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LETTER
안녕하세요. 5월 세 번째 뉴스 헐리버리는 REPORT EDITION입니다. 저는 에디터 오진달래입니다. 이번 호에서도 깊이와 관점이 있는 여성 관련 기사들을 모아 전해드립니다.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의 성폭력 피해자인 김지은 씨가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일부 승소한 뒤 “끝까지 싸우겠다”며 항소 의지를 내비쳤습니다. 성폭력 역고소가 범람하는 가운데 가해자 변론 시장이 형성된 법조계 현실을 알아보았습니다. 지난 한 주간 BBC뉴스 코리아의 다큐멘터리 ‘버닝썬: K팝 스타들의 비밀 대화방을 폭로한 여성들의 이야기’와 관련해 국내 언론과 BBC 보도의 차이점이 무엇인지 짚었습니다.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사건이 일어난 지 8년이 지났지만 아직 여성혐오 범죄라는 개념 정립조차 되어 있지 않은 국내 현실을 살펴보았습니다.
‘여성 노동 전문가’ 조앤 윌리엄스 미 캘리포니아대 명예교수가 한국의 초저출생 해법은 ‘차별해소’라고 진단했습니다.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과 최태원 SK 회장의 이혼 소송을 통해 ‘기업 아내(Corporate Wife)’의 가치를 들여다보았습니다. 여성/퀴어커플의 해외 혼인신고 사례를 통해 ‘법적 가족’의 의미를 돌아보았습니다. 지휘 분야의 유리천장을 허물고 있는 여성 지휘자들의 활약상을 모아 전해드립니다.
여성 스턴트 배우가 현장에서 액션 연기를 하며 겪는 이중고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지난 3월 스포츠 분야에서 여성 기자와 남성 기자에게 제공되는 홍보자료가 성차별적 시각으로 작성되는 문제를 지적한 바 있는데요, 이번에는 여성 스포츠팬에 대한 성차별적 편견을 짚었습니다. 민희진 어도어 대표가 고발한 케이팝 업계의 남성 중심성과 여성 리더에 대한 부정 평가에 대해 재고해보았습니다. 최근 유튜브 채널을 개설한 고현정, 최화정 두 여성 배우를 통해 이혼·비혼여성을 바라보는 방송계 편협한 시각을 돌아보았습니다. 웹툰에서 여성서사의 세계를 확장하고 있는 서이레 작가의 인터뷰도 준비했습니다.
헐리버리가 전해드리는 여성 뉴스가 여성과 여성상, 여성의제에 대해 더욱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되시기를 바라며 저는 다음 번 레터에서 더욱 다양하고 깊이 있는 기사들로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에디터 오진달래 드림
‘승소’ 김지은씨 “반성 없는 가해자 안희정과 끝까지 싸우겠다”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의 성폭력 피해자인 김지은씨가 24일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일부 승소한 뒤 “끝까지 싸우겠다”며 항소 의지를 내비쳤다.
김씨는 이날 1심 선고 직후 한국성폭력상담소를 통해 소송 결과에 대한 입장을 내놨다.
그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며 “민사소송을 통해 그동안 성폭력의 피해를 입고도 정작 고통의 시간을 돌려받지 못했던 많은 분들께 작은 희망이 되길 바랐다”고 말했다.
이번 법원 판결은 김씨가 지난 2020년 7월 안씨에게 성범죄와 댓글 등 2차 가해 책임을, 충청남도에 직무수행 중 발생한 범죄의 책임을 물어 소송을 제기한 지 4년 만에 이뤄졌다.
김씨는 이어 “재판부에서 안희정의 책임과 더불어 도청과 주변인들의 잘못에 대해서도 인정해주신 부분은 의미있다고 생각한다”면서도 “그럼에도 여전히 갈 길이 먼 지금의 현실에 안타까운 마음”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아직도 반성하지 않는 가해자 안희정과 충남도청 그리고 2차가해자들과 끝까지 싸워 의미있는 한 걸음을 내딛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앞으로도 함께 해주시 기를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호소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2부(최욱진 부장판사)는 이날 김씨가 안씨와 충청남도를 상대로 제기한 3억원 상당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이날 “업무상 위력에 의한 추행 등 안희정의 성폭력 범죄 사실과 그 배상 책임을 인정한다”며 “안희정은 8347만원, 충남도는 안희정과 공동으로 이 돈 가운데 5300여만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안씨의 과거 배우자였던 민모씨가 재판에 피해자가 제출한 진단서 등을 개인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유포하며 피해자를 비방한 행위 등 2차 가해를 안씨가 방조한 책임도 인정했다.
(이하나 기자, 여성신문, 24.05.24)
성폭력 역고소 범람…가해자 변론 시장 형성돼있어
법은 약자의 편, 진실의 편에 서는 것 아닌가 싶겠지만, 신자유주의 경쟁은 ‘법시장’도 피해갈 수 없었다. 책에 등장하는 14년 차 변호사 은주(가명)는 “(변호사 수는 늘어나는 반면) 점차 생계가 보장되지 않는 상황에서, 변호사들의 윤리는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전문가로서의 윤리니, 법률가로서의 윤리 같은 건 되게 우스워지고” 오히려 “변호사는 그냥 상인이라는 마인드가 강해졌다”는 것이다.
