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호] AI 영화는 어디를 향해 가고 있을까? AI 기술과 영화 제작 권력 구조의 재편 가능성

💌 뉴스레터 70호

😎8월 첫째주, 인디&임팩트 70번째 뉴스레터입니다~

🎦이번 호는 AI영화 소식으로 찾아왔습니다. 얼마 전 막을 내린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는 국내 최초로 AI영화 국제경쟁 부문을 도입하며 많은 이들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는데요, 이번 호에서는 영화제 관람 경험을 바탕으로 AI영화가 특히 신진 영화 창작자들에게 어떤 가능성을 가져다줄 수 있는지 살펴봅니다.       

🟠날이 많이 무덥습니다. 모두들 무더위 속에서도 지치지 말고 건강 잘 챙기시기 바랄게요~🌅

AI 영화는 어디를 향해 가고 있을까?

: AI 기술과 영화 제작 권력 구조의 재편 가능성

스물여덟 번째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의 리브랜딩과 함께 AI 영화 국제경쟁 부문을 국내 최초로 도입한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영화제 측의 과감함과 적극성에 짐짓 놀랐다. 한국영화계에서 AI 영화에 대한 논의가 대두되기도 전에 영화제의 간판을 AI로 바꿔 달 정도로 자신감을 내비쳤다고 생각했기에 내심 기대를 걸고 AI 영화 섹션 초청작들을 관람했다.

영화제는 영상, 시나리오, 사운드 등의 제작 과정에 AI 기술을 활용한 열다섯 작품을 선보였다. 실사 촬영본과 생성형 AI로 만든 영상을 혼합하거나 사람이 작성한 시나리오를 AI 보이스를 활용해 사운드로 변환하는 등 작품마다 AI 기술을 접목한 방식은 각양각색이었다. AI 보이스는 이제 녹음본과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억양과 음색이 자연스러웠으며, 영상의 경우 실사와 애니메이션의 사이 어딘가에 있는 느낌을 받았다.

대부분의 결과물은 작품 자체의 완결성을 갖추기 위한 최선의 노력을 보여줬고 그것만으로도 개별 작품의 탄생 가치는 충분해 보였다. 개인적으로는 인간의 욕망을 AI 기술이 어떤 방향으로 확장해 나갈 것인지에 대한 힌트를 제공했다고 보이는 영국의 미디어 아티스트 애덤 콜의 <키스/크래시>를 인상적으로 봤는데, 영화제는 기존 영상 문법에 기초한, 아름다운 비주얼과 따뜻한 내레이션을 기반으로 한 작품에 작품상을 안겨줬다.

작년만 해도 어설픔이 느껴지던 AI 영상들이 빠르게 발전한 모습에 새삼 놀라지 않을 수 없었고, 저마다 AI 영화 제작의 선발대 역할을 자처하며 수분 남짓의 작품에 수백 번의 시행착오를 겪었을 영화 창작자들에게 박수를 보내주고 싶었다. 또한 대부분의 생성형 AI가 영어권 국가에서 개발되어 활용 상 언어의 장벽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창작자들의 선전이 돋보인 점도 눈에 띄었다.

다만 영화제가 AI 영화를 다루는 방식이 기존의 실사 영화 중심의 그것과 다르지 않았다는 점은 한계로 남았다. 물론 AI 영상 전문가가 참여한 심사위원단에서 작품 심사를 맡아 기술적 전문성 면에서 부족하다는 평을 들을 걱정은 없겠지만, 앞으로 영화계의 지형을 뒤엎을 수도 있는, 영화계의 "뉴비" AI 기술을 전통적인 권력 체계로 평가하고 권위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접근하는 안이함을 보이고 말았다. 과학기술 선진국답게 AI 영화를 기술적 산물만으로 보고 최대한 빠르게 기존 영화 산업과 시장에 안착시키고자 하는 목적성이 강하지 않았나 싶다.

AI 기술로 가속화될 영화계의 가장 중요한 변화는 다름 아닌 영화 제작 권력의 분산에 있다고 본다. 현재의 선형적이고 위계적인 영화 제작 과정은 신진 창작자의 자유로운 진입과 성장이 쉬워질 수 없는 근본적인 원인이다. 전통적인 영화 제작 시스템은 산업화를 거쳐 결국 포드식 컨베이어벨트와 다를 바 없어졌고, 창작자 개인의 창의성과 자유도보다 영화 생산 조직의 분업화와 전문화를 우선하여 발전해 왔다. 때문에 숙련된 영화 제작자들의 손에서 획일적이고 다양성이 결여된 영화들이 양산되는 구조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AI 기술은 이 권력 체계를 전복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여러 명의 보조작가를 둘 수 없는 신인 각본가, 수억 원 대의 VFX를 꿈도 꾸지 못하는 신인 감독, 수천만 원대의 카메라와 이를 운용하기 위해 필요한 스태프들이 부족한 촬영자 등 영화를 만드는 데에 신진 창작자에게 부족한 것은 실력보다는 권력이다. 인적 자원과 물적 자원을 동원할 수 있는 권력을 손에 넣어야 비로소 본인의 이름을 건 작품을 관객들에게 선보일 수 있다.

