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미 조율사가 일하는 법

피아노를 향한 애정 그리고 완벽을 향한 마음

2024.08.25 | 조회 29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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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인터뷰해 드립니다

나다운 길을 걸어가는 당신을 인터뷰해 드립니다.

이유미 조율사의 작업 하는 모습 
이유미 조율사의 작업 하는 모습 

러시아 작곡가 라흐마니노프가 작곡한 악흥의 순간’(Moments Musicaux Op.16)을 연주하는 초등학생 남자 아이를 보았다. 왼손의 현란하고 빠른 기교를 거침없이 힘있게 연주하는 모습을 보며 나도 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유튜브를 열어 곡 설명과 함께 세계적인 피아니스트의 연주곡을 여러 번 들었다. 하루종일 이 곡을 틀어놓기도 했고, 걸으면서 달리기 하면서 듣기도 했다. ‘안되겠어! 나도 연습해야겠어하는 결심이 며칠 만에 생겼다. 네이버에서 무료 악보를 다운로드 받아서 프린트로 출력을 해 놓고, 피아노에 앉아서 한 마디 눌러 보았다. 그런데 왠걸! 연주를 들을 때와 달리 나의 손은 건반 위를 한참 헤매고 있었다. 물론 피아노 실력이 라흐마니노프를 연주할 만큼 되지 않는 이유도 있겠지만, 악보 자체가 쉽게 눈에 들어 오지 않는데다 건반을 짚을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해보였다. 조율을 언제 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피아노라서 소리는 들을 수 없을 만큼 처참했다.

라흐마니노프를 치기 위해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은? 무엇보다도 곧바로 피아노 조율을 하는 일이었다. 네이버 검색을 하여 몇 건의 글을 읽다가 작업이 꼼꼼해보이는 여자 조율사분께 문자를 보냈다. 피아노 조율이 가능한지 여쭈었는데, 내가 원하는 날짜가 멀어 보였다. 그런데 바로 당장 내일비는 시간대가 있는데 어떠한지 묻길래, 고민조차 않고 예약을 진행했다.

피아노를 향한 마음 
피아노를 향한 마음 

다음 날 아침 930분에 방문한 조율사는 가녀린(?) 체구의 여성분이었는데, 무거운 조율 도구를 카트에 싣고 왔다. 피아노를 보시면서 첫 마디가, “제가 가진 피아노랑 똑같네요. 88년도 영창 피아노에요!” 라고 한다. “우아, 저도 그 때 부모님이 사주신 피아노에요. 당시 굉장히 비쌌다고 들었어요. 당시 금액으로 200만원? 피아노 있는 집은 다 부유함의 상징이었죠.”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고 하지만, 이유미 조율사는 뒤늦게 천직을 만났다. 삶의 만족도 역시 높았다. 혹시 피아노 전공자인지 물었더니 대학에서 일본어를 공부했다고 한다. 일본어와 피아노 조율은 뭔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지만, 야마하 피아노 같은 경우 일본제이기 때문에 나중에 조율사가 되어 일본 기술서적을 구해 공부할 때 도움되었다. 역시 배운 것은 쓸모가 있다면서.

과거에는 초등학생들이 피아노를 배우는 것은 필수적인 코스처럼 여겨진 때도 있다. 그러나 요즘에는 피아노 이외 다른 악기를 배우는 경우도 많고, 피아노를 배우더라도 방음 때문에 전자피아노를 구매하곤 한다. 피아노 조율할 일이 현저하게 줄어들었기 때문에 조율사라는 직업도 유망 직종이 아니다. 그럼에도 자신만의 직업적 소명을 갖고, 정성스레 일하는 건 어려워 보인다.

저 역시 오랫동안 피아노에 손을 떼고 있었는데, 결혼하고 나서 다시 치고 싶어졌어요. 집에서 쓰던 피아노 조율을 하게 되었는데, 소리가 마음에 들지 않는 거에요. 뭔가 하나를 파고드는 성격 때문에 차라리 내가 배워볼까 하는 생각으로 지금 이 자리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나 역시 5살 때부터 피아노를 쳤고, 초등학교 6학년까지 피아노 학원을 쉬지 않고 다녔으니 10년 넘게 꼬박 매일 피아노를 쳤던 셈이다. 그리고 10대부터 20대 내내 이곳 저곳 교회에서 반주자로 봉사를 했던 날까지 더하면, 내 생애 30년 가까이 피아노를 곁에 두고 살았다. 십대 시절에는 전공자가 되어 예중고를 들어가거나 음대를 들어갈 것도 꿈꿨지만 집안 형편상 그러지는 못했다. 경쟁률도 만만치 않을 뿐더러 예나 지금이나 예술을 하는 건 부모의 재력이 뒷받침되어야 하는 일이다. 고만고만한 실력을 가진 가운데에서 피아노 하나에만 인생을 거는 것은 무모한 일이기도 했다. 가슴 속에 남겨둔 아련한 꿈 정도로만 생각해도 충분했다. 그리고 거실 한 켠에 차지한 피아노가 어느 순간에는 애물단지 같단 생각이 들다가도, 평생 나와 함께 한 친구같기도 해서 쉽게 처분할 수는 없었다.

