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피레터 2.0 - 소울푸드와 함께한 기억이 용기가 될 때

소울푸드와 함께한 기억이 용기가 될 때

몇 달 전에 갑자기 이 순간이 행복하다는 생각이 떠올랐던 적이 있었다. 도심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멋진 고층 빌딩의 소유자가 되어 그런 생각을 했다면 좋았겠지만, 어릴 때부터 오랫동안 머물러서 이제는 특별한 것도 없는 평범한 우리 집에서 떠올린 생각이다.

그날따라 집에는 아무도 없었고 늘 창밖을 넘어오던 자동차 경적도 들리지 않아 온 집안이 조용했다. 맛있는 원두를 사용한다고 소문난 근교 카페에 다녀왔다가 얻어온 원두로 커피 한 잔을 내려 좋아하는 컵에 담아 왔는데, 거실 소파에 앉아 따뜻한 커피의 향을 맡다 보니 마음이 무척 편안해졌다. 그 뒤를 이어 지금 이 순간이 정말 행복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조용한 공간에서 맛있는 커피 마시기. 평범하고 특별한 것 없는 심심한 장면이지만 꽤 나쁘지 않고 오히려 상당히 좋았다. 한 사람이 온 생애에 걸쳐 느낄 수 있는 행복의 종류는 다양하겠지만 그래도 아직 내가 갖지 못한 행복을 기다리는 대신 아무리 평범하더라도 지금 이 순간 편안한 마음으로 온전히 즐길 수 있는 행복에 집중하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였다.

무심코 지나칠법한 사소한 순간을 몇 달이나 지난 지금까지도 생생하게 기억하는 걸 보면,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나 사소한 음식도 시간이 흐르고 나면 오히려 큰 용기와 위안으로 바뀌는 것 같다. 불안하고 걱정스러운 순간이 찾아오더라도 일단 향이 좋은 맛있는 커피 한 잔을 마시면 금세 불안함 속에서도 행복을 느낄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품을 수 있게 되니까.

과거의 행복했던 기억이 담긴 음식이 현재의 내게도 위안을 주는 순간은 이 외에도 정말 많다. 어렸을 때 몸살감기에 걸려 끙끙 앓았던 적이 있었는데 너무 아파서 뭘 먹을 기력이 없었지만 유일하게 새우깡만이 머릿속에 계속 떠올랐다. 엄마를 졸라서 새우깡을 조금 먹고 나서는 편안하게 잠들었는데, 그때의 기억 때문에 지금까지도 나는 새우깡과 더불어 해산물 맛이 나는 모든 과자를 좋아한다. 그리고 편의점에서 새우깡을 볼 때마다 어릴 때 크게 아팠던 나를 위로해 준 과자가 바로 이것이었음을 떠올린다. 행복과 위안은 먼 곳이 아니라 편의점에서도 얻을 수 있다는 농담같은 생각도 떠오르고 말이다. 

다리를 다쳐서 몇 달 동안 병원 침대에서 일어날 수도 없었던 어린 시절 가족들이 사주었던 초콜릿, 친절한 직원분이 있는 집 근처 카페에서 처음 맛본 따뜻한 카페 모카, 너무 맛있어서 새로운 사람을 알게 될 때마다 무조건 데려갔던 인도 커리 가게, 가족들과 함께 모여 있을 때 자주 먹었던 피자, 집 근처에서는 멕시칸 음식점을 찾을 수 없어 먼 타지역에 갈 때마다 늘 챙겨 먹었던 브리또보울. 이처럼 일상에서 종종 챙겨 먹을 때마다 소소한 기쁨을 주었던 음식들은, 반대로 힘든 날에 찾아 먹으면 행복뿐만 아니라 위로와 용기를 전해주기도 했다.

이러한 음식들은 마음을 위로해 준다는 의미에서 한국식 영어로는 소울 푸드, 영어로는 컴포트 푸드라고 하는데 아무래도 나는 소울 푸드라고 말하는 쪽이 훨씬 더 마음에 든다. 아무리 오랜 시간이 흘러도 이 음식들로 위로받은 순간은 쉽게 지워지지 않을 것이고, 내 삶의 일부처럼 언제나 내 곁에 머물러 줄 것이라는 느낌을 확실하게 표현해 주니까.

그러니 소소한 일상 너머의 삶을 조금 더 탐험해 보고 싶을 때, 소울 푸드를 통해 언제든지 용기와 위로를 내 안에 불어넣을 수 있음을 기억해 보고 싶다. 용기와 위로는 편의점에서도, 카페에서도, 이국적인 식당에서도 찾을 수 있음을 알고 있으면 삶에서 어떤 당황스럽고 복잡한 일을 만나도 단단한 마음으로 이겨낼 수 있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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