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이 : 홍은화]
팟캐스트 <영화 카페, 카페 크리틱>과 수원공동체 라디오 <지킬과 영화 보고 싶다>를 기획하고 제작했다. 인디포럼 영화제 기획전의 프로그래머로 활동했으며 영화잡지 『anno.』,『프리즘오브』 등에 영화 평론을 기고했다. 저서로는 <지킬의 영화비평>, <영화 카페, 카페 크리틱>, 단편소설 「태양의 탄생」(『북 헌터』(2021) 수록), 단편소설 「행성 정렬」(『어스』(2022) 수록)이 있다.
첫 만남, 첫 출근, 첫 인터뷰 등 ‘첫’이라는 수사는 특별한 기억으로 남는다. 홍은화 님은 나의 '첫 인터뷰이'였다. 누군가의 삶속으로 들어가는 인터뷰 경험은 유쾌했고 재미있었다. 유머와 위트가 있으면서 페이소스가 묻어나는 캐릭터를 좋아하는데 홍은화 님이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창작을 하는 사람, 특히 소설을 쓰는 사람에 대한 부러움과 로망이 있다. 남다른 재능을 타고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홍은화 님은 49살에 처음으로 단편 소설을 썼다. 그전까지는 완성작이 없고 습작도 해본 적이 없다.
하지만 소설 아이디어는 늘 떠올라서 머릿속으로는 소설을 계속 쓰고 있었다. 그에게 소설이란 머릿속에 있는 것을 토해내는 작업이었다. 상상의 세계를 끊임없이 생각하고, 그것을 부지런히 글로 뱉어내는 것. 어쩌면 이것은 재능이라기보다는 부지런한 노력과 사랑이 아닐까?
2021년 경기콘텐츠진흥원에서 진행한 공모전에서 단편소설 「태양의 탄생」이 당선되어 등단하시고, 다음 해 「행성 정렬」(2022)을 발표하셨어요. 소설은 언제부터 쓰셨나요?
「태양의 탄생」이 생애 첫 작품입니다. 고등학교 때 ‘보부상’을 주인공으로 한 장편 소설을 기획하고 몇 장 쓴 이후로 삼십몇 년 만인 것 같아요. 20대 때부터 영화 리뷰는 꾸준히 써왔고요.
이야기의 모티브가 되는 아이디어는 보통 어디서 어떻게 얻나요?
주로 가족과 친구에게 얻습니다. 한 명의 캐릭터에 저와 제 지인들 여럿이 들어가 있습니다. 그럼, 성격을 종잡을 수 없는 것 아니냐 생각하실 수도 있겠지만, 저는 제 속에 제가 너무 많아서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로봇’이란 단어를 창시한 소설가 카렐 차페크의 『평범한 인생』에 이런 구절이 있어요.
그들이 저이고 제 속에 다양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누구라도 그러하듯이요.
소설을 써오면서 느끼는 기쁨과 슬픔에 대해 알고 싶어요.
제가 희열을 느끼는 순간은 마지막 '마침표'를 찍는 순간입니다. 꼭 소설이 아니더라도요. 저는 제 생각의 조각들이 활자가 되어 물리적 형태로 탄생하는 것을 볼 때마다 즐겁습니다.
사랑을 할 때, 왜 상대방으로부터 사랑의 감정을 느끼는지 알 수 없는 것처럼 그 희열을 언어로 설명하기는 무척 어렵습니다. 이성적으로 추론해 보자면, 아마 저의 철학을 누군가와 공유할 수 있다는 희망 때문이지 않나 싶습니다.
하지만 무형의 생각을 유형의 기표 안에 가둘 수는 없기에 언제나 저의 글이 부족하다고 느낍니다. 그 부족함을 메꾸기 위해 또 다른 글을 쓰게 되는 것이죠. 말하자면 마침표를 찍는 순간 희열 뒤에 곧바로 불안함이 나타나는 것이죠. 글을 완성한다는 것은 기쁨과 슬픔이 함께 동반된 작업 같아요.
영화 칼럼니스트로도 활동하시는데, 영화비평을 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제 생각과 일치하는 비평가의 글을 찾지 못했을 때입니다. 본격적으로 영화비평 강의를 수강하게 된 것은 봉준호 감독의 <괴물>을 보고 나서였어요. 당시 평론가들은 모두 주인공 강두(송강호)의 가족들을 프롤레타리아(빈곤층)로 단정 짓거나, 영화 속 괴물을 악역으로 상정했어요.
자세히 들여다보면 괴물은 강두와 같은 존재였는데 말이죠. 한국 사회, 나아가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 시스템하에서 발생하는 부조리와 그로 인해 상처받은 영혼을 위로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대해 속 시원히 짚어주는 평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써야겠다고 생각했죠. 봉준호를 전 세계에 널리 알리고 싶었어요.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봉준호는 이미 전 세계에 인정받고 있던중이더라고요.(웃음).
영화 평론집 <지킬의 영화비평>을 읽고 ‘같은 영화를 봐도 이렇게 해석할 수 있구나’ 생각했어요. 영화 평론가들은 영화를 볼 때 어떤 시각으로 보나요?
