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피레터 2.0 - 은행이 밟히기 시작했다는 것은

은행이 밟히기 시작했다는 것은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 때면 "아, 가을이구나" 하고 생각하다가도, 한낮의 따가운 햇살을 맞으면 "아직 여름이네" 하고 착각하게 되어요. 가을 태풍으로 길고 길었던 여름이 떠날 기미가 보이나 했더니 다시 아직은 완전히 여름이 떠날 시기가 아닌가 봐요. 조금은 시원하면서도 조금은 더운 요즘의 나날들을 보내면서 제가 좋아하는 알록달록한 가을은 언제 오나 하늘을 쳐다보곤해요. 그러다 고개를 내려 바닥을 봤을 때 비로소 가을의 입구를 만난 것 같았어요. 

오랜만에 이어폰을 빼고 집 앞 산책을 하다가 발 밑에 짓이겨진 은행들을 마주했어요. 구리구리하면서도 왠지 고소한 것 같은 냄새. 은행의 향기는 참 묘해요. 누군가에겐 불쾌한 냄새일 수 있지만, 저에겐 왠지 반가운 향이랍니다. 사람마다 느끼는 감정은 다르겠지만, 저에겐 그 냄새가 일종의 신호 같아요. 가을이 오고 있다는 신호. 여름의 무거움이 조금씩 사라지고, 가을의 선선함이 우리를 감싸기 시작하는 그 순간. 그래서일까요? 사람들은 종종 가을에 더욱 감성적이 된다고 하죠. 짧아서 더 소중하고, 사라져서 더 그리운 계절이니까요. 그리고 은행이 떨어진다는 소리는 진짜 가을이 다가오고 있다는 소중한 증표랍니다. 

은행 향기를 맡으면 제가 가장 좋아하는 형형색색의 단풍이 가득한 가을 산이 눈 앞에 펼쳐져요. 오직 가을에만 볼 수 있는 아름다운 산의 모습은 한국에서 가장 짧은 계절인 가을을 자꾸만 기대하게 만들어요. 단풍이 하나 둘 물들면, 제 마음도 차분해지고 자연스레 발걸음도 느려져요. 산책길에 붉고 노랗게 물든 나무들을 보며, 계절이 주는 작은 기쁨들을 되새기곤 해요. 가을은 그렇게 다른 계절들과 달리 우리의 일상에 조용히 스며드는 것 같아요. 

점점 더 더워지고 추워지는 지구에서 짧은 가을은 더욱 소중해요. 너무 짧아서 지나고 나면 항상 아쉬워요. 하지만 그만큼 더 간절히 기다리게 되는 계절이에요. 가을 산에 오르면, 형형색색의 단풍들 사이에서 잠시나마 시간이 멈춘 듯한 느낌이 들어요. 이 순간이 영원히 지속되길 바라면서도, 결국 가을이 지나가면 또다시 기다리게 될 다음 가을을 기대하게 되죠.

짧은 시간 속에서 더욱 빛나는 가을. 그 계절을 보내고 나면, 늘 조금 더 성숙해진 나 자신을 발견하는 듯해요. 올 해의 가을이 지나간 저에겐 어떤 변화가 있을까요?

자유로운 코멘트 혹은 답신을 주세요!

오늘의 감상이나 떠오르는 것을 공유해주세요 😄

남겨주신 답장은 필진에게 공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