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LETTER
안녕하세요. 10월 세 번째 뉴스 헐리버리는 깊이와 관점이 있는 기사와 칼럼을 모은 REPORT EDITION입니다. 이번 호에서는 아시아 여성 최초, 비백인 여성으로는 두 번째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 관련 기사를 중심으로 여러 기사들을 모았습니다.
딥페이스 성범죄 피의자 대다수가 남성 청소년으로 밝혀진 가운데 교육부가 딥페이크 성범죄 예방교육 시 “특정 성별을 지정해 피·가해자로 구분하지 말라”는 내용의 공문을 전 학교에 보낸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강릉지역 군사법원이 여성 전용 화장실을 설치해야 한다는 지침을 어기고 여성화장실 없이 3년째 운영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여성 화장실이 설치되지 않은 군사법원은 강릉이 전국에서 유일합니다. 가정폭력을 피해 대한민국에 입국한 우간다 여성의 난민 지위를 인정해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습니다. 법원은 남편의 폭력이 개인적 일탈이 아닌 남성 중심적 문화 속에 종속된 구조적 문제로 난민 인정 요건인 ‘박해’에 해당한다고 봤습니다.
지자체들이 저출생 정책의 일환으로 미혼남녀의 만남을 주선하는 행사를 개최하며 여성 참가자의 참여가 저조하자 관내 여성 공무원을 차출해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넷플릭스 예능 ‘흑백요리사’는 여성 셰프를 ‘어머님’이나 ‘이모님’으로 호명하며 우리 사회의 성차별적 시선을 다시 한번 드러냈습니다. 초등학교 급식실 요리사 이미영 셰프는 ‘급식대가’라는 닉네임으로 참여해 인상적인 요리를 선보이며 화제가 되었는데, 방송에서 조명되지 않은 전국 학교 급식실의 열악한 상황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의 의의를 여성주의 언어로 다시 쓴 기사들을 정리했습니다. 늙은 남성 작가들만을 주목해 온 문학계에서 한강 작가는 여성, 호남, 한국어, 나이라는 겹겹의 벽을 무너뜨리고 한국 최초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됐습니다. 수상 관련 기사들이 쏟아져 나오는 동안 가부장제 속 폭력을 언어로 고발한 작가의 수상을 가부장제의 언어로 재생산하고 있는 데 대한 비판도 나왔습니다. SNL코리아는 한강 작가의 수상 외에도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한 뉴진스 멤버 팜하니, 드라마 정년이를 조롱하고 성적 희화화해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네이버 웹툰 공모전 참가작인 ‘이세계 퐁퐁남’의 여성혐오 표현과 메시지가 비판받으며 불매 운동으로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차별과 혐오 표현을 규율하는 가이드라인이 작동하지 않고 있는 네이버 웹툰의 전적을 함께 살폈습니다.
뉴스 헐리버리 이번 호에서 준비한 소식은 여기까지입니다. 다음 호에서도 더욱 알찬 여성 뉴스를 모아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에디터 소원 드림
딥페이크 가해자 98% 남성인데…교육부 "피·가해자 성별 특정 말라"
딥페이크 성범죄 피의자 대다수가 남성 청소년으로 밝혀진 가운데, 교육부가 딥페이크 성범죄 예방교육 시 "특정 성별을 지정해 피·가해자로 구분하지 말라"는 내용의 공문을 전 학교에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31일 <프레시안>이 입수한 경상남도 교육청 공문을 보면, 교육부는 지난달 교육청을 통해 전 학교 및 교육청 산하기관에 딥페이크 성범죄 예방 및 대응을 위한 카드뉴스를 배포하며 세 가지 당부사항을 전했다.
해당 당부사항을 보면, 교육부는 △특정 성별을 지정해 피해자·가해자로 구분하지 않음, △피해 예방을 강조해 무조건 피해자만을 조심시키는 교육 자제, △학생들에게 호기심이나 장난도 범죄가 될 수 있음을 명확히 함 등을 각 학교에 지시했다.
이 중 특정 성별을 지정해 피·가해자로 구분하지 말라는 내용을 두고 교육부가 딥페이크 가해자 대다수가 남성 청소년인 현실을 은폐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찰청이 지난 9일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경찰청은 올해 1월부터 지난달 25일까지 검거된 딥페이크 피의자 387명 중 378명(97.6%)가 남성이며, 피의자 중 10대가 324명(83.7%)으로 집계했다.
