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n년 전의 나를 책장에서 가끔 발견하고는 한다

2025.04.30 | 조회 2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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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잘조잘

늘 그래왔듯, 당신 곁의 이야기

좋은 아침입니다, 구독자님. 지난 4월을 잘 보내셨나요? 거짓말 같이 5월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이상하게 올해는 올초부터 폭풍같은 시간들을 보내고 있는데요. 4월은 정말 폭풍의 폭풍의 폭풍 같은 하루들로만 가득 했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무슨 일들이 있었는지 하나하나 나열해가면서 모든 걸 써내리고 싶지만 그랬다가는 거대한 음모와 모함과 비난의 낱말들로만 가득할 것 같아서 참아봅니다.

이번 4월엔 가족을 많이 만났습니다. 부모님께서 서울에 1박으로 오시기도 했고, 제가 대구로 3박으로 내려가기도 했습니다. 다음주에 또 내려갑니다. 마음이 불안정할 때는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면 한결 낫습니다. '고향'의 개념을 이제는 온 마음으로 느낍니다. 도망치고 싶을 때 도망갈 곳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요. 한편으론 그렇게 돌아간 곳에서는 마냥 이대로 살고 싶은 마음도 듭니다.

그런 생각을 하다가도 제 사주오행에는 화가 많아서 화 기운이 강한 대구에서는 살면 안 된다는 오컬트적 결론에 도달합니다. 이번에 고향에 내려갔을 때, 집 책장에서 제목이 강렬해서 쥐어든 책이 있는데 글쎄 깜짝 놀랐습니다. 책 젤 앞장에 15살의 제가 쓴 글이 있더라고요.

구독자님께 예전에 말씀을 드렸기도 했지만, 저는 정말 온갖 염세주의와 선민의식에 찌든 중학교 시절을 보냈습니다. 이는 지금도 사그라들지 않고 제게 남아 있는 것 같기도 한데요 ^^; 중2병을 거하게 앓으면서 대단한 사명감을 갖고 태어났고, 이왕 세상에 태어난 김에 내가 발 붙인 지구를 보다 낫게 만들고 싶다는 마음이 절절 끓었는데 그 마음을 책에 써놨더라고요. 당시 또 제 취미가 책에다가 글 쓰면서 읽기였거든요. 미래의 제가 읽으면 마치 시그널처럼 과거와 미래의 내가 만나는 장이 이 책이 되길 바라는 마음을 갖고요..^^ 다른 얘기지만 그래서 친한 친구 선물로도, 책에다가 친구랑 나누고 싶은 생각을 곳곳에 적어서 주기도 했습니다. 그때 준 책이 논어였는데, 친구가 생일 선물로 논어는 안 좋아한다고 (?) 나중에 얘기해준 기억이 나네요.

아무튼 수줍은 과거지만 보다 보니 재미있어서 구독자님께도 공유해봅니다. 진짜 중학생 그 자체의 날 생각이지만 표현을 덜고 덜고 덜으면 지금의 저와 그닥 다를 바도 없어서, 사람은 쉽게 안 변하는구나를 새삼 느꼈습니다. 또 요즘 현생을 핑계로 잠시 잊고 살았던 제가 살고 싶은 방향성에 대해서도 돌아보게 되고요. 나름의 용기를 내서 공유드리니 중2병이라는 비난은 숨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구독자님도 이렇게 과거의 흔적들을 순간순간 마주할 때가 있나요. 주로 어디에 기록을 해두셨는지, 그 글들은 또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는지 궁금하네요. 기회가 된다면 제게도 들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우하하. 

5월은 또 휴일이 많아요. 저는 감정적이었던 3월과 4월은 보내고 5월부터는 다시 이성 500%로 살아보겠다는 다짐과 함께 달려보려고 합니다. 불행은 덜고 행복은 더하는 보름 보내고 5월 15일! 좋은 숫자네요. 스승의 날에 다시 만납시다⭐

15살의 제가 쓴 글은 마지막에 넣어두겠습니다. 그럼.. 진짜로 안녕 !! 


결단의 순간이 가까워지는 가운데 고민의 시간이 길어지는 건에 대하여

실패하기 싫다는 두려움은 선택을 지연시키고는 합니다. 지금 내리는 판단이 확실한 근거를 바탕으로, 틀리지 않았음을 무수히 증명하는 과정을 거친 후 이뤄진 것인지를 끊임없이 반추합니다. 그렇게 했을 때,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더 이상 어찌할 도리가 없을 만큼 최선이라는 생각일 들 때에나 겨우 선택을 하곤 합니다.

이 같은 선택은 대체로 좋은 결과를 가져옵니다. '좋은' 결과라는 기준은 적어도 스스로는 만족하는 결과를 말합니다. 이 이상으로 더 잘 한 선택은 없었을 거라는 안심이기도 합니다. 지난 삶을 돌이켜봤을 때, 무언가를 '선택'한 순간들은 대체로 이러한 과정을 거쳤습니다.

