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는 했지만 인생은 계속된다_역사이야기선생님 정화연_생활기록자우연

(역사이야기 선생님 & 북 나레이터 _ 정화연 인터뷰)

2023.07.20 | 조회 57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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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인터뷰해 드립니다

나다운 길을 걸어가는 당신을 인터뷰해 드립니다.

[인터뷰이 정화연]

- 역사이야기 선생님 & 북 나레이터

퇴사 후 그린 자화상, 연필 드로잉 
퇴사 후 그린 자화상, 연필 드로잉 

 

먼지처럼 사라지고 싶었어요.”

그녀는 영화 어벤져스의 빌런 '타노스'가 손가락을 튕기면 그 순간 보고싶지 않은 사람들, 하고싶지 않은 일들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상상을 하곤 했다. 그 마법 같은 순간은 퇴사였다고 했다.

“11년간 다녔던 회사에서 퇴사하던 날, 지하주차장 구석에 주저앉아 짐승처럼 울었어요. ‘정팀장은 회사에 뼈를 묻을 줄 알았어. 너무 열심히 했어. ‘퇴직인사로  그 말을 듣는데 소름이 돋았어요. 열심히 사는 것이 나의 트레이드 마크였는데, 나의 열심이 그 순간 굉장히 혐오스럽게 느껴졌어요. 그날 나의 30대 청춘을 송두리째 도난당한 것처럼 억울했어요. 어찌나 나에게 미안하던지.”

퇴사 직후 뭘 가장 먼저 했냐는 질문에, 30분을 더 울고, 평소처럼 유치원에서 아이를 픽업하러 갔다고 했다. 그 뒤에는 밥상을 차렸고, 설거지를 했다고 한다.   세번째 퇴사라 퇴사자체는 익숙했다고 했다. 그런데 무엇이 그녀를 이토록 황폐하고 다 타버린 재처럼 만들었는지 그녀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 전 직장에서는 어떤 일을 했나요?

다국적 기업에서 프로젝트 매니저로 일했어요. 저의 고객사는 주로 글로벌 에너지개발, 발전 플랜트 기업으로 지멘스 미쓰비시, 삼성엔지니어링 등이 있었어요. 한달에 보통 400개의 크고 작은 프로젝트가 동시에 돌아가는데, 전체 스콥과 버짓, 마진, 스케줄을 관리하고, 돌발 변수가 생기면 수많은 유관 부서와 커뮤니케이션해서 신속하게 대응하고, 진척도를 체크하여 고객사에 정기 업데이트를 해주는 일이 PM의 역할이었어요. 우리 팀 프로젝트가 우선순위에서 밀리지 않도록 유관부서와 늘 싸워서 이겨야 했어요.

 

불편한 사람이 되려고 애썼어요

중공업 분야에서 PM(Project manager) 팀장까지 초고속 승진한 그녀는 드문 케이스였다. 쉽고 만만하게 보이지 않기 위해 가면을 쓰고 갑옷을 입었다. 성과만 따지는 쌈닭, 까칠한 모난 돌이 되는 것이, 나이 어린 여성 팀장으로 살아남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퇴근후에는 여섯 살 아이의 엄마로 출근해야 했기에 타인에게 관심을 가질 여력이 눈곱만큼도 없었다. 팀장 2년차까지는 아이를 재우고 1~2시간 쪽 잠을 자며 새벽까지 일을 멈출 수 없었다고 했다. 직급이 올라갈수록, 그녀만 아는 자신의 부족한 바닥을 들킬까 더 두려워졌고, 매순간이 긴장의 연속이었다. 일의 파도 앞에 서 치열하고 고독한 전투를 치르다 문득 돌아보니, 주변에 아무도 없었다고 했다.

 

- 그렇게 까지 열심히 하게한 동력이 뭐였나요?

저는 한번도 목표에 미달해 본적이 없고, 고객과의 약속을 어긴 적이 없었어요. 처음에는 욕먹기 싫어서였어요. 제가 항상 모자란 것 같아서 채우려고 악착같이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어요. 이후에는 고객의 Thankyou 피드백이 마약 같았어요. 누군가의 좋은 피드백에서 나의 가치를 찾으려 했던 것 같아요.

 

- 퇴사를 결정한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을 못 보고,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정신이 번쩍 들었어요.” 만성 두통과 관절에 통증이 찾아왔다. 몸의 시그널을 무시하고 반년을 더 버티다 더는 열심히 할 수 없다는 것을 직감했다고 했다. 에너지 레벨이 바닥을 찍었을 때 그제서야 멈출 수 있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밥벌이 걱정을 멈추고 마음을 따라 살기를 선택한거 였다.

