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린 인문학

60일마다 돌아오는 '그 날', 잠들면 안되는 이유

실제 조선시대 임금도 밤새 뜬 눈으로 버텼다는 '이 날'은?

2026.03.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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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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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자님은 혹시 혼자 있을 때, 아무도 없는 조용한 순간 이런 목소리가 들린 적 있으신가요?

“아까 그 말은 하지 말걸. 내가 왜 그랬을까.”

누가 뭐라고 한 것도 아닌데, 비난받거나 지적당한 것도 아닌데, 머릿속 어딘가에서 조용히 나의 실수와 부족함을 꺼내어 자책하게 만드는 목소리. 때로는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것처럼 굴어서 본능적인 수치심이 밀려올 때도 있습니다.

마치 내 안에 또 다른 누군가가 살고 있는 것 같은 불쾌한 느낌. 옛사람들은 이런 마음의 소리를 단순한 잡념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실제의 불청객이 몸속에서 일으키는 소란이라고 믿었습니다. 바로 오늘의 주제, 삼시충(三尸蟲)이야기입니다. 
삼시충은 우리 몸 속에 산다는 '3마리의 벌레'인데요, 글쓰는 명상가이자 호린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기율님이 삼시충과 종교전통, 음양오행, 뇌과학이 어우러진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드릴게요!

구독자님 이번 뉴스레터에는 이런 내용을 담았어요

  1. '삼시충' 이란 무엇인가?
  2. 삼시충을 붙잡는 날, 경신일
  3. 서양에도 존재하는 철야정진 풍습
  4. 제3의 눈, 송과체와 멜라토닌
  5. 경신수행의 진정한 의미는?

인간의 몸속에 사는 세마리 벌레, 삼시충

 

오래전 고대 동양의 도교에서 유래한 흥미로운 세계관이 있었습니다. 인간의 몸속에는 태어날 때부터 세 마리의 눈에 보이지 않는 벌레가 살고 있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삼시충이라 불리는 이 벌레들은 머리, 가슴, 배에 각각 자리 잡고 살면서 우리가 짓는 크고 작은 죄와 흉악한 마음을 하나하나 빠짐없이 관찰하며 기록합니다. 

이들의 목적은 단 하나, 숙주인 인간의 수명을 깎아 먹는 것입니다. 벌레들은 평소에는 조용히 숨어 지내다가 60일에 한 번씩 돌아오는 경신일(庚申日)이 되면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경신일 밤, 사람들이 깊은 잠에 빠져 의식을 잃으면 삼시충들은 몰래 몸 밖으로 빠져나갑니다.

 

그리고 곧장 하늘로 올라가 옥황상제 앞에서 그동안 기록해 둔 숙주의 죄악을 낱낱이 알립니다. 그 벌로 인간의 수명은 죄를 지은 만큼 깎이게 됩니다. 삼시충이 굳이 이런 행동을 반복하는 이유는 뭘까요?

숙주가 살아있는 몸 밖으로 완전히 나올 수 없기 때문입니다. 숙주가 빨리 죽어야 자신들이 자유로워진다는 것이 삼시충이 가진 가장 근본적인 동기였습니다.

내 몸 속에 살면서, 내 죄를 기록하고, 내가 빨리 죽기를 바라는 내부의 적 앞에서 사람들이 찾아낸 돌파구는 의외로 단순했습니다.

 

삼시충은 숙주가 잠들었을 때만 몸 밖으로 나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 경신일에 한숨도 자지 않고 밤을 새우면 벌레는 하늘로 올라가지 못했고 옥황상제의 판단을 비켜 갈 수 있었습니다.

이를 가리켜 경신일을 지킨다는 뜻의, 수경신(守庚申) 이라고 불렀습니다. 이날이 되면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 불을 밝히고 밤새 잔치를 벌이거나 이야기를 나누며 잠을 물리쳤습니다.

