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아침입니다, 구독자님. 그간 잘 지내셨나요? 아주 오랜만에 뵙는 기분입니다. 15일과 말일에 보내겠다는 약속을 다시 한번 상기하며, 이제부터는 꼬박꼬박 때맞춰 보 내겠다는 다짐입니다.
지난 3월은 잘 보내셨나요. 저는 생애 역대급으로 손 꼽히는 감정이 요동치는 한 주간을 보냈습니다. 살면서 이토록 우울한 적도 손에 꼽고, 그 우울이 이렇게 오래간 적도 처음이었습니다. 우울을 극복할 만한 건덕지가 하나도 없는 시간도 처음이었어요. 나이가 스물아홉이어도 아직도 이렇게 처음 겪는 감정이 많아서야 앞으로의 삶이 새삼스레 기대가 되네요(not positive).
스스로의 지난 삶의 태도도 거하게 돌아보고, 눈물샘 수도꼭지가 고장이라도 난듯이 하루에도 수차례 자의와 무관하게 울기도 하고, 일련의 시간을 보낸 후엔 다시 정말 오랜만에 겪는 도파민 넘치는 주간도 보내면서 사람이 이렇게 감정이 격동적일 수가 있구나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 시간을 보내면서 좋은 점도 있었습니다. 우선 감정은 이렇게나 작은 사건 하나로도 격해질 수 있고, 또 더 작은 사건 하나로도 전환될 수 있는 것이니 과하게 매몰되지 말자. 이렇게 깨달아 놓고도 또 휩쓸리고 좌우되며 우왕좌왕하겠지만은 우선은 이렇게 생각이라도 해봅니다.
두 번째로는 제가 참 안정을 추구해 왔다는 것을 새삼스레 느꼈습니다. 제 삶에서 제가 허용한 변화는 오직 제가 예전부터 계획해온 것들이었을 뿐, 그밖의 것들은 일말의 여지도 주지 않은 채 살아왔고 그게 제겐 맞는 삶의 방식이라 믿어 왔는데 그렇지만도 않다는 걸 배웠습니다. 모른 척 해온 무한한 격동의 순간들을 반가이 맞이하며, 지금껏 제가 하지 않았을 법한 선택도 하면서 살아가려 합니다. 그렇게 해도 대단히 달라지는 것도 없더라고요.
세 번째는 없습니다! 우선 두 개만 깨달았어요^.^ 사람과 환경과 시간에 대한 아쉬움과 원망은 뒤로 한 채 지금 제가 가진 것과 앞으로 가질 수 있는 것에 집중하며 또 2분기를 보내보려고요. 부디 4월의 저는 3월의 저보다는 덜 울고, 남을 덜 신경 쓰고, 나를 더 신경 쓰며 살길 바랍니다.
이상하게도 저는 한평생 당당하고 마이웨이로 살았다고 생각하는데도, 어느 순간 환경에 녹아들기 위해 움츠리고 읊조리는 모습을 발견하곤 합니다. 오히려 제가 계속 함께 할 관계나 환경에서는 제 모습을 거리낌없이 보여주면서도 '잠시'라고 생각하는 관계와 환경에서는 스스로를 한 없이 숨기고, 제가 생각했을 때 바람직한 모습이라고 생각하는 관념적 저를 내세우려고 합니다. 딱히 그럴려고 노력하는 것도 아닌데 자연스레 그렇게 꾸며낸 제 모습이 예전엔 참 좋았는데 요즘엔 그렇지도 않네요. 살면서 좋은 평가를 받았던 건 정작 제 원래 모습을 가감 없이 내보였을 때인데도 불구하고, 왜 그렇게 숨기게 되는 걸까요? 한때는 제가 저를 너무 사랑해서 내가 사랑하는 내 모습을 내가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안 보여주고 싶어서 (?) 보물을 숨기듯이 숨긴다고 생각했는데, 요즘엔 그냥 흠잡히기 싫어서 그랬다는 생각이 드네요. 욕심이 많은 거겠죠. 좋은 모습만 보이고 좋은 말만 듣고 싶은. 대단히 잃을 것도 없으면서 나이가 들수록 겁만 많아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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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 쓰다 만 글을 편지를 보내기 전날 발견했습니다. 같은 날 쓴 글인 척 이어가기에는 도저히 저날의 마음이 생각나지 않아서 이어쓰지는 못하겠네요. 브로콜리 너마저의 앵콜요청금지가 떠오르는 날입니다. 모쪼록 지금은 저 마음이 기억나지 않을 만큼 마음 건강을 회복했는 거라고 생각하며 스무스하게 넘어가보겠습니다. 구독자님도 지금 고민하는 것, 지금 괴로워하는 것이 있다면 머지 않은 날 그 원인이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좋은 일들로 덮이길 같이 바라겠습니다. 다시 만날 4월 30일에는, 또 오늘의 고민이 기억나지 않기를..! 짧게 슬퍼하고, 짧게 힘들어할 나날들만 있기를 바랍니다.
