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이 해롭다는 생각은 오류다

2022.01.24 | 조회 271 |
0
|

바다김 레터

이불 밖은 위험한 시대, IT회사 디자이너가 쓰는 에세이

선물받은 에리히 프롬을 다시 읽다가, 한 구절을 마주하고는 편지를 써야겠다고 마음 먹었습니다.

| 갈등이 해롭다는 생각은 오류다.

이 문장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무기력한 현대인에 대해 이야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에리히 프롬은 현대인이 '가짜'로 '학습'되어 살고 있다고 합니다.

'가짜'는 우리의 착각에 대한 것입니다. 오늘날에는 내가 나인 것에 대해 모두가 당연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생각해보세요. 개인이 사회적 지위, 이름표, 명찰을 지우고 자신의 개성을 얼마나 주장할 수 있을까요? 앞에 언급한 것들은 '진짜 나'가 아닌 허울입니다. 남들과 같아지기 위한 노력의 결과죠.

우리 대부분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잘 알고 있다는 착각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것은 그리 간단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목표' 라고 부르는 것을 달성하기 위해 어떤 위험도 감수하지만(건강도 버리고, 밤새고, 먹는 것을 줄여가면서 까지), 스스로 목표를 정하는데는 심각한 어려움을 느낍니다. '열심히' 사는 것은 자신의 행동을 스스로 결정하는 증거가 아닙니다. 그저 혼신의 힘을 다한 것 그 자체뿐이죠.

그렇다면 '학습'은 무엇일까요. 학습은 무기력에 관한 것입니다. 현대인은 너무 오래 학습된 나머지 자신의 무력감 자체를 인지하지 못합니다.대표적인 예시는 장난감 전화기입니다. 장난감 전화기는 진짜 전화기와 똑같이 생겼고, 아이는 수화기를 들어 번호를 누를 수 있습니다. 다만 그 누구와도 연결되지 않습니다. 어른과 똑같이 행동했음에도 어떤 결과도, 영향력도 없죠. 이러한 무력감은 어른이 되면서 끝없이 반복됩니다.무력감을 느끼는 사람들은 자신이 세상을 바꿀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의지로 다른 사람을 바꿀 수 없으며, 사람들이 자신을 진지하게 여기지 않는다고 여깁니다.



갈등이 해롭다는 생각은 오류다.

남들을 따라 할 뿐 자신의 행동을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는 사람, 무기력을 학습한 사람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바로 갈등이 해롭다는 생각을 가지는 것입니다.

'갈등'이라 하면 사람들은 싸움, 질투, 분노, 투쟁, 시위 같은 이미지를 떠올리지만, 갈등의 본질은 질문입니다. 나는 누구인가, 현재 상태는 어떠한가, 우리는 잘하고 있는가, — 우리는 질문을 통해 본질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대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갈등을 피하는 사람은 현재 상황을 마주하고 돌파하고, 부딪힐 용기가 없는 것입니다.

왜 용기가 없을까요? 갈등과 함께 수반되는 고통, 우리가 '감정적' 이라고 부르는 상태에 빠지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나 자신과의 갈등, 타인과 갈등, 세계와 나의 갈등 모두 '감정적' 반응을 일으킵니다.

참으로 신기합니다. 창의적 아이디어, '진짜' 자아를 찾는 과정은 모두 갈등에서 나옵니다. 창조적 순간에 필요한 것은 문제해결 능력이 아니라 감정입니다. 프랑스 수학자 쥘 앙리 푸앙카레는 "과학의 천재성은 놀라는 능력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창의적 사고에 감정은 뗄레야 뗼 수 없는 관계이고, 갈등과 수반되어 창조적 순간을 마주할 수 있지만 사람들은 '감정적' 이라는 말에는 유독 부정적으로 반응합니다. '감정적'이라는 말은 불균형과 같은 뜻이 되었고, 심지어 현대에는 정신 장애의 뜻으로도 해석됩니다. 많은 정신의학자들은 너무 슬프거나 너무 분노하거나 너무 흥분하지 않는 '정상적' 인격의 이미지를 만들었으니까요.


여전히, 갈등은 모두에게 어려운 주제다.

누군가 갈등을 마주했다는 것은, 그/그녀가 그 순간 창조적 아이디어와 높은 생산성으로 변화시킬 기회를 얻었음을 의미합니다. 그런데도 갈등을 마주하기는 쉽지가 않습니다. '안전함'을 포기할 용기, 타인과 달라지겠다는 용기, 고립을 참고 견디겠다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자기 자신에 대한 신뢰와 확신이 필요합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타인과의 갈등은 특히 어렵습니다. 자신이 틀렸다고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대개 사람들은 문제와 관련해 자신이 핵심을 제대로 짚었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지적인 논의를 추구한다고 스스로 믿으면서 사실은 남들을 헐뜯거나 비난을 이어갈 뿐입니다.

오래전에 제이에게 갈등에 대한 이야기를 했더니, 해결책으로 멋진 기능을 제시해주었습니다. 제이는 상상으로 너무 과열된 토론장에 웃음을 터지게 하는 가상의 기능을 설명했습니다. 순간 웃느라 맥이 빠져서 자신들이 불필요하게 끓고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것이죠. 그러면 그들 중 하나는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싸우기 위해 모인 것이 아닙니다. 지금은 멋진 아이디어를 내기 위한 '최고의 갈등'의 순간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중지를 모아 서로를 믿고, 더 나은 변화를 낼 수 있다는 용기를 가집시다."

저 또한 요즘 어렵고, 하지만 멋진 갈등의 순간을 매일매일 마주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오늘 마주한 갈등이, 창조적 순간을 맞이하기 위한 기회임을 기도하며 편지를 마치겠습니다.

답장은 jyee5001@gmail.com 으로 주세요. 답장에는 항상 또 답신의 편지를 써드리고 있습니다 :)

 

다가올 뉴스레터가 궁금하신가요?

지금 구독해서 새로운 레터를 받아보세요

✉️

이번 뉴스레터 어떠셨나요?

바다김 레터 님에게 ☕️ 커피와 ✉️ 쪽지를 보내보세요!

댓글

의견을 남겨주세요

확인
의견이 있으신가요? 제일 먼저 댓글을 달아보세요 !

© 2024 바다김 레터

이불 밖은 위험한 시대, IT회사 디자이너가 쓰는 에세이

자주 묻는 질문 오류 및 기능 관련 제보

서비스 이용 문의admin@team.maily.so

메일리 (대표자: 이한결) | 사업자번호: 717-47-00705 | 서울 서초구 강남대로53길 8, 8층 11-7호

이용약관 | 개인정보처리방침 | 정기결제 이용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