이 풍습은 고려 중기 무렵부터 왕실과 민간에 널리 퍼졌고, 조선의 태조와 세종 같은 임금들 역시 경신일 밤 신하들과 함께 연회를 즐기며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는 기록이 남아있을 만큼 성행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유교적 가치관에 어긋난다는 비판이 거세졌고 유교적 예법을 엄격히 정비하던 영조 35년(1975년)에 이르러 공식 연회는 폐지됐습니다. 이후 수경신은 등불을 밝히고 조용히 근신하며 밤을 새우는 절제된 방식으로 축소됐고 점차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졌습니다.

인간의 몸속에 산다는 3마리의 벌레, 삼시충
인간의 몸속에 산다는 3마리의 벌레, 삼시충

 

금(金)의 기운이 가장 강한 경신일

 

풍습은 사라졌지만, 삼시충이라는 개념 자체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의례가 사라지자 오히려 그 안에 담긴 의미가 선명하게 읽히기 시작했습니다.

삼시충이 머무는 자리, 머리와 가슴과 배는 단순한 신체 부위가 아닙니다. 머리에 사는 벌레는 우리의 사고와 의식을, 가슴에 사는 벌레는 감정과 감성을, 배에 사는 벌레는 욕망과 본능을 상징합니다.

삼시충은 인간의 세 가지 내면의 영역, 즉 사고와 감정과 욕망이 어떻게 한 사람을 서서히 갉아먹을 수 있는지를 생생하게 형상화한 존재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잠을 자지 않을 때 이들이 활동하지 않는다는 건 어떤 의미를 담고 있을까요. 그 안에는 생각보다 정교한 음양오행의 구조가 숨겨져 있습니다. 동양의 시간 체계에서 경신일은 하늘의 기운을 나타내는 천간(天干)의 경(庚)과 땅의 기운을 의미하는 지지(地支)의 신(申)이 만나는 날입니다.

10개의 천간과 12개의 지지는 하나씩 서로 짝을 이루며 순환하며 총 60개의 조합을 만듭니다. 경신일은 그 60개의 조합 중 57번째에 해당하는 날로 하나의 순환이 끝을 향해 수렴하며 기운을 정리하고 다음 순환을 준비하는 전환의 시점에 해당합니다. 자연스럽게 이어지던 흐름을 잠시 멈추고 다시 정렬하는 리셋의 시간이라는 의미가 있는 거죠. 

 

여기에 음양오행의 의미가 더해집니다. 경(庚)은 양(陽)의 기운을 품은 금(金)을 상징하고 신(申) 역시 양금(陽金)의 기운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천간과 지지가 같은 음양오행을 가지고 있는 경우를 간여지동(干與支同)이라고 합니다.

간여지동은 에너지가 증폭된 상태를 말하죠. 한 마디로 60개의 천간과 지지의 조합 중 금의 기운이 가장 강렬하게 분출되는 날이라는 뜻입니다. 

금은 큰 산같이 움직이지 않는 의지와 결기를 상징합니다. 그리고 동시에 목의 기운을 제압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경신일은 들끓는 목의 산만함을 강렬한 금의 의지로 눌러 다스리는 날입니다. 잠들지 않고 깨어있다는 것은 단순히 벌레를 가두는 행위가 아니라 흔들리지 않는 의지로 자신의 의식과 감정과 본능을 직접 대면하고 다스리는 수행이었던 것입니다.

삼시충이라는 흥미로운 서사는 그 수행의 의미를 사람들이 몸으로 느끼고 실천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매개였는지도 모릅니다. 

 

 

오행 중 금의 기운이 가장 강한 경신일
오행 중 금의 기운이 가장 강한 경신일

 

서양 종교에도 남아있는 '철야 정진' 풍습

 

그런데 이런 풍습은 동양에만 있었을까요? 삼시충처럼 몸속의 벌레가 하늘에 고자질하러 간다는 구체적인 설정은 도교의 영향권 안에 있던 동아시아, 즉 중국과 한국, 일본에서만 나타나는 독특한 세계관입니다.

하지만 특정한 날의 밤에 잠들지 않고 깨어 무언가를 지킨다는 개념 자체는 문화와 언어를 넘어 비슷한 형태로 반복됐습니다.