이한 남성과함께하는페미니즘 공동대표는 31일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남자를 잠재적 가해자 취급한다는 반발을 피하기 위해 성별을 숨기는 것으로 보이는데, 딥페이크 성범죄 가해자들에게서 남성이라는 특정이 두드러지는 상황에서 교육부의 지침은 이러한 성별 위계를 말하지 말라는 것과 같다"며 "이미 남성들도 성범죄 가해자 대다수가 남성임을 알고 있는 상황에서 이러한 조치는 헛발질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박상혁, 프레시안, 24.10.31)
전국에서 유일…아직도 ‘여성화장실’ 없는 ‘강릉 군사법원’
강릉지역 군사법원이 여성 전용 화장실을 설치해야 한다는 지침을 어기고 여성화장실 없이 3년째 운영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정부는 저출생 등으로 병력이 부족해지면서 여성군인 인력을 확대하겠다는 방침인데, 군 내부의 여성을 위한 환경은 여전히 부실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9일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중앙지역군사법원으로부터 받은 자료를 보면, 전국의 10개 지역군사법원 중 강원 강릉시에 있는 제3지역군사법원 2재판부가 2022년 7월 설립 후 현재까지 여성화장실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여성화장실이 설치되지 않은 군사법원은 전국에서 강릉이 유일하다. 현재 강릉 군사법원에는 판사를 포함한 직원 총 9명 중 3명이 여성이다.
군사법원은 군사재판을 관할하는 특별법원으로, 군인이나 군무원이 저지른 형사사건에 대한 재판을 진행한다. 군 관련 범죄를 저질렀다면 민간인도 군사법원에서 재판받을 수 있다.
국방·군사시설에 포함되는 군사법원은 국방부의 ‘국방·군사시설기준’에 따르도록 돼 있다. 해당 기준 규정을 보면 근무자 상주 시설에는 남성화장실과 분리된 공간에 여성화장실을 1개소 이상 계획하고, 2개 이상의 변기를 두도록 했다. (중략)
정부가 병역 자원을 보충하기 위해 여성군인 확대를 추진하는 상황에서 최소한의 시설인 여성화장실 관련 규정이 미비한 것은 여성 인권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경하 한국여상변호사회 인권이사는 “여성 판사, 여성 국선 변호사, 여성 군인이 당사자로 출석할 수 있는데 여자 화장실이 없다는 것은 군사법원에 남성 중심 분위기가 만연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라고 말했다.
(김나연, 경향신문, 24.10.10)
법원, 가정폭력 피해 우간다 여성 ‘난민’ 인정…“사적 폭력 아닌 ‘박해’”
가정폭력을 피해 대한민국에 입국한 우간다 여성의 난민 지위를 인정해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법원은 남편의 폭력이 개인적 일탈이 아닌 남성 중심적 문화 속에 종속된 구조적 문제로 난민 인정 요건인 ‘박해’에 해당한다고 봤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단독 손인희 판사는 우간다 국적의 외국인 ㄱ씨가 서울출입국·외국인청장을 상대로 낸 난민불인정결정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고 21일 밝혔다.
ㄱ씨는 2012년 우간다 비정부기구(NGO)에서 일하다 남편을 만나 결혼했다. ㄱ씨는 첫째 아이를 출산한 직후인 2014년부터 남편의 폭행에 시달렸다. 출산 뒤 ㄱ씨가 직장으로 복귀하려고 하자 폭행이 시작됐다.
