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피레터 2.0 - 내가 사랑하는 한강

내가 사랑하는 한강

20년을 대구에서 살다가 서울에 올라왔을 때, 내게 가장 인상적인 곳은 한강이었다. 그냥 도시를 가로지르는 큰 강일 뿐인데 마음이 복잡할 때 한강을 오면 강바람에 고민이 모두 사라지는 것 같았다. 너무 덥거나 추운 날을 제외하면 '한강에 가고 싶다'고 나도 모르게 생각했던 적이 많았다. 한강은 자연이 주는 회복의 힘을 가득 머금고 있는 나만의 힐링장소였다. 

화창한 봄날엔 분홍색의 벚꽃을 보러 한강을 갔다. 따뜻한 날씨와 아름답게 핀 벚꽃은 겨울동안 꽁꽁 얼어붙었던 마음도 사르르 녹여줬다. 꽃을 한창 구경하고 한강 어느 구석에 돗자리를 펴고 벚꽃을 구경하는 사람들을 구경한다. 그리고 고개를 돌리면 언제나 앞으로 흘러가는 강물이 시야에 들어온다. 가만히 흘러가는 강물을 바라보다보면 인생만사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할건 없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인생은 큰 흐름을 가지고 있고 그 물살에 몸을 맡기고 흘러가면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다보면 봄이 지나간다. 

무더운 열대야가 찾아오기 전 초여름은 한강을 방문하기에 최적의 시기다. 해가 저문 후 선선한 강바람이 불어오면 선유도 공원을 찾아간다. 서울에 있는 모든 한강을 사랑하지만 특별히 더 마음이 가는 장소가 있냐고 물어본다면 나는 고민없이 선유도 공원을 말할 것이다. 과거 정수장으로 이용되었던 선유도는 정수장의 건축구조물을 개조해 환경재생 생태공원을 만들었다. 탁 트인 다른 한강공원과 다르게 선유도는 곳곳에 숨은 보물같은 장소들이 있어서 나무들에 포근하게 쌓여서 강을 바라보는 맛이 있다. 해질녘 선유도의 흔들그네에 앉아서 강을 바라보면 정말 마음이 평화로워진다. 

너무 더운 여름은 한강을 방문하기에 좋은 시기는 아니다. 하지만 9월부터 10월의 늦여름~초가을의 날씨는 선선하게 낮부터 한강을 즐기기 좋다. 이제 낮부터 한강에 돗자리를 펴고 저녁까지 쭉 여유를 즐길 수 있다. 특히 한강에서 그림을 그리면 그렇게 집중이 잘 되는데, 집에서 읽기 힘든 책도 한강에서는 쉽게 쉽게 읽힌다. 시원한 바람과 푸릇푸릇한 풀들이 주는 어떤 에너지가 있는걸까?

겨울의 한강은 동적으로 움직여줘야하는 에너제틱한 공간으로 탈바꿈한다. 봄여름가을처럼 한 자리에 돗자리를 깔고 앉아있다가는 얼어죽기 마련이다. 가볍지만 여러겹 겹쳐 입고 한강변을 가볍게 걸어준다. 시원한 혹은 조금은 시린 바람이 이마, 볼, 귀를 스치면 그때 나는 살아있음을 느낀다. 마음이 복잡할 때 겨울의 한강바람을 맞으면 정신이 번쩍 들곤 한다. 시린 한강의 맞바람은 땅굴을 파고 우울해질뻔한 나를 위기에서 여러번 구해줬다. 

사계절 나에게 영감을 주고 치유를 해주는 한강은 내가 서울에서 계속 살고 싶은 가장 큰 이유다. 팍팍하고 힘든 서울살이이지만 한강이라는 자연이 주는 힐링은 다른 무엇으로도 대체되기 힘들 것이다. 역으로 생각해보면 이것이 바로 도시에 자연이 필요한 이유인 것 같다. 존재만으로도 사람들을 치유해주는 힘이 있으니까. 내가 사랑하는 한강이 계속 그 모습을 잘 유지하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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