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이] 김기학 대표
이태원에 위치한 <바라카 작은 도서관>, <이주민 가정지원센터>의 설립자. 한때 중동 아랍지역에서 기독교 봉사단체 통해 '지역사회개발(Community Development in Education)' 활동의 일환으로 보건교육과 심장병 어린이를 돕는 일을 했다. 이를 계기로 이태원에 있는 아랍지역 출신 이주민을 위한 지원센터와 공부방 역할을 하는 작은 도서관을 설립하여 이주민 가정을 위한 돌봄 지원과 교육을 하고 있다.
이태원은 두 가지 얼굴을 가지고 있다. 이태원역 번화가는 각종 세계 요리 전문점과 외국인, 관광객, 젊은이들로 활기가 넘친다. 반면 대로변에서 벗어나 골목 안쪽으로 들어가면 오래되고 낙후된 주택가가 나온다. 그곳에는 조금 더 나은 삶을 위해 한국에 온 난민과 이주민들이 모여 살고 있다.
바라카 작은 도서관이 위치한 용산구 우사단로 언덕은 시골 동네같이 한적하다. 길을 따라 걷다 보면 한 초등학교가 보인다. 일반적인 초등학교와 같은 모습이지만 만국기가 걸려있다. 다양한 국적의 아이들이 공부하는 곳이라는 의미이다. 그 건너편에 2층짜리 오래된 건물이 있다. 노란 간판에는 한국어, 영어, 아랍어가 동시에 쓰여 있다. '바라카 작은 도서관 : Blessing Library for Mom and Children'
바라카 작은 도서관은 난민과 이주민 가정의 적응과 정착을 돕는 비영리 기관으로 2018년 7월 문을 열었다. 이태원 지역에 사는 난민·이주민을 대상으로 한국어 교실, 방과 후 학습지도, 문화 체험 등의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그들이 한국 사회에 잘 적응하고 통합될 수 있도록 돕는 공간이다.
인터뷰를 위해 이슬람교 서울중앙서원 근처 한 주택가의 오래된 건물로 이동했다. 다문화 공간인 ‘고흐의 다락방’이다. 1층에는 모로코에서 온 난민 가정이 살고 있고 ‘고흐의 다락방’은 2층이다. 좁은 계단을 통해 올라오니 창문 너머에는 이슬람 사원 특유의 양파 모양 돔과 첨탑이 보인다. 다락방 곳곳에는 고흐의 그림이 걸려있고 고흐와 관련된 책이 많았다.
고흐를 좋아하신다고 들었어요.
고흐의 삶에서 영감과 가르침을 받았어요. 고흐의 별명은 ‘가난한 사람들의 친구’입니다. 친구는 나만 원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나를 친구로 인정했을 때 가능하죠. 그는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 속에서 살며 그림을 그렸어요. 고흐는 원래 목회자가 되려고 했어요. 할아버지. 아버지가 모두 목사인 집안에서 태어나 철저하게 기독교적인 삶을 살았던 인물입니다. 본인도 목사가 되기 위해 신학교 입학을 준비했지만 낙방했지요. 그 후에는 탄광촌으로 가서 선교 활동을 합니다. 당시 광부들은 사회의 가장 밑바닥 계층이었어요. 그들에게 선교 활동을 하다가 깨닫게 됩니다. 진정한 기독교적 가치를 추구하기 위해서는 오히려 종교의 옷을 벗어 버리고 그들의 삶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것을 말이죠.
