, 그러한 반복을 매일 하게 되지만, 곧 그러한 순간조차 망각하게 된다는 것. 그러한 모순적인 결론에 도달하지만 그 인식조차 잊게 되고 만다는 것. 그래서 이렇게 새벽에 일어나서 출근하고 퇴근하는 반복적인 선택에 감히 도전장을 던질 수 있는 것이다.

가까워지고 멀어져 가는 것, 어느 노래 가사처럼 나는 가까워지면서도 동시에 멀어지는 시간 속에서 살아간다. 난 지금쯤 어디에 서 있을까. 가까워지고 멀어지는 것들 가운데에서, 아니 한쪽으로 치우친 상태에서, 서로 밀고 당기는 역설적인 중력장에 속해 있다면, 내가 그 위에서 미끄러지고 마는, 아무리 버티려고 노력해봤자 어디론가 끌려갈 수밖에 없는 존재가 바로 나라면, 나는 어디로 향하게 되는 걸까. 그 끝이 시작을 떠올릴 수 없다면, 오늘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는 근거는 어디에서 파생되는 걸까? 이해할 수 없으니 감격해야 하는 걸까. 삶이란 이렇듯 그저 감격스러운 순간의 반복이런가.

청춘, 나에게도 그러한 시절은 있었다. 부인할 수 없지만, 기억하기 힘든 그러니까 너무 멀어진 낯선 편린들……. 거짓말 같은 장면들 속에서도 의미를 발견해야 한다는 사실, 그 사실을 부인하기 위해 나는 다만 살아가는 것일지도. 하지만 부연 설명이 없어도 의미는 저절로 찾아오곤 하는데, 끝이라서? 끝에 도달하면 의미라는 건 시작처럼 저절로 찾아오는 걸까.

지금 나는 텅 비어있다. 비어 있어서 맑은 외침이 외부로 보드랍게 퍼져나갈 수 있을지도. 그러한 상태, 온기를 채우고 차가움을 비우는 서러운 단계를 반복하며 블랙홀 속으로 빨려 들듯이 나에게 속했던 원자의 정다운 세계들은 규칙적인 질서에서 곧 분리될 것이다. 하지만, 매일 태어나는 신선한 감각과 그 들뜬 기운 가운데에서도 찾아오고야 마는 성실한 몰락, 아침의 들끓음과 밤의 고요함은 시간을 미분하는 신의 냉혹함과 비교될 지도.

집에서 멀어지면 회사에 가까워지듯, 나는 가까워짐과 멀어짐, 두 단어를 조율하며 어디든 떠돌아다니는 존재에 불과하다. 공중에서 부유하듯 정신을 하늘에 비춰놓다가, 하늘에 비친 제한되거나 만료되어버린 나의 지난날, 청춘이라는 낙인이 찍힌 표상, 벼락을 맞은바람에 그 번쩍하는 놀라움 속에서 나를 회복하려 노력하던 장면들 덕분에 나는 역설적으로 다시 태어나지만 식어갈 것이다. 들끓던 이상도 막연한 기대도 허무한 희망도 모두 차갑게 굳어갈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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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8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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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Q의 프로필 이미지

    TQ

    0
    almost 4 years 전

    아직 많이 젊으세요. 빵드시고 이번주도 힘내세요 :)

    ㄴ 답글 (1)
  • 향기의 프로필 이미지

    향기

    0
    almost 4 years 전

    그리움... 요즘 그리워지는 것들이 참으로 많은데 또 어제와 색이 다른 그리움이라 공심님 글이 더 와 닿았을까요? 가까워지거나 멀어지는것! 벌써 하루가 지나갑니다 내일이 가까워오네요^^ 생각을 자극하는 글 감사해요 공심님. 참고로 저는 3번 읽었습니다

    ㄴ 답글 (1)
  • 망망의 프로필 이미지

    망망

    0
    almost 4 years 전

    박카스 한잔 드시고~ 허리쫙펴고 ! 힘차게 ! 고고씽! 내일도 화이팅해요~ :) 펭수가 응원합니다

    ㄴ 답글 (1)
  • 일과삶의 프로필 이미지

    일과삶

    0
    almost 4 years 전

    가까워짐과 멀어짐 사이에서, 청춘과 나이듦도 가까워지고 멀어지는 걸까요? 그래도 마음만은 청춘인 것으로~

    ㄴ 답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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