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피레터 2.0 - 당신에겐 미화된 기억이 있나요?

당신에겐 미화된 기억이 있나요?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고, 그 순간에는 강렬했던 감각이더라도 시간이 흐르면 그 때의 기억은 자연스레 사라진다. 하지만 사라지는 기억 속에는 그 일부만 남아 초기의 감정과는 다른 감정으로 남는 기억이 있다. 그것이 바로 미화된 기억이다. 

그 당시에는 너무나 강렬했던 순간의 감정은 시간이 지날수록 풍화된다. 나쁜 쪽 보다는 비교적 좋은 쪽으로. 내 인생에서 가장 많이 미화된 기억은 아무래도 20대 초반 유학 시절의 기억일 것이다. 20살이 되자마자 떠난 우즈베키스탄에서 4년을 살았다. 물론 중간중간 한국에 들어오긴 했지만 4년이라는 시간을 외국에서 홀로 고군분투하며 살았다. 처음엔 언어를 몰라서 힘들었고 그 다음엔 영어로 수업을 따라가느라 힘들었다. 그리고 우즈벡 안의 한인 사회에서 사람들을 만나며 그 사이에서 힘들어했다. 어느정도 이 나라가 익숙해졌다 싶었을 때 택시 강도를 당했다. 차에서 탈출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 지 모를 정도로 위험한 상황을 겪었고, 내 나라가 아닌 곳에서 경찰서를 다니고 재판까지 해봤다. 

이 모든 기억들을 돌아보면, 사실 부정적인 감정이 많이 떠오른다. 힘들었고, 적응하지 못해서 겉돌았고, 사건 후에는 안전하지 못하다는 생각에 항상 불안했다. 음식은 입에 안맞고 친구들이 하는 말은 30%도 이해하지 못해서 항상 마음 속에 벽이 있는 것만 같았다. 그런데 참 이상한게, 한국에 돌아와서 직장을 다니다보니 그때 나름 괜찮지 않았나?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인간이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나쁜 기억이 비교적 쉽게 미화된다. 힘들었지만 다 지나간 일이고 지금의 내가 중요하니까. 과거 안좋았던 기억을 떠올리면 신기하게도 '그래도 이건 괜찮았잖아' 하는게 함께 떠오른다. 적응은 힘들었지만 그 안에서도 나를 많이 챙겨준 우즈벡 친구들, 힘들 때 항상 타슈켄트 시내를 산책했던 한국 지인들, 재판을 준비할 때 도와준 많은 학교 친구들까지. 내 머리는 부정적인 것보다 긍정적인 것을 더 오래, 더 진하게 기억한다. 그러다보니 사람에 대한 미움도 쉽게 미화되어 아련함으로 남는다. 

나와 조금만 맞지 않으면 모두 쳐낸 모두 까기 인형이었던 나의 20대. 어떤 사람이 내게 3번 이상 실수하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차단했다. 사람은 변하지 않고, 저 사람이 나를 위해 변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다. 말하는 건 입만 아프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사회생활을 해보고 지금와서 다시 돌아보면, 꼭 그렇게 했어야 했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나름 그들과 좋았던 기억이 있고, 불편했던 것은 내가 적극적으로 더 이야기 해봤어도 됐을텐데 너무 강한 자기방어의 수단으로 '손절'만이 답이라고 생각했을 때가 있었다. 

미화된 기억은 나에게 과거를 반추하게 한다. 그리고 앞으로는 현재에도 긍정적인 기억을 더 남기자는 다짐을 하게 한다. 

자유로운 코멘트 혹은 답신을 주세요!

오늘의 감상이나 떠오르는 것을 공유해주세요 😄

남겨주신 답장은 필진에게 공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