영화계에서 이 실력과 권력은 필요충분조건으로 읽히기 쉽다. 하지만 꼭 그렇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 각종 영화제에서 두각을 나타냈던 신진 창작자들은 영화인으로서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하기 위해 자신의 역량을 갈고닦기보다 작품을 밀어줄 제작자와 투자자를 찾는 게 우선이다. 여성 영화인의 헤드 스태프 비율은 여전히 30%를 밑도는 수준이다. 헤드 스태프와 고용계약 관계로 맺어지지 못하는 보조 스태프들이 직업적 안정성을 높이기 위해서 현장 밖에서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나? 이들 모두 자신의 역량 개발을 우선순위로 놓고 영화 일을 하고 있다고 말하기는 힘들 것이다.

지금 AI 기술에 달려들고 있는 주체들은 영화 제작 자본을 절감하고자 하는 대형 스튜디오와 영화계 권력과 생산수단 및 자본을 획득하지 못한 신진 창작자들로 양분된다. AI 기술 자체에는 의도가 없지만, 그것을 활용하는 주체들은 모두 의도를 가지고 있다. 어떤 의도가 먼저 실현될지는 아직 미지수다. 자본의 측면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는 측의 의도가 좀 더 빠르게 관철되지 않을까 싶지만, 지난해 여름 할리우드 작가·배우 조합 파업의 사례를 보면 반드시 그렇게 되리라는 보장은 없는 것 같다. 다만, 우리나라도 같은 양상을 보일 것이라 단정할 수는 없겠다.

벌써 이런 전망을 내놓는 것이 대단히 성급하다고 생각하기는 하지만, AI 기술이 신진 창작자들의 천군만마가 되어 영화 제작의 개인화 및 소규모화가 실현된다면 상업영화와 독립영화, 대작 영화와 저예산 영화의 구분이 없어질지도 모른다. 현장에서 퍼스트와 세컨드, 써드 등의 직급이 무의미해질 수도 있다. 말 그대로 누구나 영화를 만들 수 있는 시대가 올 수도 있다. 단, AI 기술에 대한 보편적 접근성이 보장된다는 전제가 필요하기는 하다.

그러나 AI 기술을 발전시키는 목적이 현재 영화 제작 시스템과 권력 시스템의 효율성과 지배력을 높이기 위해서라면 젊은 영화인들이 AI 영화에 뛰어들 필요가 전혀 없다. 슬레이트를 드는 대신 프롬프트를 입력할 뿐, 지금과 똑같이 헤드 스태프의 컨펌을 기다려야 한다면 그것이 진정 AI 기술의 혜택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아무리 빼어난 AI 영화를 만들어 냈다고 하더라도, 스크린을 확보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고 프라임 타임에서 밀린다면? 글로벌 OTT에 납품할 작품을 AI 기술로 만들었으니, 제작자에게 보전해 줄 제작비를 큰 폭으로 줄인다고 하면 대책이 있나? 결국 중요한 것은 AI 기술의 발전 속도가 아니라 방향과 목적일 수밖에 없다. AI 영화는 어디를 향해 가고 있을까?□

참고자료

1.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부천초이스 AI영화 섹션

2. KOFIC 현안보고 2024_Vol.02 <2023년 한국영화 성인지 결산>

3. [Kiss/Crash] Adam COLE

4. [Where Do Grandmas Go When They Get Lost?] Léo Cannone (작품상 수상작)

🎞️글쓴이. 김창섭

영화 및 영상 콘텐츠 제작, 유통 스타트업 <필름메이크어스> 대표. 한국영화계 신진 창작자들과 함께 성장하는 콘텐츠 브랜드를 만들고자 합니다.

본 뉴스레터는 미디어운동에 대해 새롭게 질문하고 좀 더 발전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여러 사람들이 함께 고민하고 찾아가기 위해 발행됩니다.

미디어 환경이 빠르게 변화하고 각종 담론과 현상이 범람하는 가운데 과연 우리가 주목해야 할 대상은 무엇인지, 사람들의 삶을 개선하는 데 있어 정작 중요하게 필요한 미디어의 변화는 무엇인지 관점을 제공하는 공간을 만들고자 합니다.

앞으로 2주마다 다음과 같은 내용을 가지고 여러분께 찾아갈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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