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LETTER
안녕하세요. 음악과 무용 공연 소식을 전해드리는 9월 셋째 주 위클리 허시어터입니다. 추석 연휴에 때 아닌 무더위로 고생들 많으셨지요? 주말 비 소식과 함께 9월 관극은 조금은 시원하게 즐기시길 바라겠습니다.
이번 호에서는 모두 아홉 편의 공연을 준비했습니다. 오페라는 라벨라오페라단의 <로미오와 줄리엣>, 한강노들섬클래식으로 올려지는 <카르멘>, 클래식 무대는 서가콘서트로 꾸며지는 경기아트센터의 <제인 에어>, 서울국제공연예술제 신작 <망자를 위한 오페라>까지 네 편의 공연을 소개해드립니다.
판소리 무대에서는 입과손스튜디오의 <구구선 사람들>과 <오류의 방>, 서정금 명창의 완창판소리 <수궁가>를 준비했습니다. 무용 공연으로는 한강노들섬클래식의 발레 무대 <잠자는 숲속의 미녀>, 현대무용가 김보라 씨의 신작 <내가 물에서 본 것>을 소개합니다. 지역 무대에서는 댄스시어터 샤하르의 <레 미제라블>을 투어 공연으로 만나실 수 있습니다. 위클리 허시어터는 다음 주 리뷰와 뉴스를 모아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편집장 윤단우 드림
라벨라오페라단이 한-이 수교 140주년을 기념해 벨리니의 오페라 <로미오와 줄리엣>을 공연합니다. 특이하게도 셰익스피어의 동명 원작이 아니라 셰익스피어보다 앞서 활동한 이탈리아 작가 루이지 다 포르토가 쓴 1530년 작 『질레타와 로메우스』가 원작으로, 벨리니의 오페라 원제는 <카풀레티와 몬테키>입니다. 때문에 벨리니의 작품은 셰익스피어와 줄거리도 조금 다릅니다. 로미오와 줄리엣 두 주인공의 비극을 견인하는 친구 머큐쇼도, 사촌오빠 티볼트도 나오지 않고, 둘의 비밀스러운 사랑을 알고 있는 로렌스 신부는 의사로 직업이 바뀝니다. 작품의 도입부에서 로미오와 줄리엣은 이미 사랑에 빠진 상태로 등장하며 로미오는 줄리엣의 오빠를 죽인 가문의 원수이고 줄리엣의 아버지가 딸의 결혼 상대로 점찍은 테발도는 로미오를 죽여 복수를 하겠다고 나섭니다. 줄리엣은 원치 않는 상대와의 결혼식에 끌려가고, 로미오는 소동을 피워 예식을 지체시키고 줄리엣과 도망치려고 합니다.
벨리니 작품의 또 다른 특징은 로미오 역을 여성 성악가가 맡는다는 점입니다. 당시 벨리니는 테너가 극을 이끌지도 베이스가 부각되지도 않는, 여성 성악가들의 목소리로만 성공할 수 있는 오페라를 구상하고 있었고, 그러려면 남자 주인공 역을 '바지 역할'의 여성 성악가가 맡는 것이 이상적이었죠. 게다가 초기 이탈리아 오페라에서 로미오 역은 여성 성악가들에게 맡겨졌으며, 또 당대에는 스타 메조소프라노였던 주디타 그리지가 여러 작품에서 '바지 역할'로 큰 성공을 거두고 있었습니다. 벨리니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당대 이탈리아 낭만주의 오페라에서 프리마 돈나가 외향적이고 영웅적인 역할을 연기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이기도 했습니다. 라벨라오페라단의 이번 공연에서 로미오 역은 메조소프라노 방신제 씨가, 줄리엣 역은 소프라노 최윤정 씨가 맡았는데요, 두 여성 성악가의 목소리로 전하는 이 비극적인 사랑이야기는 어떤 울림을 전해줄지 무대를 확인해봐야겠습니다.
