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LETTER
안녕하세요. 3월 세 번째 뉴스 헐리버리는 REPORT EDITION입니다. 저는 에디터 오진달래입니다. 이번 호에서도 여성의제와 관련된 심층 기사들을 준비했는데요, 먼저 경향신문 플랫팀에서 여성의 날 특집으로 준비한 ‘우선, 나로 살기로 했다’ 시리즈 기사 가운데 경제 자립을 삶의 우선순위로 꼽은 여성들을 인터뷰한 기사를 전해드립니다. 그리고 선거를 앞두고 여성 의원이 10%대에 머무르며 여성을 대표하는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국회의 현 주소를 다룬 뉴스타파 기사와 여성이 실종된 이번 총선에 대해 쓴 세계일보 정지혜 기자의 칼럼도 준비해보았습니다.
머니투데이 ‘남기자의 체헐리즘’ 시리즈 기사에서는 여성이 일상에서 당하고 있는 폭력을 재구성한 ‘여성이라 죽었다’를 소개해드립니다. 이 같은 폭력이 어디서 기인했는지 전문가들의 진단을 함께 확인해보십시오. 집단 성폭행과 불법촬영 동영상 유포 범죄자인 가수 정준영이 얼마 전 만기 출소했는데요, ‘성범죄자 알림e’에서 정씨의 정보를 확인할 수 없는 이유를 알아보았습니다. 한국여성의전화에서 지난 한 해 동안 언론에 보도된 남성 배우자나 애인에 의한 여성 살해(미수 포함) 사건을 분석한 결과, 피해자 주변인 피해 사례 중 반려동물의 피해가 심각한 수위에 이르고 있음이 확인되었습니다. 일요신문에서는 ‘전자발찌 삼형제’ 사건을 통해 친족 성폭력의 실태를 살펴보았습니다. LG전자 반도체 여성 노동자가 근로복지공단의 성차별적 장해 판정에 대한 법정 다툼에서 최종 승소했습니다.
한 스포츠구단이 여성 기자와 남성 기자 대상 홍보자료를 다르게 만들어 제공하며 여성 기자에게는 선수의 성적이 아닌 외모 중심 자료를 전달해 논란이 되었습니다. 아이돌 그룹 에스파 멤버 카리나가 열애 사실을 인정하고 자필 사과문을 올린 사태에 대해 연혜원 <퀴어돌로지> 공저자가 아이돌 가수의 노동권과 관련해 쓴 칼럼도 함께 소개합니다. 글로벌 여론조사 기관 입소스에서 31개국 18세 이상 성인남녀를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를 통해 전 세계 공통으로 극우화되고 있는 ‘이대남 현상’에 대해 짚었습니다. 서아프리카 국가 감비아에서는 여성 인권을 억압하는 관습으로 여겨져 법으로 금지했던 ‘여성 할례’를 사실상 다시 허용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여성의제가 나라별로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걸 다시금 깨닫게 되는 시기인 것 같습니다. 헐리버리에서 전해드리는 여성 뉴스가 구독자 여러분들께 연결감을 전해드리고 우리 앞의 과제를 한번 더 상기시켜드릴 수 있길 바라겠습니다. 어느새 총선이 열흘 앞으로 다가왔는데요, 여성을 제대로 대표하지 못하고 있는 국회에 어떻게 여성의 자리를 넓힐 수 있을지, 공보물 속 여성 정치인을 한번 더 눈여겨봐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 에디터 오진달래 드림
지금, 2030 여성에게 ‘일은 시민권’이다
2015년 처음으로 여성 고용률(50.1%)이 50%를 넘었다. 30대 여성 고용률은 2015년 56.9%에서 2023년 68%로 가파르게 증가했다. 전문가들은 2015년을 어떤 반응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티핑 포인트’로 보고 있다. 이때부터 합계출산율(여성 1명이 15~49세에 낳을 것으로 기대하는 평균 출생아 수)이 급격히 하락했는데 2015년 이후의 하락은 ‘이전과 완전히 다른 하락’이라는 것이다. 실제 2015년 1.24명을 기점으로 매년 출산율이 하락해 올해는 0.6명대로 떨어질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2030 여성들이 ‘일’을 선택하고 있다. ‘아이’는 포기했거나 고민 중이다. 이들은 괜찮은 일자리를 얻어 ‘경제적 자립’을 통해 ‘자기만의 방’을 꾸리는 생애계획을 수립하려 한다. 이들의 생애계획에서 ‘가정’은 후순위다. 이미 선배 세대들을 통해 일과 가정을 양립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인지한 2030 여성들은 ‘출산 후 경력단절’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비혼, 무자녀’의 길로 걸어가고 있다. 2023년 12월 통계청 인구동향 자료에서 출산율 감소세는 20대 후반과 30대 초반에서 두드러졌다.
