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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과 밤이 바뀐 공대생의 모임 운영 이야기
Episode 1 - 나를 더 나답게 만드는 모임이 있다고?
Episode 2 - 관심 종자로서의 갈증, 모임으로 날려버렸다
Episode 3 - 생애 최초의 사이드 프로젝트에서 공심은 무엇을 얻었을까?
사이드 프로젝트는 회사와 거의 상관없는 일, 그러니까 회사 입장에서는 월급 루팡 따위 취급을 당하겠지만, 개인 입장에서는 ‘월급 독립에서 벗어난다’는 역사적인 의미를 가진다고 당신에게 친절하게 설명하련다. 온갖 역경에도 굴하지 않고, 회사 책상 앞에 꾸역꾸역 앉을 수 있는 이유는 물론 돈 때문이다. 돈이 없으면 코스모스 탐구 모임 결제도 불가능하고, 신나는 글쓰기 참여도 못하고. 스타벅스 벤티 사이즈 아아 쓰리 샷 주문도 불가능하므로, 마지못해서 매일매일 출근 행렬에 나서는 것이다.
직장이 너무나 좋아서 ‘원-헌드레드’ 퍼센트 만족한다고 짜증 내는 사람은 아마도 사이드 프로젝트에 관심이 없겠다만, 나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그런 사람은 단 한 번도 만나보지 못했다. 혹시 당신이 그렇지 않다면, 내 좁디좁은 인간관계의 폭을 용서해 달라.
직장 생활을 시작한 이후로 줄곧 불만 종자로 살아왔다. 심지어 그토록 들어가고 싶던 대기업까지도 일단 출근이 시작되니 바로 악몽으로 변하더라. 이런, 스트레스와 월급을 맞바꾼 셈이나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김 부장의 맹렬한 분노 속사포를 버텨낸 결과가 고작 쥐꼬리만도 못한(월 150만 원) 월급이라니... 결국 나는 운명적으로 사이드 프로젝트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이것도 <코스모스>에서 언급한 ‘초결정’론, 즉 우주의 모든 사건이 우주가 탄생되기 이전부터 완벽하게 결정되었다는 법칙에 적용되는 걸까. ‘와, 그렇다면 내가 지금 사이드 프로젝트에 관한 글을 쓰는 것도 꽤 필연적인 사건이겠네?’ 소름 돋는다.
직장 생활을 시작한 지 겨우 1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생산적인 사이드 프로젝트라고 쓰고 용돈도 벌 수 있는 월급 루팡 프로젝트라고 읽도록 하자, 아무튼 조금만 일하면서도(하루 2시간?) 월급보다 1.5배 돈이 더 들어오는 시스템을 구축할까 싶어 이런저런 궁리를 하다, 새롭고 놀라운 아이디어 하나가 후두부를 번쩍 강타했다. 당시 나는 전산실 서버를 관리하느라 하루의 대부분을 무료하게 보내는 편이었는데, 그렇게 ‘서멍’(서버를 멍하게 쳐다보는 일)에 시간을 소비하느니 차라리 사이드 프로젝트에 뛰어들어서, 돈도 벌고 자기계발도 하자는 1타 양피 계획을 세운 것이었다.
나의 첫 사이드 프로젝트 ‘007 작전’ 도전기를 되짚어 보면.
내 잔꾀의 포위망에 걸려든 회사는 ‘회계 프로그램’을 개발해달라고 했다. ‘설마 내가 그동안 지은 악행을 회개하라는 그런 프로그램은 아니겠지?’ 시답지 않은 농담 따위나 던지며…
사이드 프로젝트였지만 놀랍게도 소박한 내 월급보다 금액이 훨씬 컸다. 여기서부터 살짝 긴장되기 시작. ‘기간 내에 잘 해낼 수 있을까? 나중에 먹고 튀어야 하는 건 아닐까?’ 이런 쓸데없는 궁리부터 시작했다. 사실, 정말로 심각한 문제점은 다른 데 있었는데, 그들은 대체 어떤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할지, 그들 자신도 아이디어가 없다는 충격적인 사실에 있었다. 개발자와 한 10분 미팅하며 이야기 나누면 원하는 프로그램을 알아서 뚝딱 만들어줄 거라 믿은 모양이었다. 개발자는 가방에 도깨비방망이라도 숨겨 다닌다고 생각한 걸까?
나는 ‘4달러,’ 아니 그들이 미래에 어떤 진상 짓거리를 할지 예측할 수 없으므로 7백만 원을 요구했다. 설계도나 기획서도 작성하지 않은 상태에서 대충 그 정도의 금액이면 리스크를 충분히 감당할 거라 짐작한 것이었다. 신입에게 7백만 원이라니!
