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피레터 2.0 - 기록을 연결하면 어떻게 되나?

기록을 연결하면 어떻게 되나?

일 년을 정리하고 새로운 해를 맞이하기 위해 해볼 만한 일은 참 많다. 그중에서도 나는 오랫동안 읽어보고 싶었지만 끝까지 읽지 못했던 책을 미루지 않고 완독하는 걸 목표로 삼았다.

예전부터 읽고 싶었지만 좀처럼 시간이 나지 않아 읽지 못했던 책 중에는 ‘제텔카스텐’ 매모 기법을 소개하는 책이 있었다.

제텔카스텐은 종이쪽지를 뜻하는 독일어 제텔(zettel)과 상자를 뜻하는 (kasten)을 합쳐서 만든 단어로, 서로 다른 종이쪽지를 이어 붙여 더 큰 아이디어를 만드는 기록법을 뜻한다. 노트 대신 낱장의 종이에 기록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보관하기도 쉽고, 필요한 내용을 찾기도 쉬울 것 같아 예전부터 늘 제텔카스텐 기록 방식을 완전히 익히고 싶었다.

책을 읽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제텔카스텐이 단순히 종이쪽지에 간단한 기록을 하고, 크기가 딱 맞는 나무 상자에 기록을 차근차근 보관하는 일이 전부인 줄 알았다. 하지만 책을 몇 장 넘기지도 않았는데도 제텔카스텐은 기록을 ‘보관’하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단호한 문장이 적혀있었다.

가장 중요한 건 종이쪽지에 새롭게 적은 내용이 기존에 보관한 종이쪽지와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생각하고, 이를 짧더라도 나만의 언어로 정리하는 작업이라고 했다. 쪽지 사이의 연결점을 찾는 과정이 잘 이해가 가지 않아 챗지피티에게 이러한 작업의 예시를 물어보니 아래와 같은 답변이 나왔다.

챗지피티의 친절한 설명까지 읽고 나니, 그동안 내가 적었던 기록들은 어떤 모습이었는지 저절로 돌아보게 되었다. 그동안 다양한 책 속에서 문장을 발췌하고, 기사나 인터뷰에서 인상적이었던 대사를 기록하고, 갑자기 떠오른 재미있는 아이디어를 기록하는데 많은 시간을 썼지만 알고보니 이런 작업들은 그저 문장들을 ‘보관’하는 것에만 그쳤던 게 아닐까 싶다.

문장을 수집해 넣을 유명한 브랜드의 노트를 구입하고, 어쩐지 보기만 해도 기록을 하고 싶어지는 예쁘고 실용적인 메모지가 있고, 예쁜 색상의 잉크가 담긴 만년필로 멋지게 기록을 남기고 싶다는 욕심을 품었던 적도 있다. 계속 눈길이 가는 아름다운 기록이 내게 의미를 더해줄 것 같아서 말이다.

하지만 예쁜 스티커, 마스킹테이프, 메모지를 모아 아무리 비싼 노트에 정성스럽게 기록을 남겨도, 그 기록은 해가 지날수록 방구석에서 먼지만 쌓이는 신세가 되는 일이 반복되었다.

제텔카스텐 기법에 대해 차근차근 알아갈수록 왜 나의 지난 기록들이 늘 시간이 지날수록 외면받았는지 짐작이 갔다. 기록을 내 곁에 모아놓는 것에만 집중했을 뿐, 나는 이 기록을 왜 모았는지, 이 기록과 과거의 기록을 서로 연결 지으면 어떤 새로운 아이디어를 탄생시킬 수 있을지 탐구하는 시간은 좀처럼 마련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김에 몇 년 전 내가 열심히 작성했던 다이어리를 들춰보았다. 무엇을 배우고 있는지, 어떤 약속이 있는지, 어떤 습관을 지니려고 노력 중인지 적어둔 할 일 목록 너머에 위치한 무지 종이에는 그 한 해 동안 내가 모아둔 문장들이 있었다.

문장들을 하나씩 읽어보며 그 안에 어떤 맥락을 찾을 수 있을지 고민해 보았다. 철저한 계획에 따라 의도적으로 적은 문장이 아니라 이 기록들을 하나로 연결 짓는 게 가능하긴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오히려 과거에 수집한 문장을 읽어 내려갈수록 과거의 나와 연결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때 나는 이런 고민이 있었고, 이런 상황 때문에 막막함을 느꼈는데, 그래도 이러한 이벤트 덕분에 위안을 얻었구나, 이때 이런 사람들이 나를 지지해 줬구나 같은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며 말이다.

아무 연결고리가 없는 기록을 모아 새로운 아이디어를 창조한다는 제텔카스텐 기법과는 방향이 좀 달라졌지만, 그래도 과거의 기록을 통해 과거의 나와 연결되는 순간을 발견할 수 있었다. 비록 좀 늦어지긴 했지만 그때의 내가 미처 자신에게 해주지 못한 감사와 위로, 공감, 격려를 해줄 수는 있었으니까.

아무래도 제텔카스텐 기법은 이와 관련된 책을 끝까지 다 읽은 뒤에야 제대로 삶에 적용할 수 있겠지만, 그래도 일단 지금은 과거의 나와 연결되는 순간을 소중히 여기기로 했다. 내 과거와 현재를 연결해 보면 이전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색다른 아이디어가 탄생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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