책에도 언급했지만, 영화 내러티브의 시대적, 공간적 배경부터 영화 밖 현실의 시대 상황까지 아우르며 영화를 바라봅니다. 비평의 기본원칙입니다.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주인공을 비롯한 모든 인물의 내면 심리고요. 영화나 TV 드라마 시나리오 작법 시, 지나가는 행인1에조차 생애 서사를 부여해야 한다고 하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지킬의 영화비평>의 ‘곡성’ 평론이 흥미로웠어요. 영화를 보면서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많았거든요. 은화 님이 쓰신 글에 ‘호모 사케르’, ‘노출 치료’라는 개념이 생소하면서 신기하게 다가왔어요. 영화 이론 공부는 따로 하셨나요?
네. 2008년도에 정말 큰마음 먹고 비싼 수업료를 감수하며 들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 이후에는 그때 수업에서 만난 사람들을 주축으로 스터디를 꾸준히 했고, 현재는 팟캐스트 콘텐츠 제작을 하면서 여전히 공부하는 중입니다.
다만, ‘호모 사케르’, ‘노출 치료’ 개념은 각각 철학, 심리학에서 사용하는 단어로 영화 이론 공부를 한다고 해서 반드시 알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비평문학은 다방면의 이론을 섭렵해야만 합니다. 영화/소설 속 세계(디제시스)는 현실 세계와 맞닿아 있기 때문에 현실 속 사회, 역사, 정치, 과학, 심리, 철학 등의 모든 분야에 대해서도 공부해야 합니다.
말씀하시니, 예전 일이 주마등처럼 떠오르네요. 도서관 보존서고에 있던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 을 읽다가 경험한 두통의 다양성과 라캉 수업을 들으러 이택광 교수님의 공개강좌를 찾아다니고 아트앤스터디를 수강했던 열정들이요.
‘지킬’이라는 필명이 궁금합니다. 주고 영화비평을 쓰실 때만 사용하시나요?
2014년도에 팟캐스트를 제작하면서 사용하기 시작한 가명입니다. 원래는 제 안의 다양성을 나타내고 싶어서 ‘지킬 앤 하이드’로 하려고 했는데 너무 길어서 ‘지킬’로 줄여서 부릅니다.
필명은 본명을 쓰고 있어요. ‘지킬’은 팟캐스트와 특정 모임에서 필요시에 사용하는데요. 학벌, 재력, 사회적 지위 등을 소거하고 평등한 관계를 유지하고 싶어 하는 공동체나 모임에서 사용합니다. 평론가, 작가, 선생님, 강사, 언니, 본명 등이 내포할 수 있는 서열화 된 권위 의식에 얽매이지 않고 싶을 때 씁니다.
소설 쓰기와 영화 비평에는 어떤 차이점이 있나요?
소설과 영화비평은 고래와 상어만큼 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소설은 무에서 유를 창조합니다. 영화비평은 영화가 없으면 존재 자체가 불가능하지요. 또 소설은 작가나 타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설계되지만, 비평은 경험을 학문으로 정립한 이론과 역사로 설계된다는 점도 다릅니다.
어떤 영화를 좋아하시는지 궁금해요. 가장 인상 깊거나 추천하고 싶은 작품은 무엇인가요?
가장 좋아하는 영화는 아리 애스터의 <미드소마>(2019)입니다. 이 영화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단연 봉준호의 <괴물>(2006)이었고요. 하지만 이 영화들을 추천해 드리기가 좀 곤란한 게, 제 지인 분들은 두 영화 모두 안 좋아하시더라고요(웃음).
이 밖에도 제가 좋아하는 영화들은 대게 공포나 SF영화입니다. 좀 평범하게 가자면 저는 연말연시에는 <사운드 오브 뮤직>(1969, 로버트 와이즈)을, 영화적 체험을 원할 때는 <인셉션>(2010, 크리스토퍼 놀란)을, 삶에 파고들고 싶을 때는 <고양이를 부탁해>(2001, 정재은)를 다시 봅니다.
창작과 비평 활동 외에도 꾸준하게 독서 토론모임을 이끌고 있으시죠?
하나의 주제로 넓고 깊게 그리고 아주 평범한 방식으로 이야기하는 걸 무척 좋아합니다. 저는 책 읽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데, 이야기하는 게 너무너무, 정말이지 너무 좋아서 독서 모임을 합니다.
우리의 대화가 언제나 평범하다고 생각하시나요?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은 경우가 훨씬 더 많습니다. 저는 가족들과 대화를 할 때 주로 청자(listener) 역할을 맡게 되요. 평범한 그들의 일상을 공유하고 함께 역사를 축적하죠. 제 본성은 TMT(Too Much Taker)인데 말이에요. 가족들은 물론 저와 대화를 한다고 생각해요. 엄청난 연기력이 필요하죠. 듣고, 감탄하고, 질문하고, 평도 해야 하니까요. 그들의 주제에 100% 공감해 주기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제가 관심 없는 주제로 이야기할 때조차요.
