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 명상러인 저는 명상 시작한지 1년 정도 됐습니다. 그동안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주말이면 빠짐없이 명상수업에 나갔습니다. 초반 3개월 정도는 솔직히 쉽지 않았어요. 눈을 감으면 졸음이 몰려오거나 온갖 잡생각에 빠지거나 둘 중 하나였으니까요. 명상하면서 수없이 현타를 맞으면 자연스럽게 이런 생각이 떠오릅니다.
‘이렇게 일주일에 한 번 명상한다고 뭐가 달라질까?’
그때 흔들리던 저를 잡아준 것은 저의 명상 스승이자 호린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신기율님의 한마디였습니다.
“명상은 단순히 긴장과 스트레스를 이완하려고 하는 게 아닙니다. 명상을 오래 하면 뇌신경회로가 바뀌고 나와 세상과 소통하는 ‘직관’이라는 새로운 감각이 열리게 됩니다.”
가만히 앉아서 숨만 쉬었을 뿐인데 뇌신경회로가 바뀐다니! 저에게는 너무나 흥미로운 얘기였죠. 하지만 기율님이 말하는 ‘직관’은 도대체 무엇을 말하는 건지 감이 안 왔습니다. 명상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는 특별한 능력, 직관이란 과연 무엇일까요?
구독자님, 이번 뉴스레터는 이런 내용으로 준비했어요!
1. 인간의 두번째 의식, 무지향의식이란?
2. 최고의 무지향의식 훈련법, 명상
3. 명상을 하면 뇌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까?
4. 1년간 명상을 하고 바뀐 것들
우리가 말없이 '눈빛'만으로 통하는 이유
“우리 인간은 두 가지 종류의 의식을 갖고 있습니다. 하나는 ‘지향의식’입니다. 어떤 사물을 볼 때 관찰하고 분석하고 비교하고 판단하는 등 논리적인 추론을 통해 답을 내리는 것이죠. 지향의식은 명확한 방향과 목적성이 있는 의식입니다. 일상에서 우리는 지향의식으로 많은 것들을 결정합니다.
다른 또 하나의 의식은 ‘무지향의식’입니다. 말 그대로 목적성이 없는 의식이죠. 무지향의식도 관찰까지는 똑같이 합니다.
하지만 그 뒤에 분석하거나 해석하고 추론하지 않습니다. 논리적인 분석 없이 관찰만으로 즉각적으로 답을 아는 것. 그것이 바로 직관이죠. 이런 직관이 쌓이면 자연스럽게 원하던 해답이나 의미를 깨닫게 됩니다. 바로 명상에서 말하는 ‘알아차림’, 혹은 ‘통찰’이라 부르는 것이죠.”
기율님이 말하는 ‘무지향의식’은 저에게 너무나 생소한 단어였습니다. 분석과 추론 없이 답을 안다는 것이 현실에서 가능할까요? 그런데 사실 저는 생각보다 ‘직관’을 많이 쓰고 있었습니다. 아주 단순하게는 이런 것들이죠.

팀 회의를 하는데 팀장이 30분 째 꼰대 같은 소리를 하고 있습니다. 반대편에 있는 동료와 눈이 마주친 1~2초의 순간, 수많은 얘기가 오고갑니다. 눈빛 하나로 팀장 욕은 물론, 서로에 대한 위로, 조금만 참자는 격려까지 끝냅니다. 여기에는 어떤 분석과 논리적 추론도 필요 없습니다. 순간적인 공감을 통해 그냥 ‘아는’ 것이죠.
또 이런 일도 있습니다. 지인을 통해 괜찮은 사람이라며 누군가를 소개 받았습니다. 처음 봤을 때 예의바르고 나이스한 사람이었죠. 그런데 그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어딘가 모르게 불편하고 찜찜합니다. 왜 불편한지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협업은 안 하는 게 좋겠다고 판단합니다. 그런데 얼마 뒤, 그를 둘러싼 안 좋은 얘기들을 듣게 됐습니다. 설명할 수 없었던 찜찜함이 맞았던 것이죠.