참, 분명 그때나 지금이나 '저'라는 사람은 그대로인데도 불구하고 저는 '그때'의 저를 이해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기록을 해야 하나 봅니다. '나'조차도 이해하지 못하면서 타인, 그리고 세상은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도무지 이해되지 않은 과거의 혹은 미래의 스스로를 이해해 보려는 시도 끝에 우리는 내 옆의, 건너 편의 사람을 이해할 수 있는 여지를 열어둘 수 있겠죠. 아무렴 오늘의 기록이 언젠가의 저를 이해하는 파편이 될 수 있길 바라며... 진짜로 오늘의 편지를 마무리 짓겠습니다.
최근의 꿈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꿈
엊그제 꿈을 꿨습니다. 이렇게 선명하게 기억에 남는 꿈은 참 오랜만이었는데요. 꿈에서 저는 배라고 말하기도 민망한 판자를 타고 어떤 아저씨와 함께 망망대해를 건너고 있었습니다. 여기가 어디인지, 어디로 향하는지도 모르지만 어디론가 향한다는 사실만은 분명해서 '건넌다'는 표현을 쓸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상하리만큼 파도도 치지 않고 고요한 바다에서 둘이 가만히 둥둥 떠다니면서 저는, 요즘 제가 현실에서 하고 있는 고민들에 대해 아저씨에게 터놓았습니다. 실은 제가 내년에 계획하는 일이 있고 나름의 준비도 하고, 주변에 가감없이 말할 정도로 자신감이 차 있지만서도 내면에 불안이 있었나봅니다. 확신을 가지면서도 혹시 하는 마음이 두렵고, 돌아왔을 때 제 자리가 없을까봐, 또 괜한 짓을 한 걸까봐, 매몰비용이 지금 예상하는 것 이상일까봐 자꾸만 겁이 났나봅니다, 저도 모르는 새에요.
그런 고민들을 꺼내놓는데 그 아저씨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지금 너와 내가 이 플라스틱 배로 바다를 건넌다는 것을 누가 믿어주겠냐만은 우리는 분명 건너고 있지 않느냐, 너의 계획도 지금은 믿기지 않고 모두가 설마하는 마음일지라도 너는 분명 현실로 만들어갈 것이라고요. 그 말을 들으니 왜 그리도 안심이 되는지요. 입밖에 꺼내 놓는 순간 비현실적일지 모르는 일도 지금 (꿈에서) 겪고 있는 것처럼, 제가 바라는 2026년 역시 그러할 것이라고요.
그런데 말입니다, 구독자님. 제가 이러한 꿈을 꾼 날 오랜만에 뵙는 인물을 만났습니다. 해외에 주로 계셔서 가끔 한국 들어올 때에만 뵙는 분인데요. 간밤에 그런 꿈을 꿔서 그런지 이 분께 요즘의 제가 하는 고민들을 두서없이 꺼내놓았는데, 어쩜 제가 듣고 싶었던 말을, 또 제가 평소에 듣지 못한 말들을 들려주시더라고요. 그 말이 하나 같이 기존의 좁은 제 생각을 깨고 지평선 너머를 바라보게 하는 말이었습니다. 오컬트를 좋아하는 저는 또 이게 일종의 예지몽이었나 생각해 보면서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아직 열리지 않은 길이기에 얻을 수 있는 즐거움을 먼저 떠올려봅니다.