변호사도 광고를 해서 돈을 벌어야 하는 상황에서 광고 타깃이 된 건 ‘성범죄 분야’였다. “이혼과 성범죄 분야는 ‘아는 사람한테 말하기 창피’해서 전혀 모르는 변호사를 찾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광고를 통해 손님을 유치하던 업계엔 “이른바 ‘성범죄 전담법인’이 등장”하게 된다. 이들은 자신들의 ‘전문성’을 강조하며 “가해자 감형과 승소 전략을 ‘마치 1타 강사처럼’ 알려주면서 홍보”하는데, 문제는 이 홍보가 “허위광고로 이어지기까지 한다”는 것이다. “형사재판까지 가지 않을 사안임에도, 재판에 회부되지 않게 해 주겠다고 ‘뻥’을 치면서 홍보”를 이어가는 이들은, “미투 운동 등으로 ‘핫한 분야’가 된 성폭력”을 통해 성장하고 있다.
이런 식의 ‘성범죄 전담법인’의 성공은 “공격적인 마케팅과 영업 수단으로 확장”되고 있다. 저자는 “그 대표적인 양상이 바로 성폭력 역고소”라 지적한다.
성범죄 피해자에 대한 역고소는 “‘패키지’로 수임”될 정도로, 변호사들은 가해자/피의자에게 여러 역고소를 기획, 제안한다. 그 과정에서 “법률 지식이 부족한 가해자”들은 “변호사의 제안이 어떤 의미인지 꼼꼼하게 살펴보기도 어렵고, 그러한 제안을 거절하기도 쉽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사건을 수임하기도 한다. 때때로 “자신이 피해자를 무고죄로 역고소한 사실을 모르는 가해자도 있을” 정도다.
이런 상황이라니, 법시장은 피해자의 편도 가해자의 편도 아닌 자신들의 물적 이익 편이라고 봐야 할 것 같다. ‘정의’라는 이름이 따라붙던 법은 어디로 갔을까 묻게 된다.
한편, 저자는 지금의 법시장 형성 과정에서 ‘가해자 엄벌주의’ 영향도 짚는다. “성폭력적 문화에 대한 구조나 성별 권력에 대한 성찰 없이 진행된 법 제·개정에 대한 백래시로 가해자 인권 및 인격권 담론이 부상하면서, 지나친 엄벌 및 부가 처분들이 가해자 인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온정주의도 함께 대두되었다”는 분석이다.
책에 등장하는 변호사들은 “성폭력 가해자 양형 강화와 부가 처분들로 인해 ‘가해자 쪽의 시장이 열리’게 되고, 법원의 판단 기준은 ‘오히려 피해자한테 더 보수적으로’ 적용되는 것 같다”고 말한다. 가해자들은 범죄자가 돼 감옥에 가거나, 신상정보등록이 되거나, 취업제한이 될까 두려워 “극렬히 싸우는” 방법을 택한다. 자신은 “나쁜 가해자가 아님을 강조”하고 “자신의 가해행위를 더욱 필사적으로 부정하거나 축소”하려고 한다. 그러니 변호사의 중요성이 강화되는 거다.
(박주연 기자, 일다, 24.05.03)
'BBC 버닝썬 다큐'는 무엇이 다른가
지난 일주일 동안 온라인에서 큰 화제가 된 BBC뉴스 코리아의 다큐멘터리 ‘버닝썬: K팝 스타들의 비밀 대화방을 폭로한 여성들의 이야기’를 봤다. 영상은 5년 전 한국 사회를 타격한 일명 ‘버닝썬 게이트’를 가해자들의 출소 시기에 맞춰 재조명했다. 수년 전 일어났던 충격적 사건으로서만 다루지 않고,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문제로 묵직한 한방을 날리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무엇보다 버닝썬 사태의 핵심이 뿌리 깊은 여성혐오라는 점을 명쾌하게 드러냈기에 충분히 강렬할 수 있었다.
영상을 시청하는 내내 머리를 떠나지 않았던 물음은 ‘왜 이런 보도는 한국 언론에서 보기 힘든가’였다. 1차 책임은 언론에 있으나 대중 역시 자유로울 수 없다. 한국에선 미디어 생산자와 수용자 모두 버닝썬 사태를 여성혐오 범죄로 심각하게 받아들이거나 개선해야 할 구조적 문제로 보는 공감대가 떨어졌기 때문에 이번과 같은 ‘돌직구 콘텐츠’를 외신에 뺏기고 말았다. (중략)
그때나 지금이나 버닝썬 사태를 다루는 한국 언론의 기사는 여성혐오라는 본질은 거의 건들지 않는다. 진정성도 책임성도 없다. 처참한 피해 묘사로 여성 집단에 공포나 조장하고, 성범죄 보도가 또 하나의 선정적 콘텐츠로 취급되는 경향이 포착될 뿐이다. 이는 모두 여성 집단에 무언의 압박을 가하며 이들이 움츠러들게 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BBC 다큐 이후 또 한바탕 가해자를 규탄하고 피해자 증언을 보도한 기사가 쏟아졌지만, 어디까지나 외신 보도가 나오자 기다렸다는 듯 받아쓴 것에 불과하다.