“일이 너무 재밌는데 결혼하면 현장을 떠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경향신문 플랫팀이 실시한 2030 여성들에 대한 초점집단면접(Focus Group Interview·FGI)에서도 “스스로 기획한 삶이 흔들리지 않길 바라는” 이들의 이야기가 중심이 됐다. 이들은 결혼과 출산으로 일을 못 하게 되는 상황, 여성에게 돌봄의 무게추가 쏠리는 것을 받아들이고 싶어하지 않았다. 그들은 모두 비혼주의자가 아니다. “잘 키울 자신은 있는데 이 사회에서 키울 자신이 없다”고 말한다.
(플랫팀, 경향신문, 24.03.08)
성평등 국회 ①여성 19%, 국회는 여성을 대표하지 못한다
우리나라 21대 국회의 여성 의원 비율은 19%. 전체 국회의원 300명 중 57명이다. OECD가입 국가 38개국 중 36위, 만년 꼴찌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국회에서의 성비 불균형은 민생 법안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여성 의원의 숫자가 늘어나면 여성의 삶은 과연 더 나아질까? 뉴스타파는 21대 국회에 발의된 법안을 전수 분석해 여성 국회의원이 실제로 여성을 대표하는지 확인했다.
먼저 입법 성과부터 살펴봤다. 21대 국회에 발의된 전체 법안은 모두 2만 2469개. 이중 여성 의원이 발의한 법안은 모두 4676건으로 전체 법안의 21%다. 남성은 1만 7793건으로 전체 법안의 79%를 발의했다. 국회 의원 1명당 발의 건수로 계산해 보면, 여성 의원은 1명당 80건, 남성 의원은 1명당 74건으로 여성의원이 조금 더 많이 법안을 발의한 것으로 확인됐다.
반면 법안 가결률은 남성 의원이 여성보다 높았다. 국회에 발의된 법안 중 통과된 법안은 1152건. 전체 법안 가결률은 5.1%다. 수정 가결과 원안 가결 법안만 집계했을 때 남성 의원의 법안 가결률은 5.2%(929건). 여성 의원은 4.7%(223건)였다. 법안 발의율과 가결률을 종합해 보면, 성별에 따라 약간씩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의원 수에 비례하게 성과를 낸 것으로 보인다. (중략)
국회에 발의된 법안 중 여성과 관련된 법안으로 좁혀 보면 남녀 의원 사이에 더욱 확실한 차이가 발견된다. 뉴스타파는 21대 국회에 발의된 법안에서 경력단절, 성폭력, 돌봄 등 여성과 관련이 있는 키워드 40개를 넣어 여성 관련 법안을 추출했다. 그 결과 1486건의 여성 관련 법안이 나왔다. 전체 법안의 6.6%다. 이중 남성 의원은 820건, 여성 의원이 666건을 발의했다.
전체적으로 보면, 남성 의원이 여성 관련 법안을 더 많이 발의했다. 이는 남성 의원 숫자가 절대적으로 많기 때문이다. 국회의원 1명당 발의 건수로 계산 하면, 남성 의원은 1명당 3.4건, 여성 의원은 1명당 11.5건을 발의했다. 여성 의원이 남성 의원보다 여성 관련 법안을 3배 이상 많이 발의한 것이다.
(홍여진 기자, 뉴스타파, 24.02.29)
실망과 모욕 주는 '여성 실종' 총선
피 튀기는 공천 전쟁의 결과는 냉정했다. 지난 22일 마감한 총선 후보등록 결과 남성 600명, 여성은 99명(14.2%)이었다. 공직선거법 권고사항(여성 추천 30%)의 반 토막 수준, 4년 전 지난 총선(19.1%) 때보다도 약 5%p 하락했다. 여성 30% 목표를 당헌에 의무조항으로 명문화한 양당의 약속은 말뿐이었다. 오히려 그 반대를 약속이나 한듯 뻔뻔하게 들이민 수치는 국민의힘 11.8%, 더불어민주당 16.7%다.
