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이라면 가게

- 라면

2022.09.09 | 조회 39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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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을 슬기롭게

소설과 에세이

찾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직접 가야하는 것이 아닌가. 다른 사람이 대신 찾아 만나줘야 한다는 건 그정도로 보고 싶은 사람이 아닌 듯 했다.

 

- 직접 갔다 오면 되잖아.

 

라니가 의자에 앉아서 테이블에 턱을 괴며 말했다. 맞는 말이지만 은근슬쩍 학생한테 말 놓고 있었다.

 

- 침대에 누워 있던 사람이랑 닮아 보이던데.

 

학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 네 동생이에요.

 

동생이 왜 침대에 누워 있냐고 물었다. 수면방에 누워있는 사람들은 숨 죽은 듯 조용했다. 숨 소리조차 안 들렸다.

 

- 할머니 보러 가셨어요.

 

할머니는 어릴 적부터 키워준 부모와 같은 존재라고 했다. 부모 모두 맞벌이로, 할머니가 대신 우릴 데리고 밥 먹이고 옷 사 입혀주셨다고 했다. 사고로 돌아간 할머니를 보고 싶어서 저리 갔다가 못 돌아오는 상황일 거라고 했다.

 

- 라면 그 쪽이 만든 거 아니에요?

 

학생은 살짝 뒤로 걸음을 옮겼다. 손사래를 치며 자신이 만든 건 아니라고 했다.

 

- 만든 건 할아버지셨어요.

 

할아버지도 수면방에 누워있다고 했다. 돌아오지 못한 건 할아버지도 같다고 했다.

 

- 그럼 위험한 거잖아.

 

라니는 진이와 내게 집으로 돌아가자고 했다. 위험하게 뭐하냐면서 못하겠다고 했다. 밖으로 먼저 나가려는 라니를 진이가 붙잡았다. 조용히 있어보라고 했다.

 

- 그럼 돌아올 확률은?

 

학생은 말을 하지 않았다. 가게 안이 정적으로 흘렀다. 주방 안으로 들어간 학생은 짧은 시간 내에 다시 돌아왔다. 손에 든 건 뱃지 세 개였다. 형광 연두색이었다.

 

- 성공한 사람에게 드리는 거예요. 서로 알 수 있는 사인이요.

 

 

 

***

 

 

 

결국은 거절을 했다. 뱃지고 뭐고 돈 내고 라면 먹는 사람은 우린데 그게 말이 되는 건가. 또 이 가게에 매달릴 상황도 아니었다. 우리 셋은 각자 해야 할 일이 있었다. 학생은 손에 든 뱃지를 라니가 앉았던 테이블에 뒀다. 그러면서 아직 돌아가지는 말아달라고 했다. 무슨 행동을 하려고 집으로 가려는 우리 셋을 막으려 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 알 수가 없다.

 

집으로 가기 위해서 걸었다. 곧 여름 오려는지 더워지고 있었다. 겉옷을 굳이 챙겨 입을 필요가 없어졌다.

 

- 소문 듣다 온 사람들은 저 수면방에 있다는 거네?

 

그래서 가게 앞에 줄 서 있는 사람이 없는 건가.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이 많은 거면 소문이 날 만하다.

 

- 넌 어땠어?

 

진이가 뭐가, 라고 물었다.

 

- 잠깐 과거를 봤었잖아.

 

라니는 엄마를 봐서 좋긴 했다고 했다. 만나는 건 좋아도 저 학생 말을 들어보니 못 돌아올까봐, 그게 큰 일일 거라고 했다.

 

- 돌아오기만 하면 시도 해보고는 싶은데.

 

시큼하고 묘한 느낌 드는 라면을 먹어야한다는 건 힘들 것 같았다. 그닥 못 먹을만 하지는 않은데 굳이 찾아가서 먹은 일은 없을 거였다. 그 자자한 소문이라면 아마 과거 때문에 찾으러 가는 사람인 것 같다. 보고 싶은 사람 있다든지 말이다.

 

- 다시 먹고는 싶어?

 

내가 진이와 라니에게 물었다. 내적갈등이라는 게 이런 것 같았다.

 

- 언니는 먹고 싶어?

 

우리 셋은 아무 말하지 못하고 집으로만 갔다. 엄마가 없는 적적한 집이 된 지 꽤 오래 전이었다. 아무래도 잊혀진 지 오래였고 눈 감고 생각 해본다하더라도 희미하게 날 뿐이었다. 내일은 우리 셋 각자 할 일이 있을 것이었다. 과거보다는 현실이 중요하고 돈을 벌어야 살아갈 수 있으니까 말이다.

 

- 좀 쉬자.

 

딱히 한 건 없었지만 각 방으로 들어갔다. 침대에 누운 나는 정자세로 천장을 봤다. 천장이 유난히 더 넓게 느껴졌다. 오늘따라 마음이 허한 느낌이었다. 허기가 졌다. 

