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피레터 2.0 - 어휘, 문장, 그리고 나

어휘는 홀로 존재할 수 없다. 문장의 재료이기에 문장을 통해서만 생명력을 가진다.

- 유선경 <하루 한 장 나의 어휘력을 위한 필사노트> 

이 문장을 처음 접했을 때, 마음이 크게 흔들렸어요. 스스로의 어휘력이 부족하다고 느끼던 때였기에 더 깊이 와닿았던 것 같아요. 그날, 서점에서 우연히 이 책을 발견하고 바로 구매했습니다. 손글씨에 자신이 없어 필사를 선호하지 않았던 저였지만, 좋은 문장을 직접 쓰며 천천히 음미하는 과정이 제 세상을 넓혀줄 것 같았어요.

책의 첫 챕터에서 만난 이 문장은 어휘와 문장의 관계를 새롭게 보게 했어요. 어휘가 중요하지만 문장 속에서 어떤 어휘들과 연결되는지, 어떤 문맥에서 사용되는지에 따라 뜻이 달라지는게 새삼 신기해졌어요. 특히, 외국어를 공부하고 가르치는 제게 특히나 큰 울림으로 다가왔어요. 단어 하나의 의미는 문장 속에서 연결되는 방식에 따라 다르게 변하고, 그 문맥이 어휘에 생명을 불어넣는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죠. 필사를 통해 좋은 어휘를 단순히 따라 쓰는 것을 넘어, 그것이 문장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어떤 다른 단어들과 연결되는지를 이해하고자 노력하게 되었어요.

첫 날 필사한 작품은 미하엘 엔데의 '모모'였는데, 평소였다면 예쁘게 따라쓰기 바빴을 필사 시간이 저 문장을 읽고 마음에 새기며 필사를 하자 한 문장 한 문장이 더 깊게 다가오더라구요. 그 과정에서 필사가 단순히 손을 움직이는 행위가 아니라 책 속 문장과 나 자신을 연결하는 경험임을 깨달았어요.

그동안 어휘력을 기르고 싶어서 고전 문학을 의식적으로 읽어 왔는데 아무런 생각 없이 읽은 책들은 오히려 내 안에 남지 않고 떠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어휘가 문장 속에서 어떻게 존재하는지, 어떻게 연결되는지 생각하며 읽었더라면 지금 내 안에 남는 내용이 더 많지 않았을까 하는. 내가 읽는 책, 문장과 내가 실제로 연결되려면 읽는 행위에 더해서 스스로 생각하는 단계를 거쳐야만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과정에서 책과 나를 연결하는 독서란, 단순히 글자를 읽는 행위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는 단계를 거치는 과정임을 느꼈어요. 책 속 어휘가 문장 속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이해하고, 나아가 그 문장들이 내 삶과 어떤 연결고리를 가질 수 있을지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더라구요. 이 과정을 통해서야 비로소 책 한 권을 제대로 읽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단순히 '글을 읽는다'는 행위에서 이 작품과 내가 연결될 수 있게 도와주는 행위가 바로 '독서'라는 점이 새삼스러웠어요. 필사 하나로 이렇게까지 사고를 확장할 수 있다니! 아직 첫 페이지를 필사했지만 앞으로 만날 다양한 글의 조각들이 제 사고를 얼마나 넓혀줄 수 있을지 기대가 되는 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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