숫자에서 받은 1차 충격은 밀려난 이들의 면면에서 더 큰 2차 충격을 안긴다. 다른 어떤 가치보다 성평등에서 후진하는 정치의 민낯이 고스란히 드러나서다. 지난 대선 때 추적단 불꽃 출신 박지현을 막판 영입하며 여성 표 결집 효과를 봤던 민주당의 안면몰수는 놀라울 정도다. 강성 지지층이 주도했다고 일컬어지는 이번 민주당 공천은 “페미(니스트) 선수는 쉬어도 된다”, “박지현·정춘숙·박성민·권인숙, 페미대장들 소장들 굿바이” 같은 일각의 발언이 그대로 현실이 되는 전개로 한 줄 요약된다. (중략)
세계 여성 정치계의 화두인 ‘남녀동수 민주주의’가 유력 정치인은 물론 정치권 전반에서도 언급되지 않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반면 프랑스는 무려 1999년에 이를 법제화했다. 후보 성비를 50대 50으로 추천하도록 하는 헌법조항을 신설한 것이다. 권고가 아닌 강제, ‘동등한 주권자’로서 남성과 같은 수의 여성 대표성을 선언했다는 점에서 당시 세계를 놀라게 한 법이었다. 여성 추천 확대를 적극적 우대조치로만 보고 수혜니 불공정이니 하는 한국 사회는 아직 얼마나 갈 길이 먼가.
(정지혜 기자, 기자협회보, 24.03.26)
무서운 지하철·편의점·화장실…'여성'이라 죽었다
40년 동안 남성으로 살고 있다.
어느 날 문득 '여성'으로 집을 나서보기로 했다. 생물학적으론 불가능하다. 여성이라면 어떨까 짐작해보는 거다. 이유는 이렇다. 가정폭력 가해자 83.8%는 남성(대검찰청, 2019년). 여성 38.6%가 평생 한 번 이상 성폭력 피해 경험(여성가족부, 2022년). 보복 범죄 91.6%가 남성(경찰청, 2017~2021년).
가는 곳마다, 여성에게 실제 일어난 사건을 찾아보기로 했다. 예컨대, 버스를 탄다면 '시내버스, 일면식도 없는 여성'을 검색하는 식이다. 그와 관련해 벌어진 사건 기사가 떴다.
아래는 그리 다니며, 사실에 근거해 피해 여성의 주어를 '나'로 바꿔 남겨본 기록이다. 남성으로 살며 생각해 보지 못했던. 괄호 안은 실제 벌어진 사건 날짜와 장소다.
집에서 나왔다. 평범하게 길거리를 걸었다. 처음 보는 남성이 휴대전화로 내 다리를 부각해서 불법 촬영을 했다. 혐의를 부인하던 남성. 그의 휴대전화 사진첩에선 불법 촬영물 300장이 나왔다.(2023년 5월, 서울 양천구) (중략)
도착한 곳은 강남역과 신논현역 사이 술집이었다. 화장실에 가고 싶어 자리에서 잠시 일어났다.
건물에 있는 화장실은 남녀 공용이었다. 건물에 낯선 남성이 숨어 있단 걸 꿈에도 몰랐다.
그 남성은 흉기를 품고 있었다. 내게 휘둘렀다. 나는 죽었다.
내가 화장실에 가기 전, 6명의 남성이 다녀갔다고 했다. 그들은 공격하지 않았다. 그러니 여성이라서 죽었다.
실제 남성의 범행 동기도 "여성에게 무시당했다"였다.(2016년 5월, 강남역, 가해자 김성민, 남성) (중략)
본질적으로, 이런 범죄가 사회 구조상 남성과 여성의 불평등에서 벌어진단 것. 표창원 범죄과학연구소 소장도 이리 말했다.
"여성 혐오 범죄는, 여성에 대한 선입견과 고정관념을 기반으로 폭력을 가하는 거예요. 진주 편의점 폭행 사건(머리가 짧으니 페미니스트라며 여성 알바생 무차별 폭행)은 아주 좁은 의미의, 극단적 여성 혐오 범죄고요. 스토킹, 가정폭력, 데이트 폭력, 이별 폭력 모두 여성 혐오 범죄입니다. '여성은 이래야 하고, 날 거절하면 안 돼', 자기들 스스로 주류 집단으로 보는 인종차별 범죄와 아주 유사하고요."
