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재팬인사이트> 구독자 여러분, 오늘은 ”엔터프라이즈 세일즈의 극의(極意)”의 두번째 이야기입니다. 지난번에 설명드렸듯, 제목은 일본에서의 비즈니스의 극의(ビジネスの極意)라는 “성공을 위한 보편적인 원칙이나 상황에 따라 변화하는 전략, 스킬”을 나타내는 표현에서 따왔습니다. 아직 첫번째 편을 읽지 않으셨다면 아래 링크에서 확인하세요.
첫 번째 글에서 아차!하고 언급 안한 얘기가 있어 그것으로 서두를 시작할까 합니다.
SaaS에 관심있는 분들이라면 제품주도성장(PLG; Product-led Growth)이라는 표현을 자주 들어보셨을 겁니다. 직관적이고 좋은 제품을 만들어 고객 스스로가 쉽게 온보딩하여 이용하는 꿈만 같은 제품입니다. 모든 SaaS 빌더들에게 로망같은 얘기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많이 다릅니다. 창업 초기에는 초기대로 100개 고객을 만들 때까지 열심히 고객발굴 및 영업활동이 필요하고, 성장을 하면 고객 Adoption이 커짐에 따라 보안이나 구매 대응이 필요해 전담 영업조직이 필요해 집니다. 한 때는 PLG의 표본처럼 느껴지는 제품들도 실제 대부분 엄청한 규모의 영업팀을 꾸려서 사실상 영업주도 성장(SLG; Sales-led Growth)을 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한번 링크드인에 가셔서 PLG로 유명한 Figma, Notion, Dropbox 같은 곳들의 Sales직군을 검색해 보세요. 엄청난 숫자의 영업인력 리스트가 쏟아져 나옵니다. 이 글은 이런 SLG 측면에서의 영업의 역할에 대해 논한다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아래 링크도 참조하세요: Freemium에서 PLG, 그리고 SLG로 가는 여정)
자 이제, 본론으로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첫 번째 이야기에서는 리드인이 되었을 때와 데모에 대한 내용을 다루었습니다. 오늘은 고객과의 NDA와 트라이얼/PoC, 그리고 제안방법에 대해 말씀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NDA (비밀유지계약)
필요 없을 수도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꼭 필요하기도 한 것이 바로 NDA(Non-Disclosure Agreement)입니다. 고객쪽에서 먼저 요구하는 경우도 있고, 제품에 따라 NDA를 필수로 체결해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제가 만난 한국스타트업 중에는 아무리 생각해도 불필요한 NDA절차를 가진 곳도 있었습니다. 그냥 트라이얼을 하기 위해 ToS(Terms of Service; 이용규약)에 동의하면 되는 것을 NDA를 요구하고, 이에 서명 받는 것이 무슨 실제 계약까지 이루어진 것처럼 흥분하고 심지어는 IR자료에 활용하기도 합니다. 뭐 이미 이 순간 비밀유지계약 파기 아니인가 싶습니다🫠
일본대기업 직장인들은 가능한한 법무팀과 엮이고 싶어 하지 않아요. NDA도 엄연히 계약서이기 때문에 고객이 가지고 있는 표준NDA가 아니라면, 모두 법무팀 리뷰 및 승인을 받아야 하고, 기업에 따라서는 법무팀에 리뷰 의뢰부터 최종 승인까지 몇 주가 걸리기도 합니다.(실제 어느 대기업 사내 법무팀 홈페이지에 그 어떤 계약서 리뷰라도 최소 2주이상 걸린다고 써있는 걸 본 적도 있습니다.) 너무 초반부터 진을 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대표적으로 NDA가 필요한 딜은 Dummy data가 아닌 고객의 Real data를 연동해야 하거나, 개인정보가 오고 가는 제품이나 서비스입니다. 보통 고객측에서 알아서 요청합니다. 계약서에 비해서는 NDA는 고객 표준NDA를 따르는 것이 가장 보편적이고 편합니다. 일본대기업이나 어느정도 글로벌 프레젠스가 있는 중견기업이라면 보통 영문 표준NDA도 갖추고 있습니다. 실무담당자는 이 사실을 모르는 경우도 많으니, 법무팀에 한번 확인해 주는 것을 요청하는 것도 좋습니다. 안타깝게도 영문 표준NDA가 없는 경우에는 저 같으면 자사의 영문NDA를 우선 제안합니다. 일본에 이미 법인이 있으시다면 당연히 일문NDA/계약서로 접근해야 하겠지만, 크로스보더의 경우 일본어보다는 영문NDA/계약서로 맺는 것이 유리하다고 생각합니다.