구독자님의 이름이 궁금한 건에 대하여
도발적인 소제목에 당황하셨나요. 제게는 구독자님이 구독하실 때 쓴 구독자명이 보입니다. 아이디 그대로 쓰신 분이 있는가 하면 본명을 쓰신 분도, 별명을 쓰시거나 숫자 등을 쓰신 분도 계십니다. 저는 새롭게 구독하신 분들의 이름을 볼 때마다, 이 분은 어떤 연유로 이 이름을 쓰게 되셨을지 궁금하곤 해요. 특히 별명이요.
어릴 때야 우리들의 별명은 대부분 타의적으로 만들어집니다. 이름에서 놀리기 좋은 부분을 떼오거나 신체적 특징, 혹은 특정 사건을 계기로 만들어지곤 하죠. 그러다 나이가 들면서 각종 포털 사이트나 커뮤니티에서 쓰는 별명은 자의적으로 붙인 것들입니다. 어릴 때부터 쓰던 거라 자연스레 쓰는 경우도 있지만 자신만의 고유한 필명, 혹은 애칭은 붙이는 경우도 있고요.
저는 대학교 때 친구가 붙여준 별명을 그대로 씁니다. 제 이름에서 특정 자음을 다른 자음으로 교체한 별명인데요. 어감도 동글동글해져서 귀여워서 웬만한 닉네임이나 아이디를 해당 별명에서 착안해 짓곤 합니다. 그래서 구독자님의 이름을 볼 때면 어떻게 지어진 이름인지 궁금해지는 겁니다.
간혹 굉장히 음유시인 같은 느낌이 물씬 나는 이름들이 있는데, 이런 별명을 볼 때면 괜히 상상도 되곤 합니다. 어떤 모습일지, 직업은 무엇이고 이 뉴스레터는 왜 읽으시는지. 또 다른 뉴스레터는 어떤 걸 보시는지. 저는 또 궁금한 게, 뉴스레터를 꼬박꼬박 챙겨 읽으시는 분들은 왠지 독서도 많이 하실 것 같아서 어떤 책을 좋아하시는지도 궁금하더라고요. 호기심이 고양이를 죽이기도 하지만 저는 호기심이 곧 일생을 살아갈 원동력인 사람인지라 이런 생각이 한번 들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집니다. 혹시나 시간 나실 때, 닉네임과 함께 어떤 성향의 사람이신지 아래 편지함을 통해 공유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얼마전 제 뉴스레터를 열심히 읽어준 친구들이, 구독료를 낼 거니 예전처럼 매일 써주면 안 되겠냐고 농담 삼아 말했습니다. 속으로 어림도 없지,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정말 이제는 제 능력 밖이라서 예전처럼 매일 같이 쓰지는 못하겠다고 생각했는데요. 지금 쓰다 보니까 매일 쓸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위에 '여기까지 쓰다 만 글을 ~ ' 부터 지금까지 한숨에 쭉 써내렸거든요. 정작 기사 마감 중이어서, 아직 써야 할 글은 다 못쓰고 허덕이고 있으면서 조잘조잘은 왜 이리도 수월하게 쓰이는지요. 아무래도 다시 매일 쓸래도 쓸 수 있겠나 봅니다. 그런데 또 쓰다 보니까, 매일 쓰게 되면 아마 써야 할 기사를 쓰기 싫어질 때마다 도피처로 여기를 오겠구나 싶어서 아득해지기도 하고요. 아무렴 ... 그렇게 또 한달이 지났습니다. 구독자님, 남은 보름도 잘 살아내시고 우리 30일에 다시 만나요. 늘 편안한 하루 보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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