허민숙 조사관도 덧붙여 설명했다.
"혐오라는 건, 여성들이 자기 자리에 있지 않은 것에 대한 분노입니다. 남성 욕구를 그대로 수용할 것, 순응할 것, 이런 걸 여성 역할이라고 보는 거예요. 젠더 질서를 위반한 자를 내가 처벌하겠다, 그게 여성 혐오 범죄의 배경입니다. 남녀가 평등한 위치라면 이렇지 않죠. 평등해지는 것에 대한 극렬한 거부 반응, 종속 관계를 유지해야 한단 것. 그러니 '젠더 불평등'이 크게, 전반적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겁니다."
(남형도 기자, 머니투데이, 24.03.09)
집단 성폭행 정준영 만기출소…'성범죄자 알림e'에 안 뜬 이유는?
여성을 집단 성폭행하고 불법 촬영 동영상을 유포해 실형을 선고받은 가수 정준영(35) 씨가 19일 전남 목포교도소에서 형기를 마치고 출소했다. (중략)
그러나 성범죄자 정보 열람 시스템임 '성범죄자 알림e'에서 정 씨의 정보는 확인이 불가능한 것으로 나타났다.
성범죄자로서 신상정보가 공개되려면 강간과 추행의 죄,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죄,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죄를 저지른 자에 해당돼야 한다.
성범죄자 신상 공개 기준도 사건과 판사의 재량에 따라 달라지는데 정 씨는 신상정보 공개 고지 명령을 부과받지 않았다. 함께 범죄를 저지른 FT 아일랜드의 최종훈도 신상 공개가 되지 않았다.
(최가영 기자, YTN, 24.03.19)
“가해남성, 고양이를 세탁기에…” 반려동물까지 번진 여성폭력
지난해 남편·애인 등 친밀한 관계에 있는 남성에 의해 살해된 여성이 최소 138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여성의전화는 8일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2023년 분노의 게이지: 언론 보도를 통해 본 친밀한 관계의 남성 파트너 및 일면식 없는 남성에 의한 여성살해 분석’ 보고서를 공개했다. 보고서는 지난 한해동안 언론에 보도된 남성 배우자나 애인에 의한 여성살해(미수 포함) 사건을 분석했다.
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친밀한 남성에 의해 살해된 여성은 최소 138명이다. 살인이 미수에 그쳐 살아남은 여성까지 포함하면 그 수는 최소 449명까지 늘어난다. 19시간마다 여성 1명이 남편이나 애인 등 친밀한 관계에 있는 남성에 의해 살해되거나 살해될 위험에 처했다는 것이다.
여성의전화는 특히 이번 조사에서 ‘반려동물’을 따로 분류해 가해자가 피해자와 함께 사는 반려동물에게 저지른 살해 행위(미수 포함)도 집계했다. 피해자 주변인 피해 사례 119건 중 가해자가 반려동물에게 위해를 가한 경우가 19.3%(23건)를 차지했다. 여성의전화는 “가해자가 피해자 눈앞에서 피해자 반려동물을 죽이거나, 피해자가 키우는 고양이를 세탁기에 돌려 살해한 사례 등 친밀한 관계 내 여성폭력 범죄에서 반려동물 피해는 심각하지만 이에 대한 가해자 처벌이 미약하다”며 “피해자가 반려동물과 함께 지원받을 수 있는 사회적 자원이 충분하지 않아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오세진 기자, 한겨레, 24.03.08)
딸이자 조카에게 몹쓸 짓…‘전자발찌 삼형제’ 사건으로 본 친족 성폭력 실태
조은희 원장은 친족 성폭력의 특징에 대해 “피해자 절반 이상이 8~13세의 어린이이며, 그 다음 많은 연령층이 7세 이하 유아다. 가해자들이 통제하기 쉬운 나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면서 “또 피해자들의 절반 이상이 신고하기까지 보통 10년 이상 걸린다. 친족 성폭력이 잘못된 일이라는 것을 깨닫기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하며, 이를 깨닫더라도 가정이 파괴될까봐 신고하기를 주저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피해자들 중에는 40·50대, 많게는 70대 할머니도 있다”라고 말했다.