회사와 김포 그리고 집, 세 군데를 종횡무진 넘나들며 일상은 사이드 프로젝트 모드로 변경됐다. 주말이면 개발한 프로그램의 버그를 잡으며, 고객의 생트집을 받아주느라 귀에서 핏물이 흐르고 코에서는 쌍으로 코피가 터지는 일이 다반사가 됐다. 새벽 다섯 시까지 고객과 설전을 벌이다 - 주로 일보다 말로 때우려고 시도, 그때부터 나에게 말재능이 있다는 사실 발견 - 업무가 끝나면 고객, 아니 호갱님은 내 손을 꼭 잡으며, ‘이 대리님, 고생했어요’ 하며 흰 봉투를 쥐여줬다.
그 속엔 총알 택시비 5만 원과 생명 수당이라며 쥐여준 돈 십만 원이 추가로 들어 있었다. ‘뭐야 고객님 무서워요. 생명 수당이라니… 대체 이건 뭐예요?’ 하고 묻고 싶었지만 입말로, ‘고객님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죽을 만큼 열심히 하겠습니다.’라는 말이 저절로 튀어나왔다.
김포에서 상계동까지 매주 12시가 넘은 시간, 총알택시를 대절할 때마다, ‘이건 생명 수당이야’라는 말에 숨겨진 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택시 안에서 ‘기사님 저 창밖으로 튀어 나갈 거 같아요’라고 말하면, ‘이봐 젊은이 벨트 풀어질지도 모르니 정신 차려. 며칠 전 학생 한 명이 한강으로 공중 점프를 하더군 하하하’ 기사님의 재미없는 농담에 피곤함까지 사라질 지경이었다. 나는 말없이 벨트를 두 손으로 꽉 붙잡으며 ‘어서 이 밤이 지나가기를…’라며 하지도 않던 통성 기도를 외쳤다.
두어 달이 부지런하게 지나자 내 손에는 사이트 프로젝트 수주 금액 7백만 원과 생명수당 10일 치 정도가 묵직하게 건네졌다. 가슴을 쓸어내리며 ‘목숨을 건진 게 천만다행이야’,라고 긍정적인 결론을 내리고 ‘그래, 다음 일을 또 찾아야지’라며 스토리텔링을 보강한 후 구직 사이트에 작전 정보를 올렸다.
'사이드 프로젝트 할 사람 여기 한 명 있음. 나에게 빵을(아니 일을) 달라. 돈만 주면 무엇이든지 다함, 기간 내에 성실하게 일 끝내줌’이라고.
사이드 프로젝트의 장점은 회사와 관련은 적지만, 도전하는 것 자체로 동기부여도 되고 배움의 보폭도 확장되며 자기 계발까지 가능한 셈이니, 넓게 본다면 회사일과 전혀 관계가 없는 건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어쩌면 자신도 모르는 숨겨진 재능까지 발견하게 될 수도 있다. 꼼꼼한 스케줄 관리로 시간을 치밀하게 추적/관리하게 된다. 퇴직해도 돈을 벌 수 있는 새로운 길을 열 수 있는 방법이며, 먼 미래에는 창업의 기회까지 제공하게 되니, 직장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까지 깨닫게 된다. 다만 쌍코피는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니 그 정도만 감수하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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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효정
이렇게 시작된거였군요 ㅎㅎ 생명수당에 웃었네요 ㅎㅎ 사이드잡 시수당이 엄청나서 깜짝 ㅎㅎ 뭔가 소설을 읽은 기분이었어요 ^^
공대생의 심야서재 뉴스레터
네 이렇게 시작됐습니다. ㅎㅎ 당시엔 생명수당이 걸린 일이라 ㅋㅋㅋ 소설 같지요? 소설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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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망
택시기사님 상황에서 ㅎㅎ재미있었어요 ! 또다른 여정 또다른 전쟁 응원 무한이 드립니다 ! 마음은 가볍게 몸은 무겁게 !!화이팅요
공대생의 심야서재 뉴스레터
택시 기사님 무서웠어요. ㅋㅋ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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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nasand
코탐, 그리고 "초결정론'이 나오는 부분에서 이미 결정되어 있었던 건가 하면서 읽어 내려갔습니다. 007작전같은 사이드 프로젝트, 직장인으로 공감100% 하면서 글 읽게 됩니다
공대생의 심야서재 뉴스레터
그러네요 초결정론이 나오니까 모든 운명이 다 예견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재미있는 경험이었어요~ 나나샌드님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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