기독교에는 비질(Vigil) 이라는 철야 기도의 전통이 있습니다. 초기 기독교에서 비질은 주일이나 축일 전날 밤에 이어지는 기도 예식이었습니다. 마치 중요한 약속을 앞두고 잠을 이루지 못하듯, 거룩한 날이 밝아오기 전, 잠을 자지 않고 깨어서 그날을 맞이하는 거죠.

 

그중에서도 부활절 전야는 가장 중요한 밤이었습니다. 가장 오래된 전통에 따르면, 이 밤은 주님을 위해 깨어있는 밤으로, 신자들은 손에 불을 밝히고 주님이 돌아오실 때 깨어있는 자로 발견되기를 기다린다는 의미를 담고 있었습니다. 스스로 잠을 자지 않는 것 자체가 하나의 신앙 표현이었습니다.

유대교에도 비슷한 풍습이 있습니다. 샤부오트(칠칠절) 절기의 밤, 유대인들은 밤을 새우며 토라를 공부합니다. 토라는 유대교의 가장 근본이 되는 경전으로, 유대인들에게는 신이 인간에게 건네준 삶의 언어이자, 세계를 이해하는 기준이었습니다.

 

이 밤샘 공부의 전통은 티쿤 레일 샤부오트(Tikkun Leil Shavuot)라 불리는데, 티쿤(Tikkun)은 히브리어로 '수선' 혹은 '바로잡음'을 뜻합니다. 전승에 따르면 시나이산에서 신이 토라를 건네려던 바로 그 아침, 이스라엘 백성은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고 합니다. 잠들지 않고 공부하는 것은 그때의 잠을 참회하는 행위이자 지금, 이 순간 토라를 받을 준비가 되어 있음을 증명하는 의식입니다. 

 

부활초에 불을 붙이고 있는 프란치스코 교황
부활초에 불을 붙이고 있는 프란치스코 교황

 

고대 로마에는 레무리아(Lemuria)라는 기묘한 풍습이 있었습니다. 매년 5월 9일, 11일, 13일, 집의 가장은 자정에 잠자리에서 일어나 맨발로 집 안을 돌며 검은콩을 어깨 너머로 던지고 “이것을 보내노니, 이 콩으로 나와 내 가족을 구하노라”고 아홉 번 읊었습니다.

 

이는 불온하게 떠도는 망자의 영혼인 ‘레무레스’를 달래는 의식이었습니다. 의식을 마치면 가장은 다시 잠자리로 돌아갔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이것은 밤을 새우는 수행이 아닙니다.

하지만 바로 그 점이 흥미롭습니다. 로마인들은 보이지 않는 세계가 가장 활발하게 움직이는 시간을 자정으로 보았고, 그 시간에 잠깐이라도 의식적으로 깨어 개입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밤 전체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밤의 가장 깊은 지점만을 정확하게 찌르는 방식이었습니다. 방법은 달랐지만, 어둠 속에서 눈을 뜨고 보이지 않는 것을 마주하겠다는 의지만큼은 다른 문화권과 닮아 있었습니다.

잠들지 않겠다는 결의와 잠의 가장 깊은 곳에서 깨어나 다시 의식을 붙잡겠다는 다짐들은 문화의 언어는 달라도 결국 같은 질문을 붙들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어둠이 가장 짙은 그 시간, 나는 과연 깨어있을 수 있는가.'

보이지 않는 세계를 보는 제 3의 눈, 송과체

 

흥미로운 점은 현대 뇌과학이 이 오래된 이야기에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응답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뇌 한가운데, 좌뇌와 우뇌가 만나는 정확한 중심부에 송과체(松果體)라고 불리는 솔방울 모양의 작은 기관이 하나 있습니다.

