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뭐 없다. 자기가 행복하면 된다."
그냥 하던 말인데 이제 와 보니 지혜가 담겨 있는 말이었다. 삶이 주는 이런 저런 경험이 쌓일수록 점점 맞는 말이 된다. 그렇지 않나? 대통령도 감옥에 가고 세계적인 부자도 한순간에 비행기 사고로 죽는다. 좋은 대학 갔다고 인생에 아스팔트가 깔리는 것도 아니고 대기업 임원이 됐다고 성공한 것도 아니다. 언제든 바닥으로 추락할 위험을 안고 산다. 어느 날 갑자기 인공지능 시대가 될 줄 알았나? 그 인공지능 때문에 내 취업이 어려워질 줄 알았나? 의대 들어 갔더니 의료 파업 할 줄 알았나? 비트코인이 이렇게 떨어질 줄 알았나? 이란 전쟁 때문에 포장재 값이 올라 배달 전문점 이익이 줄어들 줄 알았나?
그러니 인생 뭐 없다는 말이 딱 맞는 말이다. 눈 앞에 즐거움이 있을 때 누리지 못하면 영원히 못 가질 수 있다. "있을 때 즐겨라!"
이와 유사한 말이 몇 개 더 있다. "항상 겸허하게 살아라."
겸허는 개뿔, 겸손하다고 누가 더 챙겨주나? 라고 생각했지만 이 또한 맞는 말이었다. 자랑으로 한 말은 언젠가 화살이 되어 되돌아온다. 따져보면 나의 자랑질을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보다는 저러다 한번 엎어질 것이라며 내 불행을 기원하거나 실제로 엎어졌을 때 내심 고소해 하며 위로를 건네는 인간이 더 많다. 누구도 남이 잘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니 겸허해야 할 밖에, 남을 위해서가 아니라 날 위해서 겸허해 져야 한다.
공부해서 얻은 지식만 쓸모 있는 건 아니다. 근거도 희박하고 논리도 빈약하지만 그냥 맞는 말들이 있다. 살아갈수록 그런 지혜가 누적된다. 그런 의미에서 행복은 어디에 있는가?
나는 지금보다 돈이 아주 많으면 요트를 타고 세계 여행을 하면서 뱃전에 누워 샴페인을 마시며 물멍을 하고 싶다. 그렇게 하늘을 닮은 파도의 일렁거림과 햇빛의 반사에 눈을 살짝 찌푸리며 아무 생각 없이 시간을 보내고 싶다. 그러면 마냥 행복할 것 같다. 굉장한 꿈 같지만 의외로 주변에는 그게 가능한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는다. 그들은 지금의 재산을 더 부풀리기 위해 깨알 같은 숫자를 들여다 보고 밥 먹을 때도 새로운 투자처를 찾는다. 아는 건 얼마나 많은지.. 전화는 또 얼마나 많이 하는지.. 임장은 뭘 그렇게 다니는지..
있는 부와 여유를 누리지 않는 그들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지금은 안다. 그들의 인생이 거기에 있다는 것을. 요트를 가지고 있어도 선착장에 세워 두는 날이 더 많고 언제든 해외 여행을 갈 수 있지만 사무실에서 엑셀 시트를 두드리는 것을 더 좋아한다. 결정적으로 그들은 자신이 부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남보다 조금 더 잘 살 뿐이고 아직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행복하다면 다행이겠지만 행복하다고 말하길 꺼려한다. 행복 선언을 하면 재산 증식이 멈출 것처럼.
나도 그럴까 상상해 본다. 내가 꿈꾸는 돈이 뚝 떨어지면 무척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과거를 돌아보니 꼭 그럴 것 같지는 않다. 첫 직장을 가질 때만 해도 5억만 모으면 은퇴하고 시골에서 조용하게 살겠다고 생각했다. 5억은 진작에 넘어섰다. 그런데도 난 여전히 그만 두지 못한다. 심지어 정년 이후에 어떤 일을 할지 고민한다. 노후를 걱정하기 때문이다. 뭐 얼마나 더 잘살겠다고. 한심하다.
