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피레터 2.0 - 그때는 확신했지만, 지금은 별 의미 없는 과거의 기억들

그때는 확신했지만, 지금은 별 의미 없는 과거의 기억들

늘 책상 한 구석에 먼지 덮인 채로 방치되었던 프린터기를 오랜만에 사용할 일이 생겼다. 별로 중요한 내용을 출력할 건 아니라서 예전에 썼던 이면지를 활용해 보려고 책장을 뒤적였는데, 그러던 중 약 3년 전의 내가 A4용지에 휘갈기듯 쓴 고민을 발견했다.

3년 전에 쓴 별스럽지 않은 기록이 그동안 한 번도 정리되지 않고 계속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는 것도 멋쩍긴 했지만, 그 당시 내 고민의 종류가 이렇게나 다채로웠는데 그 중 지금까지도 기억나는 고민은 많지 않다는 점도 정말 멋쩍었다.

친해지고 싶은 사람과 좀 더 가까워지려면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 왜 나는 새로운 무언가를 시도하기에 앞서 설렘보다 막막함을 느끼는지에 대한 고민, 앞으로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찾기 위한 고민 등 고민의 종류는 한둘이 아녔기 때문이다.

그런데 3년이 지난 후 과거의 내 고민에 대한 기록을 읽어보니, 어떤 고민은 3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긴 했지만 대부분의 고민은 시간과 자원을 낭비하면서까지 심각하게 골몰할 정도로 중요한 일은 아니었다는 게 눈에 들어왔다.

특히 인간관계나 자신감에 대한 고민은 과거에 비해 현재는 별 의미가 없었다. 과거의 나는 나를 힘들게 했던 사람이나 사건이 영원히 나의 인생에 영향을 줄 것이라고만 생각했고, 그래서 그에 대한 고민에서 헤어날 줄을 몰랐다.

한 번 뒤엉킨 인간관계는 오랫동안 내 기억 속에 남아 내가 사람들과 깊은 관계를 이어가지 못하도록 장기적으로 영향을 줄 것이라고 예상했고, 내 자신감을 한껏 떨어트렸던 기억도 마찬가지로 머릿속에 깊게 남아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짐작했었다.

하지만 30년도 아니고, 10년도 아니고, 그로부터 겨우 3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도 그 중 지금까지도 내 머릿속에 끈덕지게 붙어 내게 영향을 주는 기억은 극소수였다. 3년 전의 나는 부족한 자신감에 대해 고민했지만 그럼에도 해를 거듭할수록 과거에는 상상도 못 할 용기를 내는 횟수가 쌓이기 시작했다. 그 당시 친해지고 싶었던 사람과 멀어지면 두 번 다시 비슷한 사람을 다시 만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알고보니 세상은 아주 넓고 사람은 너무 많아서 딱히 그렇지도 않았다. 나를 영원히 힘들게 할 것이라고 확신했던 것 중 상당수는 너무 성급한 결론이었다.

그런데 왜 모든 힘든 기억은 결국 시간이 지날수록 희미해질 걸 알면서도 자꾸만 순간의 걱정에만 휘둘리는 걸까. 조금 덜 걱정하고, 조금 더 가볍게 생각해도 지워질 기억은 자연스럽게 지워지며 모든 상황은 계속 변화하기만 할 텐데.

물론 과거의 내가 품었던 고민이 그 당시에는 정말로 내 삶에서 중대한 요소였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 고민의 중요성은 내가 자신에게 여유를 주지 못했기 때문에 실제보다 더 커진 것 같기도 하다. 아주 잠깐이라도 내 마음에 여유를 두고 지금 눈앞에 놓인 일만이 내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는 걸 인식하고, 시간이 조금이라도 지나면 이 기억 또한 희미해질 것이라는 걸 자신에게 자주 말해주었다면 순간의 고민을 조금 더 객관적으로 바라볼 힘을 얻었을 것 같다.

그렇다면 지금의 나는 어떤 기억을 마치 영원히 지속될 것처럼 품고 있을까? 그 기억이 정말로 장기적으로 내 삶에 영향을 줄까? 시간이 지나면 그 기억의 중요성이 달라질 수 있지는 않을까?

올해의 나는 3년 전과 비교했을 때 전혀 뒤처지지 않을 정도로 고민과 걱정이 많기 때문에 연말이 지나기 전에 한 번쯤 이 질문들에 대해 생각해 볼 시간을 가져보고 싶다. 어쩌면 3년 전의 나처럼 A4 한쪽에 현재의 고민을 적어 보면 재미난 일이 일어날 것 같기도 하다.

분명히 미래의 나는 2024년의 내가 품은 그 고민을 별스럽게 생각하지 않을 테지만, 과거의 고민에 더 이상 휘둘리지 않을 정도로 강인하고 현명한 사람으로 거듭났다는 뿌듯함은 미래의 내게 즐거운 선물이 되어줄 테니까. 과거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었다는 자신감을 바탕으로 미래의 나는 어떤 재미난 일에 확신을 갖고 뛰어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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