 

크기는 고작 쌀알만 하지만, 동서양의 민간신앙과 수행 집단, 종교 전통에서는 이 기관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해 왔습니다. 양 눈썹 사이에 숨겨져 있다고 믿었던 제3의 눈(Third Eye), 보이지 않는 세계를 볼 수 있는 그 눈의 뿌리가 바로 송과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데카르트는 이곳을 "영혼이 깃드는 자리"라고 불렀고, 고대 힌두 전통에서는 아즈나 차크라라고 부르며 내면의 통찰이 열리는 지점으로 여겼습니다. 동양의학에서는 인당이라는 신명(神明)이 드나드는 문이었고, 불교에서는 깨달음의 빛이 발하는 하얀 털이라는 뜻의 백호(白毫)로 불렀습니다.

 

가톨릭에서는 바티칸 한복판에 거대한 솔방울 조각상을 세워 그 의미를 새겼습니다. 도교의 세계관에서도 이 자리는 단순한 신체 기관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와 소통하는 창구였습니다.

뇌과학에서 말하는 송과체의 역할은 멜라토닌 분비입니다. 어둠이 깊어지면 교감신경이 노르에피네프린(norepinephrine)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을 송과체로 보내고, 이 신호를 받은 송과체는 멜라토닌을 합성하기 시작합니다.

멜라토닌은 뇌 전체에 신호를 보냅니다. 의식을 흐릿하게 만들고, 체온을 떨어뜨리고, 뇌를 수면 쪽으로 기울이게 만듭니다. 밤이 되면 송과체는 자동으로 우리를 잠이라는 무의식의 방향으로 밀어붙이기 시작합니다. 

 

멜라토닌을 만들어내는 뇌 속의 송과체, 제 3의 눈을 뜻하기도 한다.
멜라토닌을 만들어내는 뇌 속의 송과체, 제 3의 눈을 뜻하기도 한다.

 

수경신은 바로 이 지점에서 흥미로운 긴장을 만들어냅니다. 송과체는 잠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데 수행자는 그 흐름을 거슬러 오르는 것입니다.

이때 뇌 안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요? 어둠이 깊어질수록 멜라토닌은 "지금은 잘 시간"이라는 신호를 보내고, 긴 각성 시간 동안 뇌에 축적된 아데노신은 각성 회로를 직접 억누르며 수면 압력을 높입니다.

반면 '오늘만은 자면 안 된다'라는 의지는 각성 시스템을 깨웁니다. 뇌간 깊숙이 자리한 청반(locus coeruleus)이라는 신경세포 집단에서도 앞서 말한 노르에피네프린이 분비되는데 이 노르에피네프린은 송과체로 향하는 것과 다른 경로로 대뇌 피질 전체에 퍼지며 각성과 주의를 끌어올리는 역할을 합니다.

같은 이름의 물질이지만 하나는 잠을 부르는 방아쇠가 되고 다른 하나는 그 잠을 막아서는 방패가 되는 셈입니다. 이때 뇌는 완전한 각성과 완전한 수면 사이라는 두 힘이 팽팽하게 맞서는 경계 구간에 머무르게 됩니다.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송과체가 멜라토닌을 만들 때 거쳐가는 중간단계의 물질인  N-아세틸세로토닌(NAS)가 뇌의 신경 가소성을 촉진하는 BDNF 수용체를 직접 활성화한다는 것을 밝혀냈습니다. 즉, 송과체가 강하게 자극받는 수경신의 밤 동안 뇌는 평소보다 더 유연하고 열린 상태, 새로운 연결을 만들기 쉬운 상태에 놓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뇌파의 변화가 시작됩니다. 잠이 밀려오는데 의식적으로 버티고 있을 때, 뇌는 일상적인 각성 상태(베타파)에서도, 완전한 수면 상태(델타파)에서도 벗어나 알파파와 세타파가 교차하는 독특한 경계 구간에 진입합니다.

 

뇌과학에서는 이 상태를 히프나고지아(hypnagogia), 즉 수면 진입 직전의 문턱 의식이라고 부릅니다. 이 상태에서는 이성적 판단을 담당하는 전두엽의 활동이 현저히 낮아지고, 평소에는 걸러지던 잠재의식의 내용들이 표면 위로 떠 오르기 시작합니다.

