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사랑이 아니다. 상대에게 자기 환상을 덧입힌 투사일 뿐이다.
팔로우하고 있는 유튜버가 '투사'를 '사이비 사랑'이라 비판했다. 있는 그대로의 상대방이 아닌, 자기 안의 결핍을 채워줄 것만 같은 환상을 상대에게 투영하는 게 일종의 폭력이라는 것이다. 물론, 실제 관계에서 투사는 문제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지금 투사를 하고 있구나' '내 환상을 저 사람에게 덧입히고 있구나'를 아는 사람이 실제 그 사람과 관계를 맺지 않거나, 관계를 맺더라도 상대방을 일방적으로 이용하려는 마음이 없다면 투사가 잘못이기만 한 걸까? 라는 의문이 든다.
어떤 사람에게는 '나의' 환상이 더 잘 붙는다. 나는 오히려 내 결핍과 환상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알고 싶다. 사람은 자기 결핍이 뭔지, 환상이 뭔지 뚜렷이 알지 못한다. 나이가 들고 나서야 그 끌림들이 환상을 덧입힌 열정이었다는 걸 알게 됐다.
투사가 사랑이 아니라는 건 나도 안다. 하지만 사랑이 아니라고 해서 가치가 없는 건 아니다. 투사가 불러일으킨 열정의 상태는 '사랑이 아닌 것'으로 정의될 게 아니라, 다른 카테고리의 감정으로 분류되어야 한다.
아니 에르노의 『단순한 열정』을 다시 읽었다. 한 남자에 대한 욕망에 완전히 사로잡혀 그 시절을 통과해낸 여자의 이야기다.
그 사람 덕분에 나는 남들과 나를 구분시켜주는 어떤 한계 가까이에, 어쩌면 그 한계를 뛰어넘는 곳까지 접근할 수 있었다.
-아니 에르노, 『단순한 열정』, 문학동네, 65-66쪽-
오히려 책에서 묘사되는 열정은, 어떤 사람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상태에서는 얻을 수 없는,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기회를 줬다. 인간은 상대를 있는 그대로 사랑할 때보다, 상대에게 자기 환상을 덧입혔을 때 오히려 자기 자신의 먼 곳까지 닿게 되기도 한다. 환상이 만들어낸 열정이야말로 현실적인 사랑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자기 확장의 경험을 준다.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사랑인 것은 맞지만, 인간은 자기 환상과 결합한 열정도 갈망한다. 그 열정은 매우 드물게 찾아오며, 한때의 열정은 때로 인생에 깊은 자국을 남긴다.
에르노는 『단순한 열정』을 아래의 문단으로 닫는다.
어렸을 때 내게 사치라는 것은 모피 코트나 긴 드레스, 혹은 바닷가에 있는 저택 따위를 의미했다. 조금 자라서는 지성적인 삶을 사는 게 사치라고 믿었다. 지금은 생각이 다르다. 한 남자, 혹은 한 여자에게 사랑의 열정을 느끼며 사는 것이 바로 사치가 아닐까.
-아니 에르노, 『단순한 열정』, 문학동네-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