피아노에 관심이 있다고 누구나 조율사가 되는 것은 아니기에 어떤 과정으로 일을 하게 되었는지 궁금했다. 피아노 조율기능사도 국가 자격증이기 때문에 공부하고 자격을 취득하는 것은 쉽지 않다. 운전면허증을 딴 후 곧바로 운전하기보다는 어느 정도 도로연수를 거치고 하는 것처럼 조율사 역시 기능사가 된고 해서 곧바로 일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끊임없이 도제 방식으로 배우고, 기술을 연마해나가야 한다. 최소 5년 이상 일을 하고 나서야 이제서야 조금 알겠다는 정도가 된다. 10년쯤 하고 나서야 비로소 명함을 내밀 수 있을 정도다

나무, 양모, 쇠 등의 천연 재료로 만들어진 피아노는 온도 및 습도에 민감하고, 시간이 지나면서 현이 늘어나는 현상이 있기에 조율이 불가피하다. 조율을 하지 않은 상태로 방치하면 마모가 심해진다. 생각보다 예민하고 섬세한 악기이지만, 관리를 잘 해 주면 세월이 흘러도 좋은 소리가 날 수 있다.

한편 조율사 중에 피아노 전공자들이 많은데, 반드시 피아노 전공자가 유리한 것만은 아니다. 제로 베이스 상태에서 끊임없이 기술을 쌓아야 하기 때문에 몇 년 동안 답이 없어 보일 때도 있다. 시작해보고 아니다 싶으면 빨리 그만두어야 할 수도 있다. 실력이나 보수도 제각각이고, 회사나 공무원처럼 안정적인 수입을 보장해 주는 것도 아니기에 막막한 일이라고 여길 수 있다. 국가 자격증 시험 합격률이 10%~20%정도인데, 조율사가 되어 일을 시작한 이후 10%정도 남기 때문에 정말 소수의 사람들만 업계에서 살아남는 일이다. 처음에 호기롭게 시작했다고 하더라도 몇 년 해보면 답이 없다고 느끼는 분야이기 때문에 그만두는 사람들도 많다.

조율사는 엄연히 예술적인 일 
조율사는 엄연히 예술적인 일 

국가공인 1급 피아노조율 산업기사인 이유미 씨는 사실 일찍부터 조율사라는 진로를 선택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전문성과 실력을 쌓기 위해 남들보다 몇 배 이상으로 노력하였다. 자격증을 딴 후 협회 활동을 하고, 기회가 생길 때마다 연수를 다녔다. 장인같은 분들께 도제식으로 배우기도 하고, 매장에서 배우며 일한 적도 있다. 피아노를 제작하는 공방에 가서 매커니즘과 악기의 원리를 배우기도 했다. 다행히 좋은 스승을 만나서 명쾌한 답을 구하고, 더욱 성장하는 계기를 맞이하기도 했다.

사실 자기만의 습을 버리기가 힘들어요. 새로운 것을 배울 때는 스펀지처럼 받아들이고 적용해야 하는데. 뉴욕 스타인웨이 기술 연수를 갔을 때 줄리어드의 피아노를 조율하는 분을 만났는데 일본 사람이었어요. 언어가 통하니까 지금도 연락을 하고 지내요. 외국으로 가서 연수를 가서 배우는 것도 조율의 전문성을 키우기 위해서에요.”

조율사의 수입도 궁금해졌다. 하지만 개개인별로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차이가 나기 때문에 평균 수입을 말하는 것도 무의미하다.