부제에서 보듯 BBC의 보도는 버닝썬 문제를 추적하고, 고발하고, 증언한 ‘여성들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췄다. 이 다큐가 여성혐오 범죄의 본질을 정확히 겨냥하는 방식이다. 남성 중심 사회가 굳이 들춰오지 않았던 ‘남성의 여성 대상 범죄’를 여성들의 용기와 연대로 세상에 폭로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 과정에서 자신도 불법촬영 피해자였기에 가만있을 수 없었다는 가수 고(故) 구하라씨의 결정적 제보 내용이 새롭게 밝혀지기도 했다. 버닝썬 게이트에서 우리가 찾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의미와 희망이라면 이런 여성들의 존재가 아닐까.
(정지혜 기자, 기자협회보, 24.05.28)
‘강남역 살인사건’ 8년 지났지만…‘개념 정립’조차 못한 ‘여성혐오 범죄’
2016년 5월17일 강남역 인근 화장실에서 한 여성이 피살되는 사건이 벌어졌다. 가해 남성은 수사 과정에서 범행 동기로 “평소 여성들에게 무시를 당했다”고 말해 여성혐오 범죄에 대한 관심과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경찰과 검찰이 이 사건을 여성혐오 범죄로 규정하길 거부하고 피해자의 정신질환에 의한 범죄라고 밝혀 여성계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이를 계기로 여성을 겨냥한 폭력에 대한 인식 제고와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하지만 강남역 살인사건이 8년이 지난 지금도 유사한 여성혐오 범죄는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지난해 경남 진주시의 한 편의점에서 일하던 한 여성이 “페미니스트는 좀 맞아야 한다”며 폭행당한 ‘편의점 숏컷여성 폭행사건’이 대표적이다.
이 사건은 아무 원한도 없는 여성을 무차별 공격했다는 점에서 충격을 안겼지만, 여성혐오 사건 피해자 보호 장치가 여전히 미비한 현실도 보여줬다. 이 사건의 피해자는 ‘여성폭력방지법’에서 정한 여성폭력 범죄의 피해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국선변호인을 지원받지 못했다. 법에 지원 대상이 가정폭력, 성폭력, 성매매, 성희롱 등의 피해자로 협소하게 정의됐기 때문이다. (중략)
강남역 살인 사건은 여성혐오 범죄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지에 관한 논의를 학계와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촉발시켰다. 다만 법·제도적 개념 정립까지는 이어지지 못했다. 경찰은 아직 여성혐오가 동기가 된 범죄를 따로 집계하고 있지 않다. 여성혐오에 대한 법률적인 정의가 명확하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허민숙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여성혐오에 대한 명확한 진단이 없으니 대책도 나오지 않는 것 ”이라며 “여성을 동등한 주체로 보지 않고 저지르는 여러 폭력을 여성혐오 범죄로 폭넓게 정의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배시은 · 오동욱 기자, 경향신문, 24.05.21)
“대한민국 완전히 망했네요. 와!” 발언 교수, 해법은 ‘차별해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에 비해 긴 장시간 근로문화와, 직장에 헌신하는 것을 이상적 근로자로 규정하는 것이 한국의 저출생 현안을 해결하는 데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다.”
‘여성 노동 전문가’ 조앤 윌리엄스(72) 미국 캘리포니아대 샌프란시스코 법학대학 명예교수의 진단이다.
그는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법학자 중 하나다. 하버드 로스쿨 법학 박사를 취득하고 약 25년간 일·가정 양립과 유연근무정책을 연구해 왔다. 한국의 합계 출산율(2022년 기준 0.78명)을 두고 “대한민국 완전히 망했네요. 와!”라고 말한 2023년 EBS 인터뷰를 계기로 국내에서도 유명해지기도 했다.
윌리엄스 교수는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지난 24일 오후 한국여성정책연구원 국제회의장에서 연 ‘대한민국 초저출생 현상 심층분석’ 세미나에서 한국의 육아·돌봄 지원 제도는 잘 완비된 편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한국 기업들의 장시간 노동 문화와 실제 노동 생산성과는 무관하게 휴직 없이 늦게까지 남아 일하는 모습을 ‘이상적’으로 간주하는 직장 문화가 발목을 잡는다고 분석했다.
양육·돌봄을 ‘여성의 일’로 여기는 인식도 바꿔야 한다고 했다. 윌리엄스 교수는 “한국의 경우 출산은 여성의 문제로 여겨지는 경향이 크며, 가정에서의 양육과 돌봄은 여성인 배우자에게 주로 책임이 있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고도 봤다.