경기아트센터에서는 클래식 음악과 고전 소설의 만남으로 '서가(書歌) 콘서트를 진행하고 있는데요, 그 네 번째 시즌 주제는 샬롯 브론테의 『제인 에어』입니다. 공연은 소설 속 제인의 용기와 결단력, 사랑과 희망을 주제와 맞는 음악으로 풀어내며 중간중간 소설에 대한 해설을 삽입하는 형식으로 진행되는데요, 바그너의 오페라 <로엔그린> 속 '결혼행진곡'과 멘델스존의 '축혼행진곡'을 듣고 나서 빅토리아 시대의 결혼에 대해 이야기하고, 리스트의 '사랑의 꿈'과 도니체티의 오페라 <사랑의 묘약>에 나오는 아리아 '남 몰래 흐르는 눈물'을 듣고 제인의 사랑과 작품 속 삼각관계에 대해 이야기하는 식입니다. 곧 박산호 작가가 번역한 『제인 에어』도 출간 예정이라고 하는데요, 소설가이자 번역가인 작가에게서 『제인 에어』와 원작자인 샬롯 브론테, 그리고 그 시대 이야기를 음악과 함께 듣는 무대가 더욱 의미 있을 것 같습니다.
한강노들섬클래식은 서울시와 서울문화재단의 공동주최로 노들섬 야외무대에서 오페라와 발레 무대를 선보이는 축제인데요, 지난해 오페라 <세비야의 이발사>와 발레 <백조의 호수>를 선보인 데 이어 올해는 <카르멘>과 <잠자는 숲속의 미녀>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한강노들섬 잔디마당에서 펼쳐지는 야외 공연이라 장소성 면에서 기존의 닫혀 있는 프로시니엄 무대와는 또 다른 감상의 즐거움을 선사하는데요, 세 시간여에 달하는 원작을 100분으로 축약한 챔버 스타일의 공연입니다. 미국 코퍼스타 컴퍼니에서 상임 음악감독 및 연출가로 활동하다 한국에 돌아온 뒤에는 <찬란한 분노>, <이중섭>, <허왕후> 등 특히 창작 오페라에서 눈에 띄는 활동을 보여주고 있는 김숙영 연출이 고전과 동시대를 연결하는 입체적인 연출로 새로운 <카르멘>을 선보일 예정입니다. 이틀간의 공연은 원 캐스트로 진행되며 카르멘 역에는 메조소프라노 정주연 씨, 돈호세 역에는 테너 존 노 씨가 캐스팅되었습니다.
말레이시아계 호주 공연예술가인 모니카 림과 중국계 호주 작곡가인 민디 멩 왕의 <망자를 위한 오페라>가 서울국제공연예술제(SPAF) 무대에 오릅니다. 작품은 SPAF 창작랩 넥스트 모빌리티 프로젝트에서 개발된 신작으로, 넥스트 모빌리티 프로젝트는 2021년부터 한-호재단 지원으로 호주공연예술마켓(APAM)과 SPAF가 공동으로 공연예술의 새로운 교류와 이동 모델을 연구하는 프로젝트입니다. 지난해에는 작품 개발 아이디어 단계를 지원하는 상호 교환 리서치를 수행하였고, 올해는 지난해 리서치 내용을 바탕으로 제작한 공연을 SPAF 무대에 올립니다.
<망자를 위한 오페라>는 조상 숭배, 죽음, 사후 세계에 관한 중국 및 중국 디아스포라 문화의 의식과 신념에서 영감을 받은 공연으로, 2015년 아버지를 잃은 외동딸 민디가 아버지의 장례식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수천 년간 전해 내려온 의식과 전통이 동시대의 삶과 불협화음을 내며 충돌하는 모습을 직접 경험하고 무대로 옮겼습니다. 장례의식에 도입된 디지털 요소들을 통해 드러난 디지털의 편리성과 영생 간의 모순, 유가족의 슬픔과 대중에게 소비되고 전시되기 위한 애도의 퍼포먼스 사이의 대립 등이 공연이라는 형식을 통해 삶과 죽음 사이를 다시 질문하게 만듭니다.
입과손스튜디오의 <구구선 사람들>이 재연으로 돌아옵니다. 입과손은 2020년 판소리토막소리시리즈의 첫 번째 공연으로 <레미제라블1. 팡틴>을 선보였고, 지난해 토막소리였던 이 작품을 <구구선 사람들>이라는 제목의 완전판으로 초연했습니다. 원작 소설 『레 미제라블』을 ‘구구선 사람들’로 제목을 바꾸었는데요, 공연은 과거인지 미래인지도 알 수 없는 어떤 시간대 위에서 ‘세상은 한 척의 배’라는 설정을 바탕으로 정처없이 떠가는 배 위에서 표류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이 배의 이름이 ‘구구선’인 것은 아무리 애써도 언제나 100에 닿지 못하고 99프로에 그치고 마는 ‘불쌍한 사람들’이 타고 있기 때문입니다. 2024 쿼드초이스 선정작인 이번 재연은 지난해 초연 버전의 스핀오프 버전으로 새로운 서사와 등장인물, 또 새롭게 추가된 음악으로 달라진 무대를 선보일 예정입니다.
