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빨이 없다고 식욕이 없는건 아니다

밀물처럼 넘쳐흐른 것,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것.

2022.06.02 | 조회 307 |
0
|

바다김 레터

이불 밖은 위험한 시대, IT회사 디자이너가 쓰는 에세이

밀물처럼 넘쳐흐른 것,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것.

좋아하는 유튜브를 보면서 점심을 먹는데 갑자기 앞이 조금, 흐려졌다. 슬퍼서 흐른 걸까, 무언가 벅차올라서 흐른 걸까. 알 수 없지만, 눈물은 결핍이 아니라 과잉의 산물이다. 차오른 것이 밖으로 흘러내리니까.

눈물처럼 차오르는 것이 있으면 빠져나가는 것도 있다. 길고양이 두부의 이빨이 그렇다.

두부는 이빨이 없는 고양이. 배고프다는 표현도 하지 않지만, 식욕은 있다. 이빨이 없다고 식욕이 없는 건 아니랜다. 당연한 소리. 누가 두부더러 식욕이 없다고 놀리기라도 했나?

이빨이 없는 존재는, 좁게도 넓게도 생각해볼 수 있다.

일단 말 그대로 없는 사람도 있다. 우리 할아버지, 이빨이 하나도 없다. 아흔여섯, 백수(白壽)를 세 해 남기셨다. 알츠하이머병에 걸리셔서 나도 못 알아보지만, 그래도 식욕은 왕성하시다. 수축도 제대로 못 하는 손가락으로 바들바들 떨며, 고기를 집어 드신다.

조금 없는 사람도 있다. 아빠는 이빨 세 개가 썩어서 발치를 했다. 이빨 세 개가 썪은 것은 사업이 망한 십여년십여 년고, 발치를 한 것은 얼마 전이다전이다. 돈이라는자신의 썩은 이빨도 맘대로 못 뽑게 만든다. 아빠는, 이빨은 할아버지보다 많지만, 식욕이 많진 않다. 천성이 입이 짧은 탓.

더 넓게는, ‘이빨'처럼 남들이 다 가진 걸 못 가진 사람들이 있다. 사람들은 그들이 누군지도 모르고, 그들이 무얼 가지지 못한지 모른다. 오늘 시각장애인 틱톡커가 ‘공중화장실에서 당황스러운 순간’이라며 점자판이 뒤집힌 장소를 보여주었다. 무언갈 잃은 사람들이 식욕이 있는지 없는지 알게 뭐람. ‘남자 화장실' 이든, ‘실장화자남' 이든.

소리쳐야 하는 사람은 늘 잃은 사람들이고, 그들은 대부분 소리칠 힘이 없다

 

 

서른이다.

동갑내기 친구들의 반응은 둘 중의 하나다. 벌써 서른이라며, 늙었다고 투덜대거나 대단한 무언가를 시작해야 한다며 호들갑 떨기. 둘 중의 하나를 고르자면, 둘 다 고르고 싶지 않다.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를 들으며 눈물 짜지도, 요란한 서른 살 파티하고 싶지도 않다.

그래도 뭔가 그냥 지나가기는 찜찜했다. 아무리 반복되어서 시시하더라도, 남들이 자주 부르는 시기에는 무언가 의미가 담기지 않나. 스물, 서른, 마흔, 환갑, 그리고 우리 할아버지의 올지 안 올지 모르는 백수. 물론 그때까지 사셔도, 본인이 몇 살인지 모르시겠만.

며칠 전에 지인 결혼식에 참석했다. 그곳에서 한 노교수가 부부에게 건네는 성혼선언문 전 당부의 말이 마음 한 가운데를, 차르르, 하고 울렸다.

“인생이 연극과 같다면, 3막까지 있다고 합니다. 1막은 실수하고, 잘 모르고, 부딪혀가면서 어른이 되는 시기. 2막은 부모의 도움 없이 인생에서 무언가를 이루는 시기, 그리고 3막은 인생을 완성하는 시기라고 합니다.”

그렇다. 어쨌거나 30년이 흘렀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좋으나 싫으나 뭔가를 이뤄야 하거나, 이루지 못하는 시기를 지나고 있다. 이제는 정말 어마어마하게 큰 성장과 성공도, 반대로 너무나 크고 슬픈 고독도 찾아올 것이고, 무엇이 되었든 감내할 준비를 해야 한다.

그리고 인생은 시작이 그러했듯이, 3막까지 쉼 없이 달려갈 것이다. 그러니까 삶이라는 건 쉬고 싶다고 쉬어지지 않는 것이다. 그저 살아내는 것 그 자체에 모든 의미가 있고 그 외에는 어떠한 의미도 없다.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의 말처럼, 모든 순간이 결정적 순간이다.

교수의 성혼선언문은, 2막을 함께 연기할 신혼부부에게 ‘브라보'를 외치며 마무리되었다. 서른을, 그리고 쉬지 않고 서른하나를 연기할 나에게도 브라보를 외쳐볼까 한다.

그런데, 작년에 스물 아홉은 어떻게 연기했더라.




구독자 의 올 해 연기는, 레전드 무대가 되기를 바라며.  

 

답장은 jyee5001@gmail.com 으로 주세요. 답장에는 항상 또 답신의 편지를 써드리고 있습니다 :)

 

다가올 뉴스레터가 궁금하신가요?

지금 구독해서 새로운 레터를 받아보세요

✉️

이번 뉴스레터 어떠셨나요?

바다김 레터 님에게 ☕️ 커피와 ✉️ 쪽지를 보내보세요!

댓글

의견을 남겨주세요

확인
의견이 있으신가요? 제일 먼저 댓글을 달아보세요 !

© 2024 바다김 레터

이불 밖은 위험한 시대, IT회사 디자이너가 쓰는 에세이

자주 묻는 질문 오류 및 기능 관련 제보

서비스 이용 문의admin@team.maily.so

메일리 (대표자: 이한결) | 사업자번호: 717-47-00705 | 서울 서초구 강남대로53길 8, 8층 11-7호

이용약관 | 개인정보처리방침 | 정기결제 이용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