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저는 매일 밤마다 '저승사자'를 봅니다. 검은 도포를 입고 갓을 쓴 모습이 볼 때마다 너무 아찔합니다. 카리스마 있는 눈빛을 보고 있노라면 '나를 데려가라'는 말이 절로 나오죠. 그런데 저승사자에 빠진 것은 저 혼자만이 아니었습니다. K-저승사자, '사자 보이즈'가 출연한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출시하자마자 26개국 1위, 빌보드 차트 1위를 차지한 것도 모자라 찐팬들 덕분에 역주행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낯설지만 흥미로운 광경이죠.
그래서 호린의 7번째 뉴스레터는 납량특집, K-저승사자 편으로 준비했습니다. 우리가 평소에 몰랐던 저승사자의 모든 것, 그리고 저승사자를 둘러싼 우리의 집단 무의식과 죽음관에 대해 다뤄보았습니다.
구독자님, 이번 뉴스레터는 이런 내용으로 준비했어요!
1. 사자보이즈가 몰고 온 K-저승사자 열풍
2. 저승사자의 역사적 유래와 정체는?
3. 저승사자에 담긴 한국인의 집단 무의식
4. 힙한 저승사자가 남긴 질문
저승사자, K-콘텐츠의 새로운 주인공이 되다
"요즘 난리 난 저승사자 춤 봤어요? 이건 정말 미쳤어요!"
얼마 전, 친하게 지내는 피디들이 유튜브 영상 하나를 보여줬습니다. 월드 오브 스트릿 우먼 파이터3(Street Woman Fighter 3)에 나온 한국 댄스팀의 '몽경'이라는 작품이었죠. 저승사자를 상징한 검은 갓을 쓴 군무는 강렬하면서도 날카로웠습니다. 몽경은 한국의 전통 콘텐츠가 이렇게나 매력적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어요. 실제로 한 달 만에 1500만 조회수를 기록하는 등 해외에서도 화제를 모았죠.
그 직후, 또 다른 저승사자들이 이승에 나타났습니다. 전 세계를 뒤흔들기 시작한 케데헌(K-Demon Hunters)의 '사자보이즈(Sajaboys)' 얘기입니다. 갓과 도포를 입은 꽃미남들이 섹시한 표정으로 '네 죄까지 사랑해줄 사람은 나뿐이야'를 외칠 때, 저는 순간 멍해졌습니다. '이제는 저승사자가 아이돌까지 한다고?' 드라마 도깨비의 '저승이' 이동욱을 처음 봤을 때보다 더 큰 문화충격이었죠.
사자보이즈는 그들의 대표곡 '유어 아이돌(Your Idol)'을 부를 때 저승사자의 원형을 그대로 유지합니다. 검은 갓을 쓰고 도포를 입은 채 공중으로 떠오릅니다. 그럼에도 그들의 춤과 노래는 여전히 힙하고 핫해 보이지요. 죽음의 어두움마저 치명적인 매력으로 바꿔버린 사자보이즈는 요즘 신드롬급 인기를 누리고 있습니다.
케데헌은 넷플릭스에서 큰 성공을 거두며 공개 2일 만에 26개국에서 1위를 기록했습니다. 이러한 사자보이즈 열풍은 국립중앙박물관 굿즈 품절사태로까지 이어졌습니다. 얼마 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출시한 '검은 갓'을 형상화한 굿즈가 완판되는 기현상이 벌어진 것이죠.
저승사자는 언제나 3인조로 움직인다
때 아닌 한국의 저승사자 열풍을 지켜보는 일은 꽤나 흥미롭습니다. 저승사자에 열광하며 '오마이 갓!'을 외치는 미국 소녀들을 보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니까요. 히스토리를 전혀 모르는 MZ들이나 외국인들에게 저승사자는 신선한 문화 콘텐츠일 겁니다.
그러나 어릴 때 TV 속 ‘전설의 고향’에서 오리지널(?) 저승사자를 보며 자란 저는 ‘격세지감’을 느낍니다. 제 기억 속 저승사자는 그렇게 힙한 존재가 아니었거든요. 어린 시절, TV와 할머니에게서 보고 듣던 저승사자는 제가 인식한 ‘최초의 죽음’이었습니다. 당시 아이들에게 죽음은 창백한 얼굴에 검은 갓을 쓴 저승사자처럼 무섭고 정체모를 일이었지요. 저는 아직도 저승사자라는 단어에 어릴 때 각인된 아득한 죽음의 무게를 느낍니다.
우리의 아버지, 할아버지 세대로 올라갈수록 저승사자는 실재하는 경외의 대상이었습니다. 옛날 어른들은 꼭 돌아가시기 직전, ‘문 앞에 손님이 왔다’는 말로 자신의 죽음을 예고하곤 했지요. 얼마 전까지 민간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저승사자를 위한 ‘사자상’(使者床)을 따로 차렸습니다. 상위에 밥과 나물, 동전과 짚신을 올려 멀고 험한 저승길을 망자가 편히 갈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던 것이죠.
