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피레터 2.0 - 나는 생각이 너무 많을 때 신나는 노래를 들어

나는 생각이 너무 많을 때 신나는 노래를 들어

생각은 생각보다 영향력이 너무 크다. 생각이 너무 많으면 현실에서는 일어나지도 않는 일을 괜히 과도하게 상상해서 겁을 먹게 되기도 하고, 반대로 생각이 없으면 훨씬 담대하게 움직이기도 하니 말이다.

나의 경우에는 대체로 전자와 같은 상황이 자주 발생했다. 별것 아닌 용건을 위해 문자나 이메일을 작성할 때도 단번에 글이 써지는 경우는 절대로 없었다. 이런 스스로가 답답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괜한 생각과 걱정을 멈추는 게 쉽지만은 않았다.

그래서 세상에는 나와 비슷한 성향의 사람들이 이미 생각을 멈추는 자기만의 노하우를 널리 공유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무척 안도했다. 책, 온라인 동영상, 팟캐스트, 강연 등 정말 다양한 분야에서 말이다.

생각 많은 사람들의 말을 대체로 살펴보자면, 일단 생각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경우에는 빨리 다른 방향으로 생각을 전환하는 편이 좋다고 한다. 떠올리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것들을 생각하거나 (ex. 멋진 휴양지에서 유유자적한 시간 보내기) , 가벼운 스트레칭이라도 좋으니 일단 일어나서 몸을 움직이거나, 지금 느껴지는 감각(호흡, 감촉, 몸의 무게 등) 에 집중하면서 말이다.

이런 방법들을 하나씩 다 실천해 본 결과 이들 모두 생각을 멈추는데 정말 효율적인 방법이긴 했지만, 계속 지속하기에는 은근히 쉽지 않았다. 생각에 빠지는 건 평소에도 자주 일삼는 너무나도 익숙하고 손쉬운 일인 반면, 위와 같은 행동들은 완전히 습관으로 옮기기에는 아무래도 시간이 좀 필요한 일이니 말이다.

그래서 요즘의 나는 내게 가장 익숙하고 쉬운 방식으로 생각을 전환한다. 노이즈캔슬링 기능이 있는 헤드폰으로 정말 좋아하는 노래를 듣는 것. 다만 이때 노래를 듣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핸드폰으로 괜히 인터넷 창이나 SNS를 들여다보는 것도 금지, 돌아다니기도 금지, 평소에는 하지도 않는 정리 정돈을 괜히 깔짝거리는 것도 금지하고 오직 노래만 듣는다.

그저 무언가를 할 때 심심함을 덜기 위해 음악을 틀어놓을 때와는 달리, 그저 음악을 듣는 행위에만 집중하면 놀랍게도 멜로디와 가사에 묻혀 상대적으로 잘 들리지 않았던 악기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린다. 드럼이 어떤 식으로 박자를 치는지, 베이스는 어떤 음을 내는지, 기타 반주는 어떻게 달라지는지 하나씩 인지하게 된다.

하나의 곡은 이토록 여러 가지의 소리가 동시다발적으로 쌓이고 쌓여서 만들어진다는 것을 완전히 이해하기 될 때쯤에는 나를 두려움에 빠트렸던 생각도 상당히 누그러든다. 이처럼 한 곡에 몰입할 때의 효능을 알게 된 이후로는 중요한 일을 앞둘 때마다 평소에 즐겨 듣던 노래부터 챙겨 듣는다.

언플러그드 보이라는 어느 만화책에서는 ‘난 슬플 땐 힙합을 춰’라는 대사가 등장한다. 실제로 이 만화책을 읽어본 적은 없지만 한때 온라인에서 유행했던 대사여서 지금까지도 종종 생각나곤 한다. 슬플 때는 그저 슬퍼하는 게 훨씬 익숙한 모습이기 때문에 슬픔과 힙합과의 연결점은 쉽게 찾기 어렵지만, 깊은 생각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선택하는 몰입의 방식은 사람마다 제각기 다르겠다는 점을 고려해 보면 왠지 심적으로 이해가 되는 대사이기도 하다.

위 대사를 바탕으로 뜬금없이 내 소개를 하자면, 나는 생각이 너무 많을 때는 아주 신나는 노래를 듣는다. 얼렁뚱땅 유쾌한 장면이 자주 등장하는 영화 슈렉의 OST로 삽입되면 아주 잘 어울릴 것 같은 00년대 초반의 노래들을 좋아한다. 약간의 촌스러움에 조금씩 익숙해지기만 한다면 이 흥겨운 노래는 어떤 악기들로 구성되었는지 집중할 수 있고, 악기의 소리에 몰입하다 보면 쓸데없이 내 행동을 옭아매는 깊은 생각들은 사라진다.

말이 나온 김에 어느 때보다 유독 긴 이번 연휴에는 아무런 생각도, 걱정도 없이 그저 좋아하는 플레이리스트에 집중하는 시간을 가져보려 한다. 노래를 몇 번 듣는 것만으로 생각 많은 성격이 단번에 바뀔 리는 없겠지만, 그래도 노래를 듣는 건 언제나 내가 가장 좋아하는 취미였으니 어느 때곤 나를 생각으로부터 구해줄 수 있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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