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서는 반도체 강국의 부활을 꿈꾸는 일본의 이야기이다. 미일 반도
체 분쟁에서 촉발된 기술 패권 경쟁 구도 속에서 반도체 산업이 재
편되고, 호시탐탐 반도체 부활을 노리던 일본이 새로운 기회를 포
착하고 있다. AI 시대를 맞아 범용 칩에서 전용 칩으로의 기술 패러
다임 전환기에 선점 효과를 누리려는 전략이다. 범용 칩에서 전용
칩으로의 전환 과정에서 방대한 에너지 소모를 절약할 수 있는 전
용칩의 개발이 요구되고 있다. 미세 공정과 3D 집적 기술의 고도화
등을 통한 에너지 효율의 제고가 시급하게 요구되는데, 이에 일본
이 초점을 맞추고 있다.
요약하면 고도의 효율적인 디지털 사회에 적합한 반도체, 즉 각
자의 맥락과 구조의 물리적 공간과 이에 맞춰진 가상공간을 만들어
서로 융합시키기 위해서는 군더더기 없는 높은 효율성의 반도체가
필수적이라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다시 소품종 대량에서 다품종
소량으로의 이전이다.
이를 위해 일본은 이원화 전략을 취한다. 하나는 현재 기술 수준
의 반도체 생산이고, 다른 하나는 미래 기술 수준의 반도체 생산이
다. 전자는 구마모토에 건설 중인 TSMC로서 28, 22, 16, 12nm의
현재의 주력 반도체를 생산한다. 이들의 연구개발은 이바라키현 쓰
쿠바에 건설 중인 3DIC 연구개발센터가 담당한다. 후자는 홋카이
도 치토세에 건설 중인 라피더스로서 2nm 이상 최첨단 반도체를
생산한다. 라피더스는 도요타, 소니, 소프트뱅크 등 8개 기업이 연
합하여 설립하였다. 2nm 이상 차세대 반도체 연구개발은
LSTC(Leading-edge Semiconductor Technology Center)가 담당하는데, 미국
NSTC(National Semiconductor Technology Center), IBM, 유럽 imec와의 협
력하에 산업기술종합연구소, 이화학연구소, 물질·재료 연구기구,
도호쿠대학, 쓰쿠바대학, 도쿄대학, 도쿄공업대학, 오사카대학, 고
에너지 가속기 연구기구 등이 참여하고 있다.
더불어 일본은 이원화 전략의 효율적인 달성을 위하여 숲의 생태
계처럼 글로벌 협력, 산학연 협력을 적극 도모하여 공생, 공진화를
적극 추진한다. 뿐만 아니라 연구개발센터는 대도시 인근, 공장은
지방에 분산 배치하여 되도록 많은 지역이 참여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본서의 저자인 구로다 다다히로 교수는 반도체 대가답게 반도체
기술의 추세 및 글로벌 경쟁구도, 미래 사회 및 산업의 모습, 일본
경제 회복, 경제 안보화 등 종합적인 눈으로 바라보면서 반도체 산
업의 부활을 산적한 일본 경제의 문제를 타개하는 중요한 모멘텀으
로 삼고 있다. 기술-비즈니스-경제의 혜안이 읽혀진다. 특히 반도
체가 산업의 쌀에서 사회의 뉴런으로 변모한다는 통찰은 탁월한 식
견이라 할 수 있다. 그는 VLSI(Very Large Scale Integration) 기술 심포지엄
의 오랜 국제적인 활동을 통해 체득한 ‘혁신이 어떻게 이루어지는
가’를 생생하게 들려준다. 또한 일본이 반도체의 새로운 아성을 구
축하려는 야심의 비하인드 스토리도 함께 얘기한다.
본서는 반도체 강국의 부활을 꿈꾸는 일본이라는 나무 이야기지
만 과학 문명의 진화라는 숲 이야기도 함께 다룬다. 저자는 현대의
산업사회가 자본집약형 사회에서 지식집약형 사회로 이전한다고
전망한다. 전자에서는 도로, 항만, 철도, 공항이 인프라였지만, 후자
에서는 데이터를 옮기는 IoT, 5G, AI가 인프라다. 이 인프라를 지탱
하는 것이 반도체라고 역설한다. 나아가 본서는 단순히 반도체 기술
의 패러다임 변화, 글로벌 경쟁구도, 국가 경쟁력 등에 국한하지 않
고 거대한 디지털 문명의 진화와 연결지어 논의를 진행한다. 심지어
자연 생태계의 진화, 복잡계 과학이라는 과학 이론의 발전 맥락과
반도체 진화를 연결지음으로써 그 깊이를 더해주고 있다.
본 저서를 번역한 박정규 교수는 본인이 맡고 있는 KAIST 기술
경영전문대학원의 겸직교수로서 아키텍처 이론과 모빌리티 혁신에
대해 강의를 하고 있다. 반도체, 모빌리티 분야 이론과 실무를 겸비
한 전문가로서 현재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번에 시의적절하
게 본 저서를 국내에 번역 소개함으로써 그 공이 적지 않다.
본 저서는 비록 일본 얘기지만 일본에 국한되지 않으며, 반도체
강국으로서 반도체 의존이 높은 한국에게는 반도체 생태계의 나무
와 숲을 볼 수 있는 혜안을 주는 결과물임에 틀림없다.
이덕희
KAIST 기술경영전문대학원장
KAIST 혁신학회장
KAIST 기술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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