이렇게 오랫동안 이 땅에서 이승과 저승, 삶과 죽음을 잇던 저승사자. 이들은 대체 어디서 왔을까요? 최초의 기원을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저승사자는 불교와 도교, 무속신앙이 융합되면서 가장 한국적인 죽음의 메신저가 됐습니다. 특히 불교에서 저승사자의 정체성은 분명합니다. 저승세계를 다스리는 열 명의 왕, 시왕(十王)의 직속 부하들이죠.
시왕은 죽은 자의 영혼을 심판하는 열 명의 왕을 말합니다. 그 중 가장 중요한 심판을 맡은 왕이 그 유명한 염라대왕(閻羅大王)입니다. 사자들은 시왕들의 심판을 위해 이승에서 영혼을 데려와 이번 생의 공과를 살피고 심판장소로 데려오는 역할을 합니다.
시왕은 중국 당나라 말 송나라 초에 불교와 민간 도교가 합쳐지며 탄생하는데, 당시 중국 관료문화의 영향으로 저승사자도 '관료화'됩니다. 명부를 받고 이름을 확인하는 등 절차대로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저승 공무원'의 이미지를 갖게 된 것이죠.
이들은 일할 때도 혼자 다니지 않고 늘 3인조로 움직입니다. 영화 '신과 함께'에서 저승사자가 3인조로 구성된 것도 이러한 전통을 따른 것이지요. 조선 시대 불교의식과 관련된 자료에는 역할에 따라 다양한 이름의 저승사자가 등장합니다.
- 감재사자(監齋使者): 망자의 생전 과보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사자
- 직부사자(直符使者): 이를 염라대왕에게 보고하는 사자
- 사직사자(四直使者): 연직사자(年直使者), 월직사자(月直使者), 일직사자(日直使者), 시직사자(時直使者)를 통칭
그런데 불화 속에 등장하는 이들은 지금 우리가 아는 저승사자의 모습과는 거리가 멉니다. 대개 관복을 입은 관료의 모습이 많고 옷도 적색, 녹색, 황색 등 화려합니다. 다만 불교 『시왕경(十王經)』에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염라대왕이 부처님께 고하기를 '세존이시여, 저를 포함한 모든 대왕들은 모두 마땅히 검은 말을 타고 검은 깃발을 쥐고 검은 옷을 입은 사자를 보내 망자의 집을 살필 것이며, 그 공덕을 살피고 도첩의 이름을 확인하여 죄인을 찾아낼 것입니다.'"
시왕경(十王經) 중에서
저승사자가 망자를 데리러 오는 이유는?
그렇다면 우리에게 친숙한 저승사자의 이미지는 언제 만들어진 것일까요? 의외로 최근의 일입니다. 1981년 KBS '전설의 고향' 저승화 편에서 처음으로 검은 도포에 검은 갓을 쓴 저승사자가 등장합니다. 당시 저승화를 연출한 최상식 PD는 이렇게 회고했습니다:
"전설의 고향 이전에는 한국형 죽음의 이미지가 없었다. 죽음의 이미지는 새까만 색이니 까만 도포를 입히고, 대비되게 얼굴은 하얗게 칠하고 입술은 까만색으로 임팩트를 줬다."
바로 이것이 한국형 저승사자의 탄생이었습니다. 저승사자는 인간과 신을 매개하는 존재이자 한국인의 사후관을 보여주는 중요한 문화유산입니다. 죽음의 전령사를 둘러싼 수많은 이야기와 설정은 죽음에 대한 집단 무의식의 반영이니까요.
예를 들면 이야기 속 저승사자는 늘 배가 고프고 가난합니다. 저승도 생명력 없는 황량하고 척박한 곳으로 묘사돼죠. 사는 곳이 워낙 빈한한데다 처우까지 좋지 않으니 먹을 것이나 입을 것을 주면 수명을 늘려주는 등의 협상이 가능합니다. 사자상이라는 일종의 뇌물(?)이 등장한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고요. 이는 그만큼 우리의 무의식에 오랫동안 각인된 현생에 대한 집착, 그리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역설적으로 보여줍니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속담이 괜히 나온 게 아니죠.
또 하나, 중요한 포인트가 있습니다. 저승사자는 망자의 영혼을 '데리러 오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이들은 명부를 들고 수고스럽게 집까지 찾아옵니다. 그것도 세 명이나요. 생각해보면 엄청난 VIP서비스 아닌가요? 이렇게 망자를 데려가는 '인도자'의 존재는 수많은 문화권에서 공통적으로 확인됩니다
- 중국: 흑백무상(黑白無常) - 검은 옷과 흰 옷을 입은 두 명의 저승사자
- 힌두교: 야마(Yama) - 올가미로 영혼을 인도하는 최초의 죽은 자이자 죽음의 신
- 서구: 그림 리퍼(Grim Reaper) - 검은 망토를 입고 낫을 든 해골의 모습
생긴 모습이나 캐릭터는 전부 다르지만 역할은 똑같습니다. 영혼을 데려가는 인도자라는 것이죠. 그런데 왜 사후에 인도자가 필요할까요? 여기에는 죽고 나면 '내 영혼이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른다'는 전제가 깔려 있습니다.