이어 조 원장은 “친족 성폭력의 경우 아동학대나 가정폭력이 수반되는 경우가 많다. 이 과정에서 가해자는 보통 경제권을 쥐고 있는데, 가해자들은 가족 구성원이 자신의 소유물로 생각하고 이러한 권력 관계가 학대나 성폭행 등으로 나타난 것”이라면서 “경제적으로 독립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피해자의 다른 가족도 불가항력에 놓이긴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친족 성폭력은 13세 미만 미성년자일 경우만 공소시효가 적용되지 않는다. 13세 이상 청소년은 그들이 성년이 된 날로부터 공소시효가 진행된다. 각종 여성단체와 시민단체 등은 친족 성폭력 공소시효 전면 폐지를 주장하고 있다. 조은희 원장은 “피해자들은 자신의 상처를 털어놓는 데 10년 이상이 걸린다. 공소시효를 폐지해야 이들의 힘든 결정이 지지받을 수 있다”는 취지의 주장을 폈다.
친족 성폭력 피해자들에 대한 지원 방안에 대해 조은희 원장은 “어린 시절 성폭력을 경험한 피해자들은 트라우마로 인해 학업이나 인간관계 등에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다. 경제적으로도 자립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성인이 돼 시설을 퇴소하는 피해자들에게 기본적인 주거 지원이 절실하다”면서 “또한 요즘 어린 피해자들이 시설 입소를 기피하고 있다. 규제를 싫어하는 자유로운 성격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한 방에 여러 명이 함께 생활하는 등 시설 자체가 예전 기준에 맞춰져 있다. 재정적 지원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시설 퇴소자들은 자신들을 또우리(또 만나 우리)라고 칭하며 소모임을 갖는 등 서로를 돕는 치유의 과정을 견뎌내고 있다. 이들은 “안전하고 편안하게 쉴 수 있는 그런 공간만 있어도 좋겠다”고 말한다고 한다. 경제적 자립이 어려운 상황에서 열악한 거주지에 살며 혼자 있는 것 자체에 불안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성폭력 피해자들을 위한 국민임대주택 신청분이 있지만 많지 않아 선정되기는 하늘의 별 따기다. 조 원장은 “친족 성폭력은 더 이상 개인의 문제가 아니며 국가적으로 안전한 네트워크를 만들어갈 수 있도록 지원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손우현 기자, 일요신문, 24.03.18)
"생식기능 상실 동일한데 장해등급 남녀 차별, 공단 판정기준 바꿔야"
"남성과 여성의 생식기능 상실은 동일한데 남성과 여성은 장해등급에 있어 차별. 남성은 장해 7급, 여성은 사실상 기준도 없어 결국 장해 8급. 20세기 기준이 여전히 판정의 잣대가 되고 있다. 60년 동안 이어온 근로복지공단 성차별적 장해 판정에 경종을 울린 판결이다."
민주노총 경남본부·마창거제산재추방운동연합이 20일 낸 자료를 통해 이같이 밝혔다. 서울고등법원 제9-2행정부(재판장 김승수‧조찬영‧김무신 판사)가 지난 2월 22일 근로복지공단의 항소를 기각하는 판결을 했고, 공단이 대법원에 상고하지 않아 기간 만료로 확정됐다. 이에 이들 단체가 '의미있는 판결'이라고 입장을 낸 것이다. (중략)
해당 여성은 "산재보험법령은 남성에 대해 양쪽 고환이 상실된 경우 장해등급 7급을 인정하고 있는 반면, '조기난소부전' 등 여성이 생식기능을 상실한 경우 여성호르몬 생성 중단으로 인하여 신체에 미치는 악영향이 남성에 비해 더 큰데도 불구하고 여성에 대하여는 별도의 장해등급 기준을 정하지 않고 있어 입법이 미비하다"라며 "조기난소부전의 경우 양쪽 고환을 상실한 경우에 준해 장해등급 7급으로 인정돼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윤성효 기자, 오마이뉴스, 24.03.20)
여성 스포츠 기자는 ‘얼빠’라고?
‘여자 기자 버전’ 영상을 열자 대문짝만한 선수 얼굴과 함께 “여러분이 좋아요”, “사랑해요”라고 말하는 선수 목소리가 메아리 효과와 함께 흘러나왔다. ‘꽃단장’을 한 선수가 시즌 시작 전 유니폼을 입고 프로필 사진을 촬영하는 모습이 곧바로 이어졌다. ‘고놈 참 잘생겼네’라는 자막과 함께였다.
