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가끔 고등학교 체육시간으로 돌아가곤 합니다. 제 눈앞에는 거대하고 높은 직각의 공포가 서 있습니다. 마름모꼴로 생긴 존재 때문에 저는 긴장감에 휩싸이고 맙니다. 자꾸 머릿속에서 아직 벌어지지도 않은 여러 가지 최악의 상황을 그립니다. '저걸 과연 뛰어넘을 수 있을까. 그 누구도 뛰어넘지 못한 높이가 아닌가. 저 길이는 인간에게 불가능함을 안길 뿐이다. 섣불리 넘보다 다칠 게 뻔하다' 저는 뼈가 부러지거나 어딘가 타박상을 입는 상상을 합니다. 그러다 줄 뒤로 슬며시 자리를 옮겨봅니다. 차례를 미루면 조금이라도 마음이 놓일 것 같습니다. 비겁해도 어쩔 수 없습니다.
네 이 물건의 주인공은 바로 '뜀틀'입니다. 아주 거대하고 무겁고 위험한 형상, 위악스러운 모양을 가진 존재, 뜀틀 말입니다. 대기줄에 앉아서 녀석을 쳐다보면 꼭대기 끝이 마치 깎아지를 듯한 절벽처럼 어지럽게 다가옵니다. 태양빛이 뜀틀의 네 개의 모난 직각들을 더 날카롭게 다듬질하며 저에게 포기를 종용합니다.
저는 지금 뜀틀을 간단하게 두 문단으로 묘사했습니다. 뜀틀에는 어쩌면 '나'라는 존재가 도사리고 있습니다. 나를 직접적으로 서술하지 않지만 '나'는 뜀틀로 대체되니 '나'는 저 뜀틀에 있는 셈입니다. 저는 제목에서 '글쓰기가 뜀틀'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와 같은 양식을 우리는 '비유'라고 부릅니다. 다른 말로는 '메타포'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메타포는 하나의 '뜀틀'처럼 우리가 두 눈으로 곧바로 인지가 가능한 물체나 상상력으로 접근할 수 있는 개념적인 것들까지 포괄합니다. 일반적으로 한 가지 대상으로 다른 대상을 상징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비유라고 부릅니다. 비유는 다만 대상과 대상이 멀리 떨어질수록 좋다고 말합니다.
A는 B다.
글쓰기는 뜀틀이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양식이 바로 메타로 혹은 비유입니다. 저는 국문학이나 문예창작과를 전공한 사람이 아니라 학문적으로 이것을 접근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개념적인 의미로서, 하나의 거대한 메타포로서 대상과 대상 사이의 거리를 가늠할 뿐입니다. 자, 위에서 글쓰기는 뜀틀이다,라고 언급한 이 뜻 모를 문장에서 두 단어는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을까요? 여러분은 두 단어가 가진 길이를 상상할 수 있습니까?
제가 글쓰기와 뜀틀, 두 가지 단어를 언급한 이유는 단순하게 비유를 설명하려고 예를 든 게 아닙니다. 마침, 아침 출근길에 하루키의 <해변의 카프카>를 읽으면서 그가 만든 거대한 메타포에 경도당했기 때문이라고 정의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이 주제는 글 쓰는 사람이라면 모두 숙제처럼 여겨지기 대상이라 언급했다고 보는 것이 더 옳겠습니다.
즉, 저는 어떤 지점에서 생각에 깊이 취했기 때문에 어쩌면 자동적으로 글쓰기와 뜀틀이라는 요소를 연결하려고 시도한 것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니까 생각이 무언가를 속에서 끓게 만들었다고 볼 수도 있겠네요. 어쨌든 글쓰기는 생각이 개입되지 않고는 절대 이루어지지 않는 마음의 어떤 체계입니다. 생각은 개인에게 꽤 한정되어 있는 편입니다. 그런 면으로 본다면 생각은 다소 이기적인 형태를 취한다고 볼 수도 있겠네요.
그렇다면 생각이 확장된 버전인 '사유'는 어떨까요? 사유는 대상을 두루 생각하는 일이라고 사전에 정의되어 있습니다. 사유는 사실 글 쓰는 사람에게 오래된 숙제와 같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비유와 함께 말이지요. 저는 오랫동안 사유의 의미와 그것을 어떻게 통제할 것인가, 연구해왔습니다. 연구라고 말했지만 생각이라고 말하는 게 더 맞겠네요. 아무튼 사유를 생각해왔다고 주장해봅니다.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스스로를 먼 곳으로 보내는 일을 해왔던 것입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사유는 비유와 그다지 먼 관계가 아니라는 사실을 얼핏 깨달았습니다. 연관성을 추론하다 보니 그저 의미가 아침 닭이 갓 낳은 달걀처럼 바구니 안으로 갑자기 굴러들어 온 것입니다. 저는 그래서 반갑게 그 의미를 분석해보기로 했습니다. 사유와 비유의 관계, 둘 간의 유사성에 대해 말입니다.