해결책으로 육아휴직을 사용하는 여성에 대한 차별 해소, 육아휴직에 따른 대체 고용 활성화, 남녀 부모 모두의 휴가 사용 장려, 유연근무제 도입과 근무시간 단축 등을 제시했다.
(이세아 기자, 여성신문, 24.05.26)
‘기업 아내의 가치는 얼마일까?’
“나는 집안의 불을 계속 타오르게 하고, 가족을 부양하고, 가족이라는 회사의 CEO가 되었다. 남편이 나가서 자신이 잘하는 일을 할 수 있도록 집안 환경을 지키고, (남편 기업의 이해관계자들과) 사회적이고 감성적인 유대를 꾀함으로써 그를 보완했다. 이 파트너십 관계에서 나는 50%의 자격이 있다.”
미국 여성 로나 웬트의 말이다. 로나는 1965년 게리 웬트와 결혼해 두 딸을 낳아 키웠다. 그녀는 첫 딸이 태어나기 전에 직장을 그만두었고 집안 일과 육아를 도맡았던 전업주부였다. 이벤트, 접대, 출장·회의 동행 등 남편의 경영활동도 적극 도왔다.
그렇게 기업인 남편과 32년째 결혼생활을 지속하던 로나는 뜻밖에도 이혼을 요구받았다. 1997년 당시 GE캐피털 CEO였던 남편은 이혼합의금으로 재산의 10%(현금 800만달러 등)를 던졌다. 로나는 분노했고 남편이 가진 재산의 정확한 절반을 요구하며 소송을 제기했다. 그녀는 자신을 남편의 모든 업무를 지원하는‘기업 아내(Corporate Wife)’로 표현했다. 미국의 경제 전문지 『포천』은 1998년 2월 로나 웬트를 표지로 다루면서 이런 제목을 달았다. ‘기업 아내의 가치는 얼마일까?(What’s A Corporate Wife Worth?)’
이 사건으로부터 20여 년이 흐른 지금 한국에서도 유사한 건이 진행되고 있다. ‘세기의 이혼’ 같은 달갑지 않은 수식어가 달린 ‘최태원·노소영 소송’이다. (중략)
노소영 관장이 1심 선고 이후인 지난해 1월 <법률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주장한 것과 일맥상통한다. 관련 부분을 요약하면 이렇다. ‘미래의 꿈과 비전을 함께 하는 파트너로 시작했다. 1988년 결혼 후 세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 자신은 육아와 내조를, 남편은 사업으로 역할분담했다. 남편이 구속되고 회사가 위기에 처할 때에도 그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34년간 가정을 지켰다. 여성의 내조 가치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정의 가치를 사법부가 지켜주길 간절히 바란다’.
"두 사람은 이혼한다. 원고(최태원)가 피고(노소영)에게 위자료 1억 원, 재산분할로 665억 원을 지급하라.” 서울가정법원의 1심 판결 요지이다. 이것만 보면 노소영 관장이 승소한 걸로 보일 수 있다. 법원으로부터 상대방이 유책배우자임이 인정되었고 재산분할 액수도 현재까지 가액이 알려진 이혼 재산분할 건 가운데 최대치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노관장은 지난해 항소했다. 5조원 가까운 남편 재산 가운데 단 1.2%만이 분할된 것은 자신의 삶의 가치와 사회적 존재로서의 여성의 의미를 전면 부정당한 것이라며 울분을 토했다. 1심 재판부가 최회장 재산 가운데 가장 큰 SK(주) 지분 50% 분할 요구를 최 회장의 특유재산이라며 분할 대상(공동재산)으로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장영희 편집위원, 여성신문, 24.05.23)
국경을 넘는 혼인신고: 여성/퀴어커플의 해외 혼인신고와 ‘법적 가족’ 되기
한국사회에서는 결혼을 두 사람의 성애적 관계를 법적, 사회적, 경제적으로 결속하는 가장 ‘보편적’이고 ‘이상적’인 방식으로 여긴다. 국가는 법적 혼인관계를 기준으로 의료결정권, 재산권, 사회보장제도 수혜권 등의 권리를 보장한다. 또한 ‘결속감’, ‘책임감’, ‘생활공동체’, ‘사랑을 기반으로 한 가족관계’ 등 결혼에 부착되어 있는 다양한 사회문화적 의미들이 한 사회에 공유되면서 그 관계를 설명하는 효과를 갖는다. 연구참여자들은 인터뷰에서 ‘내가 선택한 사람과 가족을 꾸리고 싶은 마음, 법제도적으로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는 가족관계를 만들고 싶은 욕구에 대해서 설명했다. 결혼이 딱히 최선의 방법은 아니더라도 현재 가족제도 위에서 불안정한 지위를 보다 안정적으로 만들기 위한 한 가지 방법으로 결혼을 택하게 되었다고 말하는 연구참여자도 있었다.