고흐는 교회에서 제공한 사택에서 나와 탄광촌으로 들어가 그들과 밀착한 삶을 살게 됩니다. 이런 삶이 진짜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사는 삶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교회에서는 제명당하고 맙니다. 이 사건으로 큰 충격을 받았지만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의 모습을 그리는 계기가 됩니다. 고흐의 초기 작품을 보면 탄광촌의 광부와 그 가족들을 그린 작품이 많아요. 하지만 당시 그림을 사는 귀족들은 이런 작품을 원하지 않았어요. 고흐가 평생 가난한 화가로 살았던 이유인데요. 그는 그 당시 귀족들이 좋아하는 성화를 그리지 않았습니다. 귀족들이 원하는 그림, 돈 되는 그림을 그리지 않고 가난하게 살았습니다. 예술이라는 행위, 종교라는 가치를 지키기 위해 타협하지 않았어요. 종교성만 추구하는 교회 안에 갇혀있는 종교인의 모습에 회의를 느끼고, 종교를 떠나 가장 낮은 곳에서 고통받고 소외당하는 사람들 곁에 머무는 예수님의 삶을 실천했지요. 이 곳(고흐의 다락방)은 이런 고흐의 가치관을 실천하는 공간이죠
전에 어떤 일을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전통적 의미의 목회자가 되려고 했어요. 고통받고 소외된 계층 안에 들어가서 그들과 밀착해서 교감하는 삶을 꿈꾸었습니다. 막상 종교적 시스템 안에서는 제가 생각하는 삶을 실현하는 것이 힘들었어요. 종교라는 틀을 벗어나서 가장 열악한 환경의 사람들 안으로 들어가 그들과 삶을 공유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종교라는 벽을 허물고 가장 낮은 자와 함께 하는 예수님의 모습을 닮고 싶었습니다.
기독교 국제단체를 통해 중동 아랍지역의 한 도시에서 봉사할 기회가 생겼습니다. 도시 외곽의 작은 마을들을 찾아 다니면 주민들에게 보건 위생교육을 하는 '지역사회개발 프로그램'에 참여했습니다. 아내와 함께 ‘사랑의 하트(깔비 일 마합바)’ 라는 단체에서도 봉사를 했는데요. 현지 무슬림들이 참여하는 단체로, 심각한 심장병을 가진 어린이들을 돕는 민간 NGO입니다. ‘사랑의 하트’ 를 통해 연결된 이집트 심장병 어린이들을 한국 병원으로 데려와 수술받게 하는 일에 협력했습니다.
체류 당시 북아프리카 지역에 반독재 민주화 시위가 일어났다. 불안한 정국으로 인해 김 대표 부부는 더이상 머물 수 없었다. 한국에 들어와서는 용산구 이태원 한국이슬람교 서울중앙성원 앞에 <이주민 가정 지원 센터>를 열었다. 낯선 한국 문화에 적응하기 어려워하는 이주민 가정들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아랍의 봄’ 이후 난민들이 대거 유입했을 시기였다. 그들을 위한 법률 지원, 각종 서류 작업, 의료 지원 등을 했다. 이슬람 문화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난민·이주민들의 어려움에 깊이 공감할 수 있었다.
운영비는 어떻게 마련하는지 궁금했다. 초기에는 김 대표의 지인들 중심으로 후원자를 모집해서 충당했고, 초등학교에서 아랍어-한국어 이중언어 교사로 일하는 아내도 큰 역할을 했다. 이후 활동이 알려지면서 일반 개인 후원자들과 사회사업을 지원하는 단체나 교회, 회사들이 조금씩 참여하여 운영비를 충당하고 있다. .
이집트 거주 경험이 아랍권 출신들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셨겠네요. 도서관 이름인 ‘바라카’도 아랍어죠?
바라카는 아랍어를 쓰는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단어에요. 축복, 복이라는 뜻으로 영어로 ‘blessing’의 의미에요. 이슬람 경전인 꾸란에도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이고, 아랍 문화권에서는 매우 친근한 단어이죠.
바라카 도서관은 난민 아동을 위해 만드셨다고 들었어요.
2018년 561명의 예멘 난민이 제주도에 입국했을 때 한 난민 가정을 소개받았어요. 7세 아이와 임산부가 있는 가족인데 서울에 임시로 머물 숙소를 구하기가 어려웠어요. 여러 모델에서 거부당하고 거처할 곳이 없는 거예요. 마침 다문화 아이들의 공부방 용도로 마련해 둔 곳이 있었어요. 제가 운영하는 이주민 센터 인근에 있는 이슬람사원 골목에 있는 옥탑방인데, 임시로 그곳을 숙소로 사용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아이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고 학교에 입학할 수 있게 도왔습니다. 그 뒤를 이어 여러 나라의 난민 아이들이 찾아왔어요. 이 아이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지금의 바라카 작은 도서관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한국어와 한국 문화 위주로만 교육했는데요. 아이들이 문화적 경험치가 너무 없다는 것을 알았어요. 예를 들면 디즈니 영화를 보거나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가 본 경험이 없어요. 가족과 여행이나 소풍을 가본 일도 없죠. 그래서 다양한 문화적 체험을 제공하는 일도 하고 있어요.