저는 위에서 두 가지 대상의 거리, 개념적인 구간을 설명하면서 비유를 언급했습니다. 두 가지 성격이 난폭하게 다른 단어는 한 가지 방향을 직격으로 강타합니다. 그 최종 목적지는 바로 우리가 원하는 상징이 숨어 있습니다. 고등학교 체육 시간의 거대하고 높기만 한 뜀틀처럼 우뚝 서 있는 존재인 것입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뜀틀을 보고 그대로 굳어버리고 말 것입니다. 하지만 생각을 넘어서 사유의 바다로 깊이 침몰하고자 하는 사람은 상징이 무엇을 뜻하는지 깨닫습니다. 본질의 세계로 당도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뛰어넘습니다.
'사유란 비유이며 우리를 온갖 상징의 세계로 안내한다.'라고 저는 글쓰기를 정의합니다. 사유가 그렇다고 아주 어렵고 난해한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언제든 사유의 대상을 정의하고 그것에게 깊이 침잠할 기회를 가질 수 있으니까요. 사유는 누구나 볼 수 있는 것, 일반적으로 쉽게 접할 수 있는 대상을 다르게 보고 다르게 생각하는 것일 테니까요. 사유는 그러니 어려운 게 아닙니다. 원한다면 누구나 사유의 바다에서 항해를 누릴 자격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 바다 밑엔 온갖 형상의 비유가 물고기처럼 유영중입니다. 우리는 마음에 드는 것을 길어 올리면 그만입니다. 물론 욕심을 버려야 하겠지만, 그렇게 쉬운 것은 아닙니다. 부단한 노력과 끈기 없이는 도달하기 어려울 겁니다. 글쓰기가 어렵고 지난하게 느껴지고 쓰고 또 써도 내 글이 과연 어디쯤에 있는지 파악조차 되지 않는 이유는 바로 이런 것 때문입니다.
글을 꽤나 쓴다는 사람 중에서, 혹은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사람 중에서 글쓰기를 마치 교과서처럼 그 안에 담긴 간단한 산수 공식처럼 대하는 사람을 봅니다. 하지만 글쓰기는 그런 단순한 공식처럼 예상이 가능한 형태로 전개되지 않습니다. A를 B라고 서술하는 방식이 교과서처럼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에 '주장을 하고 그에 대해 논술해라', '결론을 쓰고 뒷받침하는 근거를 써라', 이런 방식은 단기간 처방은 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근본적인 치료제는 절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니 항상 생각하고 생각한 것을 글로 옮겨보고 그것을 다르게 보는 시각을 갖는 것이 훨씬 도움이 됩니다. 또한 제가 글쓰기에서 자주 강요하는 기본적인 훈련 방법은 사유와 비유의 세계를 넘나드는 작가의 글을 깊이 그리고 자주 읽으라는 겁니다. 하루키는 바로 저의 그런 욕망들을 충분히 만족시켜 줍니다.
개성적인 글이란 결국 타인과 똑같은 경험을 하면서도 그것에서 다른 가치를 발견해내는 일이 될 것입니다. 다른 가치의 정점에는 사유가 있고 서로 각기 다른 요소들을 묶고 연결하는 비유가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전혀 다른 대상을 내가 친숙한 것들과 연결하는 훈련을 하면 비유는 자동적으로 익히게 됩니다. 비유는 억지로 외우거나 주입시킬 대상이 아닙니다.
사유하는 글쓰기, 그 중심에는 외곽 끝 서로의 반대 방향에 위치한 단어가 있고 그것들을 연결하는 각자의 방식에서 나온다는 것, 글쓰기는 개성적인 것, 독보적인 것, 남들과 다른 방식으로 생산된다는 사실을 명심하면 되겠습니다. 계속 쓰면서 그 사실을 발견하길 바랍니다. 교과서에만 의지하지 마시고요.
제 눈앞에는 여전히 뜀틀이 놓여 있습니다. 저는 뛸 것인지 말 것인지 주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용기를 내어봅니다. 제자리에서 뜀박질을 하며 심장의 온도를 서서히 끌어올립니다. 그리고 제자리에서 뛰지만 그 속도를 더욱더 가속합니다. 가속하고 또 가속하고 이미 저는 저만치 앞으로 달려가 있습니다. 저는 무한한 상상의 세계로 향합니다. 나는 패배하지 않겠다고 쓰러지지 않겠다고, 설사 쓰러지더라도 당당하게 뒤로 돌아가 또 같은 자세를 반복하며 앞으로 세차게 페달을 밟아갈 거라고 다짐합니다. 그리고 저는 폭발합니다. 추진력을 얻고 제 마음으로부터 출발한 다짐을 받아 들고서 뜀틀 저만치 앞으로 손바닥을 가리킵니다. 뜀틀 끝으로 손바닥을 뻗으며 바닥을 강하게 내리누르고 허벅지를 최대한 벌려봅니다. 앞으로 다소 불안하지만 머릿속에서 훈련한 대로 그대로 도약합니다. 저는 순간 날아오르듯 뛰어오릅니다. 아주 작은 날개가 공중에서 퍼덕거림을 느낍니다. 그대로 한순간 저는 공중에 있습니다. 낮은 곳이 아닌 더 높은 곳에서 은빛 날개를 발산하며 그곳을 한껏 누빕니다. 저는 최대한의 자유를 누리고 바닥에 사뿐히 착지합니다. 저는 안정하게 양팔을 좌우로 벌리고 중력으로 복귀되었음을 인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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