<구구선 사람들>을 마치고 나면 곧바로 신작 <오류의 방> 공연이 대학로극장 쿼드와 서울국제공연예술제(SPAF)의 협력작으로 올려집니다. 『레 미제라블』의 주요 인물인 자베르를 주인공으로 개작한 작품으로, <구구선 사람들>을 포함해 수많은 리메이크작에서는 자베르를 장발장에게 광적인 집착을 보이는 악인으로 그리고 있지만 <오류의 방>의 자베르는 부조리한 사회가 만든 ‘불쌍한 사람들’ 중 하나입니다. 입과손의 이승희 씨와 김소진 씨가 새롭게 부르는 판소리 무대에서 자베르는 어떤 모습으로 그려지는지 확인해봐야겠습니다.
국립극장의 10월 완창판소리 무대의 주인공은 창극단 창악부 수석단원 서정금 명창입니다. 서 명창은 초등학교 4학년 때 판소리를 시작해 동편제 판소리의 거장인 고 강도근 명창을 거쳐 안숙선 명창으로부터 만정제 <춘향가>와 <심청가>를, 남해성 명창에게서 <수궁가>를, 김차경 명창에게서는 김세종제 <춘향가>를 사사했습니다. 1999년 국립창극단에 입단한 뒤 다양한 작품에서 특유의 개성 있는 소리로 <수궁가>의 토끼, <변강쇠 점 찍고 옹녀>의 호색할매, <귀토>의 자라 부인, <정년이>의 백도앵 등으로 인상적인 무대를 만들어냈습니다.
이번 완창판소리 무대에서 서 명창은 송흥록-송광록-송우룡-유성준-정광수-박초월로 이어지는 미산제 <수궁가>를 들려줄 예정인데요, 판소리 다섯 바탕 중 유일하게 우화를 통해 인간세상을 풍자하는 이 이야기가 서 명창의 진중한 소리와 능청스러운 연기와 만나 어떤 무대를 펼쳐낼지 기대됩니다.
한강노들섬클래식 발레 무대는 <잠자는 숲속의 미녀>입니다. 오페라와 마찬가지로 원작 무대를 축약한 95분의 챔버 공연으로, 발레STP협동조합의 세 발레단, 유니버설발레단, 와이즈발레단, 서울발레시어터의 공동 공연으로 올려집니다. 유니버설발레단은 지난 7월부터 8월까지 이 작품의 챔버 공연으로 부산, 경주, 대전, 대구 등 지역 관객들과 만났는데요, 도시에 따라 70분에서 150분까지 공연 시간을 달리해 올린 바 있습니다.
오페라와 달리 이틀간 공연을 더블캐스팅으로 진행하는데요, 오로라는 유니버설발레단의 홍향기-이유림, 데지레는 이동탁-콘스탄틴 노보셀로프, 카라보스는 이현준-알렉산드르 세이트칼리예프의 캐스팅으로 만나게 되며 와이즈발레단과 서울발레시어터 단원들이 군무와 캐릭터 솔리스트로 참여합니다.
현대무용가 김보라 씨는 신작 <내가 물에서 본 것>을 선보입니다. 국립현대무용단의 무용x기술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제작된 작품으로, 김보라 씨는 이 작품에서 시험관 시술로 대표되는 보조생식기술과 몸의 관계에 대해 고찰합니다. 난임이 현대인의 결혼생활에서 보편적인 문제가 되고 있는 듯 보이는 시대에 김보라 씨는 임신을 가능케 하는 기술이 여성의 몸을 주체성 또는 대상화라는 이분법으로 재단하거나 이 복잡하고 어려운 과정을 성공과 실패의 양단간의 결말로 환원해버리는 낡은 서사를 지적하며 보조생식기술을 구성하는 물질적, 사회적, 정치적 요소들과 몸이 맺어온 관계를 살피되 해당 기술과 관계를 맺은 특수한 몸과 특수한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전개합니다. 기술 실행의 장소로서 기술과 연결된 포스트휴먼적 몸은 무용 무대에서 어떻게 구현될지 공연장에서 확인해볼 일입니다.
- 레 미제라블 댄스시어터 샤하르 | 익산예술의전당 대공연장 (09.27 ~ 09.28)
- 레 미제라블 댄스시어터 샤하르 | 안성맞춤아트홀 대공연장 (10.18 ~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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