 

 

 

***

 

 

 

잠깐 잠 들었는데 진이 내 방으로 와서 나를 깨웠다. 무슨 급한 일이 있는 듯 급한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 라면가게 학생말이야.

 

나는 반쯤 몸을 일으켜 세워서 진이 말하는 말을 더 귀 기울었다.

 

- 못 깨어나고 있대.

 

쟤는 저런 얘기를 어디서 듣고 온 건지가 가장 궁금했다. 그렇게 눈에 크게 띄는 소문은 아닌 것 같은데 말이었다.

 

- 라면가게 앞에 사람들이 서 있더라고.

 

라니는 라면 가게로 가 있다고 했다. 우리 셋한테 부탁한 것을 학생 본인이 한 것 같은데, 어차피 보고 싶었던 사람을 보러 간 거니까. 그렇다고 듣고 마는 것도 아닌 것 같아서 라면가게로 가보기로 했다.

 

 

 

***

 

 

 

불 켜진 불빛이 가게 문틈 사이로 새어나와 있었다. 가게 앞에 있는 사람들은 문 앞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 일단 들어가볼까.

 

마지막으로 가게에서 나온 사람이 우리일 거라는 진이가 먼저 의견을 냈다.

 

- 우리가 마지막 목격자라는 거지.

 

우리 말고도 들어간 사람이 있긴 할 것이었다.

 

- 저 라면 또 먹는 건 싫은데.

 

라니는 엄지 손톱을 깨물었다. 누군가는 저 학생을 데려와야할 것이다. 영웅이 되고 싶진 않았다. 조용히 살고 싶은데 누가 도전할까.

 

- 어떻게 하고 싶어.

 

진이는 문 앞까지 와서 라니와 내게 물었다. 여기까지 왔으니 돌아가기는 어중간해졌다. 사람들이 우리 셋을 저 라면가게 학생과 아는 사이로 알까봐, 괜히 의식 됐다.

 

- 들어가보자.

 

진이가 문을 열었다. 그 뒤를 따라서 내가 들어가고 라니가 들어왔다. 라면가게 안은 환했다. 문 열자마자 보이는 테이블에 학생이 엎드려 있었다. 라면 한 면발이 그릇 밖으로 나와 있었다. 불은 라면을 보며 시간은 좀 흘렀구나, 싶었다.

 

- 라면은 누가 끓여?

 

학생은 이미 자고 있으니 라면을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 우선 학생을 수면방으로 옮길까.

 

자세가 불편해 보인다고 말한 진이가 본인 등에 학생을 업혔다. 몸이 축 쳐진 탓에 무거워 보였는데 내색 안 하는 듯했다. 수면방으로 가서 비어 있는 침대를 둘러봤다. 문에서 가까운 위치에 그 학생을 침대에 눕혔다. 비어있는 침대는 생각보다 많았다. 누워있는 사람들과 비어 있는 침대는 거의 반반이었다.

 

- 주방으로 가자.

 

레시피를 찾아야했다. 내일 당장 일은 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주방은 우리 집처럼 평범했다. 가스레인지와 싱크대 그리고 냄비, 수저통 등이었다. 똑같이 평범해서 더욱 못 찾을 것 같았다.

 

- 가까운 곳을 봐봐.

 

그 말이 끝나자마자 라니가 찾았다며 하얀 선반 옆면에 붙어 있는 종이 한 장을 떼 왔다. 종이는 구김없이 어느 수첩에서 뜯은 듯 했다.

 

- 읽어봐봐.

 

종이에 적혀있는 건 영어였다.

 

- 영어로 적혀 있어.

 

라니는 진이와 내게 종이를 건넸다.

 

- 번역해봐.

 

대충 알 수는 있었다. 전공자는 아니라도 때려 맞추는 건 할 수 있었다.

 

- 우선 물이라도 끓여.

 

진이에게 선반에 어떤 재료가 있는지 물었다.

 

- 여기에 설탕, 소금, 조미료랑 이건 처음 보는 건데.

 

처음 본다는 재료를 가지고 온 진이가 이게 뭐냐고 했다.

 

'ซุป'

 

태국어였다. 핸드폰으로 번역해봤다.

 

- 수프라는데.

 

웬 수프, 라고 말한 라니는 잠시 주방 밖으로 나갔다가 들어왔다. 이게 주 재료인 건가.

 


 

안녕하세요. 뜻을 슬기롭게, 김슬지입니다.

'지난 일이라면 가게' 3화를 발행하게 됐습니다. 비축분은 많이 쌓여 있어서 연재하기에는 충분할 듯 싶습니다. 재밌게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이번주 추석인데 건강히 잘 보내시기 바랍니다. 저는 다음주 금요일에 또 다시 뵙도록 하겠습니다.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유료&무료 모두 볼 수 있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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