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취준생'하면 어떤 페르소나가 떠오르시나요?
얼어붙은 취업시장에 6개월 이상 서류 지원-면접을 반복하고 있는 취준생?
칼졸업을 목표로 열심히 대외활동, 사이드 프로젝트 등 스펙을 쌓고 있는 취준생?
둘 다 맞는 말입니다. 그런데 '페르소나'는 아닙니다.
저는 2023년부터 서비스 기획 일을 해오면서 페르소나라는 단어를 수도 없이 써왔습니다. 기획 문서에도, 아티클에도, 팀 회의에도 늘 등장하는 개념이었죠. 그러다 작년 겨울, 한 프로젝트를 계기로 그동안 제가 만들어온 것들이 페르소나가 아니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오늘은 제가 경험했던 '진짜 페르소나' 이야기를 들려드리려 합니다.
지난 겨울, 주니어 HR 플랫폼과 함께 '30일 취업 프로젝트'를 도전한 적이 있습니다. 기업-주니어 인재 매칭 데이터가 쌓인 슈퍼인턴 서비스와 함께 참가자 4명을 선발해 이력서, 포트폴리오를 다듬고 실제 지원 전략까지 같이 설계해주는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참여자분들을 특정하지 않기 위해 제 경험을 기반해 일부 각색을 진행했습니다!)
예상보다 신청자가 많아, 서류를 면밀히 검토하여 직무도, 전공도 다 다른 4명의 참가자를 선발했습니다.
원하는 직무와 각각의 구직 상태, 대학 재학/졸업 여부에 따라 취준 상황이 다를 것이라고 예상은 했지만 '취준생'이라는 넓은 페르소나에는 정말 수많은 성향이 존재했습니다.
'진짜 페르소나'가 달랐던 이유
대부분의 페르소나 작업은 이렇게 흘러갑니다.
"우리 타겟은 2030 직장인, 바쁘고 가성비를 중시하며 모바일에 친숙합니다."
그리고 거기서 멈춥니다.
이건 페르소나가 아니라 타겟 세그먼트의 평균입니다. 통계적으로 틀리지 않지만, 실제 의사결정에 쓸 수 있는 도구가 되지 못합니다. 이 페르소나로는 "온보딩 첫 화면에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라는 질문에 답할 수 없거든요.
진짜 페르소나는 다릅니다. 특정 상황에서 특정 사람이 왜 그 행동을 하는지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약 4주 동안 멘토님은 참가자분들에게 서류 피드백, 커리어 방향성 조언, 지원 전략을 세워드렸고 저는 이를 가장 가까이서 4명의 참가자를 깊게 들여다보았습니다. 그런데 같은 '취준생'이라도 '취준 과정'에서 겪고 있는 문제의 본질이 완전히 달랐습니다.
한 참가자는 스펙 자체는 충분했지만, 자신의 경험을 언어화(aka 포장) 하는 능력이 부족해서 서류에서 계속 탈락하고 있었습니다. 다른 참가자는 반대로 글은 잘 썼지만 지원 방향 자체가 본인이 해온 경험과 어긋나 있어 지원 전략을 다시 수립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같은 증상(서류 탈락)이지만 원인이 달랐기에 멘토님께서 그들에게 주었던 솔루션도 완전히 달랐습니다. 전자의 참가자에게는 스토리텔링 프레임이 필요했고, 후자에게는 방향 재설정이 먼저였습니다.
4명을 조금 더 들여다보면 이렇습니다.
'방향 확인형' 참가자는 사실 처음부터 준비가 잘 된 분이었습니다. 포트폴리오도 있고, 자기 강점도 알고 있었어요. 이 분께 필요했던 건 취업 준비 자체가 아니라 "어떤 회사를, 왜 가야 하는가"에 대한 나침반이었습니다. 단순히 첫 취직을 넘어 앞으로 커리어 전반을 설계할 수 있는 커리어 방향성 조언이 가장 유의미했던 참가자였어요.
'표류형' 참가자는 달랐습니다. 오랜 기간동안 혼자 취업 시장과 싸워온 분이었는데, 막상 들여다보니 스펙이 부족한 게 전혀 아니었어요. 취업 시장을 읽고 전략을 세우는 일을 혼자 감당하는 게 너무 어려웠던 겁니다. 자기소개서를 고치고, 지원 전략을 다시 세우고, 커리어 방향을 함께 그려나가는 과정을 거치며 프로젝트가 끝날 무렵 최종합격 결과를 받아오셨습니다. 합격 소식도 기뻤지만, 그 과정에서 되찾은 자신감이 더 인상 깊었습니다.
'실행력 보완형' 참가자는 경험도 있고 의지도 있었지만, '무엇을 해야 하는지'가 불명확한 상태였습니다. 방향이 흐리니 실행도 느릴 수밖에 없었죠. 이 분께는 거창한 솔루션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해야 할 일을 잘게 쪼개서 명확하게 제시하는 것만으로도 실행력이 눈에 띄게 달라졌거든요.
'전략 재설정형' 참가자는 특정 직무로만 지원하다가, 멘토링 과정에서 지원 범위를 넓히게 됐습니다. 문제는 직무가 달라지는 순간 이력서와 포트폴리오를 처음부터 다시 써야 한다는 막막함이었습니다. 경험은 충분한데, 그 경험을 다른 직무의 언어로 번역하는 게 낯설었던 거죠.