인간의 생각을 움직이는 '이중 시스템'
한 분야에서 장인의 경지에 오른 사람이나 천재적인 예술가들은 이런 직관을 일상적으로 사용합니다. 수 십 년간 흙을 만진 도예가는 흙을 만지는 순간, 이 흙으로 작업하면 될지 안 될지 순간적으로 판단합니다. 이 흙의 습도가 몇 퍼센트인지 측정하지 않아도 손끝의 미세한 감각으로 흙의 컨디션을 파악하는 것입니다.
빌 에반스(Bill Evans) 같은 재즈 피아니스트는 즉흥 연주 중 다음 음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손가락이 먼저 움직이고, 그 순간 '맞다'는 확신이 옵니다. 수십 년간 쌓인 패턴이 의식적 판단 없이 완벽한 하모니로 나타나는 것이죠. 저 역시 이런 ‘전설’ 같은 얘기들을 수없이 들어봤습니다.
하지만 재능을 타고난 소수의 특별 케이스라고만 생각했죠. 그런데 이런 무지향의식은 특별한 사람만 갖고 태어나는 게 아니라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는 본능 같은 것입니다.
세상에 해와 달이 있고 만물에 음과 양이 있듯, 우리의 마음에도 지향의식이 있다면 그 반대편에 무지향의식이 공존하는 것이죠.
이런 마음의 이중적인 시스템은 실제로 많은 연구자들의 학문적 탐구대상이었습니다. 대표적인 사람이 2002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심리학자 다니엘 카너먼(Daniel Kahneman)이죠. 그는 ‘이중처리 이론(Dual Process Theory)’을 통해 인간의 사고과정을 두 개의 시스템으로 분류했습니다.

시스템1(System1)은 빠르고 자동적이며 직관적인 사고입니다. 상대방의 화난 표정을 보면 순간적으로 '화났구나'를 알아차린다던가 운전 중 자동으로 브레이크를 밟는 것 등이죠. 노력이 필요 없고, 논리적 추론 과정을 거치지 않습니다. 축적된 경험으로 바탕으로 패턴을 인식해 보자마자 본능적으로 몸과 마음이 움직입니다.
반면 시스템2(System2)는 느리고 의도적이며 논리적이고 분석적인 사고입니다. 복잡한 수학 문제를 푼다던가 투자 리스크 분석을 할 때처럼 의식적인 노력과 집중이 필요하죠.
카너먼은 시스템2를 작동하려면 뇌 에너지가 많이 들기 때문에 일상에서는 대부분 시스템1을 활용한다고 했습니다. 때문에 좋은 의사결정을 하려면 시스템2로 시스템1을 수정하거나 보완하라고 강조했죠.
카너먼의 지적처럼 우리는 어려서부터 시스템2로 시스템1을 제어하는 법을 배웁니다. 감정이나 본능에 끌리지 않고, 확증편향에 빠지지 않기 위해 학습하고 세상을 분석하는 법을 훈련받습니다. 때문에 우리의 지향의식은 나이가 들수록 함께 성장합니다.
반면 중요한 마음의 또 한 축인 무지향의식은 유아기 상태에 머무릅니다. 나이 마흔이 되어도 표정을 보고 감정을 알아채는 정도밖에 하지 못하는 것이죠. 지향의식처럼 체계적으로 훈련받은 적이 없으니까요. 직관은 애초부터 우리사회에서 트레이닝의 대상이 아닙니다.
논리와 인과를 찾기 어렵고 비언어적인데다 측정하기도 어려우니까요. 때문에 논리적인 설명 없이 단번에 답을 찾는 고차원적 직관은 몇몇 천재들의 케이스, 혹은 특별한 능력을 가진 샤먼들의 신비주의 영역으로만 남아있었습니다.
무지향의식을 체계적으로 훈련시키는 명상
그러나 지혜로운 인간들은 이미 수천 년 전부터 자기주도적으로 무지향의식을 훈련시키는 방법을 알아냈습니다. 바로 그것이 수행자들이 해왔던 ‘명상’입니다. 선불교에서 자주 회자되는 말 중에 ‘불립문자(不立文字)’ ‘직지인심(直指人心)’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문자를 세우지 않는다’는 뜻의 불립문자는 진리는 언어와 개념으로 완전히 표현될 수 없음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말입니다. ‘사람의 마음을 바로 가리킨다’는 뜻의 직지인심도 우회하지 말고 직관으로 마음의 본성을 알아차리라는 뜻이죠.