카메라 앞에서 수줍어하는 선수에게 팬들이 남긴 응원 댓글도 빠지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얼굴도 OO왕, 실력도 OO왕’, ‘운동도 잘하고 잘생기고 성격도 좋다’ 등 대부분 선수의 외모를 강조하는 내용이 주를 이뤘다. 선수가 한 명품 브랜드의 공개 행사에 ‘셀럽’(유명인) 자격으로 참여한 모습 뒤엔, 당시 언론들이 쏟아낸 ‘운동선수야 모델이야’ 등 제목의 기사 갈무리가 덧붙었다.
1분53초 분량의 여자 기자 버전 영상 가운데 이번 시즌 ㄴ선수가 어떤 활약을 펼쳤는지 설명하는 내용은 약 30초뿐이었다. 영상 마지막에 ㄴ선수와 OO상을 놓고 경쟁하는 다른 구단 선수들의 기록을 비교하는 표가 첨부돼 있긴 했지만, 이 선수가 어째서 OO상을 받아야 하는지 ‘여자 기자 버전’ 영상만 봐선 도통 알 수 없었다.
답은 ‘남자 기자 버전 영상’에 있었다. 우선 분량부터 4분3초로 두 배가 넘었다. 구단이 ㄴ선수를 영입하는 장면에서부터 시작하는 남자 기자 버전 영상은 ㄴ선수가 이번 시즌 몇 경기에 평균 몇 분을 출전해 얼마나 많은 득점을 올렸는지, 이런 성적이 경쟁자들보다 얼마나 뛰어난 것인지, 다른 시즌 비슷한 활약을 펼쳤던 선수들과 비교하면 어떤 수준인지, 팀 안에서 입지는 어떤지 등을 여러 경기 하이라이트 장면과 함께 세세히 소개했다. ㄴ선수의 포지션이 무엇인지조차 소개하지 않은 여자 기자 버전 영상과는 천지 차이였다.
(정인선 기자, 한겨레, 24.03.27)
아이돌 노동자, 사랑에 빠진 ‘죄’
2024년 3월5일 아이돌 그룹 ‘에스파’의 멤버 카리나(본명 유지민)는 인스타그램에 자필 사과문을 게재했다. 2월 말 배우 이재욱과 연애 중이라는 사실을 인정한 지 일주일 만의 일이다. 그사이 일부 팬은 카리나가 공개연애로 그룹에 피해를 줬다는 비난, ‘덕질’하는 데 막대한 돈을 쏟아부었음에도 배신당했다는 비난을 온·오프라인으로 표출했다.
팬들이 이렇게 비난하는 근본적인 배경에는, 앞서 말한 것과 같이 아이돌이 팬들에게 보여줘야 하는 영역과 숨겨야 하는 영역을 유지하는 일을 완수하지 못했다는 것에 대한 실망이 자리한다. 그렇다면 어떤 이유로 아이돌에게 ‘연애’는 팬들에게 반드시 숨겨야 할 영역이 됐을까? ‘순결성’은 왜 아이돌에게 상품성이 됐을까? 팬과 아이돌은 독점적 연애 관계가 아닌데도 말이다. (중략)
친밀함을 정식 상품으로 판매하기 이전에도 아이돌의 감정은 상품으로 기능해왔다. 하지만 지금과 같이 값을 매길 수 있는 형태의 상품으로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팬에게 아이돌의 감정은 구매자로서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영역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반면 아이돌의 친밀성이 구독 서비스 같은 형태로 물화돼 값이 매겨지는 지금에 와서는 팬들로 하여금 자신이 아이돌의 감정을 구매한 적 있다는 확신을 가지게 한다.
그러니 그런 권리는 침해의 대상이며 구매자로서 보상 또한 필요하다고 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인간의 감정을 온전히 살 수 있다는 믿음은 어디까지나 허구에 불과하다. 하지만 화폐경제의 무서운 점이 여기에서 드러난다. 화폐경제는 화폐로 셀 수 있게 된 모든 것은 상품으로만 완전성을 가지며, 상품을 초과한 것은 허용될 수 없다는 허상을 만들어낸다. 아이돌뿐만 아니라 대다수 아이돌 팬도 다양한 일터에서 감정노동자인 경우가 많다. 이 말인즉 감정노동은 아이돌에게만 익숙한 노동이 아니라 팬들에게도 익숙한 노동이라는 의미다. 감정노동은 자기 감정을 화폐로 세는 데 모든 사람을 익숙해지게 한다.
