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뭐든 빨리 끝내길 원했다. 하나를 끝내야 다음으로 넘어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번복하는 것을 싫어한다. 이미 내린 결정을 바꿔봐야 더 나은 결정을 한다는 보장이 없다. 비효율적이다. 바꾸고, 취소하고, 환불하는 것, 모두 내키지 않는다. 심지어 좋아하고 싫어하는 취향도 바꾸지 않는다.

스마트폰 알림처럼 내 머릿속에는 수시로 알림이 뜬다. 이 일, 저 일, 이 생각, 저 생각.
계속해서 쌓이는 머릿속 알림을 말끔히 지워야 개운해지는데 그게 만만치 않다. 스마트폰 상단에 누적된 알림을 익숙한 손놀림으로 스와이프 하는 것처럼 머릿속 일거리와 고민들을 빠르게 처리하고 싶다. 그런데 뭔가 틀어져 이미 화면 왼편으로 날려 버린 고민을 다시 불러오면 내 머리는 일시적 공황 상태에 빠진다. 각종 알림들이 정리되지 않고, 순서를 잊어버리고, 뭘 해야 할지 모르는 상태... 그래서 나는 결과가 아쉽더라도 빨리 처리하고 거의 후회하지 않는다. 환불도 싫다. -생각없이 구매 버튼을 누른 멍청함을 자책하고 싶지 않다.
그런데,
짜증 나게도 그냥 끝나는 것은 없었다. 끝났다고 생각한 것이 착각이었다. 그것들은 은밀하게 멈추지 않고 끝없이 진행되고 있었다. 끝나는 것처럼 보이다가 다른 일을 만드는가 하면, 어떤 것은 겉모양만 조금 바꿔 새 일인 것처럼 짠하고 등장한다. 특히 근심, 걱정, 불안 같은 불편함들은 절대 그냥 사라지지 않는다. 날이 좋으면 어둠 속에 숨었다가 재등장하는 물귀신처럼 기분 좋을 때는 편도체 뒤로 숨었다가 기분이 다운되면 전두엽 솔기마다 달라붙어 사람을 미치게 만든다. 그리고 이렇게 속삭인다.
'넌 절대 나아지지 않을 거야. 네가 나아지게 두지 않을 거야.'
알고 보니, 원래 세계의 속성이 끝나지 않고 계속되는 것이란다. 철학 시간에 배웠던 것을 잊고 있었다.
- 존재란 완성된 상태가 아니라 변화의 과정이다. -헤라클레이토스
- 모든 존재는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되어 가고 있다. -화이트헤드
- 인간은 매 순간 과거를 품은 채 새로운 자신이 되어 간다. -베르그송
- 인간에게 완성된 본질은 없다. 자신을 끊임없이 극복하며 되어 갈 뿐이다. -니체
- 존재는 생성이다. -들뢰즈
왜 잊고 있었을까? 왜 끝난다고 생각했을까? 겉으로는 웅장한 만년설을 위시하면서 속으로는 얼음을 녹이고 지반을 약하게 만들어 대참극을 만들어낸 네팔의 빙하처럼, 혹은 우크라이나 전쟁과 이란 전쟁처럼
그 어떤 것도 끝나지 않는다. -난장판 정치권도 그렇고, 요동치는 주식 시장도 그렇고, 요즘은 정말 끝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언제나 그렇지만 문제는 '나'였다. '끝낸다'는 심리 기저가 잘못된 것이었다.
지금까지 나의 일상은 [ 완성(끝) → 다음 ] 구조였다.
그러나 실상은 [ 진행 중 → 변화 → 다시 진행 ]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조금은 근원적인 질문을 해보자. 나에게 마무리(끝냄)가 왜 중요했을까?
그건 불확실한 세상으로부터 나를 지키는 장치였기 때문이다. 미완의 틈이 생기면 불안이 들어오고, 일이 흐트러지면 무방비 상태가 된다. 그러니 '마무리'라는 확실한 방식으로 심리적 틈을 막고 완성형을 추구한다.
그러나 마무리는 불가능하다. 만물이 유전하는데 어떻게 '끝남'이 있을까?
세상이 바뀌어 줄 리는 없고, 내가 심리 기저를 바꾸는 수밖에 없다. 내키진 않지만 오늘 이 시각부터 이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미완성은 가능성의 공간이다.
예상 밖은 새로운 길이 열리는 문이다.
흐트러짐은 변화가 들어오는 틈이다.
끝나는 것은 없으니 절대 속지 말고, 대충 마무리한다. 이 마무리는 끝내는 것이 아니다. 내 기준에서는 일종의 땜질 처방이다. 그리고 어떤 것도 끝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1단계만 처리했다고 생각한다. 다시 시작될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와이프나 아들처럼, 스마트폰에 수십 개씩 쌓이는 알림을 지우지 않고 놔두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거슬리지 않나? 왜 미루지? 그러나 그들이 현명한 것이었다. 알림은 어차피 쌓이고 절대 끝나지 않는다. 당장 필요한 것들만 체크하고 나머지는 무시한다.
당장 그들을 흉내내기는 어렵다. 대신 나는 알림을 지우고 다음 알림을 기다려 보기로 했다. 알림은 성가심이 아니라 새로운 변화를 의미하기도 하니까. 물론 그 변화가 꼭 좋지는 않겠지만 매일 똑같은 반복에 조그만 균열이라도 낼 수 있으면 '희망'이라는 게 자랄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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