2017년에는 출근을 시도하는 그를 남편이 전깃줄로 폭행하고 목을 졸랐다. ㄱ씨는 수차례 남편을 신고했지만 남편이 처벌받지 않았고 분리 조처 등 법적인 보호도 없었다. 출국 직전인 2018년 4월에도 남편의 폭행으로 얼굴 주변에 멍과 부종이 생겼다. (중략)
법원은 ㄱ씨가 난민인정요건을 갖추고 있다며 ㄱ씨의 손을 들어줬다. 손 판사는 “ㄱ씨에게는 ‘특정 사회집단의 구성원 신분’을 이유로 박해를 받을 충분한 근거 있는 공포가 있고, 국적국인 우간다 정부로부터 보호받을 수 없는 상태에 있어 난민인정요건을 갖췄다고 봄이 타당하다”며 “여성에 대한 폭력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사회적 규범이 존재하고, 정부에 의해 폭력에 대한 처벌 등이 실질적으로 이뤄지지 않아 피해자가 보호받지 못하는 사회구조는 난민협약에서 말하는 ‘박해’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장현은, 한겨레, 24.10.21)
‘만남·결혼 주선’ 맛들린 지자체들…여성 참가자 없어서 ‘공무원 차출’
29일 전국 17개 광역·226개 기초자치단체에 정보공개청구로 입수한 사업계획서·결과보고서와 이연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받은 ‘미혼남녀 결혼 행사 건수’를 보면 올해 만남 주선에 관여한 지자체는 최소 54곳이다. 지자체의 만남 주선은 유행처럼 번지며 2019년 48곳에서 행사가 열렸다가, 이듬해 코로나19 확산으로 일부 지자체만 비대면으로 진행했다. 이후 회복세를 보여 현재까지 만남 주선 행사를 최소 1번 이상 개최했거나 개최를 시도한 지자체는 100곳에 가깝다.
<나는 솔로> <환승 연애> 등 연애 예능의 인기, 저출생 심화 등이 영향을 미쳤다. 경남 창원시, 전북 군산시, 충북 단양군 등은 중단했던 만남 행사를 올해 다시 시작했다.
지자체들이 추진하는 만남 주선 행사는 만남, 결혼, 출생을 유도하는 저출생 정책의 일환으로 실시되고 있다. 그러나 지역 내 젊은 여성 인구 비율이 낮아 행사 인원 모집조차 쉽지 않고, 공무원·대기업 등으로 참여 대상을 제한하는 곳도 있어 결혼의 계급화 현상을 부추긴다는 평가도 있다. 결국 여성의 설 자리가 좁은 지역사회, 출산을 기피하는 근본 원인을 해결하지 않고서는 지자체의 중매 성공률을 높이기 어려울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중략)
지자체의 만남 주선이 예능 프로그램과 달리 난항을 겪는 가장 큰 이유는 여성 참가자를 찾기 어렵다는 점이다. 단양군이 지난해 12월 경찰서·소방서·교육지원청에 수요조사를 해보니 예상 남성 지원자 18명, 여성 지원자는 2명이었다. 경북 김해시가 지난해 추진한 ‘나는 김해솔로’ 2기 신청자도 남성(120명)이 여성(32명)보다 3.8배 많았다. 전남 화순군은 지난해 6월 ‘커플매칭 화순사랑 더하기’ 공고를 냈다가 여성 참가자를 모집하지 못해 행사를 취소했다.
사업을 중단한 지자체들은 ‘성비불균형-여성 신청자 수가 적음’(충북 진천군), ‘상대적으로 여성의 참여율이 저조해 행사 진행을 못하게 됨’(제주 서귀포시), ‘미혼여성 참가인원 미달’(경남 함안군), ‘여성 참여자 신청인원 부족’(경기 가평군), ‘지역여건상 여성 참가자 모집이 어렵고 목적에 따른 효과가 매우 미흡’(경남 통영시) 등의 답변을 내놨다. (중략)
그래도 여성 참가자가 모이지 않으면 관내 공무원 차출로 이어진다. 2022년 해남군 보건소가 작성한 ‘땅끝 솔로탈출 여행 행사 결과 보고’ 문서를 보면 ‘여성 참가자 신청 저조(자발적 신청 1)’라고 쓰여 있다. 당시 여성 참가자는 15명이었는데 14명은 사실상 반강제로 참가한 것으로 보인다. 14명 중 8명은 행사 담당인 보건소 여성 직원이었다. 해남군은 2019년 행사 때에도 여성 참가자 16명 중 ‘자발적 신청자는 1명뿐’이라며 ‘행사 전면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했다.