일본 내수 비즈니스만 하는 곳의 경우는 일본어 계약이 아니면 난감해 하는 경우도 꽤 있습니다. 기업 내부 변호사들조차도 영어 울렁증이 계신 분들도 있고요. 이런 경우 NDA 번역본이나 번역요약본을 함께 제공하면 실무담당자께서 고마워합니다. 그래도 일본어NDA를 고집한다면, 고문변호사에게 리뷰가 가능한지 확인하시고 진행하시기 바랍니다.
NDA 계약의 내용은 사실 매우 간단해서 그렇게 힘을 빼야하는 부분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NDA체결시 일반적인 쟁점은 일방/쌍방, 비밀유지기간, 준거법 및 관할법원 정도라고 생각하는데, 이에 대해 제 경험을 공유드릴 수도 있지만, 가능하면 고문변호사의 조언을 들으시길 권합니다. (아래 링크도 참조하세요: NDA에서 꼭 알아야한 10가지 조항)
트라이얼/PoC(실증실험)
드디어 검증을 받는 시기입니다. 정말 제품에 자신이 있다면 큰 걱정을 안하셔도 될 것입니다. 중요한 포인트 몇가지만 공유드리자면,
- 기술적 난이도가 높을수록 온보딩이 중요합니다. 통역을 넣어서라도 기술자들과의 만남을 주선하시고 트라이얼중 소통할 채널을 준비하세요. 소통채널로서는 챗, 이메일, Slack 등 다양하겠죠. 의외로 Slack을 쓰는 기업도 꽤 됩니다. 하지만, Teams에 lock-in되어 있는 고객의 경우에는 Slack이 허용 안된는 곳도 있으니 어떤 채널이 좋은지 고객과 잘 상의해 보세요. 제품에 따라 code가 난무해야 하는 경우에는 특히 그에 맞는 툴의 선정이 중요합니다.
- 트라이얼 기간은 일반적으로 2주입니다. 다만, 일본고객의 경우 한달 정도의 트라이얼 기간을 요청하는 경우가 일반적입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2주를 주고, 추가 2주 연장해주는 정도입니다. 너무 길게 트라이얼기간을 설정하면, 고객이 테스트 자체를 차일피일 미루기도 하니 주의하세요.
- 꼭 Weekly checkup을 하세요. 꼭 미팅을 하라는 말은 아닙니다. 이용상황이 어떤지, 무엇이 추가로 필요한지, 필요에 따라서는 시기에 따라 도움이 될만한 정보를 공유하세요. 트라이얼을 kick-off할 때부터 아예 2주뒤 점검미팅을 픽스해 두는 것도 좋습니다.
- 트라이얼 기간 중에 만족을 보이는 부분이 있다면, 트라이얼 종료 전에 슬며시 보안이나 계약에 관련된 검토를 병행해도 되냐고 넛지를 해보는 것도 좋습니다. 뒤에 설명하겠지만, 보안이나 계약에서 생각 이상으로 시간이 소요되기도 하거든요.
제안
이 파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가격입니다. 많은 글로벌SaaS들이 엔터프라이즈 플랜에 대한 가격을 비공개로 하고 있습니다. 이를 따라해 한국SaaS들의 가격페이지(Pricing Pan Flute이라도 표현하기도 합니다)를 보면 일반 플랜에 덧붙여 꼭 엔터프라이즈 플랜과 함께 문의하기 CTA를 두곤 합니다. 하지만 물어보면 엔터프라이즈 가격표조차 존재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엔터프라이즈도 엄연히 하나의 플랜이고, 이에 대한 가격표를 내부적으로는 보유하고 있어야 합니다.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고객을 기만하고 부르는게 값인 제안을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죠. 고객도 바보가 아닌 이상, 다른 플랜을 통해 대략적인 금액을 예측할 수도 있으니까요.
한편으로는, 엔터프라이즈 플랜이라고 해서 비싼 금액을 책정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스타트업들도 많이 봅니다. 저는 기업고객에 대해 스페셜 케어를 해주고 있다는 측면에서 분명히 self-serve 고객보다는 가격이 높게 책정되어도 문제없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기능적으로도 더 나은 보안과 고객서포트 등을 차등하는 방법으로 엔터프라이즈 플랜으로서의 가치를 더더욱 높일 수 있습니다.