 

-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고, 성취한 게 많은데, 왜 늘 부족하다고 생각했나요?

“ 중3때 체육특기생을 그만뒀어요. 돌아온 교실은 이방인이 된 것처럼 낯설게 느껴졌어요. 공부를 제대로 해본적이 없어서, 이미 너무 늦은 것만 같았죠. 그래도 죽을 힘을 다해 막판 스퍼트를 내면 기회는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녀는 초등학교 때부터 시작한 수영부 주장이 였고 막연히 수영을 계속 하다 보면 체대에 가서 국가대표가 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사춘기 무렵, 신체조건이 훨씬 뛰어난 선수들의 기록을 보며 운동선수로 먹고살기 힘들겠다 생각했고 수영을 접었다. 고등학교 입학시험을 몇 달 앞둔 가을이었다. 영어 수학에 기초가 없었지만, 정신력과 체력은 누구보다 강했다. 암기과목에 집중해서 성적을 올릴 수 있었다고 했다.

 

 어릴 때 꿈은 성우였어요. 서울예대 성우학과로 진학하고 싶었는데 입밖으로 꺼내보지도 못한 채 마음을 접었어요

그녀는 고등학교 교내 연극부에 들어가서 처음으로 가슴뛰는 일을 만났다. 부원들과 함께 몰입하여 연습하고 무대위에서 그녀의 낭랑한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관객들이 환호할 때의 기쁨을 잊을 수 없었다고 했다. 타고난 재능을 알아본 지도교사가 추천서를 써 주신다고 성우학과 로의 진학을 권했다고 했다.  

잔소리 한번 안 하셨던, 엄마가 처음으로 셋째인 너는 국립대에 가줬으면 한다고 하셨죠.”

가난한 형편은 아니었지만 연연 생이던 네 자매가 순차적으로 대학생이 될 무렵부모는 등골이 휠 지경이 되었다. 공대가 취업에 유망하다 하여, 성적에 맞춰 재료공학을 전공하게 되었다. 예술가를 꿈꾸었던 그녀와 공과대학은 전혀 맞지 않았다. 끔찍하게 싫었지만 습관처럼 열심히 하다 보니 과대표도 하고 괜찮은 성적으로 졸업할 수 있었다.  

 

중국 관광통역 안내사 자격증이 있으신 데, 중국어는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어요?   

어느 날 중문과 친구가 뛰어가고 있길래, '어디가?' 했더니, 교환학생 접수 마지막날이라 신청하러 간다는 거예요. ‘공대생도 신청할 수 있어?’ 라고 물으니 전공무관이라는 답을 듣자마자 따라 가서 접수했어요."

 "교환학생으로 선발되어, 중국 산둥 대학교에서 1년간 공부할 때가 대학시절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었어요. 제가 정말 중국어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았어요. 1년 과정을 마치고 돌아가기 직전, 현지 교수님이 실력이 일취월장하고 있는데 너무 아깝다며 1년만 더 중국에 남아 공부를 해보는 걸 제안 하셨고, 이참에 중문과로 전과하는 게 어떻냐고 제안하시기도 했어요. 그때도 저는 어중간한 중국어보다는 더 안정적인 화학교육과로 전과를 시도했으나 실패했어요.

중국 계림에서 
중국 계림에서 

- 외국계 회사에서 해외영업으로 커리어는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어요?

두번째 직장에서 근무할 때였어요. 링크드인에 올려진 제 이력서를 보고 헤드 헌터로부터 연락이 왔어요. 업계에서 꽤 전도유망한 외국계회사의 해외영업파트로 이직 제안이 였어요. 듣자마자 나와 맞지 않는 자리라는 걸 알았지만 그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어요. 영어에 자신이 없었는데도 덜컥 제안을 수락해버렸죠."             

"이직한 회사는 영국계 회사라 대부분 소통을 비즈니스영어로 해야 했어요. 덕분에 11년을 영어로 인해 엄청 스트레스 받았죠. 회사에서 영어를 가장 못하는 사람이 나인 것 같았어요. 팀장이 되고 영어로 PT를 해야 할 일이 더 많아졌는데, 미국 시민권자나 유학 후 입사한 후배들 앞에서 실력이 들통날까 늘 조마조마했고, 잠 줄여가며 공부했어요.”  

그녀는 누구보다 매순간 열심히 살면서도 채워지지 않는 부족함에 스스로를 채찍질하면서 수많은 고비를 넘겼다. 그때부터 노력의 힘을 믿게 되었다고 한다. 노력을 하면 못할 게 없구나. 꿈 없는 노력이 얼마나 무의미하고 지속 가능하지 않는 허상인지 퇴사 후에야 깨달았다고 했다.