(김원진·고희진, 경향신문, 24.10.30)
어머님 아니고, 이모님 아니고, 셰프
요즘 최고의 화제 프로그램은 단연 넷플릭스 예능 <흑백요리사>다. 여기에는 화려한 경력을 자랑하는 유명 셰프들이 ‘계급장’을 떼고 심사위원 아닌 경연자로 참여한다. 수많은 셰프들 중에서도 이영숙·김미령(이모카세)·이미영(급식대가) 셰프의 존재감은 특별하다. 이들은 사회적으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 ‘돌봄의 음식’을 묵묵히 이어오다가 뒤늦게 전문성을 인정받게 된 공통점이 있다. (중략)
하지만 프로그램에서 눈부신 활약을 펼친 이 세 명의 셰프를 일부 출연진은 무심코 셰프가 아닌 ‘어머님’ ‘이모님’이라고 불렀다. 이는 지금도 급식조리실과 사회 곳곳에서 묵묵히 ‘돌봄의 음식’을 만들어내고 있는 수많은 여성들이 그 전문성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사람마다 맛에 대한 취향이 다르기에, ‘최고의 요리’에는 정답이 없다. 하지만 ‘궁극의 요리’가 있다면, 그것은 단순히 맛에 관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바꾸고 지탱하는 음식일 것이다.
(정유진, 경향신문, 24.10.06)
급식대가 '빠른 손' 뒤엔... 뜨겁고 숨 막히는 급식실
지난 8일 최종화가 공개된 넷플릭스 요리경연 시리즈 '흑백요리사'에 초등학교 급식실 조리사 이미영(닉네임 '급식대가')씨가 본선에 진출해 화제가 됐다. 이씨가 주목받은 결정적인 장면은 팀 경쟁 미션이었다. 팀의 잘못된 판단으로 재료를 모두 새로 손질해야 하는 상황에서 이씨는 현란한 손놀림으로 100인분의 재료를 50분 안에 완벽히 처리하며 팀을 위기에서 구출했다. 미슐랭 스타 셰프들도 감탄할 만한 솜씨였다.
많은 이들에게 '급식실 조리사'를 긍정적으로 각인시킨 장면이지만 그 이면은 그리 아름답기만 한 이야기는 아니다. '빠른 손'을 갖지 않고는 살아남을 수 없는 열악한 학교 급식실의 단면을 보여주는 장면이기 때문이다. 이씨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조리실무사 2명과 120인분을 감당한 적이 있다"며 "머리부터 발끝까지 장갑·방수 앞치마 등을 착용하다 보니 여름엔 땀띠로 고생하는 날이 많았다"고 조리사 시절을 회상했다.
이런 열악한 상황은 전국의 학교 급식실 곳곳에서 오늘도 벌어지고 있다. '급식대가'들의 노동실태를 살펴보기 위해 대구의 한 고등학교 점심 조리 과정을 열화상 카메라를 이용해 촬영했다.
이날 메인 반찬은 부산의 한 시장에서 유행하고 있는 '돼지갈비맛 프라이드'였다. 재료를 튀기기 위해 끓인 120도의 기름은 열화상 카메라 속에서 용암처럼 춤을 췄다. 튀김망은 74.3도까지, 튀김망을 쥐던 고무장갑은 금세 53.9도까지 달궈졌다. 조리실 한편에선 톳 두부무침을 위해 톳을 데치고 있었다. 지름이 1m가 넘는 솥에 뜨거운 톳이 가득 담기니 이 또한 위험했다. 두 명의 조리원이 힘을 합쳐 옮기고 차가운 물로 식힌 뒤에서야 한시름 덜 수 있었다.
폐암이 원인이 될 수 있는 '조리흄' 또한 수시로 발생했다. 조리흄은 튀김, 구이 등 기름을 이용해 고온으로 조리할 때 발생하는 유해가스로 실내 환기가 어려운 조리시설 종사자들의 폐질환·폐암을 유발하는 1급 발암물질이다.
음식재료를 튀길 때도, 양념소스를 만들 때도 연기는 끊임없이 올라와 조리사들의 시야를 가렸다. 이날 조리에 참여한 급식실 노동자 9명 중 3명이 폐에 3cm 이하의 혹이 존재하는 '양성결절'이 확인된 상황이었다.