결혼은 결혼식, 동거, 결혼사진 촬영 등 다양한 수행으로 이루어진다. 이 의례들 중에서도 해외 혼인신고는 국가가 개입하는 법적 절차라는 점에서 다른 혼인의례와는 차이점을 가졌다. 배우자 동반 이민을 준비하는 경우, 결혼식은 했지만 더 ‘공식적이고 구속력 있는’ 관계를 원하는 경우, 사망 후 유언장의 진위 판별로 법적 분쟁이 일어날 때를 대비하여 간접증거라도 만들고자 하는 상황 등 각자가 조금씩 다르지만 해외 혼인신고는 다른 국가의 법률을 경유하여 ‘법적 문서’를 남기고자 하는 행위로써 그 의미를 갖는다. (중략)
해외에서 발급받은 여성/퀴어커플의 혼인증명서는 국내로 들어오는 순간 그 법적 효력을 잃는다. 다시 말해 이 혼인증명서를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한국에서 혼인한 부부에게 보장하는 법적 권리는 주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혼인증명서는 법의 강제력이 닿지 않은 영역에서 ‘부부’임을 인정하게 하는 근거로 사용되거나 ‘국가가 법률적으로 승인한 혼인’이라는 점에서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한 사회적 인정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예컨대 혼인증명서를 토대로 항공사에서 가족 마일리지를 합산하거나 가족 경조사 휴가를 부여하도록 회사에 요청하기도 한다.
캐나다에서 혼인신고를 하고 한국에 돌아와 결혼식을 올린 재은의 이야기는 법적 효력없는 해외 혼인신고가 어떤 식으로 관계에 대한 사회적 인정을 불러일으키는지를 잘 보여준다. 재은은 캐나다에서 올린 서약식을 촬영하여 결혼식에서 하객들과 함께 보는 시간을 가졌다. 캐나다 주례의 “legally married”라는 선언은 한국에 있는 재은의 결혼식장에서도 울려퍼졌다.
“제가 캐나다에 가서 캐나다에서 법적인 결혼식을 제대로 한 걸 찍어와서 그걸 영상으로 편집해서 보여준 것도 잘했다고 생각을 했어요. (…) 심지어 그 주례사 분이 정말 딱 집어서 얘기를 해주시거든요. 너네는 legally married(법적으로 혼인한) 커플이다 라고 되게 능숙하게 선언을 해주시는데 이게 진짜 필요하구나. 왜냐하면 사람들은 그냥 진짜라고 생각을 안 하니까. 근데 직접 보고 나면 생각이 많이 바뀌는 거죠. (…) 얘네들도 진짜 실제 부부구나라는 거를 더 이제 알게 됐던 것 같고(…)”_윤주
Legally married. 엄밀히 따지면 이 말은 캐나다의 법률상 혼인관계를 이르며 국내법상으로 여전히 이들은 미혼이다. 하지만 이 영상 속 주례의 한 마디는 한국의 하객들로 하여금 재은 커플이 ‘진짜 실제 부부’라는 것을 확인시킨다.
(라니 기자, 페미니스트 연구 웹진 Fwd, 24.05.16)
'지휘자 성차별의 벽' 허물러...여성 객원·부지휘자들이 온다
#.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의 지난 4월 19~26일 일정은 세계 음악계의 화제였다. 일주일간 공연을 모두 여성 지휘자 4명이 이끌었다. 우크라이나 출신 옥사나 리니우(46), 이탈리아의 스페란차 스카푸치(51), 미국 지휘자 마린 올솝(68), 중국계 미국인 시안 장(51). 메트 오페라 141년 역사상 포디움에 오른 여성 지휘자는 이들을 포함해 14명에 불과하다.
#. 142년 역사의 오스트리아 빈 필하모닉은 2005년에야 호주 출신 시모네 영(63)이 첫 여성 지휘자로 섰을 정도로 여성에게 기회를 주지 않았다. 최근 공개된 2024~2025년 공연 프로그램엔 리투아니아 여성 지휘자 미르가 그라치니테 틸라(38)의 내년 5월 객원 지휘 일정이 포함됐다.
지휘 분야의 유리천장 붕괴 속도가 최근 들어 가팔라졌다. 세계 주요 악단과 오페라단의 객원·부지휘자로 활약하는 여성 지휘자가 부쩍 늘었다. 객원·부지휘자는 연주자들과 합을 맞추며 자질·인성을 인정받으면 상임 지휘자가 되는 만큼 성차별 타파의 예비 주역인 셈이다. 주목받는 여성 지휘자들의 면면을 살펴봤다.
올솝은 시모네 영 호주 시드니 심포니 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와 더불어 선구자 격이다. 여성 최초 말러 교향곡 녹음 등 '최초' 기록을 많이 보유했다. 2007년 미국 볼티모어 심포니 오케스트라 음악감독으로 부임하며 미국 메이저 악단 첫 여성 상임 지휘자로 주목받았고, 2024~2025년 시즌부터 수석객원지휘자로 미국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를 이끈다.