엔터프라이즈 플랜의 가격은 경험적으로 봤을 때 공개되어 있는 가장 비싼 플랜보다 20% 높게 책정하고, 이용용량이나 유저수에 따라 volume discount를 적용하게 됩니다. 그 위에 커스텀 요건에 따라 추가금액을 얹히는 식으로 접근하시길 바랍니다. 물론 단발성 커스텀 개발에 대해서는 이용료와는 별로도 초기 비용(Initial setup cost)를 과금하는 수단도 있습니다. 일본의 SaaS기업 중 초기 비용을 과금하는 곳도 많습니다.
대기업이라는 이유로 수많은 시간을 들이고, 요청하는 기능개발 등 온갖 커스텀 주문을 다 받았지만, 최종계약에서는 단 몇 백 달러(수십만원)로 끝나버리는 황당한 사례도 보았습니다. 말그대로 놀아난 것이지요. 이런 부분은 첫 데모미팅에서부터 명확히 해야합니다. 표준에서 벗어난 요구에 대해서는 가격에 영향이 있다는 점을 정확히 강조하세요. 고객으로부터 명확한 커미트먼트 내지는 적어도 구두가 아닌 서면으로의 확약을 받는 것도 좋습니다. 단 한 고객을 위한 기능개발도 큰 금액의 계약이 아니고서는 섣불리 응해서는 안됩니다. 모든 고객들에게 득이 되는 기능이라면 모르겠지만요.
참고로 커스텀에 대한 얘기를 조금 더 파고들자면, 글로벌SaaS에서의 금기어는 on-premise 대응입니다. 글로벌SaaS에서는 기본적으로 대응하지 않습니다. 물론 미국에서조차도 정부 딜이라던가 금융권 등에서 on-premise 또는 private cloud에서 이용할 수 있도록 요청하는 경우가 있는데, 미국 SaaS업계에서는 암묵적으로 제안가격을 $1m/년(약13.9억원)부터 스타트합니다. 다른 표현으로 안하겠다는 표현을 돌려 말하는 것입니다. 생각해보세요. 제품 운영환경을 통째로 하나 더 만드는 겁니다. 한국스타트업중 고객마다 환경을 따로 구축제공하는 경우도 종종 봤는데, 그 순간 SaaS가 아닙니다.
그리고 엔터프라이즈 딜에서 커스텀이라고 하면 기능이나 기술적인 부분만 생각하는데, 계약과 관련된 표준에서 벗어나는 그 모든 것이 커스텀이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높은 보안요건으로 다음에 설명할 보안체크 대응을 한다거나, 일반 계약(ToS)에서 벗어나는 요구사항을 한다거나 하는 것 모두 커스텀입니다. 이런 부분을 대응해 주는 것에 대해서 추가비용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실제 최근 클로징한 일본 IT제조 중견기업을 대상으로한 딜에서도 실제 구성상 필요한 제안가는 US$6,000/년이었지만, 계약서 내용 변경이나 트라이얼 중 다양한 기술요건에 대한 지원으로 인해 실제 제안가는 정가의 두배인 US$12,000/년로 계약한 사례도 있습니다.
마지막이라고 제가 제안이라고 표현했지만 사실상 견적서(御見積書)를 말하는 것입니다. SI개발 제안 같은 구성도까지 포함한 엄청난 양의 제안서를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SaaS의 특성상 표준적인 기능이고, 제안서가 필요한 대규모 프로젝트라면 사실상 SI업체같은 구축사가 선정되고, 그 구축사가 해당 SaaS를 포함한 아키텍처를 그려서 제안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물론 세일즈포스 같은 초대형SaaS라면 그런 제안이 필요하겠지만요. (계약단가도 엄청납니다.) 일반적인 B2B SaaS의 견적서에는 제안하고자 하는 플랜, 가격(단가, 할인율, 최종가격 등등), 제공되는 기능 리스트, 그리고 제약사항 등을 기재합니다. 글로벌SaaS의 제안서는 보통 2~3페이지 정도의 템플렛에 앞에 언급한 항목들만 수정해서 제공합니다. 경험상 영문으로 제공해도 크게 거부반응은 없습니다. 조금 친절하고 싶다면 일본어로 번역해도 부담되지 않는 양이지만, 일본에 법인이 없다면 굳이 일본식 견적서 포맷으로 만들 필요까지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내용은 여기까지 입니다. 다음 뉴스레터에서는 계약에 더욱 가까워집니다. 영업이 이런 것도 해야해? 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고객의 뒤에 있는 IT부문, 법무팀, 재무회계팀을 만족시켜야 딜이 깔끔히 마무리됩니다. 그럼 다음주에 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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