조리사들은 가장 먼저 해결돼야 할 것은 인력 부족이라고 입을 모은다. 현재 대다수 학교 급식실에서 1명의 조리사·조리실무사가 100명 이상의 급식을 만들고 있는 상황이다. 오전 8시부터 점심시간 직전까지 숨 쉴 틈 없이 일하다 보면 산재가 일어날 확률도 자연히 더 높아진다. 인원이 확보되면 조리사 1인당 조리흄 노출 시간을 줄일 수 있기도 하다. (중략)
전문가들은 구시대적인 젠더 편견에서 벗어남으로써 급식 노동을 제대로 바라봐야 한다고 말한다. 사공준 영남대 직업환경의학과 교수는 "급식실 조리가 엄연히 노동임에도 불구하고 '엄마 손맛' '여성의 가사노동'이라는 관점 때문에 제대로 처우받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주연, 한국일보, 24.10.26)
"한강 대신 늙은 남성 작가만 주목"...그가 깬 겹겹의 벽, '여성·호남·한국어·나이'
한국 문학은 영화나 가요만큼은 아니더라도 세계를 향해 점차 영역을 넓혀왔지만, 여전히 변방에 있다. 서양 문학에 밀리고, 일본·중국 문학보다 상대적으로 덜 주목받았다. 한강(53)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한국 문학을 세계의 중심으로 단번에 밀어 올렸다. 주류와 거리가 먼 여성·비영어권·비백인 작가의 성취여서 더욱 극적이다.
그중에서도 한강이어야만 했던 이유는 노벨문학상이 독자들에게 추천한 그의 책 목록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에코 페미니즘 관점에서 가부장 사회 폭압의 상징인 '육식'을 거부하는 중년 여성을 그린 ’채식주의자’, 말을 상실해가는 여성과 눈을 잃어가는 남성의 이야기인 ’희랍어 시간’, 광주 5·18 민주화운동이라는 혐오·차별의 한국사를 다룬 ’소년이 온다’가 추천 대상이다.
세 작품은 폭력과 고통의 세계에서 고군분투하는 인간 개인에게 주목한다. “‘채식주의자’가 시공간을 가로질러 세계문학의 영역에서 현재의 독자들에게 와닿는 것은 삶의 비극성에 맞서는 뜨겁고 강렬한 개인의 욕망을 감각적인 상징들로 구체화한 데 힘입었다”(백지연 문학평론가)는 것이다. 이는 전 세계 사용 인구가 7,000여 만 명에 그치는 한국어로 쓰인 그의 소설이 세계에 통한 까닭이기도 하다. 또한 주류가 편애하는 굵직한 거대 담론이 아닌 개인의 윤리에 섬세하게 주목했기에 보편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가 됐다. 미국 뉴욕타임스(NYT)에서 그를 '선지자'로 표현한 배경이다. (중략)
한국뿐 아니라 세계 문학의 주변부에 머물러온 여성 작가의 수상이라는 점에서도 한강의 수상은 주목받는다. 노벨문학상 수상 시즌마다 한국 문단은 '선생님 권력'의 상징인 고은을 밀어 올렸으나, 누구의 기대도 받지 않은 채로 상을 단숨에 거머쥔 건 한강이다. 아시아권 여성 작가의 첫 수상이기도 하다. 한강은 여성들의 이야기를 써왔다. 북미에서 한강의 작품을 내는 출판사 호가스의 편집장 패리사 에브라히미는 NYT에서 그의 작품이 “여성의 내면에 대한 놀라운 통찰력”을 보여준다고 평했다.
한강과 시인 김혜순이 최근 잇따라 국제적인 문학상을 수상하면서 한국 여성 작가의 기세가 심상치 않았으나, 두 사람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아직 이르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문학평론가는 “한강과 동일한 이력의 남성 작가가 있다면 진작 노벨문학상 후보로 여기저기서 주목하고도 남았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NYT 역시 "가장 획기적이고 도발적인 한국 현대문학의 대부분은 여성 소설가들에 의해 쓰이고 있다"며 "하지만 언론과 문학계는 나이 든 남성 작가를 가장 유력한 후보로 여겨왔다"고 전했다.
