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어식 담 아래의 키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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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1.27 | 조회 26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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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김 레터

이불 밖은 위험한 시대, IT회사 디자이너가 쓰는 에세이

그녀는 제자리에 멈췄고 전등이 곧 자동으로 꺼진다. 움직이는 사람에게만 빛이 허락되는 세상이라, 밤보다 더 어두운 퇴근길을 사람들은 걷는다. 새들은 날지 않고 고요한 공원엔 흙길이 있다. 땅만 보며 걸었고 어른들과 아이들의 수많은 발걸음을 발견한다. 그녀는 생각한다. 이곳은 집으로 돌아가는 법은 알지만 앞으로 나아가는 법은 모르는 모든 걸음들이 서성이다 지나간 곳이라고.

고배를 마셨던 시험의 끝에는 숫자만 남았다. 연체된 빚, 무직자로서 쌓인 경력, 줄어든 잔고, 떠나간 수많은 친구들, 하나도 남지 않은 꿈. 그것들은 낙오자라는 사회의 정신적인 공격보다 그녀를 현실적으로 괴롭혔다. 그녀는 우주가 모든 곳에서 동시에 팽창한다는 천체물리학자의 인터뷰를 읽고 외로움에 몸서리쳤다. 무한한 우주 공간 속에 티끌 같은 지구에도 그녀가 설 자리는 보이지 않았다.

무어식 담 아래의 키스는 낭만적인 해석의 여지를 남겨두고 싶어 했으나 삶이 이렇게 지루해진 비극에는 꼭 이유를 찾아야 할 것 같았다. 서성이는 도시의 밤은 빛나지 않고 부패한 강은 수건 한 장 덮지 않고 밤새 흐른다. 언젠가 너는 꼭 세상에 필요한 존재가 될 거라고 그랬던 어머니는 별이 되었고 이제는 그녀도 안다. 자신이, 그리고 모두가 우연적인 존재라는 걸.

개연성이라는 녀석이 인생을 움켜쥐고 있었다면, 단 한 순간도 예측할 수 없는 인간의 복잡성과 모순에 지쳐, 금세 움켜잡은 인생을 놓아버렸을 것이다. 어떤 것은 필연적으로 보이나 결국은 멀리서 보면 우연의 연속이며 인생에서의 인과란 결국 해석의 연장선이다. 나무는 흙과 토양에서 자라지만. 흙은 그냥 흙이며, 햇빛을 머금은 대지는 결코 누군가를 위해 열을 내지 않는다. 인생의 관리자는 기쁨과 비애를 대립시키며 기다림과 무너짐을 반복하고 이뤄질 수 없는 균형을 우연 속에서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그럼에도 무의미한 반복을 깨트리고 그녀를 계속 나아가게 하는 힘은 사랑이라고 믿었다. 사랑도 우연의 연속이며 어떤 것도 이뤄주지 않는다. 애초에 사랑이라는 불씨는 불완전에서만 자라는 것이다. 불씨에는 온도가 있었고, 사람이 떠나간 자리에도 영원히 꺼지지 않을 수도 있다.

혼자 남은 오래된 집 현관에 들어선다. 신발장 가장 위에는 소중하게 놓인, 이제는 너무 작아 신을 수도 없는 작은 운동화가 있다. 작은 운동화에는, 살짝이라도 잡아당기면 풀릴 것 같은, 낡은 신발 끈이 묶여 있다. 이 끈을 묶은 가녀린 손의 힘은 이제는 별이 되어 그녀를 비추고 있다. 그녀는 안도의 웃음을 짓는다. 살짝 올라간 그녀의 입꼬리와 별을 닮은 보조개에서는 따뜻한 미열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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