단, 아이러니하게도 정작 현실은 그 선택들에서 한 발 비켜간 것들로 이뤄지곤 합니다. 실은 제가 선택한 것들로만 삶을 채워갈 수는 없는 것이죠.

잘 알면서도 매번 선택의 순간 앞에서 고심하는 까닭은, 결국 그 현실은 '한 발' 비켜나간 것이지 완전히 틀어진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렇게나 큰 그림을 그리고 덧그리고 덧그리고 나서야,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오차 범위 내의 삶이 그려질 것이라는 기대감을 버릴 수가 없나 봅니다.

예전엔 그러한 고민의 과정이 즐거웠습니다. 취미가 계획을 세우는 것이라고 할 만큼 현재 가지고 있는 것과 가질 수 있는 것들, 가져야 하는 것들을 하나씩 놓아 보며 최선의 선택지를 고르고 골랐죠. 이제는 그러한 고민이 좀 버겁습니다.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삶은 어떻게든 채워지기 마련이고, 그렇게 채운 삶이 때때로는 더 다채롭다는 것을 알게 돼서일까요. 혹은 노화의 한 단계일까요. 새로운 것을 하기에는 지치고, 지금 익숙한 틈바구니 안에서 그냥 살아가는 것이 '낫다'는 생각이 드는 것 자체가 마음이 늙어가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무언가를 갈망하고 희망하는 것에 피로를 느끼고, 주어진 것을 유지 보수 하는 데 만족하고, 이제는 '나'뿐만이 아닌 관계와 그 관계들과의 미래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겠죠.

그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도 창밖을 보니 날씨가 너무 좋네요. 본가에 내려와서 엄마 직장 근처 호수가 잘 보이는 카페에 앉아서 느긋하게 노트북이나 두드리면서 이런 잡생각을 하는 게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도 들고요. 이러니 저러니 해도 살아지는 게 삶이라면 너무 무겁게 살 필요가 있나 싶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늘 마음이 무겁고 가끔 숨이 턱 막히는 까닭은 이십구춘기이기 때문일까요. 주변을 둘러봐도 요맘때쯤에 다들 온갖 고민을 하고, 이전과 다른 선택을 하기도 하고, 앞으로의 삶의 방향을 갈무리하기도 하고 그러는 것처럼 보입니다. 어른이 돼야 하는 시기라고들 하는데 아직 어른이 되지 못한 마음이 무수한 갈등에 놓여 있어서 그런 걸까요.

나이탓을 해보지만은 돌이켜보면 매 순간 그랬습니다. 스물초반 무렵에는 그때만의 고민이, 중반에는 또 그때만의, 서른 마흔이 되고 쉰, 예순이 돼도 마찬가지겠죠. 오히려 더 깊어지면 깊어지려나요.

그런 것이라면 이 시기가 지나가면 괜찮겠지, 라는 생각보다는 언제고 반복해서 찾아올 고민이라면 너무 잠식되지 말고 그러려니 하는 태도도 견지해야겠다고 생각해봅니다. 고민을 해서 고민이 없어지면 고민을 할 리가 없겠죠. 우하하.


첨부 이미지

이게 탈무드 같은 느낌의 책이었는데 첫 페이지에 이렇게 적었더라고요. 스스로에게 쓰는 편지였는데 대단한 자기애와 함께 중학생다운 포부가 느껴집니다. 산소만 축내다 죽는다 등의 과격한 표현에서 사춘기라는 것도 여실히 전해지고요..^^ 그럼에도 여전히 심금을 울리는 글도 있는데요. 누군가 나를 보는 시선은 잠깐이지만 난 내가 죽는 순간까지 지켜본다는 말이 콱 박히네요. 그리고 한편으론 저렇게 다짐했던 열다섯살의 나에게 과연 스물아홉살의 나는 부끄럽지 않게 살고 있나? 생각도 듭니다. 호되게 꾸짖음을 당하는 기분도 들고, 어제의 나에게 미안하지 않게 살자고 했는데 이미 너무 미안한 마음도 들고요. 이제라도 잘 하면 되겠죠? ^.^

그와중에 아마 화!이!팅!을 쓰고 싶었던 거 같은데 화!까지만 쓰고 깜빡하고 이팅 연달아 쓴 것 같아서 저 오묘한 마무리가 킹받기도 합니다. 어쩐지 저때의 제가 지금의 저보다 더 성숙한 것도 같네요. 요즘의 저는 제게 닥친 일들에 남탓하기 급급한 후에야 스스로를 돌아보게 됐는데 말입죠. 모쪼록... 또 14년 뒤, 43살이 된 제가 언젠가의 조잘조잘을 읽었을 때 이런 머쓱한 마음을 느끼지 않도록 잘 살아봐야겠습니다.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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