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버지니아 울프는 영국 문학사에서 하나의 '지점(point)'이 아니라, 그 누구도 밀어낼 수 없는 '중심(centre)'이었다. 그녀가 사라진 것은 우리 세대 문학의 한 시대가 완전히 끝났음을 의미한다."
T.S. 엘리엇은 버지니아 울프의 사망에 대해 이렇게 평했다. 그녀가 죽고 문학이 죽었다. 또 많은 사람들에게는 세상이 끝났다.
"Mrs. Dalloway said she would buy the flowers herself."
꽃은 자기가 사 오겠노라고 델러웨이 부인은 말했다. 버지니아 울프는 자신의 인생이 오롯이 자기 안에 담겨져 있다고 생각했다. 그녀를 평생 괴롭힌 정신질환은 외적인 것이 아니며 외적으로 치유될 수도 없었다. 지독한 어둠 속에서 불을 켜야 한다면 그것 역시 그녀 자신의 의지로만 가능한 일이었다. 평생을 자기 자신과 싸웠기에 편협한 시선으로 그녀를 억누르는 사회적 압박 따위는 그리 대단할 것이 없었다.
"For there she was."
그곳에 그녀가 있었으므로. 소설 《델러웨이 부인》은 이 짧은 문장으로 끝난다. 그러나 그녀 하나만으로 충분했던 세상이 무너지고 있었다. 독일 나치의 지독한 폭격 속에 유대인인 남편과 함께하며 생과 사를 넘나드는 공포를 느꼈으리라. 오죽하면 집에 독약을 마련해 놓고 최악의 순간에는 그것을 먹고 같이 죽자고 했을까? 그럼에도 그녀를 끝낸 것은 그 누구도 아닌 그녀 자신이었다. 클라리사 델러웨이는 상류사회의 형식적인 안주인으로 살아가며 끝없이 자아의 분열과 허무를 느끼고 있었지만, 마지막까지 파티를 준비하며 기어이 살아가는 것을 선택했다. 그것이 버지니아 울프가 원했던 인생이었다. 삶을 견디고 시간을 견디고 인생을 견딘다. 그러나 부서지지 않는 영혼은 없었다. 임계점을 지나면 어떤 고귀한 영혼도 부서지고 망가진다. 빈센트 반 고흐가 그랬고, 앨런 튜링이 그랬으며 커트 코베인이 그랬다.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
버지니아 울프는 언제가 스스로를 해칠 것이라고 자기 자신을 두려워했다. 그리도 또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두려워했다. 그녀를 두려워한 사람은 어떤 사람들일까? 《델러웨이 부인》에서 버지니아 울프는 현대인의 사회적 가면 뒤에 숨은 위선과 허무를 여과 없이 보여준다. 남들의 시선이나 사회적 지위, 타이틀을 자신의 진짜 정체성이라 믿고 사는 사람들에게 버지니아 울프의 세밀한 문장은 그들의 내면을 해체하는 메스와 같았다.
에드워드 올비의 연극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는 대학교수 부부가 밤새도록 독설을 퍼부으며 서로의 치부와 허상을 까발리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위선과 허구로 가득 찬 삶을 살아가는, 그러나 정작 진실을 마주하기 두려워하는 인간들을 고발한다. -하지만 이런 고발과 자각이 필요한 인간들은 버지니아 울프를 읽지 않는다-
울프 가문의 주치의도 다르지 않았다. 빅토리아 시대의 정신과 권위자였던 조지 새비지 경은 버지니아 울프의 정신질환이 과도한 지적 활동 때문이라 진단했다. 그는 처방으로 독서 금지, 글쓰기 금지, 침대에 누워 우유와 고기 먹기를 제시했고 집 안에 격리해 친구들의 방문과 편지 왕래까지 막았다.
"인생의 의미는 무엇인가? 그것이 전부였다. 나이가 들면서 점차 조여드는 단순한 질문. 위대한 계시는 결코 오지 않았다. 어쩌면 위대한 계시 따위는 처음부터 오지 않는지도 모른다. 그 대신 매일의 작은 기적들, 영감들, 어둠 속에서 뜻밖에 켜지는 성냥불 같은 것들이 있었다. 여기 그것이 있다."
버지니아 울프는 소설《등대로》 (To the Lighthouse)에서 이렇게 적었다. 인생의 의미는 파고들수록 미궁에 빠지고 한번 답을 찾았다 해도 그 답은 오래가지 않았다. 질문은 단순하지만 대답은 누구도 할 수 없는 것이다. 계시는 기대할 수 없고 그리하여 매일의 작은 기적에 의지하는데 그저 살아가고 싶을 뿐이라는 작은 소원마저 신은 들어주지 않았다.
누구도 그녀를 울리지 않았고 울릴 수도 없었겠지만 그녀는 스스로 자기 삶의 마침표를 찍었다. 마지막 남은 의지와 주체성의 발로가 그것이었던 것처럼.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파괴할 권리가 있을까? 어느 쪽으로 대답해도 수만 가지의 반박이 있을 것이다. 그러니 적지 않겠다. 그러나 빛은 어디에 있는가? 빛을 찾으면 찾을 수는 있나? 삶이 지치고 진절머리 날 때, 나는 버지니아 울프를 읽는다. 내 안이든, 밖이든 이정표 삼을 수 있는 작은 불빛 하나를 찾기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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