지난해 내한해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를 지휘한 리니우는 독일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에서 지휘한 첫 여성 지휘자다. 스카푸치는 2025~2026년 시즌부터 영국 런던 로열 오페라의 수석객원지휘자로 활동한다. 2022년 베르디의 '아틸라'로 로열 오페라에 데뷔한 그는 차기 음악감독 야쿠프 흐루샤와 함께 임기를 시작한다. 시안 장은 2008년 독일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를 지휘한 첫 여성 지휘자로, 미국 뉴욕 필하모닉 부지휘자를 거쳐 뉴저지 심포니 오케스트라 음악감독을 맡고 있다.
(김소연 기자, 한국일보, 24.05.29)
딱 붙는 ‘여성 히어로’의 옷, 얇은 실리콘 패치로 보호되는 ‘스턴트우먼’의 몸
여성 스턴트 배우들은 언제부터 등장했을까요. 흔히 스턴트 일은 오래전부터 남성만 했고, 스턴트우먼이 나타난 것은 얼마 되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초창기 할리우드 영화를 보면 지금보다 훨씬 강도 높은 액션 연기를 펼치는 여성들이 많습니다. 1880년대 만들어진 어떤 영화에서는 별다른 안전장치도 없이 말을 타고 달리다 전차로 뛰어드는 스턴트우먼이 나오기도 합니다.
다큐멘터리에는 젊은 스턴트우먼부터 이제는 은퇴한 이들까지 여러 명의 인터뷰이가 나옵니다. 메인 인터뷰이 중 한 명인 지니 엡퍼는 1970년대 TV시리즈 <원더우먼>에서 주연 린다 카터의 스턴트 대역을 했습니다.
스턴트는 뛰고, 뛰어내리고, 부딪히고, 날아오르고, 꺾고, 꺾이는 일입니다. 여성과 남성 모두에게 위험하죠. 하지만 스턴트우먼은 스턴트맨은 겪지 않는 고충도 겪습니다. 바로 의상입니다. 2018년 마블 <어벤저스: 인피니티 워>에서 슈퍼히어로 스칼렛 위치 역을 맡은 배우 엘리자베스 올슨이 자신의 의상에 대해서 불만을 토로했던 것 기억하시나요? 그는 한 인터뷰에서 코르셋처럼 꽉 조이고 가슴이 지나치게 부각되는 자신의 의상을 바꾸고 싶다고 했습니다. 스칼렛 위치 뿐 아니라 원더우먼, 블랙위도우 등 다른 여성 슈퍼히어로가 나올 때마다 비슷하게 제기됐던 문제죠. 이런 의상은 스턴트우먼들에게도 위협이 됩니다. 그런 옷에는 보호구를 넣을 수가 없거든요.
한나 베츠는 <쥬라기 공원> <캡틴 마블> <에이전트 오브 쉴드> 등 다수의 액션 영화에 출연한 스턴트우먼입니다. 그가 촬영 때 몸에 착용하는 보호구라며 보여준 것은 얇은 실리콘 패치입니다. 액션 영화 속 여자 주인공들이 입는 딱 달라붙는 의상 안에는 이것 이상의 보호구를 넣기 어렵습니다. 긴 팔, 긴 바지 안에 온갖 보호구를 넣어서 몸을 보호하는 스턴트맨들과는 확연히 다릅니다. ‘하이힐’을 신고 뛰어야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김한솔 기자, 경향신문, 24.05.29)
스포츠 고관여층 63%가 여성인데…팬 진입 막는 ‘얼빠’ 편견
2024 파리올림픽 개막을 앞두고 공개된 미국 육상 선수 유니폼이 여성 선수들에게만 신체 노출을 부추긴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스포츠 관람을 즐기는 여성 인구가 빠르게 느는 것은 수치로도 확인된다. 한국프로스포츠협회가 지난달 펴낸 ‘2023 프로스포츠 관람객 성향 조사 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조사 대상 프로스포츠 팬 2만5000명 가운데 여성 비율이 57.1%로 절반을 넘었고, 고관여팬(관심 있는 리그의 지난 시즌 우승팀과 응원 구단의 선수를 모두 알고 있고 유니폼을 보유한 응답자) 1만4599명으로 대상을 좁히면 여성 비율이 62.6%에 이르렀다.
종목별로 살펴보면 프로야구(63.8%), 남자프로농구(78.4%), 여자프로농구(67.6%), 남자프로배구(81.0%), 여자프로배구(70.3%) 등에서 여성 고관여팬 비율이 남성보다 높았다. 프로축구 K리그1의 고관여팬 여성 비율은 38%로 나타났다. 한 프로스포츠 구단 관계자는 “여성 팬 유입은 곧 가족 단위 관중 증가와 경기장 내 식음료 소비로 이어져 구단들 입장에서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고 말했다. (중략)
여성 팬층은 점점 늘어나고 있으나 관람·응원 커뮤니티의 남성 중심적 문화와 여성에 대한 선입견은 더 많은 이들의 프로스포츠 접근을 가로막고 있다. 여성 팬을 향한 가장 큰 선입견은 “스포츠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선수 얼굴만 보고 좋아한다”는 일명 ‘무지성 얼빠’ 취급에서 잘 드러난다.
