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피레터 2.0 - 늘 똑같은 하늘은 없어서 다행이야

늘 똑같은 하늘은 없어서 다행이야

난생처음으로 자연을 보며 위로받은 적이 언제인지 기억하는지. 나는 학교를 갓 졸업하고 처음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을 때 비로소 자연에서 긍정적인 감각을 느낄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피할 수도 없을 정도로 수많은 곤충과 늘 함께해야 하고, 대중교통은 물론 인터넷도 사용할 수 없고, 밤이 되면 어떤 불빛도 찾아볼 수 없는 주변 환경 때문에 정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과 함께해야 하는 농촌 환경을 어릴 때부터 접해서 그런 걸까? 자연에서도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다는 인식을 얻기까지 좀 시간이 걸린 셈이다.

그전까지만 해도 물, 산, 땅으로 둘러싸인 자연환경에 머무를 때마다 나는 편안함이 아니라 답답함과 고립감을 느꼈다. 언제 보더라도 달라진 구석 없이 늘 한결같은 환경 속에서, 늘 같은 사람을 보고, 늘 비슷한 불편함을 겪을 때마다 내가 주체적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에 힘이 빠졌다.

모든 동네 사람이 나와 우리 가족을 알고 있어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금세 소문이 도는 건 어린 나이에도 불편했고, 내 이름이나 의견은 이곳에서 전혀 중요하지 않고 오직 ‘OO네 손주’라는 것만이 나를 설명하는 모든 정보가 된다는 사실도 무력감을 가증시켰다. 덕분에 자연이 돋보이는 환경일수록 불편함은 커지고 익명성은 사라진다는 현실적인 생각이 어릴 때부터 착실히 쌓였다.

그러니 어쩌면 나는 아무리 나이를 먹더라도 휴식이나 평안을 위해 농촌을 찾지는 않을 것 같다. 아무리 마음이 맞지 않는 사람이 있더라도 그곳에 머무르는 이상 공동체 생활을 필수로 해야 하고, 어느 순간부터는 사람이 아닌 파리, 모기, 꼽등이 같은 벌레나 들쥐 같은 날짐승과의 공동체 생활도 영원히 피할 수는 없다는 점 또한 받아들여야 하기 때문이다.

거대한 자연 속에서 무력한 인간으로 생존하기란 보기보다 힘든 일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자연을 통해 위로받은 적이 있었다. 언제봐도 늘 똑같아 보였던 자연이 사실은 어제와는 늘 다른 모습으로 등장한다는 걸 눈치채었을 때부터였다.

나는 가을의 어느 날 처음으로 학교를 떠나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지금처럼 평균 기온이 심각하게 높지 않았던 옛 시절의 가을은 늘 맑고 쾌적했지만, 텃세가 심한 또래 직원들 사이에서 늘 쾌적하게 지내기란 쉽진 않았다.

직장인이라면 아무리 직장 생활이 고돼도 월급이 입금되면 금세 위로를 받는다고 하던데, 그 당시 나는 월급으로 마땅히 사고 싶은 것도 없었고, 장기적으로 돈을 어떻게 관리해야 할지 전혀 모를 정도로 시야도 좁았다. 월급을 받으면 그저 퇴근길에 집 근처 빵집에서 좋아하는 빵을 몇 가지 고르는 것 외에는 딱히 나를 위로할 방법을 찾지 못했다.

늘 변함 없이 매번 같은 환경 속에서 어제와 조금도 달라지지 않은 일을 하고 늘 똑같은 짓을 하며 시간을 보내야 하는 게 힘들게만 느껴지던 시절, 퇴근길에 사 들고 간 빵 외에 나의 유일한 위로가 되어주었던 건 퇴근 길에 만난 가을 하늘과 저녁노을이었다.

퇴근길에는 늘 차가 밀려 도로 위에 오랫동안 갇히는 게 답답하긴 했지만 그럴 때마다 창문 밖으로 보이는 저녁노을은 멋지기만 했다. 도로가 정체될 때마다 나는 창문 밖으로 핸드폰 카메라를 들이대고 저녁노을이 만들어낸 형형색색의 하늘을 찍어댔다.

매주 그렇게 사진을 찍다 보니 핸드폰 사진첩에는 하늘 사진이 빼곡하게 들어찼는데 신기하게도 늘 똑같은 퇴근길에 찍은 사진이었음에도 똑같은 사진은 단 한 장도 없었다. 어떤 사진에는 주홍색과 회색 구름이 멋지게 하늘을 덮었고, 또 다른 어떤 사진은 파란 하늘과 주홍 하늘이 적절히 섞여 있었고, 또 다른 사진은 주홍 하늘과 더불어 길가에 피어 있던 억새도 함께 찍혀있었다.

늘 변함없이 똑같은 하루 속에 갇혀 있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늘 무력감을 느꼈지만 사실 어제와 똑같은 하늘은 단 한 번도 존재하지 않았다. 어제의 하늘이 오늘의 하늘과 비슷해 보일 수는 있어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다른 점투성이다. 그 사실을 깨달았던 퇴근길에 난생처음으로 자연으로부터 위로를 받았다.

무엇이든 늘 영원하지 않고 언제든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은 그때도 그렇고 지금까지도 위안이 된다. 물론 어릴 때부터 농촌 환경을 자주 접한 영향 때문인지 지금까지도 내게 자연환경이란 편안함보다는 불편함을, 일상으로부터의 해방보다는 자연에 의한 고립을 가장 먼저 연상시키곤 한다.

하지만 우연히 본 가을 하늘을 통해 인간이라면 누구나 언제든지 자연으로부터 위안을 받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이후로는 인간 또한 자연의 일부이고, 가끔은 자연을 의식하며 살아가야 비로소 숨통이 트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늘 똑같은 하늘은 없어서 다행이고, 가끔은 하늘을 의식하며 바라볼 때 위로받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어 다행이다. 매일 어제와는 다른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이상, 나도 자연처럼 매일 조금씩 달라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품에 안으며 살아간다는 사실도 다행스러운 건 물론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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