가족 이외의 모임에서는 (미세하더라도) 권력에 의해 대화 주도권이 결정된다는 걸 아실 거예요. 그런데 독서모임은 진행자가 발언권을 통제하기도 하고 참가자가 발언 시간을 의식하기도 하면서 듣고 말하기의 균형이 맞춰지죠. 독서 토론의 매력은 지정된 책과 논제를 통해 모두가 합의한 주제로, 균등한 발언권을 가진 대화라 할 수 있습니다. 사유를 확장하고, 타인에 대한 존중과 평등에 관해 훈련할 수 있는 자리죠. 독서 모임이 온 세상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이 되기를 꿈꿉니다.
인스타그램에서 독서토론 모임 공지 올리신 책들을 유심히 보고 있어요. 어떤 기준으로 책 선정을 하시나요?
작품성과 토론 적합성을 기준으로 합니다. 회원들이 토론에 대해 질적으로 만족하지 못할 경우가 발생해도 책이 좋으면 모임 만족도는 평균 이상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작품성이 가장 중요합니다. 다음으로는 ‘토론 적합성’인데요. 어떤 작품은 작품성이 뛰어나도 토론보다는 내면으로 음미할 때 더 감동적이고, 어떤 작품은 토론을 할 때 비로소 그 진가가 느껴집니다. 독서토론은 어쩔 수 없이 후자의 작품을 택합니다.
또 책을 지정하는 순서는 한쪽으로 너무 치우치지 않도록 합니다. 국적, 작가의 성별, 나이 등을 고려해 최대한 다양한 층위에서의 작품을 모임회원들이 만나실 수 있도록 배치합니다.
소설, 영화, 독서토론이 은화 님에게는 각각 어떤 의미인가요?
고통스럽지만, 해야만 할 일입니다. 영화리뷰를 꾸준히 써오면서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절필한 적도 있어요. 제 글이 독자들에게 어필되지 못할 때마다 자괴감에 빠졌죠. 또 워킹맘으로 살면서 일에 치일 때, 머릿속에 떠오르는 소설 아이디어들을 일부러 사장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글을 멈출 수 없었고 머릿속 이야기들은 끈질긴 생명력으로 또다시 태어났어요. 지금은 포기하기를 포기했습니다.
세 영역으로의 활동은, 타자를 이해하는 것을 포기하기를 포기한 저의 결과입니다. 사람을 두려워하는 저는 언제나 철저하게 혼자가 되고 싶었지만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어요. 함께 살아가는 것을 모색하고자 하는 생존 본능의 일환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어떤 이야기를 보여주고 싶으신가요?
성석제 작가의 말에 ‘내가 쓰고 내가 읽고 내가 웃는다’가 있어요. 저도 일단은 저한테 재미있는 소설을 쓰고 싶어요. 그리고 욕심이 있다면, 누군가 제 글을 읽었을 때 파트리크 쥐스킨트, 성석제, 도리스 레싱, 조지 오웰 중 누군가를 떠올릴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제가 좋아하는 작가들인데, 이 네 명의 색깔이 어우러진 그라데이션 되어있는 소설을 쓰고 싶고 그런 작가로 남고 싶어요.
장편 구상으로 디스토피아인지 유토피아인지 혼란스럽게 하면서 ‘1984’와 ‘멋진 신세계’ ‘우리들’을 잇는 소설을 쓰고 싶어요. 제가 기획한 시스템하에서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그려보고 싶습니다.
세상에는 화려한 성취와 자랑이 넘쳐난다. 거창한 행복이 있을 것만 같다. 하지만 내 것이 아닌 것은 의미도 없고 공허할 뿐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기쁨을 주는 것이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묻고 그 흐름대로 살아가는 사람의 모습에서 반짝임을 봤다. 그것들이 쌓여 자신만의 삶의 기둥을 만든다는 것을 알았다. 진짜 인생의 보물은 그런 것들이 아닐까?
[인터뷰어 – 유희재]
⊙진로교육, 독서논술 강사
교육 출판 기업에서 14년간 교육과 연구 개발을 담당하다 독서와 진로교육을 하는 강사로 전직한 지 8년이 되었다. 초·중·고에서는 진로 관련 강의를 하고, 도서관과 복지관 등에서는 독서토론, 문해력, 글쓰기 수업을 하고 있다.
⊙읽고 쓰는 사람
매일 눈뜨자마자 무엇인가를 읽는다. 독서는 직업이자 취미이자 일상이다. 인상적인 책은 인스타그램에 기록으로 남긴다. 읽고 쓴 기록을 콘텐츠로 만들고 싶다. 저서로는 ‘좋아하는 일을 해도 괜찮을까?'(2023, 지식과감성)가 있다.
⊙학습 여행자
새로운 분야에 대한 호기심이 많고 경험을 통해 배운다. 결핍과 열등감이 강해서 배우고 학습하는 것으로 극복하고 있다. 학부에서는 외국어를 전공했지만 잘 못 한다. 대학원에 경영학석사를 받았지만 써먹을 데가 없다. 뒤늦게 청소년교육을 전공했지만 사춘기 자녀도 감당이 안 된다. 그냥 계속 공부할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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