중학생 때부터 국내외 프로축구를 즐겨 봤고, 지금은 스포츠 관련 기업에서 일하는 김소영(32)씨는 “이영표가 토트넘에 입단한 2005년부터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경기를 챙겨 봤는데, ‘손흥민 때문에 토트넘 좋아하냐’거나 ‘잘생긴 선수와 잘 해보려고 (K리그) 직관 가냐’ 는 등의 이야기를 여전히 자주 듣는다”고 말했다. 김씨는 “‘네가 이런 것까지 알아?’하고 검증하듯 축구 관련 질문을 상세히 하는 경우도 많다”고 덧붙였다.
(정인선 기자, 한겨레, 24.05.17)
이 여자가 유별나다고 손가락질하기 전에
민희진은 유능한 기획자라는 평가와 함께 ‘나르시시스트’라는 평이 함께 따라다녔다. 이런 세간의 이미지는 기자회견 이전 하이브발 문건에서 민희진이 “여타 아이돌들이 내 것을 따라 해서 여기까지 온 것”이라는 발언을 했다는 주장이 나왔을 때 민희진에 대한 여론을 급격하게 악화시키는 장치가 됐다. 사람들은 이제까지 민희진의 독창성에 환호해왔다. 그럼에도 민희진이 진짜 그것을 문제시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왜냐면 그것이 케이팝이고, 케이팝은 ‘예술’이 아닌 ‘산업’이니까.
민희진이 이제까지 케이팝 산업에서 독창성을 주창하는 유일한 사람은 아니다. 경영자로서는 양현석과 박진영이 있었고, 아이돌로서는 지드래곤이 대표적이었다. 그런데도 민희진의 캐릭터가 유달리 독특하게 느껴지고, 오랜 경력과 무수한 성공에도 여전히 케이팝 산업에서 ‘위태로운’ 대우를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람들은 그 이유를 민희진이라는 사람 개인의 캐릭터에서 찾으려는 것 같다. 기자회견 이전에도 민희진은 ‘성격이 이상해서 같이 일하기 힘든 사람’일 것이라는 추측성 말이 많은 인물이었다.
이런 추측성 이야기는 민희진이 겪는 위기와 위태로움이 모두 그의 자충수처럼 느껴지개 한다. 하이브 또한 이번 사태에서 민희진의 이러한 대외적 이미지를 충분히 이용했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지점은 민희진이 현재 케이팝 산업의 4대 대표 엔터테인먼트 회사에서 연봉 5억원 이상을 받는 ‘유일한’ 여성일뿐더러 이제까지 케이팝 산업에서 독창성을 주장해온 어떤 남성 크리에이터도 그의 유별남이 그를 위기로 빠트릴 요소로 여겨졌던 적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나르시시스트라고 평가되는 최고경영자(자신의 능력에 대한 과한 자신감을 가진 CEO)의 성별 차이에 대한 흥미로운 연구가 있다. 남성 CEO가 나르시시스트일 때 그것은 카리스마로 받아들여지지만, 여성 CEO가 나르시시스트일 때는 부정적 평가를 받는다고 한다. 나르시시스트 여성 CEO는 나르시시스트 남성 CEO와 달리 비윤리적인 비즈니스 관행에 참여하지 않음에도 나르시시스트 남성 CEO에 비해 부정적인 평가를 받는다. 그 이유는 자기주장이 강한 남성은 까다롭고 자격 있는 것으로 인식되는 반면, 비슷하게 자기주장이 강한 여성은 히스테리적이고 통제 불가하며 너무 ‘감정적’이라고 간주돼서다. 이는 성차별적인 고정관념이 작동한 결과다. 민희진의 행위가 그를 나르시시스트로 보이게 하지만, 진짜 민희진 대표가 나르시시스트라 하더라도 이에 대한 과도한 부정 평가는 성차별적 편견의 결과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이 연구가 말해준다.
(연혜원 <퀴어돌로지> 공저자·사회학 연구자, 한겨레21, 24.05.10)
고현정·최화정이 울었고, 유튜브를 시작했다...'남성 중심' 방송엔 없던 '이것'
#. 배우 고현정은 이달 중순 자신의 일상을 전하는 유튜브 채널을 개설했다. ‘신비주의 배우’의 대명사로 꼽히던 35년 차 배우가 팬들과의 직접 소통에 나선 것. 그를 움직인 건 다름 아닌 댓글이었다. 그는 지난 1월 가수 정재형의 유튜브 토크쇼 ‘요정식탁’에 출연했는데, 고현정과의 따뜻한 일화를 추억하거나 그를 응원하는 댓글이 1만 개 넘게 달렸다. 고현정은 자신의 채널 첫 영상에서 울먹이며 이렇게 말했다. “저는 어디(방송에) 나가서 그렇게 좋은 말을 들어본 적이 없어요. 너무 좋은 말(댓글)을 많이 듣고 막 엉엉 울었어요. (그동안은) 진짜 나쁜 말만 많이 들었거든요. ‘아 다 나를 싫어하진 않는구나’ 하는 오해가 풀렸어요.”