“선승들이 수 천 년 간 해온 수행의 핵심이 바로 이거예요. 분석하고 해석하는 것을 멈추고, 있는 그대로를 직접 보는 훈련, 바로 무지향의식을 깨우는 수련이었던 것이죠. 명상은 바로 이 직관을 체계적으로 훈련하는 방법입니다. 사마타 명상(Samatha) 은 평온하게 멈춘다는 뜻이에요. 횡적인 분석을 멈추는 거죠. 위빠사나(Vipassana)명상은 전체를 본다는 의미로 나를 둘러싼 세상을 통찰할 수 있는 시야를 넓혀줍니다. 한마디로 명상은 단순히 마음을 비우는 게 아니라 분석적 사고를 멈추고 직관적 통찰력을 기르는 과학적 훈련인 것이죠.”
저는 그동안 기율님으로부터 사마타 명상과 위빠사나 명상을 배웠습니다. 사실 방법은 어려울 게 없습니다. 사마타 명상은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생각을 따라가지 않고 호흡이 오가는 코 끝에 의식을 집중합니다. 위빠사나 명상은 반대로 어떤 생각이 떠오르면 그 생각을 계속 관찰합니다.
마음속에 구름이 떠오르면 그 구름이 어떤 모양으로 변하는지 어떤 색깔로 변하는지 변화의 흐름만 관찰합니다. 구름의 특성을 분석하거나 다른 구름과 비교하지 않습니다. 왜 변하는지도 묻지 않습니다. 그저 그 대상이 어떻게 생겨나고 변해가고 소멸해가는 지만 고요히 지켜볼 뿐입니다.
조용히 눈을 감고 앉아 내면에 집중하고 관찰하는 행위. 어떻게 보면 대단할 것 없는 이 훈련이 어떻게 직관을 깨우고 통찰을 일으킬 수 있을까요. 논리적으로 분석해보면 이 또한 답이 안 나옵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분석적인 과학자들은 결과적으로 이 가설이 맞다는 것을 증명했습니다. 명상을 할 때 뇌에서 직관을 담당하는 부분이 크게 활성화되는 것이 실험으로 확인되었기 때문입니다.
티베트 수행자들의 뇌파에서 폭증한 '이것'
2004년 노스웨스턴 대학(Northwestern University) 연구팀을 비롯한 여러 신경과학자들이 발견한 바에 따르면 번뜩이는 통찰의 순간, 우리 뇌에서는 감마파(Gamma Wave)가 폭발적으로 증가한다고 합니다.
또한 전대상피질(ACC, Anterior Cingulate Cortex)이라는 뇌영역이 활성화 된다는 것을 관찰했죠. 그런데 같은 해 발표된 데이비슨 박사(Dr. Richard Davidson, 현재 위스콘신 대학교 University of Wisconsin-Madison 심리학과 교수)의 티베트 승려 연구에 다르면 명상수행을 오랫동안 한 티벳 수행자들은 감마파 진폭이 일반인에 비해 현저히 증가하며 평상시에도 높은 감마파가 유지되는 것이 확인됐습니다.

감마파는 뇌파 중 가장 빠른 주파수(30-100Hz)로, 1초에 30번 이상 진동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빠르다'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습니다. 일반적인 뇌파가 뇌의 특정 영역에서만 활동한다면, 감마파는 뇌 전체를 하나로 연결시키는 특별한 역할을 합니다.
마치 인터넷 속도가 빨라지면 더 많은 정보를 동시에 처리할 수 있듯이 감마파가 활성화되면 우리 뇌도 훨씬 더 많은 정보를 통합적으로 처리할 수 있게 됩니다.
또한 이번 연구에서 티베트 승려들의 전대상피질 역시 지속적으로 활성화 되어 있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전대상피질은 뇌의 중앙부에 위치한 영역으로 감정, 인지, 행동을 통합하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나무만 보는 것이 아니라 전체 숲을 볼 수 있는 시야를 만들어주는 것이죠.
