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인리스 그릇에 핫케이크 가루를 체로 걸렀다. 부엌 선반에 아버지가 남겨 두고 간 핫케이크 가루 흔적을 보고 만들게 되었다. 체에 거르는 가루가 눈처럼 보였다. 그릇에 담겨 있는 가루는 바닥에 쌓인 눈 같았다. 나는 체를 들고 있는 손을 싱크대에 가만히 내려놓았다. 내 귀가 닳을 정도로 높은 산을 올라 보고 싶다던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눈 쌓인 산 오르면 얼마나 좋겠니.
텔레비전을 볼 때마다 말을 했던 아버지를 떠올렸다. 나는 고개를 숙여 그릇에 담긴 가루를 봤다. 바람이 불어서 이 가루가 나를 뒤덮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몸이 으슬으슬해졌다. 폭설이 내리고 바닥에 가득 쌓인, 아버지를 죽게 만든 눈을 생각했다. 그 생각을 한 나는 고개를 좌우로 빠르게 저었다. 들이 마신 숨을 내뱉었다. 그릇에 든 가루를 보며 저건 눈이 아니다, 라고 되뇌었다. 나를 압박하는 느낌이었다. 눈을 잊겠노라고 생각하며 땀이 난 손을 바지에 문질렀다. 하던 일을 마저 하기로 했다.
***
다른 그릇에 우유를 붓고 달걀을 깨 넣었다. 수저통에 꽂아 놓은 거품기를 꺼내 손에 들었다. 이 거품기를 보니 아버지가 주말마다 거품기를 들고 있던 모습이 내 눈앞에서 아른거렸다. 나를 위해 핫케이크를 해주었던 아버지의 모습은 이제는 볼 수 없을 것이었다. 아버지 옆에 서서 뒷짐을 지고 만드는 것을 종종 본 적이 있었는데, 아버지는 내게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는 것이 도와주는 것이라고 했었다. 미소 지으며 머쓱하게 아버지 손놀림을 보는 것이 그저 내 낙이었다. 나는 거품기를 돌리면서 그 생각에 빠져 괜히 웃음이 나왔다.
집 안은 정적으로 흘렀다. 숨을 마시고 내쉬는 내 숨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아버지가 죽은 후로부터 십 사일이 흘렀다. 부엌에서 바로 보이는 방에 내 교복만이 걸려 있었다. 저 교복도 이제 입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고요한 집에서 우유와 계란을 섞은 그릇에, 체에 두 번이나 거른 가루를 부었다. 나무 주걱을 들어서 섞어 반죽했다. 주걱으로 저으면 저을수록 덩어리가 생겼다. 덩어리는 눈덩어리처럼 보였다. 조용히 굴러 다가와서는 내 몸을 깔아 뭉갤 것만 같았다. 눈덩어리를 생각해보니, 아버지가 그렇게 말한 때가 있었다. 정상까지 올라가면 눈을 굴러서 눈사람을 만들어보겠다고. 눈사람에는 직접 손가락으로 그어 본인 이름과 내 이름을 적겠다고 다짐했었다. 아버지는 은퇴를 일찍 한 친구가 산을 다닌다며, 자신도 한 번 동참해보라는 말에 하기로 했다고 그랬었다. 현관문을 열고 나서기 그 하루 전에 말했던 거였다. 아침이 돼서 냉장고에는 내가 좋아하는 반찬을 만들어놓았다고, 꺼내 먹으라고 했다. 그 말을 남긴 후에는 정상에 오른 영상을 찍어서 내려왔을 때 보내주겠다고 약속까지 했었다. 눈 내리는 새벽에 아버지는 그렇게 문을 열고 나가게 된 것이었다.
눈사태에 휩싸였다는 말은 아버지 방에 들어설 때 들은 거였다. 아버지가 병원으로 이송됐다는 소식을 아버지 친구에게서 듣게 됐었다. 말을 듣는 순간에 나는 아버지가 오르다가 만 산에 있는 것 같았다. 눈과 눈바람, 숨을 쉽게 쉴수 없는 그 곳이었다. 그 날을 잊을 수가 없었다.
***
달궈진 팬에 버터를 두르고, 반죽을 떠 넣어 구웠다. 핫케이크 냄새가 풍겼다. 아버지가 내게 만들어주었던 그 같은 냄새였다. 나는 잘 구운 핫케이크를 뒤집개로 뒤집었다. 온 집안이 냄새로 가득 찼다. 가스레인지 불을 끄고 접시에 핫케이크를 담았다. 접시에 담아 거실로 와서 밥상에 올려놨다. 아버지가 해줬던 것과 같이 메이플 시럽을 핫케이크 정 가운데에 뿌렸다. 포크를 마지막으로 가지고 와서 밥상 앞에 앉았다. 핫케이크를 잘라 한 입 크게 먹었다. 입을 다물고 이에만 집중했다.
아버지가 해줬던 그 맛은 잘 나지 않았다. 모호한 맛이었다. 포크를 접시 옆에 내려놨다. 내 옆에 앉아서 맛있냐고 물어보는 아버지 목소리도 존재하지 않았다. 집 안은 금세 찬 기운으로 돌았다. 아버지가 나를 볼 때 생기는 볼에 패인 보조개를 생각했다. 나는 먹다만 접시에 든 핫케이크를 바라봤다. 영 형편 없었다.
창문 틈으로 바람이 불어오는지 차가운 공기가 느껴졌다. 아버지가 핫케이크를 먹기 전에 우유 한 잔을 먼저 마시라고 했던 그 말이 떠올랐다. 그 생각을 한 순간 기다렸다는 듯 바람은 더 세게 내가 있는 곳에 머물렀다. 폭설에 파묻힐 것만 같았다. 바람을 따라서 눈도 같이 내렸다. 내 몸을 순식간에 감싸버렸다.
안녕하세요? 뜻을 슬기롭게, 김슬지입니다.
7번째 짧은 소설을 발행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주제는 '그리움'이었습니다. 누군가가 자주 해주었던 음식을 자신이 직접 만들어 보았지만 그 사람이 해주던 맛이 나지 않는... 그 그리움에 괜히 서러운 마음이 듭니다.
여러분들도 누군가를 떠올리며 그 누군가와 함께 했던 일을 다시 한 번 해본 적이 있었을까요?
저는 여기서 이만 글을 줄여 보도록 하겠습니다.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멤버십 한해서 단편이 아닌 한 주제로 소설 연재를 하려고 합니다. 참고 바랍니다!
* 단편(짧은) 소설은 잊지 않고 꾸준히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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