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피레터 2.0 - 지난 날의 내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지난 날의 내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잠이 오지 않는 어느 새벽, 인스타그램 피드를 둘러보다 “정말 열심히 산 사람만 할 수 있는 말”이라는 제목의 릴스를 보게 되었다. 두 명의 연예인이 일반인을 인터뷰하는 프로그램에서 일부 장면을 따온 영상이었다.

20대, 30대, 40의 자신에게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묻는 연예인의 질문에, 일반인 인터뷰이는 “20대에는 돈을 벌기 위해 노력했고, 30대에는 아파트를 장만하기 위해 노력했고, 40대에는 자식이 좋은 대학에 갈 수 있도록 지원하느라 아등바등했는데 돌이켜보니 부질없는 일이었다”라는 이야기를 농담처럼 대답했다.

하지만 이 영상을 본 누구도 이 말을 정말 농담처럼 여기진 못할 것 같았다. 긴 세월에 걸쳐 주어진 환경 속에서 치열하게 노력했던 삶이 이 짧은 대답에 압축해서 담겨 있었으니까.

연말에 진행하는 회고는 대개 지나온 1년을 기준으로 돌아보기 마련이다. 하지만 어느샌가 회고하기 위해 과거를 돌이키다 보면, 일 년 전의 나뿐만 아니라 좀 더 오래전의 내 모습까지 돌아보게 될 때가 있다. 몇 년 전의 나라면 절대 하지 못했을 일을 올해의 나는 현실로 옮겼다든지, 반대로 몇 년 전에 저질렀던 실수를 올해도 똑같이 되풀이했다는 걸 알게 될 때라든지.

그래서 우연히 만난 그 짧은 영상을 시청한 뒤, 나도 지난날들의 내게 어떤 말을 해주고 싶은지 상상해 보았다. 지나온 세월을 돌이켜볼 때, 과거의 내가 무엇을 놓치지 않았더라면 훨씬 더 좋았을까?

너무 뻔한 어른이 된 것 같아 슬프지만, 10대 시절 내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다양한 세상을 탐색해 봤으면 좋겠다”라는 상투적인 말뿐이다. 그때는 현재의 친구 관계가 영원할 줄 알았고, 지금 마주한 환경이 세상의 전부인 줄 알았다.

하지만 10대 때부터 불편함과 두려움을 감수하고 더 많은 사람, 더 다채로운 환경 속에 뛰어들었다면 훨씬 더 흥미로운 삶을 살았을 것 같다. 그래서 학교와 집을 오가는 데 모든 시간을 다 썼던 10대 때의 내게 위와 같은 말로 진부하지 않고 흥미로운 삶을 더해주고 싶다. 너무 재미없고 상투적인 말이라서 10대의 나는 이 조언을 절대 귀담아듣지 않을 것 같아 아쉽지만 말이다.

20대의 내게 하고 싶은 말은 “너한테 집중해”이다. 20대부터 기숙사, 회사, 여행, 모임 등을 통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일이 부쩍 늘었는데 그때마다 온갖 사람들을 다 보았다. 그래서 사람 때문에 어떤 문제를 겪을 때마다 20대의 나는 그 문제의 원인을 내게 돌렸고, 타인이 나에 대해 하는 말도 진실처럼 받아들였다.

타인의 말에 이리저리 휘둘리는 상황을 벗어나서야 비로소 20대는 갖가지 이유로 인생에 대한 참견을 받는 시기라는 걸 알게 되었다. 이제 와 생각해 보니 사회가 20대에게 바라는 것은 너무 많았다. 심지어 모순되는 사항도 바란다. 새로운 트렌드를 잘 쫓아가길 원하면서도 기존의 사회적 관념에는 의문을 제기하지 않고 그저 가만히 있길 원하고, 성실하게 일하거나 공부하는 모습을 원하면서도 활발하게 놀러 다니며 다채로운 경험을 했길 원하고, 보기 좋게 잘 가꾼 모습을 원하면서도 너무 사치스럽거나 요란하지는 않기를 원한다.

하지만 내 인생을 휘두를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고, 아무리 진심 어린 마음으로 건네는 조언이라도 그것이 정말로 내게 필요한 조언인지 결정하는 건 나밖에 없다. 이걸 20대에 알게 되었다면 내 앞날을 지금보다 훨씬 단단하게 설계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이런 내 조언에 제목을 붙인다면 “정말 후회스럽게 산 사람만 할 수 있는 말”이 되지 않을까? 하지만 과거는 언제나, 누구에게나 후회스러운 시간일 것이다. 역사를 알면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는 말이 있는데, 이를 개인의 삶에 대입해 보면 일단 역사라고 부를 수 있을 만한 과거의 경험이 누적되어야만 앞으로의 미래를 예측해 볼 수도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러니 과거의 후회는 아직 충분한 데이터가 없기 때문에 벌어진 일일 뿐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회고할 때면 조금씩 떠오르는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련이 조금 누그러진다. 다가오는 불확실한 미래가 걱정될 때도, 이는 그저 데이터를 쌓는 과정이라고 생각해도 될 것 같다. 어떤 일이 벌어지든 이는 곧 미래의 내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일러주는 데이터가 될 테니까. 다가오는 연말을 맞아 지난날을 회고할 때 이제부터는 걱정보다 기대를, 후회보다는 깨달음을 더 많이 안고 과거의 나를 조금 더 친절하게 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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