(전혼잎, 한국일보, 24.10.12)
오직, 한강을 만날 시간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이 결정된 뒤인 2024년 10월15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김준희 진흥원 원장은 당시 세종도서 선정 과정에서 ‘노벨상 작가’ 한강의 작품을 탈락시킨 것을 사과했다. 다만 사상적인 면을 문제 삼아 배제했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완강하게 “알지 못한다”고 답했다. 박근혜 정권 시절 정부가 한강 작가를 블랙리스트에 올려 작품을 검열해왔다는 점이 대부분 사실로 드러났음에도 국가의 출판문화 진흥을 담당한 최일선 조직 수장이 모르쇠로 문제를 회피한 것이다. 고통스러운 양심의 세계를 다뤄 세계 최고의 작품성을 인정받게 된 텍스트와 작가가 여전히 국가적 외면과 부정의 맥락 속에 놓여 있음을 상징하는 장면이었다. (중략)
50대 중견 출판기획자 겸 작가인 윤혜자씨는 “노벨문학상 선정 소식을 듣고 곁에 있던 여성 문학인과 얼싸안고 울었다”고 했다. 그는 “여성 작가로서 끊임없이 줄기차게, 솔직하게, 아름답게, 시적인 문장으로 힘 있는 소설을 써왔다. 이견 없는 수상”이라고 말했다. 30대 직장인 심아무개씨는 독서모임에서 기념 티셔츠를 맞춰 입기로 했다. 그는 “여성의 입으로, 여성이 느낀 걸 쓰는데 그 자체가 어찌 페미니즘이 아닐 수 있겠나”라고 밝혔다. 20대 회사원 강수빈씨는 “‘작별하지 않는다’를 좋아하는데, 그 소설을 읽으며 나는 손가락이 잘린 사람이 됐다가도, 눈밭에 구르는 사람이 됐다가도, 심지어 소설 속 조그마한 새 한 마리가 되기도 한다. 나는 겪어본 적도 없지만 너무 아프다. 인간의 뇌는 간접경험과 직접경험을 구분하지 못한다는데 그 말을 실감하게 됐다”고 전했다. 30대 자영업자 김다정씨는 “‘채식주의자’를 처음 읽었을 땐 ‘육식=남성=폭력’이란 도식이 거북했지만 결혼한 뒤 아버지가 주인공 영혜의 입을 강제로 벌려 고기를 먹이는 장면을 다시 읽으면서 이건 정말 한국인이라 느낄 수 있는 ‘보편적인 폭력성’에 대한 이야기라고 느꼈다”고 말했다.
‘여초 커뮤니티’ 회원들도 “좌파 페미니스트 환경운동가 전라도 출신인 한국 여성…진짜 뜻깊다” “진짜 모든 수식어가 최고”(이상 2024년 10월10일, 여성시대) 등 의견을 나누며 기뻐했다. (중략)
윤조원 고려대 영문학과 교수는 “가부장제의 권위를 뚫고 나오는 언어를 만들어낸 작가의 수상을 축하하는 기사에 그 아버지의 인터뷰가 인용되는 것을 보는 아이러니가 있다. 상을 받은 건 딸인데 부녀문학관을 건립하겠다고 한다. 가부장적 서사와 상상력 안에서 작가의 성취를 포장하고 가부장의 언어로 재생산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중략)
가족 이야기라면 차라리 홀로 방에서 아기를 낳고 탯줄을 잘랐던 어머니, 두 시간 만에 세상을 떠난 한강의 ‘언니’에게 어머니가 ‘죽지 마라 제발’이라며 되풀이해 중얼거렸다는 이야기가 나았을지도 모른다. 이 체험은 ‘흰’을 비롯해 여러 작품으로 확장되지만 ‘언니’와 어머니는 ‘노벨상 국면’에서 남성 가족 이야기가 샅샅이 채굴되는 가운데 눈길을 받지 못했다. (중략)
권명아 동아대 한국어문학과 교수는 “왜 한강을 황석영 뒤에 줄 세우느냐”고 말했다. “문단 ‘어른’이 선배들을 먼저 호명하고 ‘한국문학의 유산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하는 말이 반복된다. 한강 작가를 두고 ‘빨갱이’라고 하거나 ‘블랙리스트’ 얘기를 먼저 하는 것 또한 (정권에) 저항하는 진지 구축을 위해 긴 역사 동안 축적돼온 뻔한 논법이다. 통속적이다. 지금까지 심화된 이론과 지적인 담론의 지식 체계를 바탕으로 심화된 이야기를 해야 할 때다. 신체화된 경험의 서사를 사적이라며 계속 평가절하해왔던 문학적 지식 규범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유진·손고운, 한겨레21, 24.10.18)
SNL 한강·하니 희화화 "조롱에다 인종차별도" 비판 봇물
"이건 패러디가 아니라 조롱이다."