또한 뇌회로를 조율해 불안도를 낮추고 미세한 내적 변화, 약하게 활성화된 무의식적 해답을 탐지하고 중요한 정보를 선별하는 역할을 합니다. 이를 종합해 보면 명상할 때 티베트 승려들의 뇌는 '마음이 평온한' 상태가 아니라, 오히려 최고 수준으로 활성화되어 있음을 보여줍니다.
명상은 뇌를 쉬게 하는 것이 아니라, 무의식 영역까지 잠재된 모든 정보를 찾아내 단번에 세상의 본질을 꿰뚫어보는 엄청난 훈련이었던 것이죠.
그렇다면 이렇게 명상을 통해 갈고 닦은 직관과 통찰, 즉 무지향의식은 삶의 어느 영역에서 빛을 발할까요? 가장 먼저는 우리의 ‘마음’입니다. 하루에도 수십 가지로 변하고, 목적도 없고 비논리적인 감정과 생각이 이유도 없이 반짝거렸다 사라지는 마음은 무지향의식의 고향이자 서식지 같은 곳입니다.
그래서 우울증, 불안, 무력감 같은 마음의 문제는 지향의식으로는 해결이 잘 안됩니다. 힘들었던 순간을 계속 미분하며 내가 그 때 왜 그랬고, 당시 감정은 어땠고 원인이 무엇인지를 아무리 논리적으로 분석 해봐도 해결이 안됐던 경험, 다들 있으실 거예요. 오히려 아픈 기억을 계속 소환하느라 마음만 더 힘들어지죠.
정신건강 문제가 늘어나는 것은 복잡한 사회적 요인들이 있겠지만 마음의 문제를 너무 분석적으로만 접근하는 것도 한 요인일 수 있습니다. 때로는 방법을 제시하는 친구보다 말없이 눈빛으로 공감하는 친구의 따뜻한 어깨가 훨씬 더 마음을 치유해주듯, 저에게도 명상은 그런 존재였습니다.
왜 마음의 문제는 논리로 풀리지 않을까
1년 전, 제가 처음 명상을 시작했을 때 심리검사에서 불안과 스트레스는 최고 수준을 기록했습니다. 스마트워치를 차면 평균 심박수가 90에 달했죠. 그런데 감사하게도 지금은 모두 정상수치로 돌아왔고 늘 한 몸처럼 살았던 불안도 훨씬 덜 해졌습니다.
예전에는 성과에 급급해 내 몸과 마음이 어떤 상태인지조차 몰랐다면 이제는 실시간으로 알아차립니다. 부족해도 스스로를 야단치거나 몰아세우지 않고 따뜻한 시선으로 마음에게 말을 겁니다. 제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어떤 길로 가야 할지도 조금은 선명하게 보게 됐습니다.
마치 드론으로 위해서 나를 조망하듯 나에게 지금 일어난 일이 어떤 의미인지, 이것이 무엇과 연결되는지 어렴풋이 보게 된 것이죠.
장인이나 예술가들이 자신의 분야에서만 한정된 직관을 발휘한다면 저는 저라는 사람을 다루는 장인이 되고 있습니다. 그동안 저는 발밑만 보고 살아왔습니다. 세상을 분석하고 잘게 미분하면서 바로 눈앞의 현실만 보고 살았죠.
그러나 명상을 하면서 저는 원래 저한테 ‘고성능 드론’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신이 공평하게 주신 선물이지만 그 존재를 아는 사람만 쓸 수 있는 드론이죠. 눈으로는 발밑의 현실을 보고, 드론을 통해서 넓고 통합적인 시야로 내가 지금 어디쯤 와 있는지를 동시에 살핍니다.
이렇게 지향의식과 무지향의식이 서로의 부족한 점을 보완하면서 내가 둘 다 자유롭게 쓸 수 있다면 하나만 쓸 때보다 조금 더 편안하고 후회 없는 인생을 살 수 있지 않을까요?
구독자님도 명상을 통해 무지향의식을 깨우고 직관의 힘을 활용해보시기 바랍니다. 처음이라면 하루 5분, 조용히 앉아 호흡을 관찰하는 것부터 시작해보세요.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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