 

- 이쯤되니 싫어하는 일 외길인생을 사셨네요. 왜 고된 가시밭길로만 스스로를 내몰았나요?

“좋아하는 일을 하면, 배고플 거라 막연히 생각했던 것 같아요."

선택의 순간마다, 나와 안 맞는 길임을 알면서도 안정적이고 현실적인 길을 선택했다 생각했어요. 어느 순간부터 어떤 사소한 결정에도 는 없었던 것 같아요. 세상사람들이 정답이라 말하는 안정적인 길을 선택했을 뿐인데 안정의 끝이 번 아웃이라니 아이러니 하네요.”

 

- 퇴사한지 8개월이 지났는데, 어떻게 지내세요? 

처음으로 좋아하는 일만 하며 보내고 있어요

퇴사 후에도 걱정과 쓸모의 망령에서 벗어나는 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했다. 주간, 월간 보고에 맞춰 숫자로만 인지하던 계절의 변화를 햇빛과 바람과 나뭇잎의 흔들림, 생생한 자연으로 느낄 수 있게 되었다. 대낮에 회사 반대편 한적한 동네 커피숍에서 쇼원도우 밖 녹음을 내다보며 비로소 자유로워 졌음을 알았다고 했다. 

 

몇 달 전부터 북 나레이터 심화과정에서 낭독훈련을 하고 있어요."

"코치가 타고난 목소리 베이스가 너무 좋고 끼가 있다. 그런데 너무 늦게 와서 아깝다라고 피드백해 주시는 거예요. '내 꿈을 스스로 꺽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잠시 후회하는 마음이 올라왔다가, 애틋한 미련으로 남았던 꿈을 지금이라도 심폐소생 해볼 수 있어 다행이라 생각했어요.

한껏 힘을 빼고 녹음된 내 목소리가 참 편안하고 듣기 좋더라고요. 평생을 경직되고 긴장하며 살았는데, 낭독을 배우면서 힘을 빼야 자연스러운 내 진짜 목소리가 나온다는 걸 알았어요. 앞으로 10년은 '이걸로 밥벌이가 될까'하는 계산을 멈추고, 힘을 빼고 나 답게 살아 보고 싶어요."

 

“제가 요즘 꽂힌 키워드는 역사, 여행, 중국어, 낭독이예요."

"목소리로 할 수 있는 다양한 시도를 하는 중인데요. 최근 기적같이 오디오 북의 한 챕터를 읽는 나레이터로 공동 캐스팅 되어 녹음을 하고 있어요. 남산도서관 백주년 기념 100인의 낭독자로 선정되어, 시각장애인을 위한 오디오북 낭독 봉사를 하기도 했어요. 여섯 살 아들에게 실감나게 책 읽어주던 끼를 살려, 집근처 어린이 도서관에서 책 읽어 주는 선생님 활동도 꾸준히 하고 있어요. 아이들이 너무 좋아해 줄 때 흐뭇합니다."

 

"마을학교 역사선생님과 DMZ해설사 일도 시작했어요."

아직 갈 길이 먼 햇병아리 강사이지만 첫 투어를 마치고 돌아 오는데, 소진 되는것이 아니라 오히려 충전되는 느낌이 참 신기했어요. 이곳에서 일하며 치유되는 것 같아요. 다시 어릴 때 반짝이던 눈빛의 사랑스러운 개구쟁이 정화연이 불쑥 찾아오는 게 느껴져요. 이곳에서는 경쟁도 없고 모두 협동해서 어떻게 하면 파주에 오신분들께 파주의 보물 같은 자연과 재밌는 역사 이야기를 버무려, 멋진 추억을 선물할까 늘 함께 연구하고 공부해요. 여기서는 제가 가장 막내인데 50~60대 선배 강사님들이 끊임없이 배우며, 계절마다 아름다운 자연을 누비며 오래오래 현역으로 일하시는 모습이 부러웠어요. 나이가 들어서 폐기대상이 되는것이 아니라 향기롭게 익어가서 삶 자체로 감동을 주는 분들이 셨어요."

임진강에서 멋진 선배님들과 (좌측 두번째가 화연님~)
임진강에서 멋진 선배님들과 (좌측 두번째가 화연님~)
광주남구에서 통일 효도열차를 타고 파주에 오신 관광객을 대상으로 DMZ 해설사 일을 했다.
광주남구에서 통일 효도열차를 타고 파주에 오신 관광객을 대상으로 DMZ 해설사 일을 했다.

 

 “8년간 파주에서 살았었는데, 가본곳이 집과 회사뿐이더군요."