쿠팡플레이 오리지널 예능프로그램 'SNL코리아' 시즌6가 아시아 여성 작가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가 한강과 뉴진스 따돌림 논란으로 국정감사 증인으로 출석한 하니를 희화화하는 내용을 방송했다가 여론 뭇매를 맞고 있다. 방송 직후 온라인에선 "선을 넘어도 한참 넘었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19일 'SNL코리아' 시즌6는 배우 김아영이 한 작가 인터뷰 모습을 패러디한 영상을 내보냈다. 한 작가 헤어스타일과 표정, 특유의 자세와 말투를 따라한 김아영은 "수상을 알리는 연락을 받고는 처음엔 놀랐고, 전화를 끊고 나서는 현실감과 감동이 느껴졌어요"라고 말했다. 이에 방송 내에선 웃음이 쏟아졌다.
이날 회차엔 하니 패러디도 등장했다. 배우 지예은은 지난 6월 뉴진스 일본 도쿄돔 콘서트에서 하니가 일본 가수 마츠다 세이코의 '푸른 산호초'를 부를 때 입은 푸른색 스트라이프 티셔츠와 단발 헤어스타일로 하니를 모사했다. 그러면서 하니가 지난 15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 직장 내 괴롭힘 관련 증인으로 출석했을 때를 연기했다. 지예은은 베트남계 호주인인 하니의 한국어 발음을 따라하며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해 출석하게 됐다"고 말하며 눈물 흘리는 모습을 보여줬다. 역시 이번에도 방청객 웃음이 터져나왔다.
이를 본 시청자들은 김아영과 지예은의 따라하기에 무슨 의미가 있는 거냐며 비판을 퍼붓고 있다. 한국 문학의 역사는 물론 세계 문학의 역사를 새로 썼다는 평가를 받는 한 작가와 따돌림 피해자로 국회까지 불려 나온 하니를 이처럼 희화화 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패러디엔 풍자가 있어야 하는데, 이번에 'SNL코리아' 시즌6가 한 것은 단순 조롱에 불과하다고 평가절하했다.
일부 시청자는 "이슈를 따라가기에 바빠서 그들의 노고를 우습게 만든다"고 했고, "한국 최초 노벨상 작가와 잘못된 걸 바로잡고 싶어서 용기를 낸 타국 소녀가 그저 조롱하기 쉬운 대상으로 보였나 보다"라고 했다. 또 "패러디 같은 걸 할 거면 공부를 좀 하고 해라" "이런 걸 무식하다고 한다" 등 반응이 줄을 이었다.
하니 발음을 따라한 건 심각한 인종 차별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만약 한국 아이가 완벽한 영어를 못할 때, 그걸 누군가가 흉내내고 웃는다면 그런 걸 인종 차별이라고 하지 않겠느냐"며 "웃기고 안 웃기고를 떠나서 이건 매우 잘못된 행동"이라고 했다.
(손정빈, 뉴시스, 24.10.20)
'정년이→젖년이' 성행위 연상 가사까지…"SNL, 역해서 못 보겠다"
최근 노벨문학상 수상자 한강 작가, 국정감사에서 직장 내 괴롭힘을 주장한 뉴진스 하니를 조롱한 'SNL 코리아'가 또다시 도마에 올랐다. 이번엔 김태리 주연 드라마 '정년이'를 성적 희화화해 뭇매를 맞고 있다.
지난 26일 공개된 쿠팡플레이 코미디쇼 'SNL 코리아 시즌6'에서는 tvN 드라마 '정년이'를 패러디해 국극 오디션에 나선 캐릭터들의 모습이 그려졌다.
이날 코미디언 안영미는 춘향전 오디션에서 춘향이 역으로 지원하며 자신을 '젖년이'라고 소개했다. 이때 가슴을 부각하는 제스처를 취했다.
이어 안영미는 "훨씬 더 파격적인 춘향이를 보여주겠다"며 판소리 '사랑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안영미는 '이리 오너라 업고 놀자'를 '이리 오너라 벗고 허(하)자'라고 바꿨다. 또 '쑥! 대머리', '허붕가 붕가붕가!'라는 가사와 함께 성행위를 연상하는 몸짓을 보여줬다.
이에 코미디언 정이랑은 "더는 볼 수 없겠구나. 그만!"이라며 "보기만 해도 임신할 것 같다. 출산 정책에 도움이 될 듯싶다"고 했다.