바라카 작은 도서관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출신 국가는 이집트, 이라크, 모로코, 수단,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미얀마 등 다양하다. 더 나은 삶을 찾아 한국행을 결심한 사람들이다. 종교적 박해나 내전, 경제적 어려움 등 저마다의 이유로 본국을 떠나온 이들이 각자의 사연을 품은 채 도서관을 찾아온다. 현재는30가정, 50명 정도의 아이들이 이곳을 드나들고 있다. 아랍 문화권의 난민 아동이 주로 방문하지만 학습에 어려움을 겪는 이주·다문화 배경의 교육 소외계층 아동들도 온다. 현재는 학습이 부진한 이주민 중고등학생들을 위해 야간 학습 교실도 운영 중이다.
바라카 작은 도서관이 공부방 역할 뿐 아니라 난민들의 커뮤니티 역할도 하지요?
매주 이주 여성 대여섯 명과 함께 아랍 음식을 나눠 먹는 식사 모임을 하고 있습니다. 고단한 일상을 사는 이주 여성들이 모여 지난 일주일의 긴장을 풀어내고 힐링하는 시간이죠. 이 식사 모임이 큰 의미가 있습니다. 아랍권에서 온 난민 또는 난민 신청자들은 한국에서 사회 문화적으로 소외된 채 살아가고 있어요. 고국 출신들과 함께 크고 작은 커뮤니티를 형성한 다른 이주민들과 달리 그들은 서로 의지할 만한 네크워크를 구축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한국 생활에 대한 적응력도 떨어지는 데다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공동체를 꾸릴 여유조차 없어서 사회적으로 점점 더 고립됩니다. 도서관은 그들을 위한 쉼터의 역할을 제공합니다.
홈페이지의 최근 활동 소식을 보니 다양한 체험 활동을 하고 있네요
주중에는 학습 지원의 역할을 하고, 주말에는 다양한 체험활동과 청소년을 위한 멘토링이나 문화 활동을 합니다. ‘카124’이라는 렌터카 회사의 지원으로 정기적으로 나들이를 다녀오기도 하고, 지역사회단체나 교회 봉사자들이 엄마와 아이들을 데리고 키즈카페나 소풍을 가기도 합니다. 한국폴리텍대학 재학생들과 함께하는 스포츠 활동도 있고, 청소년을 위한 멘토링 학습과 문화 체험 활동도 하고 있어요. 멘토링에는 기업과 이주 배경 유학생들이 자원봉사자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그밖에 용산구의 재개발 이후를 대비하여 농촌 체험 활동도 하고 있습니다.
지난 2월에는 도서관 아이들이 도종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주최한 <세계시민포럼 그림대회>에서 입상해 국회의원 회관에 출품작을 전시했습니다. 이러한 대외적인 활동을 통해 난민 아이들이 자존감과 정체성을 확립하기를 바랍니다.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 부딪힐 난관을 예상하기 때문에 성장기에 다양한 도전의 기회를 제공하려고 합니다. 무엇보다 이 아이들에 대한 한국 사회의 인식이 바뀌어야 하겠지요.
이 모든 것이 후원금과 자원봉사자의 힘으로 운영되나요?
그렇습니다. 월세, 관리비, 아이들의 간식비 등의 운영비는 전액 후원금에서 충당합니다. 도서관의 운영 취지에 공감하는 일반인을 비롯해 기업들과 교회가 우리 도서관을 돕고 있습니다. 자원봉사자들의 힘도 크지요. 도서관 홈페이지, 용산구자원봉사센터 등을 보고 일을 돕겠다며 찾아오는 분들입니다. 도서관 근처에 위치한 한국폴리텍대학의 학생들을 비롯한 대학생들도 있고요. 현재는 10여 명의 봉사자들이 일하고 있습니다.
난민 이주민들을 위한 일자리 창출 사업도 하시지요?
경제 활동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주 여성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소셜벤처 ‘이태원 라볶이’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코로나19이후 생활고에 시달리던 모로코 출신 엄마가 있었어요. 산후 우울증에 분윳값과 공과금을 낼 여력도 없었지요. 그래서 경제적 어려움에 부닥친 이주 여성들을 돕는 사업을 구상했습니다. ‘이태원 라볶이’는 이주 여성들이 만든 떡볶이 밀키트를 비대면으로 판매하는 소셜벤처 회사입니다.