우리의 집단 무의식 속에서 사후의 영혼은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존재, 죽음의 사신에게 체포되듯 끌려가는 수동적 존재들이죠. 심지어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존재이기도 합니다. 살아있는 동안 수많은 욕망과 집착 속에 살았기 때문이죠. 한 명의 망자를 제압하는데 저승사자가 세 명이나 필요한 것도 이런 어리석음과 집착 때문일 수 있습니다.
저승의 심판관, 염라대왕의 정체는?
그러나 흥미롭게도 일부 종교에서는 전혀 다른 사후세계가 펼쳐집니다. 깨달음을 중요시하는 힌두교의 베단타(Vedanta) 학파와 티벳 불교, 유대교의 카발라(Kabbalah) 전통에서는 저승사자가 등장하지 않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업의 결과로 환생하거나, 살아서 해탈에 이른 자는 열반에 이르러 죽음 이후에도 윤회를 반복하지 않기 때문이죠. 그들에게 영혼은 지혜롭고 능동적인 존재, 사후에 어디로 가야하는지 아는 존재였습니다.
염라대왕은 힌두교에서 죽음의 심판자로 통하는 '염마(閻魔)'에서 온 말입니다. 그런데 염마는 무서운 심판자라기보다 자신의 업에 대한 내면의 심판자 성격이 강했습니다. 말하자면 내 안에서 옳고 그름을 가리는 양심 같은 존재였던 것이죠. 그런데 만약 내가 욕망에 휩싸여 양심을 저버렸을 때 염마는 저승사자를 거느리는 무서운 존재가 될 수 있습니다. 죽음 이후 저승사자를 믿는다는 것은 살아생전 옳고 그름을 믿는다는 얘기이기도 합니다. 삶과 죽음은 동전의 양면과 같으니까요.
정리하자면 ‘저승사자’라는 존재 속에는 한국인의 죽음을 바라보는 태도와 가치관, 집단 무의식이 켜켜이 쌓여 있습니다. 죽음 앞에서 나약하고 수동적이고 세속적이지만 마음 한 켠에는 인과응보와 양심을 붙들고 있는 모습이죠. 만약 구독자님도 저승사자가 두렵다면 이 오래된 무의식이 아직 살아있다는 반증일지 모릅니다.
죽음의 서사와 무게를 잃어버린 시대
요즘 MZ들에게 저승사자는 꽃미남 오빠이자 아이돌이고 소장하고 싶은 굿즈가 됐습니다. 이렇게 죽음을 힙하고 쿨하게 다룰 정도로 우리의 무의식이 성장한 걸까요? 아니면 반대로 죽음에 대한 성찰과 서사가 사라지고 있는 것일까요?
불과 50여년 전만 해도 죽음에는 풍부한 서사가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평생 살던 집에서 죽음을 맞이했고 꽃상여에 실려 나갔습니다. 삶을 돌아보고 죽음을 맞이할 여유와 시간이 있었습니다. 죽음을 주관하던 사람들은 공동체의 종교인이나 어른이었죠. 죽음은 언제나 자연스러운 삶의 한 부분이었습니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죽음은 마치 없애야 할 '질병'으로 다뤄지기 시작했습니다. 혐오스러운 바이러스처럼 삶에서 분리된 죽음을 다루는 이는 종교인이 아닌 의료인이 됐고, 죽음을 맞이하던 일상의 집은 차가운 병실로 변했습니다. 의미 없는 연명치료가 시작되면 고인은 자신의 죽음을 마주할 시간조차 없이 마약성 진통제로 정신을 놓은 채 생을 마감합니다. 죽음을 다루는 방식이 달라지면 죽음을 생각하는 방식도 달라집니다. 이 건조한 죽음의 프로세스 어디에 저승사자 같은 서사가 들어갈 수 있을까요?
퓨리서치센터(Pew Research Center)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사후세계를 믿느냐'는 질문에 35개국 평균 64%가 '그렇다'고 답했습니다. 한국은 평균에 못 미친 52%(26위)였습니다. 사자보이즈를 배출한 한국은 이제 영혼이나 사후세계를 믿지 않는 대표적인 나라가 됐습니다.
한국의 저승사자가 글로벌 콘텐츠로 성공한 것은 분명 의미 있는 일입니다. 우리의 전통문화가 현대적으로 재해석되어 세계인의 공감을 얻었다는 점에서 고무적이죠. 케데헌의 성공은 K-콘텐츠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동시에 묵직한 질문도 남깁니다. 저승사자를 둘러싼 죽음의 서사와 성찰은 사라지고 힙한 이미지와 콘텐츠로만 남게 된 것은 아닐까요? 죽음의 무게를 잃어버린 저승사자는 과연 무엇을 의미할까요?
저승사자의 변신은 우리 시대의 죽음관 변화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두려움의 대상에서 욕망의 대상으로, 경외에서 소비로, 성찰에서 오락으로. 저승사자는 글로벌 인기를 끌고 있지만 여전히 우리는 죽음이라는 오래된 질문 앞에 서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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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요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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