이를 본 누리꾼들은 미성년자인 정년이 캐릭터를 '젖년이'라고 바꾸고 성행위를 연상하는 가사와 몸짓 등을 성희롱이라고 지적하며 작품과 원작 웹툰을 훼손했다고 분노했다.
(소봄이, 뉴스1, 24.10.28)
여성 혐오 ‘퐁퐁남’ 논란 네이버웹툰…“가이드라인 있으면 뭐하나”
지상최대공모전 1차 심사 통과작 가운데 입길에 오른 작품은 ‘이세계 퐁퐁남’이라는 웹툰이다. 주인공인 39살 남성 박동수는 아내의 외도로 이혼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퐁퐁남’이라고 부르는 사례에 해당함을 자각한다. 퐁퐁남은 널리 알려진 주방 세제 이름에 남성을 더해 만든 말로, 결혼 전 연애 경험이 많은 여성과 결혼한 남성을 칭하는 온라인 속어다. 여성의 결혼 전 성경험을 다른 남성이 ‘설거지’해야 하는 ‘문란함’ ‘지저분함’으로 여긴다는 점에서 상대의 인격을 훼손하는 혐오 표현이다.
나아가 퐁퐁남은 주로 남초(남성 이용자가 많음) 커뮤니티에서 남편의 경제력에 ‘무임승차’하려고 결혼한 여성에게 배신당한 서사, 일명 ‘설거지론’에 쓰인다. 설거지론은 여성의 모든 행동에 성적인 혹은 이기적인 의도가 있다는 왜곡된 사고와 편견을 부채질한다. (중략)
네이버웹툰을 향한 시민들의 ‘차별·혐오표현 방관’ 비판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20년 연재작 ‘복학왕’ 303~304화에서는 인턴 여성이 정규직 상사와 성관계를 한 뒤 채용에 성공한 것 같은 묘사 등으로 비판 여론이 커지자 작가(기안84)가 사과하고 작품을 일부 수정했다. 같은 해 또 다른 정식 연재작 ‘헬퍼2’도 지나친 성 착취 묘사로 비판받고 휴재했다. 지난해 9월에는 흑인을 비하하는 인종차별적 표현이 그대로 영어로 번역된 웹툰 ‘참교육’의 북미서비스가 이용자들 비판으로 연재 중단되기도 했다.
네이버웹툰 쪽은 ‘혐오·차별 표현을 규율하는 자체 가이드라인이 있는지’에 대한 한겨레 질의에 “정식 연재작은 물론 도전만화에 등록된 웹툰의 유해성도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인터넷 등급 가이드, 네이버 그린인터넷 가이드 등을 따른다”고 답했다. 지난해 7월20일 공개된 네이버 그린인터넷 가이드는 “인종·국가·민족·지역·나이·성별·성적지향·종교·직업·질병 등 특정 집단을 대상으로 모욕적이거나 혐오적인 표현을 사용하는 경우”, 즉 “혐오 표현이 포함되거나 혐오를 조장하는 경우”엔 콘텐츠 게재가 차단될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중략)
김수아 서울대 교수(언론정보학과·여성학협동과정)는 “혐오 표현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가이드라인을 어떻게 수행할 것인지에 대해 기업 내에서 치열하게 고민하고, 그 고민의 결과물을 창작자·이용자들과 공유할 필요가 있다”며 “네이버웹툰이 ‘글로벌 스탠다드’와 1위 기업의 체면을 위해 이런(혐오 표현) 걸 하면 안 된다는 내부 규제를 갖고 지속적으로 관리하겠다는 의지를 더 적극적으로 표명해달라는 게 플랫폼의 책임을 묻는다는 것의 의미”라고 말했다. 그는 최근 딥페이크(불법합성물) 성범죄가 공론화되자 마이크로소프트(MS), 오픈에이아이(AI) 등 글로벌 기업들이 인공지능 학습 데이터에서 나체 이미지를 없애는 등 이미지 기반 성적 학대를 방지하기 위한 자발적 원칙을 발표한 사례를 제시했다.
김 교수는 “‘퐁퐁남’ 표현 하나 없앤다고 네이버웹툰의 문제가 사라지는 게 아니”라며 “표현 자체에 집중하기보다 해당 표현이 네이버웹툰 플랫폼에서 유통될 때 어떤 효과를 가질 것인지 (우리 사회가)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김효실·정인선, 한겨레, 24.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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