인터뷰 당일 ‘이태원 라볶이’도 방문했다. 바라카 작은 도서관의 바로 옆 건물 1층이었다. 이주 여성들과 교회 자원봉사자들이 주문 들어온 밀키트를 열심히 포장하고 있었다. 자립을 위한 노동의 현장이다.
한국중앙이슬람성원 근처에는 '그린도어스테이'라는 에어앤비가 있다. 필리핀에서 온 미혼모의 생계를 위해 이곳의 청소와 관리일을 할 수 있게 연계했다. 김 대표는 이렇게 이주민 여성들이 한국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기 위해 일자리를 창출하는 일을 지속해 하고 있다.
운영하시면서 어려운 점이나 벽에 부딪히는 것이 있으실 것 같아요.
부드러운 음성으로 막힘없이 말을 이어가던 김 대표에게 깊은 침묵이 이어졌다. 복잡한 표정이 얼굴을 스쳐 지났다. 한참을 생각에 잠기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이들은 계속 자라고 있어요. 도서관에서 제공하는 교육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가정에서의 교육이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어요. 학습 분위기, 예의범절, 기본적인 생활 습관 등이 형성되어 있지 않아요. 한국어가 서툰 상태에서 입학을 해서 학교 적응에 어려움이 있어요. 학교 수업을 따라가기 힘들고 학습 태도 등에서 좋지 않은 시선을 받게 됩니다. 구구단을 못 떼고 초등학교를 졸업하는 아이들도 있어요. 도서관에 오는 아이들에게는 매일 수학 학습지를 시키고 있지만 자원봉사자들의 교육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학습 공백과 격차가 커지죠.
사춘기
청소년이 되면 이 문제가 더 커집니다. 중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학교를 이탈하고 학습이 중단되는 경우도 생깁니다. 요즘 아이들은 틱톡, 유튜브, SNS 통해 세상을 봅니다. 본인의 생활과의 괴리감을 크게 느끼며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게 되지요. 부모들은 자녀들의 필요를 채워주지 못하고요. 물질적, 정신적인 면 둘 다요. 주변의 곱지 못한 시선도 한몫합니다. 점점 한국 사회로부터 소외되는 악순환이 생깁니다. 아이들이 사회적 편견과 소외감 없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학교, 가정, 지역 사회가 통합적인 역할을 해야 해요. 사회적 차원에서 난민 아동과 청소년을 위한 특별 교육 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늘 고민하고 대안을 찾는
부분입니다.
고흐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해서 난민 청소년이 처한 현실로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인터뷰 장소였던 '고흐의 다락방'에서 바라카 작은 도서관으로 돌아오는 골목 골목을 다시 살펴봤다. 난민과 이주민들이 사는 집을 보면서 마음이 무거웠다. 도서관 앞에는 이태원·한남동 일대의 재개발 현수막이 걸려있다. 김 대표는 몇 년 후면 이곳을 떠나야 할지도 모르는 난민·이주민들을 위한 대안을 고민하고 있다.
늦은 오후가 되니 바라카 작은 도서관에는 자원봉사자들과 아이들로 북적거렸다. 아이들의 말소리와 웃음소리, 간식 먹는 모습을 바라보다 시 한 구절을 떠올렸다.
■ 바라카 작은 도서관 ■
서울시 용산구 우사단로 13-2 2층 / 홈페이지 : www.barakakorea.com
[인터뷰어 : 유희재] 독서토론 및 글쓰기 강사, 진로 강사, 인터뷰 작가
교육 출판 기업에서 14년간 교육과 연구 개발을 담당했다. 인생 전반전은 성실한 모범생으로 살았다. 인생 후반전을 위해 퇴사를 하고, 스스로를 재교육시키며 다양한 시도와 경험을 했다. 평생 따라다닌 진로에 대한 고민은 학업으로 이어졌고, 초·중·고에서 진로 교육을 하는 진로 강사가 되었다. 평생 취미인 독서와 글쓰기도 직업이 되었다. 도서관과 공공기관 등에서 아동·청소년·성인 대상으로 글쓰기, 독서토론, 그림책 문해력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는 ‘좋아하는 일을 해도 괜찮을까?'(2023 지식과감성)가 있다. (인스타그램 @heejaey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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