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피레터 2.0 - 올해 만난 행운들로 일 년 돌아보기

매달 새로운 주제의 에세이를 보내드리는 에피레터의 이번 달 주제는 “회고”입니다.

올해 만난 행운들로 일 년 돌아보기

내가 가장 좋아하는 뮤지컬 렌트(Rent)에는 이런 가사가 등장한다.

‘당신은 일 년을 무엇으로 재나요?’

일 년이라는 기간을 월, 날짜, 시간, 초라는 숫자 단위로 잴 수도 있지만 이 가사는 매일 마신 커피 숫자, 웃음이나 아픔을 일 년을 재는 단위로 쓸 수 있다고도 노래한다.

생각해 보면 일 년이라는 1이라는 단순한 숫자로 표현하기에는 너무 길다. 하루동안 겪을 수 있는 감정의 수도 한 두 가지가 아니고, 하루 동안 해낸 일의 목록도 너무 많으니까. 그래서 일년을 회고하기 좋은 12월을 맞이한 김에, 이번 일년을 재는 척도로는 행운을 골랐다.

나는 매달 다이어리를 적는데, 먼슬리 및 위클리 페이지 너머 다이어리의 후반부에 마련된 빈 페이지에는 한 달을 리뷰하는 항목들을 적어둔다. 작년 이맘때쯤 읽은 <나를 리뷰하는 법>이라는 책에서 영감을 받아 작성하게 된 페이지인데, 아래와 같은 총 6가지의 항목들로 한 달을 리뷰한다.

사실 처음에는 한 달을 리뷰하는데 ‘행운’이라는 항목을 포함해도 괜찮을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 행운이란 늘 찾아오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매달 내게 행운이 찾아오리라는 확신을 갖고 이를 기록으로 남길 수 있을까?

그런데 정말 놀랍게도, 이번 달 내가 맞이한 행운을 적기로 마음먹으니 정말로 내게 행운이라고 부를만한 사건을 한 달에도 여러 번 겪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일 년에 한두 번의 행운을 맞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라고 생각했는데, 행운은 한 번도 거르지 않고 매달 내게 찾아왔었다. 매달 내게 찾아온 행운 중 일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행운 목록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달았지만, 자세히 보면 행운이라고 이름 붙이지 않았더라면 그저 ‘좋은 경험이었다’라는 감상에서만 그쳤을 소소한 일이 대부분이다. 3월에 난생처음으로 로또에 당첨되는 행운을 얻긴 했지만, 5천원어치 로또를 구매해서 5천원의 상금을 얻었기 때문에 행운이라기엔 좀 애매하긴 하다.

하지만 내가 무엇이 행운인지 아닌지 결정하는 기준은 ‘예상하지 못했던 좋은 결과를 얻었는지’뿐이다. 굉장한 결과, 위대한 결과, 사람들 앞에서 우쭐거릴 수 있는 결과가 아니라 그저 기분 좋은 결과만 나오면 된다.

아무리 노력하거나 진심을 쏟아내도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을 때가 살다 보면 꽤 많다. 그런 점에서 거창하지 않더라도 기분 좋은 결과를 맞이했다는 건 행운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다.

크고 거창한 것에는 누구나 자연스럽게 눈길이 가니, 회고할 때도 삶의 커다란 변화나 성취를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당연하긴 하다. 하지만 1년 동안 내게 찾아온 작은 행운들을 기록하다 보니 거창한 변화의 순간이 찾아오지 않아도 삶은 이미 다채로운 변화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물질적인 혜택이든, 우연히 만난 좋은 인연이든, 혹은 노력 끝에 얻은 성취든 무엇이든 행운이 된다. 그 순간을 기억하고 기록으로 남기기만 한다면 말이다. 현실에서 쉽게 만나기 어려운 순금 덩어리가 아니라 길을 걷다 보면 볼 수 있는 네잎클로버가 행운의 상징인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지 않을까? 삶이라는 여정에서 마주하는 기분 좋은 만남은 무엇이든 우리의 행운이 될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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