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피레터 2.0 - 만약에 기억이 사라진다면

만약에 기억이 사라진다면

가끔 그런 상상을 한 적이 있다. 기억이 쌓이는 것이 아니라 주기적으로 사라진다면, 나는 과연 어떤 기분이 들까? 영화 메멘토처럼 10분마다 기억이 자꾸 사라지면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할까? 

나라는 인간은 기억이라는 것에 꽤나 집착하는 편이다. 좋아하는 것을 기억하기 위해 일기를 쓴다거나 메모를 한다거나, 블로그를 꾸준히 운영하는 이유도 바로 그것이다. 좋아하는 물건이 있다면 쉽게 버리지 못한다. 그 물건에 깃든 추억이나 소중한 기억들이 물건이 사라지면 함께 없어져 버리는 것 같기 때문에. 어떤 노래를 좋아하게 되는 이유도 그 노래를 들었을 때의 과거의 기억이 계속 떠오르면서 현재의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21살의 내가 영국에서 런던 시외 투어를 하면서 들었던 그 팝송을 2024년 지금 다시 들을 때, 그 때의 몽글몽글한 기억이 현재에 지쳐있는 나에게 힘을 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날 한 순간에 기억이 사라진다면, 그리고 그 이후에도 기억이 자꾸만 삭제된다면 난 정말 견딜 수 없을 것 같다. 아니? 오히려 생각해보면 내가 이런 사람이었다는 기억도 없으니, 기억이 사라진다는 것에 대한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려나? 내가 나라는 사람을 이해하는 것도 모두 내가 겪어온 인생의 경험을 '기억'함으로서 발생하는 현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기억이 사라지면, 나는 나이면서 내가 아니게 될 지도 모른다. 

메멘토의 주인공처럼 매 순간을 기록하더라도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내가 이것을 왜 적었는지도 잊어버리게 된다면, 나는 삶의 의욕을 모두 잃어버릴 것 같다. 이런 상상을 해보니 얼마나 나라는 사람이 기억을 소중하게 여기는지 알 것 같다. 싫어하는 것을 잊는다는건 어떻게 보면 축복이 될 수도 있지만 좋아하는 기억을 잃어버린다는 것은 나에게 정말 큰 형벌로 다가온다. 그래서일까 나이듦의 자연스러움이 가져다 줄 지도 모르는 '치매'라는 질병이 너무나 무섭기만하다. 나자신을 잃어버리는 그 순간을 어떻게 견디며 버틸 수 있을까. 

그렇기에 기억에 대해 생각하면 할 수록 현재를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결론에 다다르게 된다. 비록 내가 치매에 걸리지 않더라도, 어떤 기억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소멸되고 그 자리는 새로운 기억으로 대체된다. 좋았던 모든 순간을 기억하고 싶지만 인간의 뇌는 용량 제한이 있다. 지금의 순간을 놓치고 후에 후회하기 보다는, 지금 매 순간을 즐기고 감사히 여기는 것이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선이 아닐까 생각이 드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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