 "파주시 하면 북한과 인접한 경기 북부의 도시 정도로 알고계시는 경우가 많은데요. 파주는 잘 알려지지 않은곳이 많아 아쉬울 정도로, 보물 같은 역사문화유산과 자연유산이 풍부한 도시예요. 선사시대부터 삼국시대, 고려, 조선을 거쳐 근대까지 이어지는 역사적 으로 가치있는 명소가 많아요. 개성과 한양사이에 위치한 좋은 입지덕에 훌륭한 인물도 많이 살았어요. 특히 율곡이이, 황희 정승, 우계선생 등 저명한 학자들의 고향이 었고 그런 연유로 서원도 많이 남아있어요."                                 

"왕비 집안인 파평윤씨 집성촌이었고 청송심씨도 파주에 살았다고 해요. 인조장릉, 소령원(숙빈최씨의 묘), 수길원(영빈이씨의 묘)와 같은 왕과 왕비의 무덤도 많아요. 뿐만 아니라 한국전쟁과 분단의 아픔이 녹아 있는 임진각, 민통선, DMZ는 세계적으로 유일한 역사적 장소이기도 하죠. 이처럼 다채로운 파주의 숨은 매력을 많은분들께 알려주고 싶어요"

테마가 있는 파주 문화유산 답사 (용주서원) 
테마가 있는 파주 문화유산 답사 (용주서원) 

역사이야기 선생님으로, 앞으로 어떤 계획이 있으신 가요?

"무엇보다 좋아하는 이 일을 오래오래 하고싶어요."

"인물과 명소 중심으로 압축해보면 파주를 통해 우리의 역사 전체를 알 수 있을 정도로 이곳에 풍부한 이야깃거리가 있다고 생각해요. 바램이 있다면, 파주를 찾는 청소년들과 외국인 관광객들이 서울에 온 김에 임진각만 찍고 가자며 스치듯 지나는 곳이 아니라, 템플스테이 처럼, 오래 머물러 천천히 즐길 수 있는 다채로운 이야기가 담긴 재미있는 컨텐츠를 기획해 보고 싶어요."

"그리고 기회가 닿는다면, 앞으로 글로벌 무대에서 활동할 대한민국 어린이들이 올바른 역사인식을 가지고, 자랑스러운 우리의 역사를 영어로 자신감 있게 외국인들에게 소개할 수 있도록 돕고 싶어요.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들이 한국의 역사, 문화, 자연에 숨은 이야기와 함께 더 선명하고 독특한 여행경험을 할 수 있도록 돕는 플랫폼을 만들고 운영해보고 싶어요."  

 

[인터뷰를 마치고]

달리는 인생에 브레이크를 걸고 멈출 수 있는 것은 참 용기 있는 결정이다. 그녀는 거울에 비춘 듯, 나와 닮은 점이 많아, 인터뷰 내내 '짜안'하고 공감이 되었다.  그녀의 인생 2막은 마음이 이끄는 대로, 자연스럽게 진짜 나로 사는 시간이 많았으면 좋겠다. 하늘이 뚫린 듯 연일 비가 내리던 7월의 여름 밤,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는 길에, 교보문고 강남점 대형 광고판에 쓰여진 글귀가 마음에 와 닿는다.

"가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어떤 시간은 반으로 접힌다.  펼쳐보면 다른 풍경이 되어있다" - 안희연 | 여름 언덕에서 배운 것

좋아하는 일을 계속 한다는 것은 아무것도 손에 잡히는게 없고, 깜깜한 긴 터널을 홀로 걷고 있는 듯 막막한 순간의 연속일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멈추지 않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분명 의미가 있고, 머지않아 다른 멋진 풍경으로 나를 인도할 것이 라는 걸 한번 더 믿어 보자

퇴사는 했지만 인생은 계속된다~Go~Go~! 

교보문고 강남에 걸린 멋진 문장
교보문고 강남에 걸린 멋진 문장

 

인터뷰어: 생활기록자_우연

  '읽고 쓰고 걷는 삶'을 꿈꾸는 20년 차 직장인. 영업/마케팅일을 오래 했고, 최근에는 '세일즈의 영혼을 가진 데이터 분석가'로 터닝하여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다. 야근을 밥 먹듯 하고, 자존감은 바닥을 치고, 죽을 듯이 힘들 때, 숨구멍 같은 글쓰기를 만났다. 퇴근 후에는 생활기록자로 살고 있다. 최근에는 2nd Stage를 준비하는 사이드 프로젝트로 나다운 인생을 살고 있는 주변 멋진 분들을 인터뷰하고 인사이트를 전하고 있다. 

...

저서: 

《좋아하는 일을 해도 괜찮을까:인터뷰로 묻고 글쓰기로 답하다》

인스타그램: 

 https://instagram.com/my_daily_writing_n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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