#. 배우 최화정도 1년간의 고민 끝에 이달 초 유튜브 방송을 시작했다. 고민에 마침표를 찍은 것 역시 응원 댓글. 그가 지난해 출연한 홍진경의 유튜브 채널 ‘공부왕찐천재’의 영상에는 “자기가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이렇게 빛나나보다” “저렇게 늙고 싶다” 등의 댓글이 달렸다. 최화정은 최근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서 "(댓글 보고) 울 뻔했다. 무슨 댓글이 이렇게 좋아. 만날 '죽어라' '이쁜 척' 이런 것만 있다가 (좋은 댓글을 보니) 너무 좋더라"고 감격해했다. (중략)
변화의 시작은 배우를 바라보는 ‘관점’이었다. 고현정이 2009년 MBC 예능 프로그램 ‘무릎팍도사’ 출연 후 15년 만에 나온 토크쇼인 ‘요정식탁’은 배우로서 그가 걸어온 길을 찬찬히 되짚었다. 고현정과 관련한 루머들에 대해 진행자 정재형은 “(너에 대한) 가십을 듣고 ‘어 그랬어?’라고 한 걸 사과할게. 너의 마음을 짐작해 보자면, 그때 웃지라도 않았어야 했다”고 사과했다. 악의 없는 호응과 방관조차 루머 당사자에겐 상처가 된다는 사실을 예민하게 감지한, 새 시대에 맞는 감수성이었다. 덕분에 고현정은 치유를, 시청자들은 각성을 할 수 있었다.
‘무릎팍도사’는 당시 이미 6년 전 이혼한 고현정에게 ‘전 남편과의 첫 만남은 어땠느냐’, ‘다시 태어나도 결혼하겠느냐’ 등 무례한 질문을 쏟아내며 ‘여배우 루머’에만 집중했다. 남성 중심 시각이 지배적이었던 당시 방송가가 가부장제의 틀에서 벗어난 여성 배우를 소비하는 방식이었다.
비혼인 최화정 역시 방송에서 자신의 성정체성과 연애 관련 루머를 거듭 해명해야 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루머는 더욱 확산됐고, 루머는 배우로서의 능력과 인간적인 매력까지 뒤덮어버리곤 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유튜브 토크쇼들은 방송이 연예인을 소비하는 방식과 다르게 진솔한 접근을 많이 한다”며 "루머 동조에 대한 정재형의 사과도 좋은 접근"이라고 말했다.
(남보라 기자, 한국일보, 24.05.22)
금기는 없어, 꽂히면 쓴다 <정년이><라나> 글작가 서이레
그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주요한 발화자는 대부분 여성이다. <소녀행>에 나오는 ‘혜’와 ‘영비’부터 의 ‘설경’, <라나>의 ‘라나’, <정년이>의 ‘정년’까지 여성들은 모두 자신의 삶에 주체성을 가지고 이야기를 이끌어나간다. 내가 그에게 ‘여성의 이야기’를 쓰게 된 계기를 묻자, 그는 새삼스럽다는 듯 ‘타고난 것 같다’고 말했다. 초등학교에서 처음 여자중학교에 간 뒤 학급 임원을 모두 여자가 맡는 것을 보고 충격받은 이후 여고, 여대를 나온 그는 쭉 그런 세계에 있었다. “여자 캐릭터들이 제게는 이상하거나 특별한 게 아니에요. 너무 당연한 거예요. 특별히 ‘이렇게 기획해야지’라기보다 그냥 제가 좋아하는 캐릭터들인 것 같아요.” 그의 캐릭터들은 독자의 마음을 두드린다. 아무나 그가 만드는 등장인물들을 만들어낼 수 없다. 내가 사랑하는 그의 등장인물들은 자신을 구성하는 세계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시대와 숙명처럼 주어진 역할에 반항한다. (중략)
서이레 작가는 <정년이> 속에서 자신과 가장 닮은 인물로 ‘도앵’을 꼽았다. 도앵은 가세가 기운 집안에서 똑똑하게 태어나 엘리트로 성장하는 캐릭터다. ‘아버지의 딸’로서의 자아가 강한 탓에 자신 안의 여성혐오가 스스로를 괴롭게 한다. “막 대학생활을 할 때의 저랑 많이 닮았다고 느꼈어요.” 그는 자신이 살아온 과거의 모습들을 쪼개 독창적이면서도 공감을 이끌어내는 인물들을 만들어낸다. 그렇게 만들어낸 등장인물 하나하나를 인간적으로 대한다. 처음 정년이를 기획할 때도 등장인물에 대한 고민을 하다 고민 속 인물이 자신의 옆에 놓인 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을 때, ‘인물이 됐다’고 느꼈다. “정년이가 옆에 앉아 있는 걸 내가 상상할 수 있네. 그러면 된 것 같아.”
(신채윤 <노랑클로버> 저자, 한겨레21, 24.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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