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다 보면 언젠가 글감 부족 현상에 마주치기 마련이다. 글 쓰는 사람은 글감 수집이라는 문제 때문에 늘 갈증 상태에 머물러 있다고 할까. 그래서 자다가도 갑자기 벌떡 일어나, 떠오른 기발한 글감을 기록하겠다고 눈 옆에 놓인 스마트폰에 낙서도 끄적거리고, 샤워하다가 글감이 떠오르면 잊어버릴까 싶어 혼잣말로 특정 단어를 주문이라도 외우는 것처럼 중얼중얼거린다. 물론 중얼거리다,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나도 모르게 그 짓거리를 멈추게 되기도 하지만......
글감은 떠올리겠다거나 집착한다고 억지로 찾아내는 게 아니라 일상생활 속에서 글감에 연연하지 않을 때, 글감을 무심하게 대할 때, 공원을 산책하거나, 생각 없이 마트에서 아이쇼핑할 때, 문득, '어이~ 이것 봐 여기 기발한 글감이 하나 있어' 하며 어깨를 툭 건드리는 것이다.
그런 재기 발랄(?)한 글감은 거의 날것들이라, 정제하는 과정에서 대부분 걸러지는 편이긴 하지만, 스트라이크를 정중앙에 꽂아 넣으려면 수없이 많은 볼을 남발해야 하는 것처럼 글감이 멋진 글로 변화되어, 그러니까 순도 높은 다이아몬드가 되려면 그만큼 우리는 열심히 볼질을 남발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글이 되는 글감 중에서도 가장 무난한 것은 과거의 에피소드들이다. 우리는 보통 에피소드를 가지고 있다. 그것이 당신이 보기엔 딱히 개성적이지도 않고 재밌어 보이지 않아도 어쨌든 우리 모두는 과거를 가지고 있지 않는가. 그것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볼 것인지가 중요해지는데, 여기서 우리는 내 인생의 연출가이자 동시에 관찰자가 될 필요가 있다.
연출가는 무대를 장악하는 사람이다. 주체적인 역할을 도맡는다는 얘기다. 무대의 분위기를 디자인하고 연기자의 동선, 세세한 동작, 대화의 방법, 조명의 순서, 장면과 시간의 정교한 흐름의 예측, 무대 연출, 음악, 녹음 등등 잘 모르겠지만 무대에 관련된 총체적인 지휘를 맡는다. 이 이야기는 주인공은 아니지만 주인공을 조망하는 입장에서 전체적인 것을 볼 줄 아는, 그런 넓은 시야를 가져야 한다는 이야기로 정리가 된다.
관찰자는 무대에서 조금 뒤로 물러서 있다. 연출자는 주체적인 역할을 맡지만 관찰자는 다소 무관심한 태도, 방관자랄까. 그러니까 마치 관심 없는 타인을 대하듯 나를 시크하게 대하는 것이다. 자, 자기 자신을 태평하게 남 바라봐야 한다는 얘긴데 그렇게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객관적인 태도를 기르기 위해서다. 우리는 보통 자기 자신을 객관적으로 대하지 못한다. 지나치게 사랑한 나머지 그리스의 나르키소스처럼 지나치게 자신에게 집착하거나 - 언젠가는 나도 데미안 같은 소설을 쓸 수 있다고 자만하는 것? - 반대로 사랑하거나 자신을 열등하게 여기는 편이 - 난 절대로 위대한 작품을 남기지 못할 거야. 난 너무 형편없어 - 많은 편이다.
요컨대, 우리는 연출가이자 관찰자의 태도 두 가지를 동시에 지녀야 한다는 얘긴데, 이것은 나도 여전히 곤란을 겪는 문제이기도 하다. 위에서 잠시 언급했던 것처럼, 글감은 거의 나에게 속한 것들로부터 시작되는 편이다. 쓰다 보면 내적인 요소들은 급격히 소화된다. 그래서 어느 날, 심각한 병리적인 증상을 호소하는 편이다. 손발이 부르르 떨리는 금단현상, 머리를 쥐어짜는 듯한 편두통, 가슴이 아린 통증이 찾아오는 것이다. 직업병처럼...
내 에피소드가 그저 그럴듯해 보이는 현상, 그 이야기를 써봤자 그저 그런 것 같은 생각, 한없이 하찮아 보여서 "그런 글은 써봤자 아무런 재미도 볼거리도 제공하지 못하고 말 거야. 그냥 포기하고 잠이나 자자고!" 이런 결정을 내리게 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경험조차 모두 고유하다. 우리는 타인에게 관심이 없는 편이지만, 그가 쓴 이야기들에는 때로 호기심을 표시한다. 왜 궁금해할까? 왜 타인의 삶을 엿보고 싶은 걸까? 그래서 인기를 끄는 글들엔 어떤 공통점이 있는 걸까?
다시 한번 강조하자면, 연출가의 카리스마와 같은 무대 장악력과 나를 타인처럼 대하는 객관적인 시선, 시크한 태도에서 글감은 새롭게 탄생한다고 말하겠다. 어떤 경험이든 당신에게 그것은 독보적이다. 문제는 남들과 똑같이 경험을 바라보고 똑같은 방식으로 전개하는 당신의 문체 탓이다. 관성적으로, 늘 같은 패턴대로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지 않은지, 늘 교훈적인 결말을 맺고 있는 건 아닌지 자기를 돌아보자. 어떤 변화를 현재 시도 중인지 우린 자기를 관찰자의 시선으로 평가할 필요가 있다. 아주 날카롭게 때론 편집증적인 자세로......
물론 연출가의 자세, 그만의 종합 예술을 이해하지 못한다거나 어떻게 배워야 할지 방향을 잡지 못한다면, 일단 쓰는 습관을 기르는 것도 좋다. 꾸준하게 쓰면서 타인의 피드백을 받으면, 내 글을 객관적으로 읽게 될, 어떤 놀라운 순간을 맡게 될 수도 있으니까. 그렇게 되면 여러분의 그저 그런 경험도 연출가의 능력으로 윤색과 각색, 때로는 적당한 양념질을 하게 되면서 더 맛갈스럽게 변하게 될 테니까. 급하지 않게 차근차근 한 단계씩, 밟아나가면 된다. 다만, 누구에게 피드백을 받은 것인지가 중요해진다. 공심에게 배울 것인가. 아니면 독학? 문학 작품을 읽으면서 위대한 작가의 문체를 자연스럽게 터득할 것인가, 어쩌면 천재라면 가능할지도...... 선택은 여러분에게 있다. 귀찮으면 잠이나 자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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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ca
좋은 글쓰기 팁을 주셨군요. 글감이 어깨를 툭치는 그런날이 저에게도 올지 더 오래 살아봐야겠습니다. 감사히 읽었습니다^^
공대생의 심야서재 뉴스레터
글쓰기 팁이라고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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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나무
오.. 늘 친절하신 공심님이 오늘은 좀 시크하십니다. 잠을 못 자겠어요. ㅎ. 아주 유용한 조언 감사드립니다. 피드백... ㅜㅜ
공대생의 심야서재 뉴스레터
아, 오늘은 좀 시크했나요? 저도 가끔은 시크해지고 싶습니다 ㅎㅎ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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