(연혜원 <퀴어돌로지> 공저자·사회학 연구자, 한겨레21, 24.03.22)
세계 곳곳 ‘이대남 현상’…Z세대 남성 파고드는 극우
젠더와 사회 문제를 둘러싸고 커진 성별 간 인식 차를 이용하는 극우정당이 늘고 있다. 특히 30살 이하 제트(Z) 세대에서, 여성은 성 역할 등에 대해 진보적인 입장을 취하지만, 또래 남성은 윗세대 남성보다 오히려 더 보수화되고 있다는 점을 파고드는 모양새다.
글로벌 여론조사 기관 입소스는 지난 4일 이런 결과가 나온 여론조사를 공개하면서 커지는 젠더 양극화가 “지구적 현상”이라고 짚었다. 입소스는 한국과 인도, 미국, 독일, 칠레 등 31개국 18살 이상 성인 남녀 2만4269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를 토대로 “엠제트(MZ·밀레니얼과 제트) 세대, 특히 이들 중 남성은 자신의 윗세대보다 성평등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했다. 조사는 베이비붐 세대(1949~1964년생)와 엑스(X) 세대(1965~1980년생), 밀레니얼(1981~1996년생)과 제트 세대(1997~2006년생)를 나눠 비교했다.
“성평등이 과하게 촉진되면서 남성이 차별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남성 비율은 베이비붐 세대부터 제트 세대까지 각각 43%→53%→57%→60%로 확대됐다. 특히 남성의 ‘역차별’을 느끼는 비율은 제트 세대가 60%로 가장 높았던 반면, 제트 세대 여성의 경우에는 밀레니어 세대보다 4%포인트 떨어진 40%로 집계됐다. 또 집에서 자녀 양육을 담당하는 남성을 “남성답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베이비붐 세대 비율은 남녀가 각각 10%, 11%에 불과했고 성별 격차도 미미했지만, 제트 세대에서는 남성 31%, 여성 20%로 상승해 성별 격차가 11%포인트까지 벌어졌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정치·사회적 성향을 세대별로 구분하는 경향과 달리, 제트 세대는 남녀 간 큰 의견 차이를 보인다. 이들은 한 세대가 아닌 (남녀 각각) 두 개의 세대로 구성된다”고 표현했다.
(장예지 기자, 한겨레, 24.03.21)
법으로 금지했던 ‘여성 할례’ 부활시키려는 감비아
서아프리카 국가 감비아에서 여성 인권을 억압하는 관습으로 여겨져 법으로 금지했던 ‘여성 할례’를 사실상 다시 허용하려는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감비아 의회는 18일(현지시간) ‘할례’로 알려진 여성 생식기 절제술(FGM)을 금지하는 법을 폐기한다는 계획을 표결에 부쳐 전체 의원 58명 중 47명 참석, 42명 찬성으로 승인했다.
국회의장은 새로운 법안을 담당 위원회에 제출했으며, 약 3개월간 법리 검토 등을 마친 뒤 본회의 의결을 거치면 최종 공표된다. 이 경우 감비아는 FGM를 금지했다 철회한 최초의 국가가 된다.
감비아에서 FGM 금지 법안은 2015년 처음 제정됐지만, 실제 집행력은 미미한 수준이었다. 그러다 지난해 8월 이 법에 따라 벌금형을 선고받은 첫 번째 사례가 나오면서 논쟁에 불이 붙었다. 감비아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슬람단체 등은 FGM이 ‘이슬람의 미덕이자 종교적 의무’라고 주장하며 비범죄화를 추진하기 시작했다.
표결을 이끈 의원들은 새로운 법안의 취지가 “종교적 충성심을 지키고 문화적 규범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FGM 반대 단체인 ‘세이프핸즈포걸스(Safe Hands for Girls)’를 설립한 자하 두쿠레는 “법안 폐지에 성공하면 다음은 조혼 금지법, 가정폭력 관련 법안들도 표적이 될 수 있다”면서 “이는 종교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여성과 그들의 신체를 통제하는 악습에 대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최혜린 기자, 경향신문, 24.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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