실력이나 보수도 다 틀리기 때문에. 본인이 기술력을 쌓아셔 키워야해요. 조율사 협회가 있긴 하지만 그건 네트워크를 위한 것이지 일자리를 연결해주는 곳이 아니에요. 철저히 개인 비즈니스라서 본인의 역량에 따라 달라요

몇 년 전 유재석의 유키즈에 출연하여 유명세를 얻은 우리나라 조율 명장 1호 이종열(84) 조율사는 예술의전당 음악당에 자기만의 방이 있을 정도다. 예술의 전당에서 지금껏 연주한 수천명의 피아니스트가 친 피아노의 조율은 그가 담당했다. 직장생활도 20년 이상 하면 지겹고 힘들 수 있는데, 이종열 조율사는 지금껏 68년간 조율에 미쳐 있다. 명품 피아니스트가 명품 연주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조율사의 역할이다. 이유미 조율사 역시 가능한 오랫동안 현역으로 일할 수 있도록 쉬지 않고 일하는 것이 꿈이다. 나이가 많으면 집안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이 한정적인데 조율을 하는 건 세상과 소통하고, 삶을 풍요롭고 충만하게 만드는 일이라 한다.

물론 슬럼프도 오고, 그만두고 싶었던 순간도 있었지만 이제는 후배들에게 롤모델이 될 수 있는 조율사로 계속 자리를 지키고 싶어요

그의 조율은 한치의 오차나 흐트러짐 없이 완벽한 것이 특징이며, 온 마음과 정성을 쏟는다. 전국 피아노조율기능 경기대회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실력 뿐 아니라 정성으로 시간을 쏟는다. 일일이 피아노의 나사를 조이는 것 같은 기초 작업도 오랜 시간 걸릴 수 있다. 집집마다 피아노 상태가 다르기 때문에 2시간 이상 5시간 넘게 걸릴 때도 있다. 출장도 장거리는 가능한 가지 않고, 하루에 할 수 있는 예약은 최소한으로 잡는 편이다. 하루 종일 한 대의 피아노만 붙들고 있어야 할 때도 있다. 다만 비용과 시간이 소요되는 일이기에 조율의 단계를 3단계 정도로 나눠서 고객에게 선택권을 주는 편이다. 피아노는 건반을 누르면, 내부의 해머가 현을 두드려서 소리가 나게 되는데, 해머가 이탈되면 정확한 음이 나오지 않기 때문에 일일이 해머 간격을 맞추는 수작업이 필요하다. 부품이 마모되어 교체해야 할 수도 있다. 고도의 집중력과 인내심을 발휘해야 하는 일이며, 단순한 반복을 계속하면서 자기와의 싸움을 해야 할 때도 있다.

조율사라는 직업으로 삼길 잘했다고 생각하는 순간은 언제일까? 일을 해서 보람을 얻고, 돈도 버는 것도 좋지만 사춘기 딸 아이가 존경하는 사람을 엄마라고 말해주었을 때 너무 기뻤다고 한다. 경기가 안 좋다고 하지만 크게 일이 줄어들지도 않았다. 실력과 진심이 고객에게 통해서였을 것이다.

조율을 마친 피아노에 앉아 건반을 누르고 좋아하는 곡을 다시 쳐 보니, 오래 전 피아노에 빠져들어 사랑했던 그 순간이 떠올라 뭉클한 감정이 일었다. ‘악흥의 순간은 라흐마니노프가 기차에서 지갑을 도둑맞고 경제적으로 불안하고 생계가 어려워 빨리 돈을 벌기 위해 작곡한 곡이었다. 인생의 희노애락이 모두 담긴 것 같은 이 곡을 연주할 수 있는 날이 올까? 어쨌든 피아노를 조율했으니, 하루에 10분이라도 연습을 다짐한다. 약 다섯 시간 가까이 피아노와 씨름하면서 제대로 된 소리를 내도록 작업했던 이유미 조율사의 정성어린 손길이 건반에 스며들어 있을거라 생각하니, 왠지 피아노가 더 잘 쳐질 것만 같다.



 


인터뷰어 : 김소라 작가 

수원에서 책방 및 명상하는 공간 ‘랄랄라하우스’를 운영하고 있으며 e수원뉴스 시민기자로 15년째 활동중이다. 좋아서 시작한 인터뷰로 인해 '사람'이라는 자산을 얻었다.

10여년 전 타로 상담을 공부한 이유 역시 누군가의 삶에 대한 호기심과 관심 때문이다. 서울불교대학원대학교 심신통합치유 석사과정에 있다. 

『오후의 시선』『타로가 나에게 들려준 이야기』『좋아하는 일을 해도 괜찮을까』 『여자의글쓰기』 바람의끝에서마주보다』 『사이판한달살기』 『맛있는독서토론레시피  『비주얼씽킹스토리로말하라』  『도란도란 토론레시피』등 15권 정도 다수의 책을 썼다. 

blog.naver.com/sora7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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