수준은 다르지만 내가 못 멈추는 것과 주변의 부자들이 못 멈추는 것은 비슷하다. 나는 이런 인생에 길들여졌고 부자들은 부자 인생에 길들여졌다. 그래서 못 멈춘다. 권력도 마찬가지다. 국회의원 되면 만족할 것 같지? 대통령 되면 세상 다 가진 것처럼 행복할 거 같지? 안 돼 봐서 모르겠지만 그들을 인터뷰 한다면 충분히 만족한다는 대답은 나오지 않을 것이다. 가식만은 아니다. 뇌과학적으로 행복감은 3초면 사라진다. 도파민이 분비되는 보상 시스템은 급상승했다가 급하강한다. 자극에 익숙해지면 더 강한 자극을 원하기 때문에 행복감이 있었던 자리는 곧바로 새로운 도전욕이 대체한다. 그래서 멈출 수 없다.
행복에 안주하려면 적당한 선에서 멈춰서 평온함을 느끼는 것이 핵심이다. 필요하다면 나보다 못하게 살고 있는 사람들과 비교하면서 상대적 위안을 얻어도 된다. 말로 상처 주지만 않는다면 마음 속에서 뭔 짓을 하든 무슨 상관이랴? 저 사람은 저렇게도 사는데 나는 뭐 이 정도면 된 거 아니야?
그런데 사소한 문제가 있다. 다른 사람들이 '정신 승리'라며 비웃는다. 정신 승리 맞다. 그런데 그게 비난 받을 일일까? 멈춰서 이제 충분하다며 스스로 만족하는 게 뭐 나쁘지? 꼭 남들이 손가락질 해서 생기는 문제만은 아니다.
적은 내 머릿속에 있다. 내 머릿속 이 녀석은 나를 잘 알면서 가장 모난 돌을 들어 나에게 던진다. 마치 나를 위하는 것처럼 이렇게 속삭인다. 야, 좀 더 달려. 새로운 도전을 멈추지 말란 말이야. 너 지금 뭐 대단한 거 같지? 그거 아무것도 아니야. 그 정도 명성이나 돈은 순삭 사라진다고. 떨어질 때를 대비해야지. 추락하지 않게 견고한 너의 성을 높이 쌓으라고! 멈추고 싶어 하는 나를 도전을 포기한 패배자로 낙인 찍는다.
'스스로 가스라이팅'이다. 내가 나를 비난하고 낙인 찍고 멈추지 못하게 채근하는 이유는 멈추면 뒤처진다는 교육을 받았기 때문이며 사회적으로 길들여졌기 때문이다. 학교, 부모님, 주변 시스템. 그래서 정신 승리도 쟁취하기 만만치 않다. 반대로 정신 승리를 거머쥐면 정말 승자가 될 수 있다. 누가 뭐라 해도 무너지지 않는 진정한 승자. 자기가 괜찮다는 데, 자기가 좋다는 데, 자기가 만족한다는 데 그 누가 이를 반박할 것인가?

엄청난 자리에 앉는 것보다, 내 하루가 망가지지 않는 것.
남들이 우러러보는 것보다, 내가 잠을 편하게 자는 것.
큰 이름을 남기는 것보다, 몸이 덜 아프고 돈 걱정이 덜한 것.
세계가 나를 알아주는 것보다, 내가 내 생활을 견딜 만하게 여기는 것.
주변의 시선을 아랑곳 하지 않고 이런 태도를 유지할 수 있다면 당신은 능력자이며 이미 승자다.
한 가지 주의할 점은 막 하는 말들이 다 맞는 건 아니라는 것!
고통을 나누면 절반이 된다, 이건 틀렸다. 그게 어떻게 절반이 되나? 고통 만큼은 온전히 자기가 감당해야 할 몫이다. 내 불행은 부모라 할지라도 떠넘길 수 없다. 게다가 불행과 고통은 디테일이 무궁무진하다. 이 지점에서 정신 승리의 필요성이 더 두드러진다. 어지간한 불행을 흘려 버리고, 웬만한 고통은 외면할 수 있다면. 인생은 원래 고통이라는 뻔한 부처님의 말을 스윽 인용하면서 정신 승리를 쟁취할 수 있다면, 어떤 시련이 닥치더라도 두렵지 않을 것 같다.
잠깐 멈춰서 잘 생각해 보자. 지금 나에게 필요한 승리는 오직 하나, 정신 승리 아닐까?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