명상 연구자 제임스 오스틴은 저서 『Zen and the Brain』에서, 깊은 명상 수련이 바로 이 히프나고지아 상태를 점점 더 오래 유지하는 능력을 길러준다고 언급합니다. 에디슨과 살바도르 달리가 의도적으로 이 경계 상태를 유도해 창의적 영감을 얻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60일에 한번씩 '자신의 내면'과 마주하다

 

수경신은 무의식에 끌려가지 않고 자신의 내면을 의식적으로 마주하는 행위였을지 모른다
수경신은 무의식에 끌려가지 않고 자신의 내면을 의식적으로 마주하는 행위였을지 모른다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수경신의 밤, 어둠과 각성이 동시에 극대화된 환경에서 송과체는 평소보다 훨씬 강하게 자극됩니다. 이 과정에서 분비되는 N-아세틸세로토닌은 뇌의 신경 가소성을 높이고, 뇌파는 히프나고지아의 경계 상태로 진입합니다.

이성의 필터가 느슨해지고, 평소에는 접근하기 어려운 내면의 층위가 열립니다. 제3의 눈이라는 별명이 붙은 기관이, 일상의 의식과 잠재의식이 교차하는 그 경계 위에 정확히 놓여 있는 것입니다.

옛사람들이 경신일 밤을 지키며 내면을 바라보았던 수행은, 수많은 종교와 민간신앙에서 밤을 지새우는 전통이 있는 것은 어쩌면 의도치 않게 이 경계 구간을 능동적으로 열어두는 행위였는지 모릅니다.

 

잠들면 닫혀버리는 그 문을, 깨어있는 의지로 붙잡아 두는 것은 무의식에 끌려가지 않고 자신의 내면을 의식적으로 마주하는 행위를 신화적 언어로 표현한 것이었을 수 있습니다.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와 봅니다.

“아까 그 말은 하지 말걸. 내가 왜 그랬을까.”

이 목소리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이 소리는 가장 조용한 순간에 갑자기 찾아와 우리의 실수를 꺼내 놓고, 부족함을 들춰내고, 수명을 조금씩 갉아먹습니다.

 

멍하게 의식을 놓치고 있는 순간, 내 생각과 감정과 욕망을 누가 운전하고 있는지 모른 채 습관적으로 끌려가고 있는 그 사이에 벌레들은 해명하지 못한 잘못들을 가지고 하늘로 올라갈지도 모릅니다.

수경신은 60일에 한 번 밤을 새우는 형식적인 행위가 아닙니다. 60일에 한 번씩, 천간과 지지의 순환을 마무리하며, “나는 지금 깨어있는가?”라는 본질적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는 직관적인 의식이었습니다. 예전처럼 만세력을 쓰지 않는 현대에, 하루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지금 시대에, 굳이 잠을 자지 않으며 경신을 챙길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하루를 마무리하며, 혹은 일주일, 한 달이라는 자신만의 순환 주기를 마무리하며, 잠시 멈추고 스스로에게 물어보면 됩니다. 

“지금, 이 순간 나는 깨어있는가?” 

 

구독자님, 호린이 준비한 이번 뉴스레터를 통해 새로운 영감을 얻으셨을까요?
실제 60일마다 잠을 자지 않는 수경신은 명상과도 깊은 관계가 있는데요,

오는 3월 27일(금) 저녁, 호린이 명상에 대해 궁금한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 직접 차명상을 체험할 수 있는 작은 찻자리를 마련했어요. 

글쓰는 명상가 기율님이 진행하시는 3월 명상다회에 호린 피플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공간 특성상 8분만 모실 수 있어서요, 관심 있는 분들은 주저말고 신청하세요!

 

Holyn Lab은 영성인문학 연구팀으로 모든 종교를 존중하지만 특정 종교나 단체에는 소속돼 있지 않습니다. Holyn 뉴스레터는 격주 금요일에 발송되며 지금은 무료로 구독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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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로콜리

    0
    15 days 전

    날짜가 어쩜. . .^^;;; 신기해요~ 여행일정으로 참석못하는마음 응원하기로 보냅니다. 이번 뉴스레터 너무 흥미로워요! 😊

    ㄴ 답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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