네 명, 네 가지 문제.
'취준생'이라는 한 단어로 묶인 사람들 안에 이렇게 다른 맥락이 존재했습니다. 만약 이 프로젝트가 모든 참가자에게 동일한 이력서 클리닉을 제공하는 프로그램이었다면, 아마 누구에게도 제대로 된 도움이 되지 못했을 겁니다.
프로덕트로 이들에게 도움을 준다면, 어떤 유형을 타겟 해야 할까?
이 경험이 저한테 남긴 건 단순한 인사이트가 아니었습니다.
프로젝트가 끝나고 나서 취준생들을 위한 솔루션에도 깊은 고민이 들었습니다.
"이 네 가지 유형 중, 지금 시장에 제대로 된 솔루션이 없는 사람은 누구일까?"
방향 확인형은 커리어 컨설팅 서비스들이 이미 잘 커버하고 있습니다. (취준생들에게 조금 부담스러운 가격일 수 있지만요.)
장기 표류형은 멘토링 플랫폼이나 취업 코칭 서비스가 존재하죠. 전략 재설정형도 직무 전환을 돕는 콘텐츠나 커뮤니티가 꽤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실행력 보완형은 달랐습니다. 이 분들의 문제는 정보가 부족하거나, 방향을 모르는 게 아닙니다. 뭘 해야 하는지 알고, 의지도 있는데, 막상 혼자 앉으면 손이 안 움직이는 겁니다. 할 일이 너무 크게 느껴지거나,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몰라서 계속 미루게 되는 상황이죠. 멘토링 과정에서 이 분께 해드린 건 사실 별게 아니었어요. 오늘 할 일을 작은 단위로 쪼개서 명확하게 제시하는 것. 그게 전부였는데, 실행력이 눈에 띄게 달라졌습니다.
그 장면이 계속 머릿속에 남았었습니다.
그래서 실행력 보완형 취준생들을 위한 서류 피드백 AI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만들기 시작하니 첫 번째 고민이 생겼습니다.
"피드백을 얼마나 구체적으로 줘야 할까?"
취준생들에게 필요한 게 '방향'인지, '당장 실행할 수 있는 것'인지를 먼저 결정해야 했습니다. "스토리텔링을 강화하세요"처럼 방향만 던지면 결국 또 혼자 앉아서 막막해지는 상황이 반복될 것 같았거든요. 실행력 보완형에게 필요한 건 그게 아니니까요.
그래서 저는 최대한 구체적인 쪽으로 방향을 잡았습니다.
단순히 "성과를 수치로 바꾸어 구체적으로 써보세요"에서 끝나지 않고, 현재 이력서의 문장을 직접 가져와서, 어떻게 바꿔야 하는지 개선 전/후를 나란히 보여주도록 설계했습니다.
"6개월 치 CS 데이터 및 GA4 데이터 분석을 통한 서비스 개선 → 평균 주문액 20% 증가"
이 문장을 이렇게 바꿔보라고 제안하는 식입니다.
"6개월 치 CS 데이터 300건 분석 결과 결제 단계 이탈률 40% 발견 → 결제 플로우 3단계→2단계 단순화 제안 및 개발팀과 2주간 협업 구현 → 평균 주문액 16,000원→19,200원(20%) 증가, 월 매출 약 500만원 추가 확보"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읽고 나서 "그래서 나는 뭘 해야 하지?"가 남으면 안 된다! 였습니다.
리포트를 덮는 순간 바로 이력서를 열고 고칠 수 있어야 한다는 게 설계 원칙이었습니다. 멘토링 현장에서 배운 것처럼, 실행력 보완형에게 필요한 건 더 좋은 인사이트가 아니라 더 작고 명확한 다음 행동이니까요.
아직 초기 단계라 구체적인 내용을 다 공개하기는 이르지만, 한 가지는 확실합니다. 이번엔 '취준생'이라는 평균을 위해 만들지 않을 겁니다. 프로젝트에서 직접 만났던 그 유형의 사람, 그 사람이 혼자 책상 앞에 앉았을 때 느끼는 막막함을 해결하는 것에만 집중할 겁니다.
페르소나를 제대로 알고 나면, 무엇을 만들지가 선명해집니다. 저는 그걸 이 프로젝트에서 처음으로 제대로 경험했고, 이제 그 경험을 제품으로 옮기고 있습니다.
하지만.. 늘 그렇듯이 잘 알리는 건 정말 어려운 영역이더라구요.
다음 뉴스레터에서는 이 프로덕트를 빌드하고 알리는 과정을 조금씩 공유해볼게요. 어떤 채널을 활용했고, 무엇을 검증했고, 어떻게 틀렸는지까지요.
여러분이 지금 만들고 계신 아이디어, 혹은 사용하고 계신 프로덕트는 어떤 페르소나를 타겟하고 있나요? '2030 직장인'처럼 넓게 잡혀 있진 않나요? 그 안에서 진짜 해결하려는 사람이 누구인지, 한번 좁혀서 생각해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오늘도 날씨가 많이 따뜻했습니다. 봄이 얼른 찾아오길 바라며!
즐거운 수요일 저녁 보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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