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아지경을 느껴본 적 있나요?
무아지경 無我之境
본디 불교에서 유래된 말로 '마음이 한 곳으로 온통 쏠려 자신의 존재를 잊고 있는 경지'를 말한다. 1월의 키워드인 몰입에 대해서 한 달간 글감을 찾다보니 이 단어에 닿게 되었다. 자신의 존재를 잊을 만큼 몰입하는 경지라, 지금껏 내가 살면서 한 번이라도 느껴 본 적이 있던가?
고등학생 때 나름 공부를 열심히 하던 아이었다. 바깥 세상의 소음을 잊고 나에게 빠져 본 적이 언제였나 내 기억을 더듬어보니 고등학생 시절 교실의 풍경이 그려졌다. 늦은 밤 야자시간 (야가 자율학습) 특히나 좋아했던 수학 과목의 문제집을 풀며 무아지경에 빠졌던 것 같다. 어렵고 복잡한 문제를 쓰기 위해 내 모든 에너지를 뇌에 보내고 정답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단 하나의 실마리도 보이지 않는 문제는 좀 더 쉽게 나를 무아지경으로 데리고 갔다. '대체 어떻게 풀어야 하는거야?' 하는 생각으로 문제를 뚫어져라 쳐다보면 어느 순간 하나의 실마리가 보인다. '실마리'라는 단어가 너무나 적합하게 그 다음부터는 풀이과정이 술술 풀린다. 다음 단계, 또 다음 단계 풀다보면 어느새 주변의 소음은 들리지 않는다. 오직 나는 다음 단계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에만 관심이 있다. 그래, 나의 무아지경은 그 순간이었다.
어른이 된 후 언제 무아지경을 느꼈는가 생각해보면 잘 떠오르지 않는다. 아, 응원하는 야구 팀이 극적으로 이겼을 때? 9회 말 투아웃까지 끌려가고 있던 점수를 한 방에 따라잡으며 역전하는 경기는 나를 무아지경으로 데려갔다. 그 순간에는 나의 존재고 체면이고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기쁨' 그 한 단어만이 내 안에 남았다. 생판 모르는 옆 사람을 보며 포효를 하고 짜릿함을 느꼈다. 무아지경이라는 거 이럴 때도 느껴볼 수 있구나.
일을 하면서 무아지경을 느꼈던 적은? 없다고 생각했는데 또 하나 둘 씩 떠오르기 시작한다. 맨 땅에 헤딩하면서 새로운 사업 아이템의 시장 조사를 했던 순간, 새로운 고객을 얻기 위해 콜드 콜을 돌렸던 순간, 직접 발로 뛰어다녔던 순간. 집에서는 내가 좋아하던 책을 읽었던 순간이 떠오른다. 한강 작가님의 '소년이 온다'를 읽었을 때, 나는 더 이상 내가 아니었다. 나는 광주에 있었다. 이렇듯 우리는 다양한 순간 무아지경을 경험한다. 뜻을 읽었을 때는 아주 멀리 있을 것 같은 개념이지만 한 번 내 인생을 돌아보면 생각보다 자주 경험하는 것이 무아지경인 것 같다. 나의 다음 무아지경의 상태는 언제 찾아올까?
오늘 쓴 글과는 다르게 쉽사리 하나에 집중하지 못하고 이것 저것 일만 벌리는 요즘입니다. 여러분은 어떨 때 무아지경을 느끼곤 하나요? 어떻게 그 상태로 빠져드나요?
🐚 미뇽
저도 소년이 온다 책을 읽으면서 책 속 내용에 엄청나게 몰입했을 때가 떠오르네요! 잘 생각해보니 요새는 멀티태스킹을 하기가 너무 쉬워진 세상이라서 오로지 한 가지 일에만 무아지경으로 빠져드는 경험은 일상에서 겪기 어려워진 것 같아요 😓
🧸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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